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음의 갈망, 

가고 싶음의 열망이 만든 인터넷 전시

조은정

미술평론가/미술사학자

보고 싶음의 갈망,
가고 싶음의 열망이 만든
인터넷 전시

조은정
미술평론가/미술사학자


인터넷 전시를 연 지도 벌써 1년 반이 되어간다. 내가 연 인터넷 전시는 팬데믹의 억압된 상황에서 문을 닫은 전시공간에 대한 가벼운 상념에서 시작하였다. 이 전시장의 작품들은 팔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진 않지만 어딘가에 걸리고 놓인 채로 여전히 존재하며, 소소하나마 전시장을 빌린 대관료 또한 다달이 지불하고 있다. 《The Peaceful Warriors in Museum(미술관의 평화의 전사들)》은 감염증이 일상을 위협하는 것을 실감할 때 시작하여 지금도 진행 중이다. 마치 순회전이 여러 도시를 떠돌다 시간이 지나면 낡아버린 추억마냥 초라해지는 것처럼, 신박하고 비주얼이 넘치는 인터넷 전시들 속에서 스스로는 건재함을 자랑한다고 생각하지만, 조금은 추레한 노인처럼 여전히 그 주소에 존재하고 있다. 한데 ‘인터넷 전시’라고 하여도 대부분 동영상을 기반으로 한, 유튜브 링크와 연결되거나 간략한 브로슈어를 보여주는 것과는 달리 전시의 기본을 지키고 있다는 점에서 그 시각적 누추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효하다는 생각이다.

스마트폰으로 입장한 전시장에 걸린 김홍식 작가의 ⓒ《The Peaceful Warriors in Museum》

스마트폰으로 입장한 전시장에 걸린 박유아 작가의 <Übermensch(위버멘쉬)> 연작 ⓒ《The Peaceful Warriors in Museum》

PC로 입장한 전시장에 놓인 신미경 작가의 ⓒ《The Peaceful Warriors in Museum》

PC로 입장한 전시장에 놓인 윤애영 작가의 <빛의 파동 #1907> ⓒ《The Peaceful Warriors in Museum》

노마드, 이동, 경험, 교류와 같은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던 전 세계인의 생활이 갑자기 하나의 형태로 변화하였던 것처럼, 2020년 2월의 서울에 거주하는 나의 생활도 바뀌었다. 세계의 일부로서 우리, 인간은 같은 종이라는 점을 정말 뼈저리게 느끼게 한 감염증이 지구를 휩싸 돌았고, 속수무책이라는 단어가 인지되던 때였다. 피로가 쌓이거나 추워진 날씨에 잘 대응하지 못하면 심한 열과 함께 몸살을 동반하는 인후염을 달고 사는 필자에게 코로나19의 증세라고 알려진 것들은 매우 일치하는 부분이 많았다. 물론 인후통, 약간의 콧물과 미열로 시작하는 인후염은 병원에서 간단히 진료를 받고 항생제를 처방받는 일상의 증세일 뿐이었다. 하지만 목이 아프고 열이 나고 콧물이 난다는 것은 검사를 받고 음성 판정을 받기 전까지 코로나19 확진자와 구분할 길이 없는 증세이기도 했다.


감염증이 시작된 초기였던 지라 문의 전화가 폭주했는지 보건소, 진료소 모두 전화는 불통이었다. 서랍에 넣어두었던 먹다 남은 처방약을 꺼내 먹고 이불을 돌돌 만 채 하루하루를 보냈다. 수시로 체온계를 입에 물고도 손에서 핸드폰은 떨어지지 않았고, 눈은 확진자 몇 명, 증세는 어떤 것이라는 뉴스에 고정되어 있었다. 설핏 잠이 들었다가도 깨어난 눈앞에는 희끄무레하게 포털의 뉴스 자막이 켜져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지독하게 뉴스를 들여다본 소득은 있었다. 지속적으로 뉴스를 들여다본 결과, 같은 내용을 다르게 말하는 ‘글’로 세상이 구성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챈 것이다. 


중병이 아님에도 누워 있는 이에게 찾아온 상실감은 일상에서 온 것들이었다. 매일 새벽 현관 앞에 놓인 식재료를 배송해주던 사이트가 보낸, 내가 클릭하기 전에 모든 먹거리가 매진되었다는 문자가 뜬 것을 보며, 나의 음식 저장고를 누군가가 침입하여 털어간 듯한 극한 분노를 느꼈다. 또한 휴관에 들어가기 전날 운 좋게 방문하여 전시를 보았노라는 지인의 SNS에 올려진 사진을 바라보면, 곧 세상에서 사라져버릴 식민지의 궁궐을 방문한 마지막 손님이 못 되어 한이 맺힌 듯 상심하였다. 


직업상 마음이 편안한 동시에 약간은 긴장하는 곳, 즐거움과 평화를 얻는 동시에 두려움도 느끼는 장소인 주요 미술관과 갤러리는 ‘잠정휴관’이라는 팻말을 인터넷 창에 띄운 채 일제히 문을 닫아걸었다. 가끔은 놓치는 전시도 있었지만, 갑자기 전시장에 들어설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은 고통스러웠다. 그것은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에서 들과 산을 뛰어다니느라 학교에 늦게 도착한 꼬맹이가 느꼈을 깊은 회한과 슬픔을 동반한 상실감이었다. 


한편 ‘내가 있는 공간’을 깨닫기도 했다. 지인들은 정말 가족이란 이래야 한다는 것처럼 함께 밥을 먹고 수다를 떨고 텔레비전의 뉴스를 보았노라 했고, 나는 이제 피아노를 배운 지 얼마 안 되는 아이가 내가 사는 아파트의 같은 엘리베이터를 사용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 아이가 피아노를 칠 때 내가 없었을 수도, 내가 집에 있는 시간에 그 아이는 학원에 가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얼굴을 보지 못한 채 누군가가 피아노에 재미를 붙여 뚱땅거리기 시작하였음을 알아채는 것은 그와 나 모두 자신의 공간에서 긴 시간 자리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외출이 없는 삶은 멋진 옷이나 반짝이는 구두의 무용성 또한 깨닫게 하였다. 보이지 않는 목욕탕 벽장 속에 넣어두는 세안 수건의 뽀송뽀송하고 예쁜 색을 욕망했다. 이미 장 안을 가득 채웠음에도 새삼스레 얼굴에 닿는 부드러운 감촉의 수건을 욕망했다. 갖고 있어도 부족한 것, 그 욕망의 근저에는 결핍이, 일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것들이 있었음을 눈치챘다. 모니터로 영화를 몇 편씩 보아도 영화는 보고 싶었고, 유튜브에 올려진 오페라는 보기도 싫었다. ‘보기 싫음’이 사실은 그곳에 가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여우의 시어서 못 먹는 포도와 같은 것임을 알아채는 데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솔직히 영화관보다는 미술관에, 공연이 올려지는 대극장보다는 갤러리에 가고 싶었다. 방문할 수 없는 그 장소들에 입장하는 상상과 함께 핸드폰 안에서 근사한 작품들을 불러모아 들여다보았다. 작품 이미지를 들여다보면서 새삼 깨달았다. 내가 열망한 것은 단독의 멋진 작품이 아니라 '전시'였다는 것을. 무한한 공간에 둥둥 떠다니는, 멋지다는 개개의 작품이 아니라 하나의 개념으로 모인 작품들이 보고 싶다는 것을. 전시를 보러 사람들이 모이고,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서고, 각 방에 들어가 각자의 위치에서 서로 다른 작품과 만나며 조명받는 동시에 스스로 빛을 내기도 하는 그런 전시를 말이다. 누군가의 사유로 재배열된 작품들을 본다는 것은 여러 사람을 다양한 장소에서 만나는 것과 같은 일이다. 다른 사람의 세계관에 내가 들어가보는 것 그것이 바로 전시(展示)가 아닌가. 


미술관이나 갤러리의 휴관은 그동안 이토록 풍요로운 전시들이 매일을 채워왔다는 것을 알게 하였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는 감염 확진자와 갑작스런 죽음에 이른 이들에 대한 소식을 접하며 죽음 앞의 인간에게 예술이란 무엇인가, 미술이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였다. 


“전시를 보고 싶다면… 만들면 되지 않을까?”


비대면의 시대, 대안은 비대면이다. “인터넷 전시를 해보려 하는데 함께 할래요?” 서울, 뉴욕 런던, 파리의 시차를 넘어서 10분 안에 답변들이 떠올랐다. “좋아요!” “오, 예~” 외출이 없는 삶에서 세계 어느 곳에 있든, 모든 사람의 낮의 노동과 밤의 휴식이 사라진 결과이기도 했다. 《The Peaceful Warriors in Museum》이라는 자못 비장한 명제의 전시는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전시를 보고 싶다면 만들면 된다’는 주체적인 생각에 대한 능동적인 반응에서 시작되었다.


‘The Peaceful Warriors in Museum’이라는 전시명은 35년 전 읽었던 책의 제목에서 따온 것이다. 몸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던 체조선수가 불의의 사고를 당해 실의에 빠져 있다가 육체와 정신의 균형을 맞추어 가는 여정을 담은 이야기였다. 접시 위에 아름답게 장식해 놓은 음식을 허겁지겁 먹어 치운 주인공을 보고 웃음을 터뜨린 스승이 특히 기억에 오래 남아 있는데, 일상의 모든 행위, 즉 밥 먹는 행동까지도 일종의 수련 과정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Way of the Peaceful Warrior는 너무도 바빠서 소설책을 손에 들 시간조차 없던 때에 읽은 책이다. 그 때문인지 유독 내용이 또렷이 머리에 남아 있었고, 소소한 일상을 어떻게 누리는가에 따라 다른 삶이 펼쳐질 수 있음을 말하여준 책으로 기억되고 있다. 


집단적 포비아를 만들어낸 이 감염증은 어느 순간 지나고 우리의 일상은 다시 시작될 것임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일상은 ‘회복’되어 그 모습 그대로 다시 나타나지 않을 것이며, 심지어 회복된 것처럼 보인다고 해도 미미할지언정 결코 같은 모습에 들어맞지 않는 귀퉁이를 가질 것이다. 우리가 거주하는 공간의 물리적인 변화를 넘어서게 하는 도구를 가진 인류는 이 현실의 물질을 넘어선 다른 세상, 즉 가상이 실상과 구분되지 않는 생생한 장소로서 인지될 세계를 구축해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인터넷망을 전시장으로 삼아 펼쳐진 《The Peaceful Warriors in Museum》은 감염증의 시대에 동료와 따뜻한 차 한잔 나눌 수 없고, 휴가 기간을 위해 예약한 비행기표의 일정을 기약 없이 열어두어야 하는 고립을 넘어서고자 하는 열망에서 시작된 전시이다. 따라서 ‘초연결시대’를 주요 개념으로 작동시켜 서울에 거주하는 김홍식, 뉴욕에 거주하는 박유아, 런던에 거주하는 신미경, 파리에 거주하는 윤애영을 한 공간에 모았다. 이들은 나와 언제든 카카오톡으로 연락이 되는 작가들로, 한국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교육받고 각기 다른 도시에서 활동하는 공통점이 있다. 생활인으로서 작가인 그들이나 이론가인 나는 미술관과 갤러리가 바로 삶의 공간이자 전장(戰場)이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동안에도 학교에 다니며 공부를 하고, 뜻하지 않은 배신과 같은 인생의 걸림돌을 만났을 때조차 그들은 한 번도 작가의 길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PC로 보는 전시장 입구 ⓒ조은정

스마트폰 화면으로 전시장에 입장하는 모습 ⓒ조은정

침대에서 구상된 전시는 사흘 만에 구현되었다. 가장 값싸고 빠르게 전시 모양을 만들어 낼 플랫폼을 찾았고, 집 밖에 나가지 못한 아이의 마우스 클릭을 재촉하였다. 메일과 SNS로 작가로부터 작품 사진을 받고, 전시 서문을 쓰고, 머릿속에 만들어진 전시장을 인터넷으로 옮겨 놓았다. 전시장 조성공사, 작품 운송 및 설치, 도록 디자인, 월텍스트를 붙이는 일까지 여러 전문가의 밤샘 협업으로 이루어지던 전시는 기획자와 홈페이지 제작자 단둘의 노동력으로 충당되었다. 그런데 인터넷상에 전시장을 조성하며 내가 작가를 알리는 데에 공을 들이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그들의 작품을 내가 몇 점밖에 선택하지 못했으므로 관객이 작가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홈페이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심지어 트위터까지 찾아가 보길 원했다. ‘초연결’이란 공간이 아니라 사람임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감염증 시대에 조금 열이 난 상태로 오만가지 생각이 오가는 사이에 쏟아낸 말들에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한결같이 “가슴 뭉클함”이란 표현으로 답했다. 그 뭉클함과 연대감의 결과가 바로 전시였다. 실지 물질로 제작한 작품으로 채우든, 평평하기 짝이 없는 디지털 사진의 이미지로만 채우든 전시 덕에 우리는 ‘미술을 보여주는 장소에서 서성이는 이들’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전시를 만든 후 핸드폰 주소록에 저장된 이들에게 SNS로 공유하였다. 생각보다 반응은 매우 빠르고 긍정적이어서 자못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와글와글 모여서 전시장에 들어서는 것처럼 그들은 “재미있게 보았다”, “고맙다”라는 인사를 건네왔다. 아마도 내 수고에 대한 인사였겠지만, 그토록 많은 전시가 모두 한 번에 내려지지 않았다면 관심받지 못했을, 뚜렷한 이슈가 없는 전시였음을 실토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인터넷 전시를 감상하고 난 이들이 물었다.


“당신은 인터넷상에서 작품을 볼 수 있는 전시가 미래의 전시라고 생각하는가?”


답은 물론 ‘아니다’다. 전시 관람이란 단지 작품 앞에 서서 그것을 들여다보는 일이 아니다. 이 작품과 저 작품 사이를 오가며, 작품이 놓인 공간의 깊이감, 작품 특유의 질감과 냄새를 느끼는 것도 그 경험의 일부다. 이 작품과 저 작품 사이의 미세한 거리감마저 기획자의 계획에 의한 전시의 내용이 되기도 한다. 인터넷 전시를 하며 오히려 글자와 이미지가 대신할 수 없는 것, 그 경험의 공간을 미친 듯이 그리워했다. 그로부터 6개월 뒤 감독을 맡았던 전시에서 ‘냄새’를 내용으로 하는 작품과 산책으로 구성된 전시장을 내세웠던 것은, 균일한 광선에 밋밋하고 평평하고 매끈한 직선의 공간을 넘어선, 체험적이고 감각적인 미술의 장소를 만들고 싶은 욕망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2021. 8.

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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