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에서 ‘무용쌤’으로 살아남기

제환정

예술교육자/무용해설가

온라인에서
‘무용쌤’으로 살아남기

제환정

예술교육자/무용해설가


온라인에서도 나는 여전히 예술교육자인가

석 달 남짓한 지난 학기 동안 4번의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집체(集體)와 대면을 필수로 하는 예술학교에서, 대면 방식을 줄이고 줄였어도 전염병의 침투는 피할 수 없었다. 그냥 하기에도 숨찬 동작을 마스크를 쓰고 뛰고, 작품 출연자 수를 줄이는 방역형 안무를 하고, 열 명 미만으로 쪼개진 반 토막 수업이 아쉬워도 소용없었다.


와중에 ‘디지털 리터러시’의 체득은 셀프였다. 줌(zoom)으로 채근한 과제는 어플로 편집한 영상물로 돌아왔다. 무용수에게 필요한 마라토너 같은 체력 대신 어플과 편집기술, 촬영기술과 그 감각이 더 유용한 시간이었다. 가뜩이나 넓지 않은 각자의 공간에 요가매트, 1인용 바(bar, 스트레칭이나 밸런스를 돕는 평행봉)를 들여놓는 것은 필수가 되었다. 방역시간에 쫓기지 않는 연습 공간을 찾아 곳곳에 사설 스튜디오가 늘어났다.

최대치의 안전 확보와 동시성이라는 이상한 조합을 충족시킨 온라인 플랫폼은 새로운 교실이 되었다. 이 플랫폼은 외형상 무료였으나 프라이버시 노출, 토론의 열기를 식히는 차례차례 말하기, 뇌의 피로와 더불어 ‘현타’의 순간을 가져왔다. 


나름의 방안으로, 학생들이 비대면 수업(줌 접속)과 대면 수업(교실) 중 하나를 선택하는 ‘투웨이 방식’을 시도했으나, 양쪽 모두를 만족시키기는 어려웠다. 눈앞에서 실존하는 이들은 존재만으로 나를 매료하였고, 그렇게 (동시 접속 중인) 줌의 세계를 잊게 될까 봐 조바심이 났다. 댓글 창에 뜨는 반응이나 질문은 반가웠으나 이를 ‘나 홀로 수업’의 장점으로, ‘감정 노동의 배제’로 본다는 한 연구의 해석에는 뜨끔했다.


교실의 학생들과 줌 속의 학생들은 소통하지 못했고, 나는 두 세계의 매개자가 아니라 가림막이 된 느낌이었다. 나는 티브이에서 보았던 유연한 ‘마리텔’의 진행자가 아니었다. 학기가 끝날 무렵, “금방 끝낼게요, 이것만 하고”가 입에 붙은, 어르고 달래며 ‘일찍 끝나는 것이 그나마 최고의 미덕’인 선생이 되어가고 있었다.


좀처럼 적응되지 않을 것 같던 이 가상의 교실에서 학생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생존법을 찾았다. 동의도 거절도 불가능한 ‘뉴노멀’의 현실이, 이십 대의 그들에게는 더욱 가혹하게 작용했을 것이다. 이동하며 수업을 ‘청취’하는 학생은 언제나 등장했다. 학교에 올 수 없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어딘가 분주하게 갈 곳이 있었다. 한 손에는 핸드폰을, 아니 교실을 들고. 현란한 핸드헬드(handheld, 카메라 혹은 조명 장치 등을 손으로 드는 것) 카메라는 라스 폰 트리에(Lars Von Trier, <어둠 속의 댄서>, <멜랑콜리아> 등을 만든 덴마크 태생 영화감독) 뺨치는 울렁증과 현장감을 주면서 지하철, 택시, 버스, 때로는 쇼핑몰이나 기숙사, 연습실 속 그들을 비춰줬다. 


변화하는 것은 공간만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종종 ‘거대한 고양이’, ‘웃는 개’, ‘보름달’로 변신하거나 ‘금문교’와 ‘하와이’, ‘우주’와 ‘해변’ 어딘가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다양한 반응은 다양한 접근법을 강구하는 대신, 재미없게도 각종 ‘금지’를 늘렸다. 이동 금지, 영상 이펙트 금지, 대출 금지, 청강 금지(친구나 애인이 교차 등장하거나, 가족 또는 반려동물이 마음껏 돌아다니는 것 금지. "저희 고양이가 수업을 듣고 싶어 합니다" 같은 요구 사절)는 그 시작이었다. 

공중에 뜬 유령 모자(어쩐지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는 “예술학교에 마법은 허용되어야 하는가?”라는 미학적 질문을 가져왔고, 부분으로서의 ‘나’(인간 형체의 실루엣, 마스크, 손가락, 혹은 무릎 아래만 출연하는 경우. 심지어 천장만 출연)는 총체적 인간으로서(의 출석으로) 인정되어야 하는가, 하는 철학적인 질문으로 이어졌다. 정교하게 ‘성실하게 수업을 듣는 모습으로 위장한 셀카’ 등장은 더 많은 집중력을 요구하는 한편, 안무 수업에서 “예술적 재현의 성공은 윤리적 정당성과는 별개인가?”라는 내 안의 질문을 남겼다. 


수업의 초점이 샛길로 가는 것을 차단하고자(솔직히 말하면 나 자신의 집중을 위해), 나는 이런저런 상황의 학생들을 ‘대기실’로 옮겨 놓기 시작했다. 버튼 하나로 자력 탈출이 가능한 것을, 그들은 좀처럼 시도하지 않았다. 그길로 사라지는 이들을 추적하고, “나를 돌려놓으라”고 아우성치는 댓글 창 덕분에 수업은 더 산만해졌다. 어느 순간, 나는 ‘이 동네에서 제일 잘 움직이는 무용수’들을 데려다가 사각의 프레임에 꼼짝없이 가두려는 나 자신의 행위가 믿기지 않았다. 이 소란 속에서 우리 사이에 누군가에게 배움(learning)이 가능했다면 강렬한 개인의 의지가 빛을 발한, 기적 같은 언러닝(unlearning)이었을 것이다. 



예측불가능성 사이로 춤추기  

혼란의 시간을 겪는 것이 나 혼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내 느슨한 연대 안의 예술가, 교육자들은 나이와 전공, 동서양을 망라하고 온라인 수업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지난 일 년 동안, 나는 예술교육자와의 인터뷰, 각종 프로젝트 참관, 공식·비공식 대화를 통해 온라인 수업 환경에 대한 예술교육자의 다양한 적응기를 들을 수 있었다. 짜증과 당혹, 분노와 무기력, 눈물과 조소를 오가는 감정과 함께, 예술교육자의 역할과 정체성은 어느 때보다 다이내믹한 시간을 마주한 듯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기존 시스템의 혼란” “방역기준과 예술 활동의 충돌”은 모두에게 평등한 혼란이었다. ‘지연’ 혹은 ‘추후공지’가 ‘취소’로 가는 완충적인 단어임은 곧 모두가 눈치채게 되었다. “기약 없는 기다림 속에 자신의 역할을 성찰하게 되었다”는 깨달음은 씁쓸한 소득이었다. 

예술가로서, 교육자로서 따라야 하는 수많은 ‘지침’과 ‘권고사항’과 ‘가이드라인’이 등장했고, 책임이 묶인 선택을 무탈하게 완수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자발적인 ‘창의적 불복종’을 위해서는 성찰도 필요했다.

온라인 수업 참여자들은 교육자가 직접 만든 ‘키트’를 받는다. 우체국으로 가기 전 빠진 것은 없는지, 잘못 들어간 것은 없는지 꼼꼼하게 확인한다. ⓒ최서연 예술교육자

‘함께 연결된 감각’을 표현하기 위해 참여자 각자 ‘나의 강점’과 ‘자아 선언문’을 적고 얼굴 사진을 붙인 사람 모양의 종이를 둥글게 이어 붙였다. ⓒ최서연 예술교육자

온라인으로 그럭저럭 진행이 가능한 예술 장르가 있는가 하면, 예술의 장르성에 따라 현장성(liveness)이 필수적인 장르도 있었다. 공연예술의 경우 줌이 갖는 미세한 시간차는 거대한 장벽으로 존재했다. 한국무용에서 타악기 반주는 0.5초의 시간차로 군무를 엉망으로 만들 수 있었고, 지휘전공자에게는 그나마도 불가능한 환경이 되었다. (미국의 한 대학에서는 줌 수업에 테크니션이 참여해 학생 각자가 춤추는 영상을 군무로 편집하고 줌의 시간차를 완화해주었다고는 하나, 이는 먼 나라의 동화 같은 이야기다.) 


이렇게 일 년이 넘어가는 가운데, 대면 수업을 압도적으로 선호하며 온라인 수업을 ‘불가피한 대안’으로만 바라보는 관점도 여전히 존재한다(예술대학 자체 조사에서 무용 같은 분야는 학생과 교사 모두 대면을 선호하는 편이다). 이는 비단 부적응자의 저항이나 향수만은 아닐 것이다. 빠른 적응을 통한 빠른 생존의 확보가, 때론 그 대가로 정체성을 완전히 바꿔놓기도 하니 말이다. 


다시 어려움을 토로하는 자리로 돌아가 보면, 팬데믹 이후 교육환경의 ‘예측가능성’은 더욱 먼 이야기가 되었다. 수업 참여자 수가 그 예다. 비대면 만남에서 ‘노쇼’는 더 쉽게 일어났다. 


수업이 영상 스트리밍으로 진행되고 기록되면서 기관 사용자의 저작권은 매우 예민한 문제가 되었지만, 막상 수업하는 예술교육자의 저작권은 별로 그렇지 않았다. “팬데믹이 지속되면 영상을 다른 학년 수업에도 사용하겠다”는 일방적인 통보를 받더라도 대처할 방법은 많지 않다. “녹화된 내가, 안전을 이유로 실존하는 나의 수업을 대체하고 있었다”는 한 예술 강사의 발견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저작권을 엄수해야 한다는 사용자 중심의 당위는 구체화된 가이드라인이나 보호 장치를 마련하는 대신 ‘개인의 책임’으로 귀결되었다. 당장 작품을 소개할 오픈소스 영상이 없으면 직접 오페라를 부르고 춤을 추는 시연이, “역량”과 “순발력”이라는 이름으로 요구되었다. 


개별적 소통이 제한된 상황에서 시범이나 예시를 보여주고 ‘따라 하기’로 활동을 이어가다 보니, 앞으로 나아가는 게 아니라 그저 따라 할 뿐인 학습으로 회귀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는 고백도 있었다. 25분 단위의 비디오 영상으로 수업을 하다 보니, “아이들은 사라지고 그들의 기호만 좇는 영상기술자가 된 것 같다”라는 한탄이나, “‘하우투(HOWTO, 어떻게)’를 가르치는 유튜버가 된 것 같다”며 혼란스러워하는 예술교육자도 있었다. 



다시 예술로 연결되기

물론 온라인 환경이 주는 장점도 존재한다. 나의 경우, 어린이병원 1층 센터에서 하던 무용 수업이 줌으로 대체되면서 아이들은 이제 번거롭게 이동할 필요가 없다. 이런저런 이유로 병실에서 내려올 수 없던 아이들도 부모님의 핸드폰이면 충분하다. 아쉬움은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춤출 수 있고, 안전하게 서로를 볼 수 있다.

<세상에서 하나뿐인 춤 선물> 수업 현장. 어린이병원 무용 수업에 참여하는 어린이들이 SNS로 보고 싶은 춤 주제를 알려주면 그 주제에 맞춘 무용수들의 춤 영상이 전달된다. ⓒ제환정

무용수들이 영상 춤 선물 <춤으로 만나는 생일파티>를 촬영하는 모습 ⓒ제환정

“작은 단위의 수업, 1:1 대화가 가능해졌다“, “지나친 계획에의 경직성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늘 반복되는 수업에 쫓기듯 바빴는데 쉬어갈 수 있다”, “자기 돌봄이나 연대의 필요성이 절실해졌다”는 예술교육가의 목소리도 반가운 일이다. 


팬데믹은 ‘온라인’이라는 새로운 현실을 보편화했다. 안전의 확보와 창의적 활동의 지속이라는 (여러 마리의 토끼를 쫓는) 상황 속에서 온라인 예술교육은 ‘선택된’ 해법일 것이다. 이는 교육의 현장성과 집합의 선제조건을 바꾸고, 우리의 정체성과 우리가 하는 일을 뒤흔들고 있다.

 

이 환경은 새로운 미학적, 윤리적, 교육적 맥락을 가져온다. 물적 지원, 정책적 지원의 문제, 온라인 환경에서 지켜야 할 윤리적 문제, 디지털 시민성에 대한 고민 등이 산처럼 남아 있는 동시에 우리의 변화하는 정체성이나 역할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한다. 이것이 문화예술교육의 뉴노멀로 자리 잡을지, 꽤 긴 버퍼링의 한순간인 건지 아직은 알 수 없다. 예측 불가능한 변화는 언제나 예술의 미덕이었고, 이를 정면으로 마주하기 위해서는 집요한 질문이 계속되어야 할 뿐이다.

2021. 8.

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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