현장에 답이 있다

민종홍 지휘자

동해시립합창단

현장에 답이 있다

민종홍 지휘자

동해시립합창단


나는 지역에서 나고 자랐다. 지금도 강원도 영동지역을 중심으로 지휘자와 성악가로 활동하고 있다. 어릴 적에는 그저 노래 잘한다는 칭찬이 좋았고, 진로를 고민하던 시기에도 음악이 좋아서 성악을 선택했다. 해외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20년 넘도록 정신없이 후배들을 가르쳐왔다. 자신감에 넘치는 애송이 음악가에서 어느덧 무수한 후배와 제자를 거느린 위치에서 지역의 문화예술 현안을 결정하는 위치에 서게 됐다. 돌이켜보면 지역에서 꾸준히 음악가로 활동할 수 있었던 건 주변의 아낌없는 격려와 칭찬 덕분이었다. 나의 수많은 실수와 부족함을 사랑으로 채워주었던 선생님들과 선배들의 존재를 이제야 깨닫기 시작한다. 그래서 나도 후배와 제자의 실수를 자꾸 지적해 젊은 음악가의 사기를 떨어뜨리기보다는, 장점을 발견해 그걸 알려주려고 노력한다. 본인의 허점을 서서히 스스로 깨닫고 채워나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지역의 다양한 아마추어 합창단에서 지휘봉을 잡고 있다. 어린이 합창단, 다문화 합창단, 남성 중창단, 교회 합창단... 아마추어 합창단을 지휘하다보면 항상 마음속에서 갈등이 일어난다. 지휘자의 음악적 욕심과 단원들의 역량 사이의 갈등이다. 지휘자로써 음악적 욕심을 앞세우면 단원들에게 연습 시간과 공연은 지옥이 된다. 반대로 단원들의 역량에 맞추게 되면 지휘자는 ‘아무리 아마추어 합창단이라도 저 정도 밖에 못하나’ 하는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어려움은 있기 마련이다. 이럴 때면 ‘음악은 창작자, 연주자, 관객이 서로 교감하고 인정하며 좋은 마음으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을 떠올리며 갈등의 합의점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강릉의 지역아동센터 아이들을 모아 새로운 어린이 합창단을 꾸렸다. 문화예술 경험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뜻깊은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었다. 약 40명의 어린이가 모여 ‘마음소리 어린이 합창단’이 탄생했다. 사실 처음에는 실력이 있는 아이들을 선별해 최고의 합창단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러나 합창을 처음 해보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라 다 같이 한 음정으로 노래하는 것조차 버거워했다.

이 중 특히 기억에 남는 아이가 있다. 편의상 A라고 부르겠다. A 덕분에 나는 마음소리 어린이 합창단의 방향을 180도 바꾸게 됐다. A는 다문화 가정에서 자라 한국말이 서툴렀고 한글을 읽지 못했다. 노래 실력도 형편없었다. 음정을 맞출 줄 몰랐다. A가 다니는 센터의 선생님은 A를 꼭 받아달라고 부탁했지만 나는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A가 합창단에 들어오면 주변의 다른 아이들까지 모두 음정을 잡지 못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A를 합창단에서 제외하고 난 날, 잠자리에 들어서도 해맑은 얼굴로 열심히 노래를 부르며 기대에 가득 찬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던 A의 얼굴이 계속 떠올랐다. 센터 선생님에게 듣기로는 우리말이 서툴러 스트레스를 받아 짜증이 많은 아이라고 했다. 정을 붙이고 인정을 받는 계기가 필요한 아이였다. 결국 다음 연습 시간에 A를 초대했다. A에게는 “너는 비주얼 담당”이라고 얘기했다. 여전히 노래를 못해서 가끔 너무 큰 소리로 부르면 작게 부르라고 다그치곤 한다. 흥을 주체하지 못하는 A를 보며 “그래, 실력이 좋아야 최고의 합창단인가? 즐겁게 하면 그만”이라고 마음을 고쳐먹곤 한다. 


마음소리 어린이 합창단의 첫 정기연주회가 생각난다. 보통 어린이 합창단에서 공연을 하면 단원의 가족들이 총출동한다. 친가, 외가를 합쳐 아이 한 명당 최소 5명의 식구가 객석을 채운다. 그런데 마음소리 어린이 합창단 공연장의 객석은 상황이 달랐다. 아이들에게 미안해질 정도로 사람이 없었다. 공연을 축하하는 꽃다발 하나 없었다. 이 공연이 마음에 계속 쓰여서 내가 지휘를 맡은 어느 성인 합창단 송년 연주회 때 마음소리 어린이 합창단 공연 순서를 기획했다. 많은 사람 앞에서 노래하는 아이들의 표정은 참 밝았다. 아내는 아이들을 위해 작은 꽃다발을 준비해줬다. 그렇게 좋아하는 햄버거, 피자보다 꽃다발을 받고 더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며 마음이 무척 짠했다.


흔히 ‘현장에 답이 있다’고들 한다. 맞는 말이다. 답은 현장에 있다. 비록 현장에 변수가 많고, 어려움이 있어도 최선의 답은 항상 현장에서 찾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해답을 찾아 현장으로 향한다.

2020. 8.

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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