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용
제로의예술 기획자/작가
김화용
제로의예술 기획자/작가
코로나 시대에 공공예술을 공공화하기
지난해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예술인들의 창작활동 기회를 마련한다는 취지로 다양한 형태의 공공예술 공모사업이 시행되었다. 긴급히 배정된 큰 예산을 빠른 시간 안에 지급해야 했던 기관으로서는 다른 사업에 비해 큰 규모로 지원이 가능하고, 팬데믹이라는 초유의 위기에 시민들을 위로할 수 있는 ‘공공적인' 창작을 지원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이전의 공공예술이라고 명명한 사업을 살펴보면 지형적 특성에 개입하여 공공 공간에 작품을 설치하거나, 장소의 문화나 역사를 탐색하고 그 서사를 재구성하는 작품이 만들어졌다. 또한 지역 당사자의 목소리가 가시적인 힘을 가질 수 있도록 예술의 개입 방법을 모색하기도 했다. 이렇게 공공예술의 역사에는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면서, 예술이 가진 견고한 권위를 허물고 좀 더 삶에 가깝게 다가가려는 의도가 담겨있다. 게다가 공적 자금의 지원도 적극적으로 결합하면서 공공예술은 다양한 장르와 모습으로 저변을 넓혀왔다. 하지만 과도한 양적 증가 안에서 ’공공성‘에 대한 질문이 진지하게 전제되지 못한 채, 그저 ’공공기관’이 주도하는 사업에 예술이 소비되는 경우도 많아졌다. 시민, 지역, 소수자 등 제도에 포섭되지 못한 것들을 주목했던 ‘공공예술'이 오히려 더 거대한 시스템에 동원되면서 손쉽게 도시재생, 환경미화의 도구가 되기도 했고, 위계를 부수며 시작되었던 것이 무색하게 시혜적 차원에 머물며 공공 영역에 의미 있게 개입되지 못하고 흉물이 되어버리기도 했다.
긴 호흡을 가지고 작업이 실행될 환경과 조건을 섬세하게 구성하지 않으면 다양한 과오가 발생한다는 걸 반복해 확인했지만 예고 없이 찾아온 팬데믹은 우리에게 충분한 여유를 주지 못했다. 게다가 코로나 시대를 살아내기 위한 삶의 방식은 ‘공공예술'의 중요한 조건과도 어긋났다. 커뮤니티와 만나며 맥락을 만들어 가는 방식은 집합금지 시대에 작동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인류 역사에 남을 곳곳에서 일어나던 재난은 징후가 되었고 모든 삶은 멈춰졌다. 예전처럼 움직이는 것은 요원해 보인다. 어쩌면 ’잠시 멈춤'이 아니라 삶의 모든 방식을 통째로 바꿔가야만 하는 전환기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제로의 예술》은 이같이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시작된 ‘공공예술’ 타이틀이 달린 프로젝트다. 암담하고 두렵지만 그래도 당연히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마음이던 2020년 시작했고, 백신의 등장과 함께 마무리 단계인 줄 알고 마음을 놓다가 4단계 조치라는 중대 위기를 맞은 지금 최종 행사를 앞두고 있다. 이렇게 ‘함부로 그 무엇도 예측할 수 없다'는 감각을 일상의 기준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새로운 기준으로 모든 것을 재정의해야 하는 시대의 숙명은 관성적으로 행해온 것에서 무엇이 문제였는지 돌아봐야 한다는 숙제를 주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는 법이니까. 이 감염병은, 심각한 기후위기는, 예고처럼 불쑥불쑥 나타났던 재난들은, 위기에서 더욱 드러나는 취약한 존재는 그 이면에 무엇이 있는가.
소수를 포착해야 하는 공공성
그런 시각으로 ‘공공적인 것'도, ’예술'도 다시 바라본다. 《제로의 예술》 기획단계에서 코로나의 장기화와 심각성까지는 예측하지 못했다. 다만, 공공예술이 그간 놓쳤던 부분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섣불리 ‘공공’을 상정하고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내부의 문제들, 무엇보다 예술 그 자체가 놓쳐왔던 ‘공공성’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하고자 했다. 민주주의 정치가 다수결이라는 말 뒤에서 차별과 혐오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처럼 공공예술이 ‘일반’ 시민의 문화 향유를 목적으로 호명될 때 여전히 그 ‘일반 다수'로 포섭되지 못하는 대상은 누구일까. 예술은 최전선에서 사회의 부정의와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에 재빠르게 예술적 방식의 연대로 반응해왔다. 하지만 예술 스스로 작동하는 배제의 정치에는 구체적인 대답을 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 문화예술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지역 간극은 여전히 크고, ’예술가‘라는 뭉뚱그려진 전체의 삶만 자꾸 이야기되는 통에 경력단절 여성 예술가와 같은 다양한 층위의 문제를 섬세하게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수많은 전시를 만들고 또 허물기를 반복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과정이라고 믿으며 환경적 재난의 와중에도 그것을 지속했고 질문을 유예했다. 코로나가 부여한 유보된 시간에 우리가 해야 하는 성찰은 일상의 가장 가까운 것에서 시작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 질문은 《제로의 예술》이 시작하려는 실험들과도 맞닿아 있었다.
코로나와 같은 인수공통감염병이 인간의 야생동물 학대와 서식지 파괴에서 기인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게 시작된 팬데믹은 우리를 ‘언택트’의 세상으로 밀어 넣었지만, 안전거리 확보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노동 환경이나 삶의 조건에 있는 이들이 가시적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취약한 약자들의 연쇄적 위기를 보며 슬프지만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는 연결감도 다시 상기할 수 있었다. 소수자의 문제를 이야기할 때 무엇부터 해결해야 하는지 우선순위를 말하는 일이 반복되기도 하지만, 다른 위치의 당사자들이 서로를 향한 연대의 손길을 내밀 때 힘과 용기를 얻었던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 특히 그 순간 예술적인 방법이 연결 고리가 되었던 일도 많았다. 노래가, 또한 연극이 언어가 되어 정치나 제도가 재빨리 봉합하지 못하는 간극을 잇기도 했다. 예술이 포착해야 하는 ‘공공'은 사회적 합의에 포함된 다수 일반이 아니라 이렇게 헐거운 사회의 안전망에서 빠져나가는 자들일 것이다.
이런 고민을 배경으로 시작된 《제로의 예술》 프로젝트는 예술 안의 견고한 간극을 살피기 시작했다. 우선 큰 전시나 예술계의 주요 행사가 대부분 서울에 집중되어 있는 점을 고려하고자 했다. 공동 기획자인 강민형 큐레이터가 긴 시간 광주에서 대안공간과 민간 아티스트 레지던시를 운영하면서 지역에서 활동의 장을 만들어 본 경험이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물리적 공간뿐 아니라 온라인도 중요한 거점이 되었는데, 이는 집합할 수 없는 언택트 시대의 요구이기도 했지만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강연 프로그램의 경우 참여자 숫자는 코로나 이전 현장 행사에서 볼 수 있었던 수를 가뿐히 넘었고, 다양한 지역에서 접속했다. 심지어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참여자도 강연과 워크숍에 함께 했다. 이뿐만 아니라 서울 안에서도 특정 몇 개의 지역에 밀집된 예술 행사가 가진 문턱을 새삼 생각하게 되었다. 게다가 비대면 실험은 지역의 거리를 좁히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최대한 고려하려 노력했지만 ‘장애 접근성'을 가로막는 허들을 완벽하게 없앴다고 할 수 없었는데도, 중증장애를 가진 창작자가 직접 신청하고 적극적으로 참여를 지속한 워크숍도 있었다. 이러한 성과는 《제로의 예술》의 기획이 만들어 냈다기보다 비대면 시대의 효과라고 볼 수 있다. 팬데믹으로 비대면이라는 대안을 시도하면서 이전 대면 시대에 놓치거나 바깥으로 자주 밀려났던 존재들을 비로소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페미니즘이 공공성과 만날 때
그렇다면 젠더 불평등 문제는 어떠한가. 소위 ‘미투(me too)’라 불리는 ‘#ㅇㅇ계_내_성폭력’ 고발운동 이후 우리는 문화예술계가 고질적으로 눈 감고 허용했던 성폭력을 목격했다. 프리랜서가 대부분인 예술계 내 시스템은 폭력의 피해자가 사라지지 않게 보호할 장치가 없었다. 출산을 경험한 여성 예술가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육아를 도맡아야 하는 예술가가 육아휴직도 보육지원도 없는 이 직업군 안에서 작업 시간을 확보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어머니인 상태 – 마더후드(Motherhood)’를 주제로 시각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엄마-예술가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인 『자아, 예술가, 엄마』에서 예술가 실라 클레냔스키는 분리불안이 심했던 아이의 돌봄과 예술 창작 수행을 병행하기 힘들었던 경험을 이야기한다. 그는 엄마이자 예술가인 렌카 크레이튼이 진행한 〈엄마가 된 예술가들을 위한 레지던시 (Artist Residency in Motherhood)〉 프로젝트를 알게 된 후 본인이 느꼈던 고립감이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수면 위로 잘 드러나지 않을 뿐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큰 힘을 얻었다고 했다. 사회적 약자나 위기에 처한 이들이 서로를 공감하며 자존감을 회복한다는 것을 엄마-예술가들의 문제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런 작업은 같은 처지의 엄마-예술가들에겐 반가운 제안인 동시에 사회 공공 영역에는 존재를 가시화하는 예술적이고 정치적인 선언으로 보였다. 그렇다면 출산과 육아를 통과한 한국 여성 작가들의 상황은 어떠할까. 많은 창작지원사업에서 인정하고 요구하는 ‘최근 3년의 활동 증빙’이 이들에게 적절한 기준일까. 선발기준부터 배제되는 그룹을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야 하는 것도 공공의 책임일 것이다. 《제로의 예술》은 위의 사례를 소개한 책 『자아, 예술가, 엄마』를 만든 김다은 기획자를 초대해 실라 클레냔스키가 느꼈던 ‘연결감’의 자리를 만들어 보자 제안했고 〈예술육아소셜클럽〉이 시작되었다. 예술가들의 내일이 언제나 안녕할 수는 없어도 다양한 층위의 예술가들이 창작의 가능성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도록 서로 독려하는 것은 ‘공공'을 고민하는 프로젝트 안에서 유의미한 시도라고 생각했다.
<예술육아소셜클럽> 모임(진행 김다은 이경희) 서울 현장. 지난해 시작해 현재 진행형인 모임은 “엄마와 작가 모두의 욕망을 구체화”하는 동시에, 충돌하기 쉬운 두 욕망의 “균형을 맞추려는” 엄마-예술가들이 서로 독려하고 연대하는 일상 속 예술 실천의 장이다. (큰따옴표 안의 내용은 《제로의 예술》 웹진에 실린 이경희 진행자의 인터뷰 답변에서 인용) ⓒ현준영
예술 소비자로서의 세대나 젠더 문제는 또 어떨까. 특히 적극적으로 참여자를 요청하는 문화예술교육이나 커뮤니티와 함께 하는 공공예술이 주로 만나는 대상은 누구일까. 한국 사회에서 ‘교육’은 주로 10대를 위한 것으로 여겨진다. 문화예술교육 또한, 입시 중심의 제도교육 범주를 넘어 자유로운 설계를 시도하고 있음에도 10대를 위한 것들이 많다. 과정 중심적 예술 창작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문화예술 워크숍 등의 행사를 살펴보면 참여자들은 대부분 20대 등 젊은 층이다. 창작자가 대상을 미리 상정한 경우가 아니라면 정보에 닿는 것은 젊은 층에게 훨씬 쉬운 일일 것이다.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젊은 여성이 자신의 언어를 구축하고 발화하는 장은 많이 늘어났다. 하지만 여성들이 어떻게 나이 들고 노년을 맞이해야 하는지 제대로 학습할 기회는 별로 없다. 정상가족 제도 안에서 어머니로 재현되는 것 이상의 모습을 우리는 더 많이 만나야 한다. 나이가 들면서 달라지는 신체의 변화에 대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방법을 배우고, 늘어나는 질병과 공존하며 나아가 죽음에 더 가까워지는 삶의 여정을 듣고 싶었다. 노년의 여성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는 태도가 아니라 지금까지의 그녀들의 삶을 존경하며 앞서 경험한 이들의 시선을 배우는 시간이 우리 세대에게도 필요하다. 변화된 몸을 직접 움직이고 자신의 서사를 기록하는 창작이 그 매개가 될 수 있다고 기대했고, 노년 여성의 몸으로 수행하는 발레 동작을 보면서 재현되는 여성의 몸이 여전히 얼마나 제한적이었는지 또 한 번 느꼈다(《제로의 예술》 프로그램 중 〈모든 몸을 위한 발레〉, 〈자기기록: 듣기와 쓰기〉).
<모든 몸을 위한 발레> 워크숍(진행 윤상은) 광주 현장. 60-70대 여성이 ‘우리만의 발레’를 시도하는 <모든 몸을 위한 발레> 워크숍은 지난해 가을 광주와 서울에서 각 3회씩 총 6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홍보의
과거와 이별하기
《제로의 예술》 두 번째 해에는 젠더 감수성을 돌아보는 과정에서 훈련된 감각을 바탕으로 더 바깥의 존재를 둘러보았다. 동물의 사체는 물론, 심지어 살아있는 동물을 도구 삼는 사례는 미술사 내에서 꾸준히 이어져 왔고, 심지어 전위적인 시도라 주목받으며 예술적 권위마저 부여된 경우도 많았다. ‘표현의 자유’라는 말 뒤에서 여성의 신체를 대상화하고 소수자의 존재를 타자화하며 재현했던 관습과 어딘지 좀 닮아있다. 예술가의 ‘자유로운 세계관’만큼이나 변화하는 세계와의 관계망을 계속 점검하는 일은 중요하다. 더군다나 걷잡을 수 없는 감염병의 시대는 우리 인간이 비인간 존재와 공존하며 살아가는 방법을 포함하여 완전히 새로운 사고체계를 익혀야 하는 시기라는 것을 깨닫게 한다. 이러한 각성에서 〈우리는 오늘도 내일을 끌어쓴다〉 강연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비거니즘, 동물권, 생태, 기후위기를 아우르는 강연의 면면은 ‘예술 프로젝트’와 언뜻 어울리지 않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인권기록활동가, 정치학자, 건축가, 인문지리학자 등 전혀 다른 곳에서 자신의 연구를 하는 전문가들을 한자리에서 만나게 할 수 있는 것이 예술의 포용력일 것이다. 어쩌면 동시대 예술의 가장 큰 힘은 예술적 상상력을 통해 다양한 매개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 보아도 미술관, 박물관 그리고 동물원으로 환원되는 ‘전시'의 역사는 제국주의가 욕망을 과시하던 것에서 그 맥이 이어진다. 제국주의 국가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에서 한발 더 나아가, 문명/비문명을 구분하는 태도로 타문화에 대한 착취를 정당화했다. 현재 우리가 하고 있는 ’전시'의 의도는 분명 이것과는 다르고, 오히려 과거의 역사를 반성하는 맥락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 질문 없이 전시와 미술관이 미술실천의 당연한 형식이며 공간이라고 생각하는 관성은 재고되어야 할 것이다(《제로의 예술》 프로그램 중 〈박물관 미술관 동물원〉). 작품 창작은 또 어떤가. 기후위기 시대의 감각으로 창작재료를 다시 보면 무엇이 보일까. 과거부터 창작재료의 중요한 가치는 재현과 보존 능력이었다. 고전적 미술재료들을 살펴보면 고급 붓은 동물의 천연모로 만들어진 것이고, 캔버스 제작에는 동물의 젤라틴이 필요하며, 짙고 어두운색에는 동물의 뼈를 태운 물질이 여전히 사용된다. 동물성 성분이 아니라고 해도 안료의 주성분인 광물들은 언제까지 캐내어도 충분한 물질인지도 궁금하다. 창작재료가 아닌 다른 공산품의 경우 생산 과정에서 동물실험을 하지 못하도록 요구하는 분위기는 이미 오래되었다. 지금은 동물성 성분이 포함되어 있지는 않은지, 환경적으로 해를 덜 끼치기 위한 노력은 하고 있는지와 같은 다양한 책임을 묻는 시대다. 전통적 미술재료뿐 아니라 뉴미디어 아트가 고민해야 하는 전력 사용량, 디지털 쓰레기, 다크 데이터 문제도 가벼운 사안은 아니다(《제로의 예술》 프로그램 중 〈무엇을 무엇으로 만들까〉).
지난 5월 말과 6월 초 광주에서 열린 ‘견고하지 않아도 괜찮아’(<무엇을 무엇으로 만들까>) 워크숍(진행 고재욱) 현장. 이날 참여자들은 ‘기념비적’인 작품을 만들기 위해 쓰이는 ‘썩지 않는’ 전통 창작재료 대신 생분해 가능한 대안 재료를 살펴보고, 콤부차 셀룰로오스 가죽을 직접 만들어봤다. ⓒ홍보의
《제로의 예술》의 연속된 질문과 실험들은 참고할 레퍼런스도 별로 없었기에 실패의 가능성이 컸고 오히려 시도에 방점을 두어야 했다. 이는 우리가 새로운 것을 모색하고 있어서라기보다는 모두에게 낯선 시대를 솔직하게 직면하고 자성적으로 적응해 보려는 것이었다. 과거 재난을 은유하거나 상상한 이미지만 남을 때, 공포 분위기가 조장되기 쉬운 것은 물론 약자에 대한 폭력이 난무하는 경우는 너무 많았다. 예술 특유의 추상적이고 은유적인 표현 방식으로 인해 실재하고 있는 고통을 구체적으로 직시하는 데 실패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예술은 세상의 오류에 반응하고 사회의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며 역사의 중요한 현장에서 많은 존재들과 함께 있기도 했다. 이런 태도를 기후위기와 감염병의 시대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모두가 처음 경험하고 있는 재난이라 정확한 대답을 할 수는 없지만,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제도, 인식, 관습 같은 것까지 전혀 다른 척도로 바라봐야 하는 역사의 환승점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예술은 더욱 전복적으로 탈주하기 위해 재난 이후의 세계를 어떻게 상상할지에 앞서 무엇을 부수고 또 무엇과 헤어져야 할지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완전한 폐허에서 다시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