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택트 시대의 생존 신호

— 영화 ‹#살아있다›

강윤주 교수

경희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전공

언택트 시대의 생존 신호
영화 ‹#살아있다›

강윤주 교수

경희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전공


‹#살아있다› 포스터 (롯데컬쳐웍스 제공)

*스포일러 있습니다.



케이팝(K-pop), 케이스포츠(K-sports), 케이푸드(K-food)에 이어 드디어 K-좀비물까지 세계인의 주목을 받는 시대가 되었다. 영화 ‹부산행›이 제70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주목해야 할 10인의 프로듀서’상을 타더니, 넷플릭스의 드라마 ‹킹덤›이 두 번째 시즌까지 대박을 터뜨리면서 바야흐로 K-좀비물은 서구의 좀비물들과는 차별화된 독자적 영역을 확보하게 된 것이다. 미국의 경제 전문지 포브스(Forbes)는 ‹킹덤 2›가 "지금까지의 좀비물 중 최고"라고 격찬하며, “코로나19가 좀비 바이러스가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이라는 코멘트까지 덧붙였다. 특히 ‹킹덤›은 의상, 건물 등에서한국적인 요소를 부각해 명실공히 K-좀비물의 대표작으로 자리 잡았다.그렇다면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영화 ‹#살아있다›는 어떤 면에서 차별화를 노리고 있을까? 이 작품의 차별적 요소는 제목에서부터 분명히 드러난다. 제목에 ‘해시태그(#)’를 덧붙인 작품은 한국 영화역사상 처음이 아닐까? 60대 이상 장년층은 이해할 수 없을, 어쩌면 오타로 생각할지도 모른다. 영화‹#살아있다›는 제목에서부터 이 영화가 청년 세대의 생존 방식을 다각도로 조명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역력히 드러내고 있다.


영화가 시작되면 관객들은 게임에 푹 빠져 사는 게 분명해 보이는 청년 ‘준우’(유아인 배우)를 보게 된다. 암막 커튼이 처진 방에서 늦잠을 자고 일어난 그가 제일 먼저 하는 행동은 컴퓨터 게임을 실행시키고 그 세계 안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는 일. 그가 좀비로 인한 야단법석을 알아채는 것도 TV를 통해서가 아니라 게임 속 동료들이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동료들의 말을 듣고서야 그는 비로소 TV를 켠다. 그때부터 영화는 관객들을 좀비들이 난무하는 아파트 단지로 사정없이 몰아넣는다. 영화가 초반부에 보여주는 특징적 상황 중 하나는 좀비가 된 가족들이 서로를 해친다는 것이다.



#1 좀비 딸과 엄마

좀비를 피해 도망가는 사람들과 이들을 물어뜯으려는 좀비들이 뒤엉켜 사뭇 전쟁터를 연상하게 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엄마, 엄마…” 외치며 책가방을 등에 멘 채 휘청거리듯 걸어오는 한 중학생 소녀를 보게 된다. ‘아, 어쩌지… 저렇게 가다 보면 좀비에게 물어뜯길 텐데… 위험한데…’ 하는 바로 그 순간 아파트 건물 현관으로 소녀의 엄마가 뛰어나오고, 엄마는 소녀를 끌어안는다. 이제 살았구나, 하는 순간 소녀는 엄마를 물어뜯는다. 소녀는 이미 좀비가 되어있었고, 엄마를 물어뜯기 위해 귀가했던 것이며, 게다가 엄마를 자기 반경 안에서 쉽게 ‘포획’하기 위해 겁에 질린, 지친 어린 딸의 모습을 연기했던 것이다.


#2 좀비 형과 남동생

이런 설정은 또 등장한다. 아파트 복도를 뛰어다니는 좀비 무리에 혼비백산한 준우가 현관문을 절대 사수하고 있는 와중에 어쩌다 한 청년이 준우의 집으로 뛰어들어온다. 형이 좀비가 되었다며, 제발 숨겨 달라며 애원하는 그 청년, 알고 보니 좀비가 된 형에게 이미 물린 상태다. 1분도 안 되는 찰나에 그는 좀비로 변해버리고, 준우는 사투 끝에 청년을 밖으로 쫓아내는 데 성공한다.


#3 좀비 아내와 남편

영화 후반부에는 또 다른 가족이 등장한다. 좀비가 되어버린 아내를 차마 죽이지 못한 남편은 제 발로 걸어들어온 아내의 ‘먹잇감’인 준우와 또 다른 생존자 ‘유빈’(박신혜 배우)을 붙잡아놓고 며칠간 굶주린 아내의 위를 채워주려 한다. 그러나 아내의 먹잇감이 된 것은 정작 자신… 자신을 물어뜯는 아내를 뿌리칠 생각도 하지 않고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는 남편의 모습을 두 주인공은 망연자실 바라본다. 영화의 감독은 왜 전통적 가족 관계 서사를 마치 좀비가 사람 내장 뜯어먹듯이 갈가리 찢어버리려고 했을까? 주인공 준우는 가족으로부터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한다. 가족이 안전한 곳에 대피해 살아남아 있다는 희망으로 버티고 있던 그가 수화기 너머 전해 들은 건 식구들이 좀비에게 뜯어먹히는 바로 그 순간의 생생한 현장음이다. 절망에 빠져 자살을 시도하는 준우를 그를 살린 사람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파트 앞 동에 사는 유빈이다. 준우 또한 유빈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 그렇게 살려낸 유빈이 다시 준우를 살린다.


이러한 가족 관계 서사의 파괴와 두 낯선 남녀의 ‘발견’(두 사람은 서로를 우연히 찾아낸다. 아파트 내 모든 사람이 좀비가 됐다고 생각하며 절망에 빠진 순간, 여전히 사람으로 남아 있는 타인을 발견해내고 혼자가 아니라는 기쁨과 절박함으로 서로를 지켜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이 내게는 코로나19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전하는 메타포로 보인다. 한집에 함께 사는 가족도 최대한 몸이 닿지 않게 서로 격리돼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타인과의 공생을 위해 기꺼이 마스크를 착용한다. 마치 영화 속 두 남녀가 무전기로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이 대화와 위로를 통해 간신히 살아남을 수 있듯이, 우리는 지금 온라인 공연, 온라인 회의, 온라인 강의로 서로의 생존을 확인하고 안부를 묻고 있지 않은가. 그러면서도 영화에서와같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한 발자국만 헛디디면 우리를 물어뜯으려 와글대고 있는 좀비 무리와 같은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당하지 않기 위해 숨죽여 살고 있지 않은가.


이 영화에서 시도하는 전통적인 가족 관계 서사의 파괴는 가족 관계를 비트는 것 자체에 목적이 있다기보다, 타인과의 공존과 협업이 이 시대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상대적으로 더 강조하기 위해 깔린 장치로 보인다. 코로나19 시대,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부상한 것은 뭐니뭐니해도 ‘로컬’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중앙 정부에서 재난지원금이며 물품을 지급해도 어느 동네, 어느 골목, 어느 집에 사는 장애인이 활동지원 도우미 없이는 손 하나 꿈쩍할 수 없어서 문 앞에 놓인 쌀과 생수가 무용지물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아챌 수 있는 사람은 앞집 뒷집 사는 이웃이다. 1인 가구 비율이 점점 높아지는 이 시대에 그 중요성을 더욱 절감해야 하는 것이 바로 생판 남, 그렇지만 가까운 거리에 살며 나와 공간을 공유하는 이웃인 것이다.


이웃의 재발견이 왜 중요한지는 이 영화가 아니더라도 코로나19 사태가 충분히 우리에게 알려주었다고 본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인가? ‘커뮤니티 디자인’으로 유명한 디자이너 야마자키 료는 일본의 한 마을 활성화 프로젝트를 맡았을 때 가장 먼저 마을 사람들의 동선을 확인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이 과연 남과 ‘컨택’하기 싫어서 집에만 머무는 것인지, 아니면 남과 접촉할 이유가 없어서 집에만 머무는 것인지를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결론은 ‘동기 부족’, 즉 생필품을 사고 볼일을 보는 데 필요한 모든 시설이 근처에 있다 보니, 굳이 그보다 넓은 반경을 돌아다닐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야마자키 료는 마을 사람들이 이웃집에 있는 동물 모양 조각(일본에는 집을 지키는 수호신처럼 동물 조각을 집집마다 세워두는 전통이 있다)에 호기심을 가지고 보러 다닐 수 있도록 마을의 이름을 딴 ‘환호 동물원’ 지도를 만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사람들은 전보다 넓은 동선으로 마을 길을 걸어 다니기 시작했고, 여기서 촉발된 우연한 만남은 마을 만들기의 초석이 되었다고 한다. 문화예술 분야의 예민한 더듬이들이 바로 이 같은 이웃의 재발견을 위해 동원될 때다. 문화예술 활동만큼 사람의 마음을 깊이, 그리고 섬세하게 읽어낼 수 있는 게 또 어디 있겠는가. 영화 ‹#살아있다›가 청년들의 요즘 문화, 드론을 띄우고 SNS에 자기 생존 기록을 올리며 해시태그를 통해 사람들의 근황을 수집하는 모습을 잘 보여줬듯이, 지금은 문화예술로 할 수 있는 위로의 방법이 무엇인지를 깊이 고민해봐야 할 때다. 집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언택트 시대, 생존이 어려운 이들을 위해 우리가 어떤 예술적 드론을 날려 침묵으로 도움을 요청하고 있는 이들을 구조해낼 것인지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그들의 조난 구호를 제대로 해석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영화 ‹#살아있다›는 우리에게 묻고 있다.

2020. 8.

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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