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입은 바다의 가장자리,
삼척 맹방해변

한승희 

「잇다」편집부

상처 입은 바다의 가장자리, 
삼척 맹방해변

한승희
「잇다」 편집부


우리는 흔히 ‘바다에 간다’고 말하지만 사실 우리가 도달하는 곳은 바다의 가장자리, ‘해변(海邊)’이다. 뭍과 물이 만나는 바로 이 지점에서 바다와의 조우가 시작된다. 찰팍찰팍 찰진 펄부터 바삭바삭 바스러지는 백사장까지, 우리는 차갑고 매끄러운 바닷물에 앞서 해변의 질감을 먼저 느낀다,


환경운동가이자 해양생물학자인 레이첼 카슨(1907~1964)은 미국 북동부 메인(Maine)주의 사우스포트 섬(Southport Island) 해변에 별장을 짓고 그곳에 머무르며 『바다의 가장자리(the Edge of the Sea, 1955)』를 집필했다. 해변 생태계의 변화무쌍함과 풍요로움을 서술한 그의 문장 하나하나에는 바다 가장자리 세계를 향한 무한한 애정과 경외가 스며있다. “바다의 가장자리는 이상하고도 아름다운 세계다. 여기는 지상의 장구한 역사 속에서 파도가 육지에 부딪히며 거세게 부서지는 왁자한 곳, 조수가 뭍을 향해 밀려들었다 물러나고 또다시 밀려드는 곳이다.”1)


여름 기운이 물씬 풍기는 6월의 어느 일요일, 삼척 맹방해변을 걸으며 줄곧 레이첼 카슨의 문장들을 생각했다. 불행히도 매우 역설적인 이유에서다. 현재 맹방해변에서는 삼척석탄화력발전소의 항만 공사가 진행 – 정확히 말하면 진행과 중단을 반복하는- 중이고, 동해안의 어느 “이상하고도 아름다운 세계”는 그렇게 파손되고 있다. 계획대로 2025년 삼척석탄화력발전소가 완공되고 항만이 문을 열면, 앞으로 맹방해변으로는 석탄을 가득 실은 배들이 드나들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맹방해변의 넓고 깨끗한 백사장은 역사 속으로 영영 사라지게 된다. 아니, 사실 우리는 이미 맹방해변의 옛 모습을 잃었다. 

삼척석탄화력발전소 항만 공사가 진행 중인 맹방해변.

삼척종합버스터미널 근처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24번 좌석버스를 탔다. 네다섯 정거장을 지났을 때, 창밖으로 갑자기 바다와 함께 파란색 그물 천막이 드리워진 사각기둥이 등장했다. 삼척석탄화력발전소 관련 기사에 실려 있던 사진 속 공사 현장 풍경과 무척 비슷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맹방해변에 세워진다는 항만의 주요 시설물인 듯했다. 빠르게 뒤로 밀려나는 사각기둥을 힘껏 응시하다가 내릴 채비를 했다. 


‘하맹방리’ 정류장에서 내렸다. 정류장 바로 뒤편으로 논이 넓게 펼쳐져 있었다. 국내 최대 규모 석탄화력발전소와 제반 시설이 들어설 지역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스마트폰 지도 앱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가정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길이 이어졌다. 일요일 한낮이라 다들 집안에서 쉬는지, 동네는 몹시 조용했다. 해변에 가까워지자 민박집들이 하나둘 나타났는데, 손님이 있는 것 같진 않았다.    


소나무가 울창한 맹방해변 산림욕장을 가로질러 해변에 도착했다. 바로 눈에 들어온 것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주홍색 튜브가 뱀처럼 푸른 바다 위로 곡선을 그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기이한 광경이었다. 쾌청한 하늘, 적당한 높이와 리듬으로 밀려오는 파도, 간간이 불어오는 서늘한 바람까지, 해수욕하기 알맞은 6월의 일요일이었음에도 해변엔 인적이 드물었다. 예상했던 바였다. 펜스 튜브 근처에서 텐트를 치고서 일광욕과 수영을 즐기는 청년 무리가 오히려 신기하게 느껴졌다. 

삼척석탄화력발전소 공사가 시작된 2018년 이래, 맹방해변은 여기저기 상처를 입었다. 가장 큰 상처는 백사장의 모래 유실, 그리고 이로 인한 백사장 폭 감소다. 사실 해변에서 모래가 바다로 휩쓸리는 현상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맹방해변의 모래도 해류를 따라 여름엔 남동쪽에서 북서쪽으로, 겨울엔 다시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흐르며 계절마다 해변의 윤곽을 조금씩 다르게 그렸다.


“그 어떤 모래 입자도 한 장소에 오래 머물지는 못한다”고 레이첼 카슨은 단언했다. 해변의 모래는 바닷물과 함께, 혹은 바람과 함께 어디론가 이동하기 마련이니까. 그러나 이러한 모래의 이동이 자연의 섭리에 따른 현상일 수 있는 건 “모래 입자가 하나 쓸려가면 또 다른 모래 입자가 그 자리를 채우기 때문이다.”2)


한편, 쓸려나간 모래의 자리를 채울 다른 모래가 들어올 길이 막히는 순간 모래의 이동은 자연의 섭리를 이탈하게 된다. 맹방해변에서 바로 이러한 이탈 현상이 일어났다. 항만 시설이 들어서면서 바닷물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차단했기 때문이다. 문제가 심각해지자 2020년 10월 환경부는 발전소 건설 공사 사업주인 포스코에너지에 연안 침식 저감 시설을 설치하고 대책을 마련할 때까지 공사를 중단하라고 명령했다. 포스코에너지는 지난 3월 1500억 원을 들여 맹방해변 곳곳에 잠제 6기, 이안제 4기, 방사제 1기, 돌제 2기, 40만 제곱미터 규모의 양빈 등 연안 침식 저감 시설을 세웠다. 바다 위 떠다니는 주홍색 ‘뱀’도 모래 유실을 막기 위한 펜스 튜브(fence tube)라는 장치였다. 침식 저감 시설들이 설치된 후 해변 침식은 멈춘 듯하나, ‘넓고 깨끗한 백사장’을 자랑하던 맹방해변의 옛 모습은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장면이 되어버렸다. 

맹방해변의 모래 유실을 막기 위해 지난 3월 포스코에너지는 해변 곳곳에 침식 저감 장치를 설치했다. 한편 해변이 얼마나 상처를 입었는지는 아직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맹방해변과 맞닿은 도로에는 노란색 ‘위험 접근금지’ 깃발이 달린 밧줄이 길게 이어져 있었고, 수십 미터 간격으로는 안전모를 쓰고서 두 손바닥을 앞으로 쭉 내밀고 있는 캐릭터가 그려진 ‘관계자 외 출입금지’ 표지판과 각종 시설 조감도를 설명해놓은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접근금지선과 표지판 너머 넘실대는 바다에 시선을 고정한 채 도로를 따라 시내 방향으로 계속 걸었다. 걸음을 옮기는 내내 머릿속엔 ‘처참한’, ‘비극적인’, ‘훼손된’ 같은 단어들이 맴돌았다.

여기저기 세워진 공사 안내 표지판과 해안도로를 따라 쳐진 접근금지선 때문에 맹방해변은 영락없는 ‘공사장’처럼 보였다.

발전소 공사를 계기로 맹방해변 인근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도 처참한 비극이 벌어졌다. 발전소가 들어서면 해변을 비롯한 주변 자연이 훼손되므로 발전소 공사를 막아야 한다는 주민과 지역 경제 발전을 위해 발전소 공사를 적극 추진해야 한다는 주민 사이 갈등이 심화하면서 이웃끼리 등을 돌리게 됐다. 주민들은 각종 대책위원회를 꾸려 삼척우체국 앞에서 ‘삼척석탄화력발전소 설립 반대’ 시위를 하거나, 서울 국회의사당 앞에서 ‘삼척화력발전소 항만 공사 재개 촉구’ 시위를 한다. 삼척석탄화력발전소는 맹방해변 말고도 많은 것을 훼손했다.

발전소 설립을 둘러싸고 맹방해변 인근 마을 주민들은 ‘찬성’과 ‘반대’로 분열됐다. 분열된 주민들은 해변 주변과 마을 곳곳에 현수막을 내걸었다.

삼척석탄화력발전소가 작동하게 되면 연간 약 1300만 톤의 온실가스를 배출될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2020년 10월 문재인 대통령은 국제적인 기후위기 대응책에 발맞추기 위해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다. 이 선언을 실현하려면 2050년까지 국내 석탄화력발전시설을 재생에너지 발전시설로 대체해 탄소 배출량과 감축량의 합을 ‘0’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 삼척을 비롯해 강원 강릉, 충남 서천, 경남 고성에 석탄화력발전소 7기가 새로 건설되고 있다. 환경 단체에서 문재인 정부의 ‘2050 탄소중립’ 선언이 모순적이라고 비판하는 이유다. 


맹방해변이 항만으로 바뀌었을 때 발생하는 환경 파괴 문제도 간과해선 안 된다. 인간의 눈에 해변은 그저 모래가 퇴적되어 만들어진, 생명체가 서식하기엔 척박한 땅으로 보일지 몰라도, 그 안에는 겹겹이 온갖 생태계가 뿌리를 내리고 있다. “파도가 새겨놓은 잔물결 무늬, 기력이 다한 파도가 끝끝내 떨구고 간 고운 모래 입자,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오래전에 죽은 연체동물의 껍데기만 보이는 해변에서는 생명의 기운이 좀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아무것도 살고 있지 않을뿐더러 실제로 아무것도 살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모래밭에는 거의 모든 것이 숨어 있다. 대부분의 해변에서 생명체가 살아가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유일한 단서는 구불구불한 자취, 모래의 상층을 어지럽히는 작은 움직임, 혹은 간신히 보이는 관과 감춰진 굴로 이어지는 보일락 말락 한 입구 따위다.”3) 굳이 레이첼 카슨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해변을 오래, 찬찬히 관찰하면 켜켜이 쌓인 모래층마다 온갖 생명체의 세계가 펼쳐져 있음을 안다. 그리고 바로 이 생명체들이 시간을 들여 형성한 질서와 삶 덕분에 바다의 가장자리는 변화무쌍한 동시에 한결같은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장구한 세계의 일부가 무너지고 있다.  

내리쬐는 햇볕 아래 해변을 한 시간 넘게 걷다 보니 머리가 어질했다. 공사장이 되어버린 해변 풍경의 삭막함도 현기증의 요인이었을 것이다. 버스 안에서 창밖으로 봤던 ‘푸른 그물 천막을 뒤집어쓴 사각기둥’까지 가고 싶었지만, 더는 걸을 수가 없었다. 스마트폰을 꺼내 가장 가까운 거리의 버스 정류장을 찾았다. 다행히 삼척종합버스터미널행 버스가 십여 분만에 도착했다. 창가 좌석에 앉아, 얼굴을 창문에 바짝 대고 사각기둥이 빠르게 지나가는 것을 무기력하게 눈으로 쫒았다.   


맹방해변을 걸었던 일요일로부터 6일 뒤인 지난 6월 25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환경부의 승인과 허가 아래 8개월째 중단 상태였던 삼척석탄화력발전소 항만 공사가 다시 시작됐다. 포스코에너지는 최대한 서둘러서 공사를 진행할 방침이지만, 현재 삼척석탄화력발전소는 발전소 시설 공정 35%, 항만 시설 공정 7.5%에 머물러 있어 예정대로 2025년에 완공할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게다가 예정대로 2025년에 발전소와 항만 시설이 완공되더라도, 문재인 정부의 ‘2050 탄소중립’ 목표에 따라 발전소를 25년밖에 가동할 수 없다. 25년도 채 못 쓸 발전소 때문에 바다의 가장자리 세계 일부가 파괴됐다. 이 세계가 다시 원상 복구되려면 250년으로도 모자랄 것이다.


레이첼 카슨은 이렇게 썼다. “바다가 지금 어느 곳에 있느냐, 그러니까 30미터 위에 있느냐, 30미터 아래에 있느냐는 지구 역사 전체로 볼 때 혹은 이 해변의 속성에 비추어볼 때 별로 중요하지 않다. 바다는 지금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이 빛나는 모래벌판 위로 밀려들었다 빠져나가는 일을 느긋하게 반복할 것이다.”4) 지구의 오랜 역사와 해변의 생명력에 비추었을 때, 맹방해변이 입은 상처의 깊이는 어느 정도일까. 바다는 여태껏 그래왔듯 앞으로도 맹방해변으로 밀려왔다가 빠져나가는 일상을 아무렇지 않게 이어갈 수 있을까. 잔뜩 깎여나가고 온통 할퀴어진 맹방해변 풍경이 아른거린다.


1) 레이첼 카슨 지음, 김홍옥 옮김, 『바다의 가장자리』, 에코리브르, 2018, 25쪽.

2) 같은 책, 175쪽.

3) 같은 책, 181쪽.
4) 같은 책, 174쪽.

2021. 8.

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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