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은정 대표
칠성조선소
한승희
프리랜스 작가
백은정 대표
칠성조선소
한승희
프리랜스 작가
60년 역사를 간직한 조선소에서 카페와 책방, 전시장이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한 ‘칠성조선소’.
‘속초의 핫플레이스’. 인터넷에서 ‘칠성조선소’를 검색하면 나오는 방문 후기들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수식어다. 세기를 넘긴 옛 조선소가 카페와 전시장, 아이들을 위한 놀이터가 결합된 문화공간으로 변신해 다시 문을 연 것은 2018년. 이후 속초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로 자리 매김하면서 연간 20만 명이 찾는 명소가 됐다.
칠성조선소를 ‘속초 핫플’로 재탄생시킨 주인공은 백은정·최윤성 부부다. 두 사람은 사업적 어려움으로 조선소 문을 닫게 된 최윤성 대표의 부모님을 설득해 조선소를 전통과 미래가 공존하는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었다. 빛바랜 산업 유산을 새로운 문화 자산으로 재생한 모범 사례로 꼽히는 칠성조선소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비가 쏟아지는 오후, 칠성조선소에서 백은정 대표를 만났다. 궂은 날씨에도 칠성조선소 카페 공간에선 빈자리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 미국을 거쳐 속초에 정착했습니다. 속초와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었나요?
백은정 대학교 1학년 때 최윤성 대표를 처음 만났어요. 같은 과 동기였거든요. 최 대표 집이 속초의 칠성조선소여서 다른 친구들과 자주 놀러 왔어요. 친구들이랑 우르르 놀러 가면 아버님께서 가리비나 대합을 한 자루씩 가져다주시기도 했죠(웃음). 제게는 칠성조선소가 친구네 집 같은 친근한 곳이었어요.
대학에서는 조소를 전공했습니다. 저는 공부를 더 하기 위해서 대학 졸업 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어요. 최 대표도 미국으로 유학 왔는데, 미술학교가 아니라 배를 만드는 학교에 진학했죠. 저와 최 대표는 미국에서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았어요. 애초에 최 대표는 배를 만드는 사람이 되어 칠성조선소의 역사를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었기 때문에, 공부를 마치면 속초에 정착하는 게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저도 칠성조선소라는 지역 산업 유산을 보전하는 일에 공감하고 있었고요.
칠성조선소의 역사는 195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윤성 대표의 할아버지가 고향 지명을 따서 지금의 칠성조선소 자리에 ‘원산조선소’를 세우면서다. 최 대표의 아버지는 속초를 떠나 있다가 1980년대 고향으로 돌아와 조선소 이름을 ‘칠성’으로 고치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목선(木船)을 만들었다.
칠성조선소의 역사가 위태로워진 건 2000년대 들어서다. 플라스틱으로 만든 배들이 목선을 밀어낸 탓이다. 평생 배를 만든 목수들이 일자리를 잃었고, 칠성조선소도 목선 대신 철선(鐵船)을 수리하며 가까스로 사업을 유지했다. 결국 2017년 8월 최 대표의 부모님은 조선소 문을 닫았다.
최윤성 대표에게 칠성조선소는 가족의 생업 공간이자 일상 공간이었다. 그는 매일 바다에서 배를 육지로 끌어올려 수리하고 다시 배를 바다로 내리는 풍경을 보며 자랐다. 그가 소중한 기억이 켜켜이 쌓인 조선소를 지켜야 한다고 마음먹게 된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배를 고정했던 선대는 편하게 앉아 쉴 수 있는 매력적인 휴식 공간이 됐다.
칠성조선소를 어떤 공간으로 만들어가고 싶었나요?
백은정 우리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랐어요. 그러면서도 조선소의 유산을 최대한 보존하고 싶었기 때문에 어떤 것을 지켜나가고, 어떤 것을 변화시켜야 할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우리는 배를 만드는 사람들이고, 카누와 카약 같은 레저 선박을 만드는 브랜드 ‘와이크래프트보츠’도 운영하고 있어서 배를 만드는 작업공간은 꼭 필요했고, 조선소의 역사를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는 공간도 있어야 했죠. 또 이곳에서 미술 전시나 음악 공연도 하고 싶었어요. 최 대표가 음악을 워낙 좋아하고 오랫동안 밴드활동을 했거든요.
조선소 건물을 근대유산으로 지정하는 방안도 고려했어요. 그런데 행정적으로 한계가 많았죠. 반세기도 더 전에 지어진 건물이다 보니 그동안 불법으로 증축된 부분도 있고, 남의 땅에 걸쳐 있는 부분도 있었고요. 여러 모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많아서 근대유산 지정은 잠정 포기 상태입니다.
남편 최윤성 대표와 함께 칠성조선소를 운영하는 백은정 대표.
칠성조선소를 물려받게 된 백은정 대표와 최윤성 대표는 ‘칠성조선소의 오래된 미래’라는 제목으로 마스터 플랜을 세웠다. 키워드는 ‘tradition’ 그리고 ‘transition’, ‘전통’과 ‘전환’이다. 두 사람은 조선소 본래의 모습을 최대한 보존하면서 여기에 새로운 기능을 더하는 방식을 택했다. 배를 만들고 고칠 때 사용했던 기계들은 그 자체로 조선소의 역사를 생생하게 전하는 유물이 됐다. 사람들이 바다로 이어진 조선소 마당 곳곳에 놓인 선대(육지로 끌어올린 배를 세우던 받침대)를 벤치 삼아 앉거나 누워 있는 풍경은 칠성조선소의 전통이 새로운 문화로 전환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칠성조선소 앞마당의 상당 부분을 아이들을 위한 공간인 ‘플레이스케이프(Playscape)’로 조성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백은정 최 대표는 이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냈어요. 특히 플레이스케이프가 만들어진 바로 그 자리에서 많이 놀았다고 해요. 거기에 나무를 켜고 다듬는 제재소가 있어서 늘 톱밥이 수북이 쌓여있었거든요. 톱밥을 모래삼아 놀기도 하고, 배 밑에 숨기도 하고, 배를 만들고 남은 나무 막대로 칼싸움도 하고요. 조선소가 그에게는 어린 시절 추억이 담긴 놀이터인 셈이죠.
최 대표의 기억 속 놀이터를 다시 구현하고 싶었어요. 최 대표가 그랬던 것처럼 다른 아이들도 이곳에서 마음껏 뛰어놀면서 즐거운 추억을 쌓을 수 있길 바랐습니다. 플레이스케이프를 조성할 때 둘이서 계속 의견을 주고받으며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시소나 미끄럼틀 같은 놀이기구를 들여놓기보다, 아이들이 상상력을 발휘해서 자유롭게 놀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속초의 파도, 산 등 자연 환경을 형상화한 나무 조형물로 공간을 꾸몄습니다.
또 ‘놀이터’라는 공간 자체에 둘 다 관심이 많았어요. 미국에서도 흥미로운 놀이터들을 보러 다니곤 했어요. 조형적으로도 아름답고 기능적으로도 훌륭한 놀이터를 만들어보고 싶었죠. 이때 연구한 것들이 플레이스케이프를 만들 때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속초의 자연환경을 형상화한 나무 조형물로 꾸민 놀이터 ‘플레이스케이프(Playscape)’
플레이스케이프 덕분에 칠성조선소는 가족 단위 관광객 사이에서 ‘마음 놓고 아이를 데려갈 수 있는 카페’로 알려져 있다. 인터뷰 당일은 비 때문에 플레이스케이프에서 아이들이 뛰어노는 풍경을 볼 수 없었지만, 날씨가 좋을 때는 나무 조형물을 오르락내리락하며 즐거워하는 아이들과 커피를 마시며 그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부모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칠성조선소가 사람들에게 어떤 공간으로 기억되길 바라나요?
백은정 대부분 사람들이 ‘속초 카페’를 검색해서 칠성조선소를 찾아오고 있어요. 조금 아쉽습니다. 우리는 이곳을 카페라고 부르지 않아요. 차라리 ‘공장’이라고 하죠(웃음). 애초에 배를 만드는 공장이었고, 앞으로도 이곳에서 다양한 것들이 만들어질 테니 공장이란 표현이 자연스러워요. 칠성조선소가 사람들에게 그저 ‘속초 카페’로 인식되지 않게 하려면 우리가 굉장히 부지런해져야 합니다. 지난해 목수 장인을 모시고 ½ 규모로 축소한 목선을 만드는 워크숍을 열거나 뮤직 페스티벌을 개최한 것도 공간을 계속 새롭게 만들어가기 위해서였어요. 올 여름에는 대학 선배들과 함께 조각 전시회를 열 예정입니다.
문 닫은 조선소를 이렇게 재생하긴 했지만, 사실 더 먼 훗날에 대해서는 좀 비관적이에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지구가 이렇게 계속 아프면 이곳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걱정하곤 합니다. 지구가 점점 뜨거워져 해수면이 상승하면 조선소는 바다에 잠겨버릴 테니까요. 정말 심각한 문제입니다.
언젠가는 이 모든 것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일까. 두 사람은 조선소의 역사를 기록하는 데 열심이다. 지난해 9월엔 산돌커뮤니케이션과 협력해 칠성조선소에서 생산·수리된 배에 최 대표의 아버지 최승호 목수가 직접 써 넣던 서체를 폰트(‘칠성조선소체’)로 제작했고, 12월엔 속초의 동아서점과 협력해 배 목수 두 사람의 인터뷰 사진집(김영건·최윤성, 『나는 속초의 배 목수입니다』)을 출간했다. 두 사람의 우려대로 설령 칠성조선소가 해저에 가라앉는 날이 오더라도, 칠성조선소의 정체성을 담은 글씨체와 속초 목수들의 이야기는 지상에 남을 것이다.
최윤성 대표는 산돌커뮤니케이션과 함께 아버지 최승호 목수의 서체를 컴퓨터용 폰트 ‘칠성조선소체’로 개발했다.
칠성조선소에서 두 분이 꼭 하고 싶은 일 한 가지를 꼽는다면 무엇일까요?
백은정 우리는 배를 만드는 사람들이에요. 둘 다 조소를 전공했는데, 배를 만드는 것도 손을 사용해서 무엇을 제작한다는 점에서 맞닿아있죠. 배를 만드는 게 작업의 연장선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그래서 현재 카페 주방 공간 뒤편에 있는 작업실을 어떻게든 사수하려고 합니다. 작업실을 좁히고 주방을 넓히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지만, 제가 계속 반대하고 있어요(웃음).
우리가 하고 싶은 건 ‘배 문화’를 정착시키고 알리는 거예요. 우리나라에서 배는 물고기를 잡거나, 바다에 나가서 다른 것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인식되고 있어요. 배를 타는 것 자체가 어떤 문화가 될 수 있는데 말이죠. 배를 타고서 파도를 느끼고, 바람을 즐기는 것. 그런 배 문화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칠성조선소 운영이 조금 더 안정되면 이곳에서 배 만들기 클래스도 열고 싶어요. 미국에서는 아이와 부모가 함께 3~4일 동안 1~2인용 작은 배를 함께 만드는 클래스가 많아요. 어릴 적부터 가족들과 직접 배를 만들고, 그 배를 타고 바다를 즐기는 경험을 쌓으면서 자연스럽게 배 문화를 몸에 익힐 수 있는 거죠. 칠성조선소에서도 그렇게 배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칠성조선소가 ‘한때 조선소였던 곳’이 아니라 ‘계속 배와 배 문화가 생산되는 조선소’로 남길 바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