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장
이선철 대표 ✳︎ 감자꽃스튜디오
마혜련 작가 ✳︎ 미음공간
손민지 대표 ✳︎ 곳간
이혜진 대표 ✳︎ 들꽃사진관
엄찬미 바이올니스트
좌장
이선철 대표 ✳︎ 감자꽃스튜디오
마혜련 작가 ✳︎ 미음공간
손민지 대표 ✳︎ 곳간
이혜진 대표 ✳︎ 들꽃사진관
엄찬미 바이올니스트
청년예술가, 강원 남부에
예술의 씨를 뿌리다
좌장
이선철 대표 ✳︎ 감자꽃스튜디오
마혜련 작가 ✳︎ 미음공간
손민지 대표 ✳︎ 곳간
이혜진 대표 ✳︎ 들꽃사진관
엄찬미 바이올니스트
강원도에서도 남부지역은 문화예술이라는 측면에서는 인프라와 생태계가 활성화 되어 있는 영동이나 ·영서 지역에 비해 크게 주목 받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들어 이 지역으로 들어와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젊은 예술가들이 하나 둘 생기면서 남부지역에도 문화예술의 씨앗이 움트고 있다. 웹진 ‘잇다’ 16호에서는 지역에 정착한 청년예술가들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이들이 지역에 남아 창작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선 어떤 전략이 필요한지 모색해 보고자, 평창, 정선, 영월 등 강원도 남부지역에서 활동하는 청년예술가들과 함께 좌담을 기획했다. 좌담에는 평창에서 폐교를 활용한 공간 ‘감자꽃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이선철 대표(좌장)와 영월의 엄찬미 바이올리니스트, 평창의 마혜련 작가(미음공간 대표), 정선의 이혜진 작가(들꽃사진관 대표)가 영월의 연극인 손민지 대표가 운영하는 공유 공간 ‘방앗간’에 모여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이선철 강원 남부지역에서 활동하는 청년 창작자들 네 분을 모셨습니다. 모두 서울, 혹은 다른 지역에서 활동하시다가 지역으로 돌아온 밀레니얼 세대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간단한 자기소개와 지역으로 돌아오게 된 계기를 말씀해주세요. 오늘 좌담 공간을 제공해주신 손민지 대표부터 이야기해주시겠어요?
손민지 2017년 연극에 조금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찾다가 공연예술 창작집단 사회적협동조합 ‘베짱이’를 운영하는 남편과 함께 영월로 귀촌했습니다. 연극인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던 건 고등학교 때였어요. 대학로로 소풍을 갔다가 연극 <우동 한 그릇>을 봤어요. 태어나 처음 본 연극이었는데, 연극에 빠져드는 계기가 됐죠.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했고, 졸업 후 영화현장 스태프로 일했어요. 그때 제가 연기에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 후에는 극단에 들어가 각본을 썼는데, 거기서 당시 연출가였던 남편을 만났죠.
연극을 전업으로 하는 건 너무나 힘들었어요. 생계를 위해 다른 일들도 병행하다 보니,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신경을 못 쓰게 되더라고요. 정말 내가 하고 싶은 연극만 하기 위해서 영월로 오게 됐어요. 그리고 극단을 만들었죠. 영월에 재미있는 요소들이 참 많아서, 그것들을 공연으로 보존해보고 싶어요.
창작자의 꿈을 꾸게 해주는 ‘문화예술교육’에도 꾸준히 관심을 두고 있어요. 지금 대담을 하는 창작스튜디오 ‘방앗간’에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어요. 제가 우연한 기회로 연극에 입문하게 된 것처럼, 영원의 학생들에게도 어떤 중요한 계기가 될 기회들을 꾸준히 만들어주고 싶어요.
이선철 ‘방앗간’은 최근에 문을 연 곳인데, 지역에서 문화적 교류가 이루어지는 허브이자 브리지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고 있네요. 지역에서는 특히 이러한 공간들이 수행하는 다양한 역할이 중요합니다. 그럼 평창에서 작가 활동을 하며 공간을 운영하고 계시는 마혜련 대표님 이야기도 들어볼까요?
마혜련 저는 평창에서 나고 자랐어요. 초등학생 때 미술 수업에서 선생님께 칭찬을 많이 받았기도 했고, 저도 미술을 좋아해서 계속 미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서양화로 석사 과정까지 마쳤는데, 공부하면서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어요. 그때 아이들 대상으로 하는 미술 교육을 처음 접했죠. 원래 아이들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는데, 아이들과 호흡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아이들을 이해하기 시작했어요. ‘아이들에게 트라우마를 주지 않는 교사가 되어야지’ 하는 나름의 교육 철학도 생겼고요. 그렇게 춘천에서 아동 미술 교육을 하다가 서울로 옮겨 2년 동안 작업 활동을 했어요. 그러다 자연이 그리워 작년 8월에 고향으로 돌아와 ‘미음공간’을 오픈해서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한 미술 교육과 개인 작업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이선철 지역에서 예술을 한다고 하면 신기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을 만큼 지역에서는 예술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은데요, 대부분 학교나 친구의 영향으로 예술의 세계에 입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엄찬미 바이올리니스트는 문화예술 인프라가 부족한 농촌 지역에서 어떻게 바이올린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엄찬미 저도 영월에서 나고 자랐어요. 어릴 때 피아노 학원을 같이 다니던 교회 오빠가 바이올린을 배웠는데, 그게 너무 멋져 보여서 저도 따라서 시작하게 됐죠. 바이올린 전공으로 대학원을 졸업하고 바로 고향으로 왔어요. 지역에 머물다 보니 음악 교육 관련 일들이 조금씩 들어왔어요. 아무래도 영월에 바이올린 선생님이 많지 않다 보니 제게 기회가 생긴 것 같아요. 그렇게 예술교육 커리어를 만들어가게 됐습니다.
이혜진 저는 폐광지역인 정선 사북에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나왔어요. 대구와 서울을 거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들꽃사진관’이라는 공간을 운영하며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초등학생 때 지역의 문화예술단체가 진행하는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처음 사진을 접했어요. 먼지가 쌓인 채 집 구석에 방치돼 있던 필름카메라를 꺼내서 하늘도 찍어보고, 제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찍었죠. 어렸을 때 수줍음을 많이 탔는데, 사진을 찍으면서 스스로 새로운 면을 발견해 나갔어요. ‘사진으로 이렇게 나를 표현할 수 있구나’ 싶었죠.
대학에서는 경찰법학을 공부했고, 졸업 후엔 서울로 이주해서 NGO에서 일했어요. 서울에서는 고시원을 벗어나지 못했어요. 야근도 많았고요. 일을 그만두어야 하나 계속 고민했죠. 그러다 독서 모임에서 사진작가로 미국에서 활동하는 언니를 만나 친해졌어요. 언니가 진로 고민을 하는 제게 ‘네 사진 나쁘지 않으니까 계속해봐, 사진으로 먹고 살 수 있어’라고 말을 해주었어요. 사진을 현업으로 하는 언니가 그렇게 얘기해주니 힘이 났어요. 그래서 고향으로 돌아와 ‘들꽃사진관’을 열게 됐습니다. 창업한 청년이 망하는 사례도 많이 봤지만 내 앞의 큰 기회를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선철 오늘 모인 청년 예술가들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문화예술교육은 지역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문화예술 교육이 청소년들에게 다양한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전문 예술가의 꿈을 꾸는 계기를 마련해주기 때문입니다. 방과후교실이나 꿈다락토요문화학교, 예술꽃씨앗학교 등과 같은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들이 청소년들에게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예술을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해 주고 있어요. 또 이런 프로그램들은 예술 전공자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왼쪽부터) 엄찬미 바이올리니스트, 이혜진 들꽃사진관 대표(뒷모습), 마혜련 미음공간 대표, 손민지 곳간 대표.
감자꽃스튜디오 이선철 대표(좌장).
창작스튜디오 곳간 내부 전경.
이선철 시각예술과 공연예술 등 분야마다 사정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지역에서 창작활동을 할 때 혼자라서 겪는 어려움이 있을 텐데요, 예를 들면 음악 분야는 오케스트라나 합창단을 꾸리려고 해도 지역에서는 함께 할 음악가를 찾기 어려운 경우가 많지요.
엄찬미 그렇죠. 제천에서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고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지역에서 음악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게 쉽지 않아요. 하다못해 제자들을 콩쿠르에 내보내기 위해서 반주자를 찾는 일도 어렵고요.
마혜련 2015년부터 매년 개인전을 열고 있어요. 지금까지 여섯 번 개인전을 열었는데, 단체전은 쉽지 않더라고요. 엄찬미 바이올리니스트가 하신 말씀에 많이 공감합니다. 사람이 너무 귀해요. 작업 이야기를 나눌 사람도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하다못해 ‘미음공간’에 선반을 설치하려고 해도 도와줄 사람이 없어서 혼자 낑낑대며 달아야 해요. 가끔 춘천에 가서 작업하는 친구들과 만나 앞으로 어떤 전시를 하고, 어떤 작업을 이어갈 것인지 이야기하면서 언어적 목마름을 한껏 풀고 와요. 작업 주제로 ‘지역’을 강요 받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불만을 품었던 시기도 있었고요.
이선철 지역은 예술가가 창작 활동을 하는 ‘실체적’ 장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요소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창작 활동을 한다는 ‘장소성’이나 지역의 청년예술가라는 ‘희소성’은 분명 장점으로 작용해요. 이런 것들이 예술가의 차별성이나 고유성을 강화해줄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지역을 작품의 소재로 강요받거나, 혹은 ‘지역성’이란 특성에 안주하는 건 다소 위험하다고 봅니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청년예술가를 보는 시각도 다양합니다. ‘도시에서 잘 안 풀려서 지역에 온 건가?’ 하는 인식도 있어요. 지역 밖에서 인정받는 사람이 정작 지역 안에서는 홀대 받는 경우도 있고요. 그래서 활동 기반은 지역에 두되, 외부와 활발히 교류하면서 활동 범위를 ‘글로벌하게’ 정할 필요가 있어요. 그래야 창작 활동을 지속하고 또 예술가로서 성공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의 본질과 속성을 잘 이해하고, 지역에서 쏟을 수 있는 에너지의 밀도를 적절히 조절하는 게 중요해요. 예술가들이 안정적으로 창작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창작활동과 더불어 지혜롭게 지역살이를 할 수 있는 방법을 꾸준히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모두들 수고하셨고 앞으로 함께 건승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