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연
작가
『온다 씨의 강원도』,
『여행하는 마음』 저자
『죄책감』(문학동네, 2014), 『우리는 살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다』(창비, 2018)를 쓴 강원도 원주 출신의 시인 임경섭과는 스무 살 이래 친구로 지내고 있다. 그의 억양에는 어딘가 모를 낯섦이 있었는데, 그 낯섦의 정체를 어렴풋이나마 눈치챈 것은 『온다 씨의 강원도』(온다프레스, 2018)를 쓰며 강원도를 무시로 오가게 된 뒤다. 이 책의 원고를 쓰기 위한 자료를 모으며 한 달가량 속초에서 머무는 동안 ‘네이티브’ 강원도민의 생경한 말씨에 둘러싸여 지냈다. 조금쯤 억센 듯하고 율동적인 그들의 억양에서 임경섭 시인이 곧잘 흉내 내던 외가의 사투리, 그러니까 영동 방언을 발견했다. 정확히 구분하자면 그것은 시인의 영서 방언과는 달랐다.
시인의 말투에 더 가까운 억양을 발견한 것은 20여 년의 서울살이를 마치고 경기도 가평으로 터전을 옮긴 올해다. 이사한 집은 자라섬 앞으로, 강 건너편에 보이는 산부터는 춘천이다. 말하자면 강원도에 바투 붙은 탓에 경기도보다는 강원도의 안전안내문자를 받아볼 때가 많은 곳으로 이사한 것이다. 새 일터에서는 ‘강가춘’이라는 단어를 배웠다. 강원도를 대표하는 국립대학교를 졸업하고 가평에서 일하는데, 거주지는 춘천인 이들을 가리키는 은어였다. 문장의 뒤쪽으로 갈수록 서서히 비탈을 오르는 듯한 억양의 영서 방언을 쓰는 강가춘들과 대화할 때면 어쩐지 임경섭 시인이 떠오르곤 해서, 반가운 마음에 배시시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숨기느라 고생스러웠다. 일터에는 강가춘뿐 아니라 가평 토박이도, 서울의 동쪽에서 출퇴근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행정적인 경계 따위야 우습다는 듯, 나의 일터에서는 각지의 문화가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는 것이었다.
고성으로 이주한 박한영이 맞닥뜨린 것은 그의 생각과 달랐다. ⓒ김준연
도시를 떠난 청년들
『온다 씨의 강원도』는 여덟 명의 강원도 사람들을 만나 그들이 강원도에 살게 된 계기, 생계를 유지하는 방법, 동네 구석구석의 산책길 등을 취재한 인터뷰집이다. 그 여덟 명 중에는 대도시에 살다 이주한 젊은이들이 많다. 고성에서 게스트하우스 ‘고성방가’를 운영하는 박한영의 경우를 보자. 서울의 큰 게임 회사에서 일하던 그는 스쿠버다이빙과 서핑을 본격적으로 해보려고 바닷가의 집을 찾다가 고성에 자리를 잡고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가 맞닥뜨린 것은 본디 그곳에 살던 사람들과의 말못할 알력이었다. 그것은 매체에서 보여주던 시골 생활에 대한 환상과는 달랐다. 박한영은 시골에서의 삶을 결코 만만하게 보아서는 안 된다고 귀띔한다.
속초에서 칠성조선소 카페를 운영하는 백은정‧최윤성 부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이 도시를 떠나 소규모로 생산적인 일들을 많이 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들의 말대로, 도시를 떠나 고향으로 돌아온 부부는 할아버지가 세운 조선소를 속초의 이름난 문화공간으로 만들었다. 예전에 사무실로 쓰이던 공간은 기록전시관이 되었고 가족들이 머물던 공간은 카페가 되었으며 제재소에는 나무 놀이터가 들어섰다. 어린 시절 놀이터가 되어준 조선소에서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계속해가려던 고민의 결과였다.
양양에서 매미지옥이라는 게스트하우스와 카페 맴맴을 운영하는 김은성 역시 강원도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청년의 모습을 보여준다. 오랜 시간 대전과 서울에서 일하던 김은성은 도시 생활에 답답함을 느꼈다. 치열한 경쟁도 그를 지치게 했다. 잠시 쉬려고 찾은 어머니의 고향 양양에서 그는 모처럼 편안함을 느꼈다. 전에 하던 일이 아닌, 새로운 무언가를 양양에서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그는 강릉을 오가며 제빵 기술을 배운 뒤, 직접 만든 빵을 음료와 함께 내놓는 카페와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게 되었다. 홍대를 중심으로 그 주위를 야금야금 소비해가는 젠트리피케이션에서 벗어나 더 먼 곳으로 눈을 돌린 그는 ‘생산적인 힙스터’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시골에서도 힙스터로서 살아가는 일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그는 보여준다.
최윤복은 속초의 서점 겸 북스테이 ‘완벽한날들’에서 지역 주민들과의 네트워크를 모색하고 있다. 대학과 회사가 드물고 젊은이도 적어서 책방의 고객층이 엷은 지역이었다. 서점으로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모임과 네트워크를 조직할 필요가 있었다. 그는 서울의 NGO대학원에서 공부하며 시민단체 사람들과 교류하고, 아시아인권문화연대 등에서 일한 경험을 자신이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지낸 고장에 적용하기로 했다.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것을 해보기로 한 최윤복은 결국 속초에서 스스로가 꿈꾸던 공간을 만들어냈다.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하기로 한 최윤복은 결국 속초에서 스스로 꿈꾸던 공간을 만들어냈다. ⓒ김준연
낯선 눈으로 바라본 강원도
강원도에서 새로운 삶을 꾸릴 기회를 찾는 일은 비단 청년들에게만 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이순임은 간 이식 수술을 한 남편과 함께 지내기 위해 서울에서 고성으로 이주했다. 그리고 수술 탓에 사업을 접은 남편 대신 자신이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고성에서 절임배추를 만드는 공장을 운영하며 사업에 자신의 이름을 걸어놓게 된 이순임은 주부로서의 익명성에서 벗어나 사회적 관계망 속으로 완전히 복귀하였다. 그는 고성에 정착하고서야 비로소 자신이 가치 있고 능력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초등학교 교사 박성진에게도 강원도는 자신의 너른 품을 내어주었다. 부산 출신인 그는 ‘예술적인 수업’을 추구하는 발도르프 교육의 매력에 이끌려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강원도 고성의 초등학교로 전근하기로 마음먹었다. 중학생 때부터 시인이 되는 것이 꿈이었다는 박성진은 고성으로 이주한 이후 지역의 모임에서 활동하면서 글쓰기를 자기 삶의 중심에 두었으며 시집을 펴내기에 이른다. 그러자 교사로서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교사 박성진’이 ‘시인 박성진’의 고운 결을 가지고, 아이들과 함께 자라게 된 것이었다.
부산 출신의 박성진은 자신이 추구하는 삶을 살기 위해 고성으로 이주했다. ⓒ김준연
한편 박지인의 이야기는 타지 사람이 낯선 눈으로 어떤 지역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늘 새로운 것을 좇는 것이 천성이라는 그는 ‘블루 오션’을 찾는 길 위에서 양양의 푸른 바다를 다시금 발견한다. 그가 ‘서핑을 즐기는 곳’으로서의 양양을 발견해낸 것은 타지 사람의 낯선 눈으로 그곳을 바라보았기 때문이었다. 주말에는 서퍼들을 위한 맞춤 슈트를 제작해주는 일을 하며 양양에서 지내고, 평일에는 서울에서 IT 기술 무역 일을 한다. 그는 이 양쪽에 거점을 두고 생활의 균형을 찾아냈다고 말한다.
꼭 타지 사람이 아니더라도 ‘산책자의 시선’으로 자신의 고장을 바라볼 수도 있다. 속초에서 나고 자란 김안나는 어려서부터 사랑해온 공간들이 함부로 개발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환경을 지키는 일의 한가운데 서게 되었다. 그런 그가 추천하는 산책길은 우리에게 익숙한 관광지로서의 속초의 모습과는 다르다. 청초호 주변에 새겨진 속초 시민들의 삶의 역사를 들여다보도록 권하는 그의 이야기는 자신만의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보는 한 방법을 일깨우기도 한다.
경계 너머를 상상하는 일
『온다 씨의 강원도』의 인터뷰이들에게서 확인한 것처럼 경계를 넘도록 추동하는 힘은 제각각이다. 그 추동하는 힘, 다시 말해 ‘경계를 넘어야 할 이유’가 없을 때 경계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하지만 어느 순간 우리가 울타리 안에 살고 있음을 깨달을 때 경계는 비로소 그 모습을 드러낸다. 만약 자신이 울타리 안에 갇혀 있음을 발견했다면, 이 책의 인터뷰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경계 너머를 상상해보는 것은 어떨까.
물론 박한영의 귀띔처럼 경계 너머의 삶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닐 터이다. 실제로 삶의 터전을 옮긴 이들에게 강원도는 더 이상 꿈의 공간이 아닌 현실이 되게 마련이니까. 하지만 울타리 안에 머물며 꿈을 꾸기만 해서는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더 많은 사람이 새로운 삶을 꿈꾸고 경계를 넘을 때,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낯선 사람들이 섞여들어 겸연쩍은 대화를 시작할 때 우리는 지금까지 보지 못한 삶의 양태와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임경섭 시인은 이렇게 말한다.
살아 있는 한
넘지 못할 국경 한군데쯤은 누구나 가지고 있지
그러나 넘으려 하지 않는 국경은
누구에게도 없네
-임경섭, 「국경을 넘는 일」 일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