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시대의 ‘예술하기’ 
— ‘기후정의 예술’을 고민하는 ‘콜렉티브 뒹굴’ 좌담

콜렉티브 뒹굴

기후위기 시대의 ‘예술하기’ 
— ‘기후정의 예술’을 고민하는 ‘콜렉티브 뒹굴’ 좌담

콜렉티브 뒹굴


좌장 | 성지수 콜렉티브 뒹굴 대표

좌담 참여자
곽수아 작가(콜렉티브 뒹굴 세미나 1·2기 참여·기획)
김정은 배우(콜렉티브 뒹굴 멤버)
한윤미 작가(콜렉티브 뒹굴 2기 세미나 참여)


기후위기 관련 담론이 한국에서도 무르익고 있다. 문화예술계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2012년 결성된 예술 창작 집단 ‘콜렉티브 뒹굴’은 기후위기라는 재난 상황을 예술계 혹은 예술인이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창작 안팎의 활동을 통해 풀어가고 있다. 특히 ‘기후위기 예술인 세미나’를 두 차례 기획해 전국 50여 명의 예술인과 함께 ‘기후정의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있다.  

웹진 ‘잇다’ 17호에서는 기후위기를 직면한 예술가들의 고민과 태도, 그리고 어떤 활동을 진행·기획하고 있는지를 들어보고자, 세미나를 기획하거나 참여한 예술인들과 함께 좌담회를 기획했다. 좌담에는 성지수 콜렉티브 뒹굴(이하 ‘뒹굴’) 대표(좌장)와 김정은 배우, 곽수아 작가, 한윤미 작가가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

(왼쪽부터) 성지수 콜렉티브 뒹굴 대표, 김정은 배우, 곽수아 작가. ⓒ콜렉티브 뒹굴

성지수(이하 ‘지수’)   오늘 이 자리에는 뒹굴의 ‘기후위기 예술인 세미나’를 통해 만난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들이 함께 하고 계십니다. 먼저 간단한 자기소개와 더불어 기후위기를 처음 접하게 된 계기를 들려주세요.

 

김정은(이하 ‘정은’)   저는 ‘뒹굴리안(뒹굴의 팀원을 일컫는 말)’으로 공연예술 기반의 작업을 하고 있고, 집에서는 강아지와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뒹굴은 세월호 사건, 미투(#Metoo) 사태 이후처럼 사회적 맥락 안에서 예술의 역할에 대한 고민을 이어온 팀이고, 그런 흐름 속에서 ‘지금 공유해야만 하는 중요한 이슈’로 기후위기라는 상황을 만났어요. 저는 비교적 늦게 기후위기를 알게 된 편인데요, 특히 코로나19 사태를 맞이하면서 사안의 시급함을 체감했습니다. 요즘은 제 삶과 기후위기가 어떻게 연결되어있는가를 사유하는 중이에요.

 

곽수아(이하 ‘수아’)   저는 예술과 공학을 공부하는 창작자이자 학생이고, 기술을 어떻게 예술의 좋은 방법론으로 사용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사람입니다. 기후위기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2년 전 개인적 차원의 ‘페미니즘 리부트(feminism reboot)’를 겪으면서였어요. 그 관심이 다른 여러 권리에 대한 차원으로 뻗어나가다가 공장식 축산 문제를 알게 되었고, 기후위기에까지 미치게 된 거죠.

 

한윤미(이하 ‘윤미’)   저는 주로 거리에서 작업하고 있고, ‘바람컴퍼니’의 창작자입니다. 우연히 TV에서 예방적 살처분 현장 영상을 보았고, 이후에 <고기, 돼지>라는 작업을 하게 됐습니다. 작업은 돼지가 ‘고기’로 우리에게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을 드러내고 이를 관객들이 체험하게 하는 형식이었어요. 작품 리서치를 하며 공장식 축산에 대해 알게 됐고, 그러면서 비건을 지향하게 됐어요. 환경 관련 강의나 좌담회에 참석하고 책을 보며 자연스럽게 환경에 대한 관심이 커졌고요. 또 몇 년 전부터 미세먼지나 가을 태풍으로 인해 공연과 축제 전체가 취소되는 일이 종종 있어서, 기후위기를 점차 인지하게 됐어요.

 

지수   예술인 동료들과 함께 공부하는 세미나를 열자고 제가 정은 배우님께 제안했었는데요, 이 세미나를 함께 준비하며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해요. 수아 작가님이나 윤미 작가님의 참여 계기도 듣고 싶습니다.

 

정은   앞서 제 삶과 기후위기가 어떻게 연결되어있는가를 생각 중이라 했는데, 세미나 개최도 기후위기를 더욱 잘 알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했어요. 특히 기후위기를 알고 난 후 동료 예술인들은 예술 활동이나 생활 일반에서 자기가 하는 선택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궁금했거든요. 같이 모여 정보도 교환하고 얘기도 나누면서 나의 삶과 선택들을 어떻게 소화할 수 있을까에 대해 나만의 관점을 가지고 싶다는 마음도 컸고요. 제가 기획하긴 했지만 동료들을 통해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수아   기후위기 예술인 세미나 1기에는 참여자로서 같이 공부했고, 2기부터는 기획단에 합류해 뒹굴리안들과 함께 세미나를 이끌고 있어요. 사실 제 자신을 예술가나 학생이라고 생각했지, 기후위기 활동가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어요. 그런데 제가 하고 싶은 것들과 일상을 지키기 위해서는 기후위기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 심각성을 사람들에게 알려야만 한다는 걸 받아들이게 됐어요. 그러고 나서는 더 적극적으로 기후관련 활동에 참여하게 된 것 같습니다. 특히 뒹굴의 예술인 세미나에서는 그냥 ‘생짜로’ 기후위기를 알리는 것이 아니고, 제가 예술에 대해 가지고 있는 관심을 기반으로 비슷한 고민을 하는, 비슷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이라 서로의 이야기가 더 와닿는 것 같아요.

 

정은   1기 세미나에서는 과학적 사실들, 우리가 직면해야 하는 현 상태들에 대한 것들을 많이 알게 돼 충격과 공포를 느꼈는데요(웃음), 저와 비슷한 상태가 된 다른 동료들과 같이 있는 게 각성에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아, 기후위기가 각자 사유할 일에 그치는 게 아니라 모두 함께 행동해야 하는 일이구나’라는 걸 감각할 수 있었거든요.

2기 세미나에서는 1기 세미나에서 기본 지식을 쌓은 동료 예술인들이 기후위기를 자신의 언어와 경험으로 어떻게 소화하고 있는지를 공유할 수 있도록 기획했는데요,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떤 작업들을 하고 있는가를 들으며 예술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과 방식이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특히 2기 세미나는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온라인 세미나로 전환하면서 서울 외 지역과 해외에 사는 사람들도 참여하고 있는데, 이것도 참 신기해요.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게, 때론 내 생각보다 훨씬 넓은 범주에서도 가능하다는 걸 경험하고 있습니다.

 

수아   세미나를 동료 강연이나 워크숍 형태로 진행한 덕분에 참가자끼리 자연스럽게 네트워크를 형성할 수 있고, 서로 어떤 작업을 하고 무슨 생각으로 기후위기 시대에 예술을 계속하려는지 들어볼 수 있어 좋습니다. 또 같은 기후위기 시대에 살고 있고 예술을 하고 있다는 비슷한 지점도 있지만, 서로 다른 책임을 지고 있고 또 그 강도도 조금씩 다르다는 걸 세미나를 거듭할수록 느끼고 있어요. 동시에 그 누구도 안전하지 않고, 그 누구도 무고하지 않다는 감각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도 느끼고요. 우리가 느끼는 책임과 위기감을 나누는 것에서부터 네트워크가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그 누구도 위기감과 책임감에서 벗어나 있지 않기 때문에, 이 감각을 확장하면 더 많은 연결과 네트워크가 가능하다는 것을 봤다고 할까? 기후위기를 사유하다보면 자주 지치고 위기감을 느끼는데, 이런 시기에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있어서 무언가 해소되는 것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윤미   기후위기에 관심을 둔 동료들을 만나고 싶었어요. 지금 이 상황에 함께 위기의식을 느끼고 같이 공부하거나 이야기할 수 있는 동료를 만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최근에는 지속 가능한 창작방식에 대해 고민하고 있어요. 저는 제 자신을 창작 작업을 하는 사람, 공연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런 행위들이 환경에는 도움이 안 되죠. 아무것도 만들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 것이 지구에는 더 도움이 될 텐데, 그럴 수는 없잖아요. 제가 좋아하는 작업을 계속하려면 기후위기를 인식해야 하고, 작업 과정에서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무엇을 고려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보통은 여럿이 함께 작업해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공감하는 동료들을 만나는 게 중요했고, 또 함께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콜렉티브 뒹굴이 주최하는 ‘기후위기 예술인 세미나’ 현장. ⓒ콜렉티브 뒹굴

지수   세 분 모두 세미나에 참여하기 전부터 작품 활동을 통해 기후위기를 사유한 경험이 있으신데, 기후위기와 가장 맞닿은 자신의 작업을 간단히 소개해주시겠어요?

 

윤미   앞서 언급한 공장식 축산업에 관한 작업, <고기, 돼지>라는 공연입니다. 관객이 참여하는 이동형 오브제 극이에요. 참여 관객들은 각자 작은 돼지를 만나 그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관계를 맺습니다. 그리고 돼지를 주제로 한 투어를 함께합니다. 돼지에 대한 묵념을 시작으로 돼지고기 부위들을 떠올려보고, 돼지고기 함유 식품 전시를 보며 돼지의 지능과 특징, 야생의 돼지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요. 때로는 돼지가 되었다고 가정하고 농장에서 도축장까지 가는 과정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농장의 커다란 돼지-오브제들과 만나 시간을 보내며 돼지들이 어떻게 태어나고 자라는지 듣는 중, 구제역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구제역 살처분 현장을 함께 목격하게 됩니다. 마지막에는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도축,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라는 또 다른 동물전염병에 대한 우려를 짚고, 모두가 행복한 식사를 제안하며 끝을 맺습니다. 왜 어떤 동물은 당연히 먹는 동물이고, 어떤 동물은 사랑하는 존재일까요? 공연을 본 관객들이 동물의 삶을 결정하는 인간의 태도에 질문을 던지고, 인간과 동물의 교란된 관계를 체험해보고, 공연이 끝난 후 집에 돌아가 저녁 식사를 하며 지구에서 인간의 위치와 역할을 생각해보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정은   뒹굴이 처음으로 기후위기를 작업의 주제 또는 배경으로 삼았던 작업은 <오퍼튜니티> 시리즈(2019년 8월, 서울프린지페스티벌/ 같은 해 12월, 인사미술공간)입니다. 기후위기가 닥쳐 지구대멸종을 앞둔 인류가 화성 이주를 꿈꾸는, 어떻게 보면 상상에 불과하지만 또 어떻게 보면 매우 현실적인 상황을 설정했어요. 관객 참여형 퍼포먼스였는데, 관객들은 화성 탐사 로버(rover)가 되어 애플리케이션이 제시하는 미션을 열심히 수행하게 됩니다. 그러는 와중에 예산 부족으로 몇몇 로버들을 폐기할 거라는 알림을 받아요. 예를 들어 미션 성공률이 낮다던가, 이동 거리가 가장 짧다던가 하는 로버들이죠. 관객들은 이 로버 폐기에 대해 찬성할 수도 있고 반대할 수도 있는 한편, 그렇기에 모든 폐기 의사에 반대했어도 정작 자기는 익명의 누군가에 의해 폐기 대상으로 결정될 수도 있는 거죠. 실제로 공연 중에 “코끼리 코 20바퀴를 돈 후 그 느낌을 서술하라”는 미션을 열심히 수행하던 중에 ‘폐기’된 관객도 있었어요(웃음). 이 작품에서 뒹굴은 그 동안 인류가 생존해온 방법, 그러니까 경쟁이나 ‘노오력’만으로는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연대와 동료애에 대한 성찰이 부재한 채로 예전처럼 성장을 위해 열심히 살기’는 지구에서든 화성에서든 똑같이 파멸만 낳을 뿐이라는 걸 관객들과 함께 감각하고 싶었어요. 기후위기 시대에 ‘나’라는 개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의식 혹은 관심이 그런 형태로 나타난 것 같아요.

 

수아   저는 <웹국토자산부>(https://sooahkwak.com/DWLP)라는 작업을 했어요. 웹 자원이 고갈된 디스토피아를 설정하고, 사회적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정부 기관이 어떻게 개인의 자유를 억압해 평화를 지키려 하는지를 전시 형태로 풀어냈어요. 사람들이 웹 자원을 사용할 때 물리적 자원에 비해 너무 손쉽게 소비해버리고 이에 따른 연쇄적 결과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는 것, 웹 자원 역시 본질적으로 물리적 기반이 자원이기 때문에 사용하면 탄소가 배출되고, 다 쓰면 없어지기도 하며, 부족해지면 사회적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는 인식이 부족하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기후위기 시대에 자원이 고갈되면 민주주의에 위협이 되는 상황을 느끼게 해주는 작업이에요.

 

지수   저는 기후정의 창작을 말하면서도 동시에 ‘지금 예술 나부랭이(?)를 하고 있을 때가 맞나, 당장 모든 걸 버리고 뛰쳐나가 기후행동에 전념해야 하는 게 아닐까’하고 고민하기도 해요. 기후위기 문제를 알게 되고서 ‘예술하기’에 대한 고민이나 어려움은 없으신지 궁금합니다.

 

수아   물리적 작품을 할 때 나오는 쓰레기, 특히 저처럼 예술 공학을 하다보면 영원히 썩지 않는 전자쓰레기가 자꾸만 나오게 되는 점이 고민이에요. 나의 창작활동이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수 있는 것이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웹으로 플랫폼을 전환하는 등 과정에서의 변화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얘기를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웃음) 기후위기나 페미니즘을 알게 되면서 예전에 제가 좋아했던 작품들이 더 이상 좋아 보이지 않게 됐어요. 다시 봐도 재미가 없고요. 그런데 사실 세상 문제에 무관심한, 마냥 행복한 무언가를 보거나 만드는 게 훨씬 마음 편하잖아요. 그런데 스스로도 기후위기에서 벗어난 다른 주제들을 다루면 이 시대에 맞지 않고 필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계속 기후 정의 예술을 하게 되는데, 그게 속상할 때가 있어요. 모두가 기후위기에 대한 책임이 있고 따라서 대응하기 위해 행동하라고 요구하는 게 결국 사람들에게 듣기 불편한 말을 계속하는 거잖아요. ‘나도 재미있는 것, 마음 편한 것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죠(웃음). 기후정의 예술이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할 수 있을지, 무거운 이야기를 가볍게 풀어서 계속 둥둥 떠오르게 하는 방법이 뭐가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그런 고민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찾으면 모든 사람이 기후정의 예술로 작품을 전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기후정의 예술을 재미있고 가볍게 풀어가는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는 곽수아 작가. ⓒ콜렉티브 뒹굴

윤미   환경을 생각하는 지속 가능한 작업을 어떻게 꾸려갈 수 있을까 고민해요. 그래서 택한 첫 번째 방법이 작업에 사용되는 오브제 재료들을 친환경 혹은 크루얼티-프리(crulty-free) 제품들로 교체하는 거예요. 올해 <레인보우 인 달고나> 작업에서는 설탕, 소주, 젤리 등을 동물성 재료가 들어있지 않고 제조 과정에서 동물이 착취되지 않은 것들을 쓰려고 했어요. 이렇게 하다 보면 재료 정보를 찾기 힘들고, 구매 과정도 복잡하고, 추가 예산이 드는 어려움이 발생하기도 해요. 또 내구성, 사용 방식, 작품의 의미 표현 등을 고려했을 때 딱 맞는 대체재를 못 찾는 재료도 있고요. 이런 부족한 부분들을 계속 채워가려고 노력 중이에요. 제가 계속 동물 이야기를 하는 건 아시다시피 공장식 축산업이 기후위기의 주요 원인이기 때문이에요.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개인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실천이 비건(vegan)이 되는 것이라고 하는데, 작업에서의 실천 방법도 찾는 중입니다.

앞으로의 작업들을 지속 가능하게 해나가기 위한 방법들을 꾸준히, 느리게 찾아보고 있어요. ‘기후’를 중심에 두고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나 단체들, 환경을 고려한 축제 등을 찾아보고, 동료들과 그 내용을 공유하고요. 그 과정에서 친환경 재료에 대한 정보도 얻어요. 차에 쌓인 먼지 위에 그림을 그리거나, 공해를 막는 페인트로 로마 시내 한복판에 벽화를 그리거나, 이끼로 도심에 그래피티를 그리는 등 매우 흥미로운 작업들을 찾을 수 있었어요. 하지만 대부분 해외 작업이고, 공연 예술 사례는 찾기가 쉽지 않아요. 지금 당장 새 작업을 어떤 주제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잠시 멈추고 맞는 방향을 찾아서 공부를 하는 중입니다.

 

정은   기후위기를 알게 된 후, 작업을 거의 안 하게 됐습니다(웃음). 뒹굴은 2020년 ‘환경의 날’을 맞이해서 ‘기후정의 창작집단 선언’을 했는데, 아마 뒹굴이 그 전에 해왔던 선택과 비슷한 선택이라고 봐요. 뭔가, 이전과 같으면 안 된다는 문제의식을 느꼈을 때 어디로 갈지는 모르지만 기존의 방법론을 벗어나는 것을 택해보는 거예요. 이전과 같이 살 수는 없다, 이전의 길은 더 이상 길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다른 길을 찾으려는 시도들이 뒹굴의 작업이었고, 기후위기도 그 전환점 중 하나인 셈이죠.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살아서는 안 되는구나. 예술을 하는 이유도 기후위기 이전과 같아서는 안 되겠구나. 그래서 선언을 하긴 했는데, 문제는 그에 맞는 선택과 행보가 무엇일까, 그 윤곽을 그리는 게 참 어렵더라고요(웃음). 충실하게 선택들을 해나가면서도 기후정의라는 말이 지닌 엄숙함, 엄정함에 눌리지 않으면서 경쾌하게 작업을 해나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지수   여러 고민 속에서도 예술을 하는 이유도 듣고 싶어요. 혹은, 기후위기 시대에도 예술(인)의 역할이 있을까요? 있어야 한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정은   저는 예술이라는 말이 일상과 거리가 먼 것처럼 느껴지곤 했었는데요, 그래서 ‘나는 예술인’이라고 거의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지원서 쓸 데만 쓰고요(웃음). 아마 예술이라는 게 일상과 떨어져있는 것, 특수한 영역에 속한 것으로 교육되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런데 기후위기를 알게 되고 그 속에서 나의 예술 활동을 사유하면서, 예술과 삶이 동떨어진 영역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예술이 그 사회와 현장에서 이뤄질 때, 무언가를 소외시키거나 식민지화하지 않으면서 의미 있게 작동할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이제는 예술도 삶의 방식이라고 느껴요. 내 ‘일상적 삶’을 초월한, 도달해야 하는 무언가일 순 있겠지만요.

기후위기 시대 예술인의 역할이라, 글쎄요…. 먹고 사는 것, 그러니까 경제활동을 위해 존재하는 것 이외의 삶의 방식이 존재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짧은 시간이나마 그 삶에 초대해서 그렇게 살아도 된다는 감각을 공유하는 것 아닐까요? 이런 삶이나 이런 욕망도 가능하다는 것을 사람들과 나누는 거죠. 기후위기가 획일화된 욕망 때문에 가속화된 측면이 있다고 보거든요. 사람들의 욕망의 갈래가 더 많이 분산된다면 지구를 착취하지 않으면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안을 더 많이 상상할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이게 원래 예술 혹은 예술가가 해왔던 역할이 아닐까.

 

수아   세미나에서 동료 강연을 하며, 기후위기 시대에 무언가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책임감과 긴급함을 바탕으로 결정을 내려야할 때가 있다는 얘기를 했어요. 기후정의 예술을 할 때에도 비슷한 사유가 필요한 것 같아요. ‘모두가 완전한 자유와 풍요를 누려야 한다’는 유토피아적 상상을 하는 게 아니라, 한정된 자원을 가진 지구에서 한정된 자유를 분배하기 위해선 가끔 무언가를 배제해야 하고, 이런 결정을 위해 책임감과 긴급함을 고민해야 한다는 거죠.

한 마디로 정리하면, 저는 기후위기 시대에 정치적인 예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우리가 기후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작동시켜야 하기 때문이에요. 예술은 미래 결과를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때론 급진적이다가 때론 소극적이고, 묶었다가 풀 수 있는 유연한 무엇으로 생각되곤 해요. 반면 정치에서는 어떤 결정이 번복되기 어렵고, 주장을 법이나 제도로 만들어서 힘을 행사할 수 있는 무엇으로 간주돼 왔죠. 저는 필연적으로 예술도 정치적이라고 봅니다. 유연했다가, 급진적이었다가, 때론 강력하게 주장하면서 다소 폭력적인 강요로도 작동할 수도 있고요. 명확한 답을 내놓되 언제든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묶었다 풀 수 있는 정치적 예술을 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정은   좀 더 덧붙이자면, 저는 ‘예술과 돌봄을 말하는 어리석음’이라는 제목으로 워크숍을 준비하고 있어요. 관련해서 『돌봄의 철학과 미학적 실천』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이 책에선 돌봄 자체를 예술로 보더라고요. 저는 이 관점이 기후위기 시대에 예술이 할 수 있는 일을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예술 자체가 나와 주변을 염려하고, 관심을 가지고, 소통하는 방법론이니까요. 그런 면에서 돌봄과 예술은 밀접하게 붙어있고 조응하는 것 같아요. 누군가의 삶을 지속 가능하도록 상호작용하게 만들면서, 일방적인 관리나 베푸는 것이 아닌 대화의 과정으로 양자 간의 관계가 성립하게 하는 것이 닮아있어요. 그래서인지 이 사회에서의 처지, 그러니까 생산성과 효율성, 경제성을 중시하는 영역에는 끼지 못하는, 비가시화 되어있다는 점도 유사한 것 같고요. 그래서 기후위기 시대에는 돌봄과 예술이 위상을 달리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해서 기후위기 시대의 정의로운 생존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기후위기 시대 예술을 ‘돌봄’과 연결지어 생각해보고 있다”는 김정은 배우. ⓒ콜렉티브 뒹굴 

윤미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에 대해 질문하고, 알리고,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예술인이라기보다는 한 사람의 개인, 작업자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는 중입니다. 기후위기로 힘들어진 삶을 위로하고 대화의 장을 여는 것 역시 예술로 할 수 있는 일, 세상에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수   기후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사람들을 작동시키는 예술, 기후위기 시대에도 뒤처지면 안 되는 것들을 사유하게끔 하고 공동체를 돌보는 예술을 상상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팬데믹 시대에 접어들어 예술이 ‘먹고 사는 데 전혀 중요하지 않은 것’, 혹은 더 나아가 ‘쓸모없는 것’으로 치부되어 자리를 빼앗기고 있다는 감각이 강했는데요, 기후위기에 대해 함께 사유하고 작업하는 동료들과 고민을 나누며 저는 어쩌면 우리가 예술의 본질, 또는 삶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후위기가 한정된 자원의 고갈로 인해 가장 중요한 것, 본질 이외에는 제한하고 선을 긋는 것을 요청한다는 데 동의하고, 이런 시기에 예술은 결코 뒤로 밀려선 안 되는 중요한 삶의 태도라고 생각해요. 결국 예술은 사람이 타자와 동등하게 관계 맺도록 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이면서, 이 방법이 적절하게 작동하게끔 하는 촉매재이면서, 동시에 서로 소통하고 교육하고 돌보는 것이니까요. 오늘 좌담에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0. 12.

17호

강원문화재단 강원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주소 | 강원도 춘천시 금강로 11 KT빌딩
전화 | 033-240-1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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