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은
강릉 문화공간 소집 대표
고기은
강릉 문화공간 소집 대표
마법의 단어, 지누아리
만날 사람은 만난다고 했다. 그것이 지누아리로 맺어질 줄이야.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지누아리를 처음 들어본 사람들을 위해 잠깐 지누아리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겠다. 지누아리는 바다에서 나는 해조류 중 하나다. 홍조식물로 톳과 비슷한 해초다. 지네처럼 생겨서 ‘지누아리’라고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지누아리는 강릉 사람들에게 각별하다. 그 각별함은 한 질문에서 느낄 수 있다.
“지누아리 먹어봤어?”
강릉 어르신이 강릉으로 이주해 온 청년에게 물은 질문이었다. 모른다고 하자 어르신의 말씀이 이어진다.
“지누아리를 먹어야 진짜 강릉 사람이지.”
무엇이든 팀이 <지누아리를 찾아서> 여행을 시작한 계기다. 무엇이든 팀은 무엇이든 해보고 싶은 마음으로 강릉에 사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인문예술 단체다. 2018년도부터 활동하기 시작했다. 매년 관심 있는 것을 주제로 활동했는데 지난해 ‘지누아리’가 화두가 되면서 자연스레 그것이 주제가 되었다. 무엇이든 팀원 사이에서도 지누아리를 아는 사람 반, 모르는 사람 반이었다. 강릉이 고향인지 아닌지에 따라서 나뉘는 점이 흥미로웠다. 무엇이든 팀원들에게 지누아리가 화두가 되면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지누아리를 아는지 묻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낯선 사람과도 어색함을 풀고, 이야기의 물꼬를 터주는 마법의 단어였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공통적으로 듣게 된 건 ‘지누아리가 많이 귀해졌다’는 말이다. 예전엔 흔했던 지누아리가 어쩌다 행방이 묘연해진 걸까. 감사하게도 지역문화진흥원의 ‘2020년 문화가 있는 날 <지역문화우리>’ 사업에 선정되면서 지누아리를 찾는 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식당에서 건어물 가게로
먼저 지누아리가 밑반찬으로 나오는 오솔길 식당을 찾았다. 팀원 중 일부는 먹어본 적이 있지만, 아직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사람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식당 예약을 한 덕분에 지누아리를 겨우 먹을 수 있었다. 그 흔했던 지누아리가 지금은 구하기 쉽지 않다고 한다. 그래서 찾는 사람들에게만 내놓는 반찬이 되었다. 오랜만에 맛본 지누아리는 그 자체로 바다를 품은 맛이었다. 어린 시절 외할머니 집에서 먹었던 어렴풋한 기억이 선명해졌다. 새콤하면서 오독오독한 식감이 좋았다. 밥 한 공기를 뚝딱했다.
오솔길 식당에서 지누아리 반찬을 함께 먹는 것으로 <지누아리를 찾아서> 첫 탐방 시작! ⓒ무엇이든
식당 사장님께 지누아리를 어떻게 구하는지 물어보니 중앙시장의 한 건어물 가게를 알려주신다. 며칠 뒤, 그 건어물 가게를 찾았다. ‘해진상회’. 상호명 하나만 아는 게 전부였다. 정확한 위치는 모른 채 시장으로 들어섰다. 시력 좋은 팀원 덕분에 생각보다 빨리 가게를 찾을 수 있었다. 사장님은 젊은 사람들이 지누아리를 찾는 것을 의아해하셨다. 지누아리에 대해 여쭈니 곧바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신다.
소중한 지누아리 이야기를 나눠준 해진상회 최일용 대표 ⓒ무엇이든
“지누아리가 옛날엔 흔했거든요. 지누아리로 장아찌를 해보니 맛있거든.
이렇게 해서 많이 먹게 됐다고. 근방에선 강릉이 제일 크잖아요.
지금도 80%가 강릉에서 소비가 돼요. 강릉 사람들이 많이 먹어요.
명절 때 되면 딸들이 오고, 며느리도 오고 여기 있는 부모들이 만들어서 갈 때 싸준다고요.
장사를 오래 하면서 물어보니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먹을 것이 마땅치 않았던 시절. 지누아리는 흔해서 해 먹기 시작한 음식이었다. 지누아리 반찬은 한번 해놓으면 오래오래 놔둬도 상하지 않아서 많이 먹었던 음식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너무나 귀해진 몸이 되었다.
“장사를 해야 하니 사방으로 전화하죠. 해녀들에게 요즘 좀 나오느냐고 물으면 전혀 안 나온다고.
해녀들이 그래요. 밥 굶어 죽겠다고 해요. 바다에 나는 게 없으니까. 안 나온다고 그래요.”
덩달아 마음이 무거워졌다. 지누아리를 사러 오는 분들도 대부분 나이가 많으신 분들이라고 한다. 지누아리를 보기 힘들어지는 것은 물론 지누아리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걸 느꼈다.
건어물 가게에서 강릉 해녀로
마음이 무거웠던 순간이 있는가 하면, 선물 같은 만남의 순간도 있었다. 바로 박옥자 해녀를 만난 날이다. 그를 만나기 전까지 무엇이든 팀원들 모두 강릉에 해녀가 있다는 걸 몰랐다. 건어물 가게 사장님을 통해 해녀들이 지누아리를 채취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중앙시장에도 지누아리를 채취해서 판매하는 해녀가 있다는 걸 알려주셨다. 바로 찾아가 보았다. 정확한 위치를 몰라서 중앙시장 골목골목을 헤맸다. 그러던 중 한창 분주히 미역을 손질하는 한 사람을 발견했다. 조심스럽게 그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박옥자 해녀와의 첫 만남 ⓒ무엇이든
“손이 바쁘지 입이 바쁘나. 입으로 떠드는 건 괜찮아요.”
호쾌한 그의 한 마디에 금세 반했다. 그는 칠십 평생 강릉 금진해변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다. 금진해변에 딱 두 명의 해녀가 있는데 그중 한 분이라고 한다. 정말 귀한 분을 만났다. 지누아리의 안부를 물었다.
“옛날엔 많이 돋았는데. 물 변화로 잘 안 돋아. 물이 뜨시잖아. 바다풀은 물이 차가워야 해.
눈도 오고 얼고 녹아야 나물이 잘 돋거든. 올겨울이 뜨셨잖아. 돋질 않아서 없어. 그러니 귀하지.”
누구보다 여실히 바다의 변화를 체감하는 사람이었다. 지누아리뿐 아니라 바다에 나는 모든 것이 귀해졌다고 한다. 날 좋은 날이면 어김없이 들어가 하루 3~4시간씩 물질을 하신다고 한다. 아픈 두 아들을 위해 생업으로 장사를 한 지도 어느덧 20년이 되었다고 한다. 최근에 찾아갔던 날에도 분주히 멍게를 손질하고 있으셨다. 그날은 물질을 하다가 손가락을 다치셨다고 한다. 많이 쓰라리실 텐데. 병원을 가셔야 하지 않냐고 물으니 이 정도로는 병원 갈 일도 아니라 말씀하신다. 묵직한 삶을 덤덤하게 풀어내는 그였다.
묵직한 삶을 살아온 또 한 명의 해녀를 만났다. 한순복 해녀다. 그를 만나기까지 여러 번 허탕을 치기도 했다. 드디어 처음 만난 날, 감격스러움 그 자체였다. 40여 년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온 그를 만났다. 그는 결혼 후 바다 곁에 살면서 물질을 시작했다고 한다. 시간을 이겨나가며 바다를 알아갔다. 이제는 바다가 삶의 전부가 되었다. 파도가 센 날과 비가 오는 날을 제외하고 매일 바다에 들어간다고 한다. 이전에 만난 박옥자 해녀 이야기를 전하니 그분을 잘 안다고 한다. 자신도 시장에 나가 지누아리를 판매한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곧바로 무엇이든 팀원 중 하나인 명남 님이 물었다.
오랜 세월 지누아리를 채취하고 손질하는 힘든 작업을 묵묵히 해오신 한순복 해녀 ⓒ무엇이든
“혹시 사계절 미용실 앞에서 파는 분이신가요?”
그렇다고 답하는 그녀. 중앙시장에서 지누아리를 판매하는 두 명의 해녀가 있다고 들었는데, 다른 한 분이 바로 한순복 해녀였다. 몇 차례 시장을 찾아갔지만 도통 만날 수 없었던 사람이 지금 우리 앞에 있다. 결국 만날 사람은 만난다. 명남 님 어머니와 외숙모가 그의 단골손님이었다. 혹시나 싶어 그에게 어머니 사진을 보여드렸다.
“어머야라. 이분이네. 물 지누아리 사는 아주머니다.”
단번에 알아보셨다. 30년 넘게 시장에서 지누아리를 팔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났을까. 그러면서도 어느 한 사람 소홀함 없이 선명히 기억하는 그였다.
지누아리는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에 자라기도 하지만 바닷속 바위에도 자란다고 한다. 그는 보통 바다에 들어가 지누아리를 채취하고 있다.
“(지누아리 작업하는 거) 보면 지누아리 비싸단 소리 못해요.
뜯어온 거 보면 저런 걸 어떻게 먹나 하지. 다 선별해야지.
물속에서도 풀 골라내서 담아내는데도 집에 가져오면 엉망이야.
다 손질해서 말리는데. 다듬을 때 아주 기절할 정도야.”
그의 고단함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바닷속에서 자라는 지누아리는 해녀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지누아리를 채취해서 손질해서 파는 일까지. 일흔을 넘긴 나이에도 손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단 하나. ‘단골손님들을 위해서’였다. 우리가 찾아간 날에도 단골손님의 전화가 왔다. 그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 지누아리에 대한 생각이 더 애틋해졌다.
해녀에서 지누아리를 연구하는 사람으로
지누아리를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지누아리를 너무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릉원주대 해양자원육성학과 김형근 교수님을 만났다. 지누아리가 궁금하다며 찾아온 시민들은 우리가 처음이라고 했다. 그는 30여 년 전 강릉으로 왔다. ‘강릉 사람들이 지누아리를 좋아하니까, 해양환경을 연구한다면 지누아리를 연구하는 게 좋겠다’는 주변 분의 권유로 지누아리와 인연이 되었다고 한다. 지누아리의 습성부터, 지누아리와 관련한 연구, 나아가 바다 이야기까지 한 번의 만남 속에서 이야기 바다에 풍덩 빠지는 시간이었다. 바다에 식물이 점점 사라지고 있음을 체감하는 그였다. 기후가 엄청나게 바뀌고 있다고도 말했다. 자원은 줄어들고 있는데, 어떻게 회복시켜야 할까. 그는 지금도 제자들과 함께 지누아리를 오래 지켜나가기 위한 연구를 하고 있다. ‘지누아리를 알면, 바다를 지킬 수 있다’는 말이 마음 깊이 새겨졌다.
‘지누아리 추억’을 이야기하는 사람들
지누아리에 대해 사람들은 얼마나 알고 있으며,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궁금증을 안고 온라인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총 133명이 응답해주었다. 그중 지누아리를 알고 있는 사람은 77명이었다. 강릉 거주 응답자가 103명이었다. 그중 62명이 지누아리를 알고 있었다. 연령대별 분포를 분석하니, 30대부터 지누아리를 안다는 비율이 높았다. 60대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지누아리를 안다면, 지누아리에 대한 추억을 자유롭게 작성해달라고 했다. 정말 많은 이야기를 풀어주셨다. 그중 몇 가지를 전해보겠다.
“어릴 적 바다에서 딴 기억이 납니다.”
“고추장에 박은 맛있는 지누아리 생각하면 가끔 먹고 싶고 엄마가 그리워진다.”
“돌아가신 아빠가 좋아하셔서 철마다 밥상에 올라왔던 기억이 있어요.”
“엄마가 몸에 좋은 음식이라며 자주 무쳐주셨다.”
“어렸을 때 외가댁에 가면 종종 먹었어요.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선 먹기 힘들어졌어요.”
“엄마가 도시락 반찬으로 많이 싸 주셨습니다.
간장이 흘러나와 도시락 싼 수건과 책에 묻어나서 곤혹스러웠던 기억.
이젠 엄마가 생각나는 지누아리.”
“경포해수욕장 갈 때는 꼭 가지고 갔답니다.”
“어릴 적엔 지누아리를 씹을 때 나는 바다 냄새와 약간 떫은맛이 싫었는데,
이제 나이를 먹으니 그 바다 냄새가 좋네요.”
지누아리는 그리움의 단어였다. 돌아가신 할머니를, 어머니를, 아버지를 떠올리게 했다.
《지누아리를 찾아서》 전시회(2020.11.18.-12.6 소집) 중 ‘지누아리 추억담’ 코너에 소중한 추억 이야기가 계속 채워졌다. ⓒ무엇이든
노래로, 글로, 요리로, 다시 ‘지누아리’
<지누아리를 찾아서> 여행을 하면서 지누아리는 생각보다 품고 있는 것이 큰 단어라는 걸 알았다. 함께 여행한 무엇이든 팀원은 노래로, 글로, 요리로, 저마다 자신의 표현 방식으로 지누아리를 풀어냈다. 지누아리 이야기를 풀어내는 전시회가 지난해 11월 강릉 소집 갤러리에서 열렸다. 그 전시회로 많은 사람을 만났다. 어린아이부터 동네 어르신까지 노래를 듣고, 따라 부르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함께 지누아리를 새로이 여행했다.
전시장에 모인 사람들은 함께 지누아리 이야기가 담긴 노래에 귀를 기울이고, 지누아리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무엇이든
<지누아리를 찾아서> 여정 일러스트 ⓒ진주 일러스트
전시회 부대 프로그램 ‘이야기로 만나는 지누아리’ 현장 ⓒ무엇이든
‘지누아리’로 꼬리에 꼬리를 물며 사람과 사람을 만나는 여행은 그 자체로 선물이었다. 별거 없는 이야기라고 말씀하면서 풀어낸 이야기는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지누아리를 알게 되니 우리가 사는 강릉이 다시 보였다. 무엇이든 팀의 지누아리를 만나는 여정은 올해도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우리의 활동을 재밌게 느낀 청년들이 새롭게 합류했다. 지난해도 그랬듯, 시행착오를 겪고 변수를 기꺼이 즐기며 지누아리가 이어주는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어쩌면 다음번 여정엔 당신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누아리를 찾아서> 여정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사진에 담긴 장소는 영진해변. ⓒ무엇이든
*<지누아리를 찾아서> 노래 4곡은 유튜브 채널 <소온 음악일기>에서 들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