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감각적, 시간여행 속 청춘일기 
— 소설 『7번 국도 Revisited』 리뷰

함종봉
삼척 동네서점 
연책방 독서모임 회원

다감각적, 시간여행 속 청춘일기

소설 『7번 국도 Revisited』 리뷰

함종봉
삼척 동네서점 연책방 독서모임 회원


나와 재현은 비틀즈의 <Route 7>이라는 음반을 거래하며 만난 사이다. 두 젊은이는 음반의 소유를 두고 서로 옥신각신 다투다가, 7번 국도에서 외계인을 보았다는 사람이 주인인 ‘카페 7번국도’에 그 음반을 맡긴다. 카페에 음반을 맡기며, 나(화자)는 음반에 재현이 겪은 실연의 아픔이 담겨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나와 재현은 차츰 가까워지고, 함께 사랑의 아픔을 떠나보내는 7번 국도 여행길에 오른다. 소설은 두 주인공이 여행을 하기까지 있었던 이야기, 7번 국도 위에서 지난날을 회상하는 이야기, 그리고 그 회상 속에 등장하는 두 여인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둘은 여행의 시작점인 포항역에서 수화물 창구 직원을 만나는데, 그는 7번 국도를 여행하다 사고를 당한 희생자들의 이름을 수집하며 죽음을 초극하려 애쓰는 인물이다. 이런 우연하면서도 우연하지 않은 만남으로 인해 여행 시작부터 둘은 큰 압박감을 느끼지만, 젊은 패기로 여정을 이어간다. 우여곡절 끝에 여행을 끝낸 둘은 그 직원에게 자신들의 건재함을 입증하는 편지를 보낸다. “누구도 죽음을 초극하지는 못합니다. 그전에 우리는 충분히 살아야만 할 것입니다. 아무리 충분히 살아도 우리는 부족할 것입니다!”라는 말을 담아.

두 여행자의 회상 속에 등장하는 두 여인도 여행의 동행자가 된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 나와 재현은 카페 7번국도에서 세희를 알게 된다. 그날 셋이 맥주를 마시며 어울린 후, 세희를 처음 본 순간 그녀에게 끌렸던 내가 아니라 심드렁했던 재현이 세희와 사귀게 된다. 재현은 세희가 일본인 아빠와 한국인 엄마 사이에서 힘들게 자랐다는 걸 알게 되지만 그런 세희의 아픔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세희의 아픔에 공감하는 나는 둘을 중재하는 처지에 놓이고, 세희는 그런 나에게 호감을 갖는다. 나와 재현이 7번 국도 여행을 떠난 사이, 나의 집에 머물던 세희는 7번 국도를 상상하다 일본에 있는 아빠에게 간다는 편지를 남기고 일본으로 떠난다. 

또 다른 여인은 서연이다. 재현과 서연이 사랑을 나누다가 ‘몸은 보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마도 영원히 기억하라고 있는 것’이라며 몸에서 존재 이유를 고찰했던 일. 세상은 점점 좋아지고 있다고, 적어도 서연의 세상은 재현을 만났기에 점점 좋아지고 있고, 결국 재현이 이 세상을 구했다고 말한 일. 7번 국도 위에서 재현은 서연과의 옛일을 떠올린다. 

김연수 작가는 ‘7번 국도’라는 공간적 이미지에 ‘여행’이라는 시간을 투영함과 더불어 ‘회상’이라는 방법으로 주인공들의 젊음과 성장을 담아낸다. 소설은 ‘7번 국도’와 ‘여행’을 매개로, 두 주인공의 사랑이 망각이라는 이름으로 아름답게 보존되고, 결국 성숙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독자는 소설 속 인물들과 함께 여행하며 사랑이 어떻게 망각에서 보존되고 성숙하는지를 발견하게 된다.

 

여행 중 나와 재현이 만난 한 선생님은 7번 국도에 홀딱 반해 울진군 매화리에서 가정을 꾸리고 교사로 일하며 20년 넘게 살고있다. 그는 ‘아무리 멀리 와봐도 세상은 다 똑같은 것’이라며, ‘삶은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지, 어디 멀리 있는 것은 아니라는’ 성찰을 보여준다. 나는 ‘7번 국도가 노을처럼 아름답지만 한순간에 사라지는 찰나의 시간을 뜻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공간이 시간이 되고 시간이 공간이 되는, 공간과 시간을 한데 아우르는 참으로 복합적인 표현이다. 이처럼 작가는 ‘7번 국도’를 다감각적인 표현으로 드러내 보인다. 화분 속 작은 나무의 죽음을 ‘뒈져버린 7번 국도’라고 표현한다든지, 전염병에 걸린 것을 ‘7번국도균’에 감염되었다고 한다든지. 그 밖에 ‘카페 7번국도’, ‘7번국도씨’ 그리고 두 주인공이 만나는 계기가 된 ‘Route 7’ 등 7번 국도와 관련된 다양한 표현들이 등장한다. 나는 <Route 7>을 듣고, 기타리스트인 재현은 그 음반을 손으로 만진다. 같은 음악을 같은 공간에서 서로 다른 감각으로 느끼며 공유하는 모습까지. 작가는 7번 국도를 감각하는 다채로운 표현의 진수를 보여준다. 

 

‘7번 국도 Revisited’라는 제목의 강렬함에 이끌려 나도 모르게 책 리뷰를 하겠다고 섣불리 덤벼들었다가 몇 날 며칠을 7번 국도 위에서 헤맸다. 제목만 얼핏 보고, 기행문의 옷을 입은 수필 같은 느낌의 소설을 기대했던 터라 첫 장을 넘기며 당혹감마저 들었다. 하지만 이내 이 책은 ‘7번 국도’라는 뜻밖의 매개로 나의 지난날을 돌이켜 보는 계기가 되었다. 강원도 양양에서 태어나 동해에서 어린 시절과 학창 시절을 보내고, 지금은 삼척에서 가정을 이루고 사는 나에게 7번 국도는 뗄레야 뗄 수 없는 내 삶의 기반이 된 곳이다.

유년 시절과 사춘기를 보낸 강원도 동해, 7번 국도의 북쪽 끝부분인 고성의 외가와 내가 태어난 곳, 어릴 적 추억의 사진첩을 장식한 양양군 현북면을 오갈 때마다 7번 국도는 내게 고향의 품, 어미의 품과 같은 안락한 공간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태어나 처음으로 부모님이 아닌 사람들, 선생님과 친구들과 떠난 경주로의 먼 수학여행 길. 그때 7번 국도는 멀미와 구토로 괴로웠던 고통의 시공간이었다. 처음 부모를 떠나 먼 타지에서 잠들었던 그때의 7번 국도는 마치 외국과도 같이 낯선 곳이었다.

7번 국도와 연결된 (다소 괴로운) 기억이 있는, 초등학교 6학년 때 경주로 떠난 수학여행에서 찍은 사진.
맨 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 줄무늬 티셔츠에 안경 쓴 “버섯머리” 어린이가 필자다. ⓒ함종봉

강릉잠수함사건이 발생한 해 7번 국도의 삼척~고성 구간에는 극도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당시 군 복무 중이던 필자는 그 긴장감을 기억하는 동시에 대관령의 아름다운 풍경을 떠올린다. 주변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알 바 없다는 듯 한가롭게 풀을 뜯던 젖소와 너른 들판의 그 환상적인 풍경, 그리고 산을 감싼 구름 속을 거닐던 몽환적인 경험 모두를 가슴속에 오롯이 간직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극도의 긴장감과 몽환적인 한가로움이라는 정반대의 두 경험이 모두 1996년의 7번 국도 위에 놓여있다.

대학 시절,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만난 여인과 사랑에 빠져 동해와 울산을 오가며 5시간이나 걸리는 장거리 연애를 했던 때, 7번 국도는 아름다운 해안선을 빼닮은 어여쁜 곡선을 뽐내며 뻗어있었다. 사랑하는 여인의 몸을 스쳐 지나가는 듯한 설렘을 느꼈다. 지금의 아내와 가정을 꾸리고 직장을 따라 이곳저곳을 떠돌다 경주에서 2년을 살았다. 그 2년간 경주와 부모님이 계신 동해를 오가며 만난 7번 국도는 고부간의 갈등 안에서 서로를 이어주는 사랑의 끈이 되어 주었다.

이제 삼척에 정착해 삶의 터전을 마련하니, 마치 먼 대양에서 폭풍우와 싸우다 드디어 항구로 돌아온 원양어선이 닻을 내린마냥 7번 국도는 내게 평안과 안식의 공간이다. 인생의 여러 시절에 만난 7번 국도는 내게 여러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 한편 늘 한결같았다. 때로는 부모였고, 때로는 친구였으며, 때로는 위로자였다. 그리고 결국 고향이었다.

 

인생을 길에 비유하는 표현 가운데 삶의 지루함과 고단함을 나타내는 것들이 많다. 하지만 조금만 달리 생각해보면 길이 주는 만남, 사랑, 위로, 안식 등 길에서 ‘살아가고, 살아야 할 이유’와 ‘힘겨운 삶의 오아시스’를 발견하게 된다. “몸 앞의 길이 몸 안의 길로 흘러들어왔다가 몸 뒤의 길로 빠져나갈 때, 바퀴를 굴려서 가는 사람은 몸이 곧 길임을 안다”고 했던 김훈 작가의 말처럼, 길은 몸으로 걸어보지 않으면 그 속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없다. 군 복무 시절 100km 행군은 발에 잡힌 물집의 고통과 아무리 걷고 걸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고난의 길이었지만 10분간 휴식의 꿀맛, 목구멍을 타고 넘어가던 수통 속 물 한 모금의 시원함, 행군을 끝내고 연병장 사열대 앞에서 축하주로 마시던 막걸리 한 사발의 쌉싸름한 달콤함과 해냈다는 성취감은 결국 우리가 그 길을 걸었기에 비로소 맛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길 위에서 살고 있다. 아무리 인생길이 힘들고 고단해도, 모든 악보에는 쉼표가 있듯, 길 위에도 휴게소가 있다. 우리는 이 휴게소에서 가슴 깊이 맑은 공기를 마시며 또다시 인생이란 길 위를 걸어갈 힘과 위로를 얻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7번 국도 Revisited』(문학동네, 2010)는 인생의 휴게소와도 같은 책이다. 독자들도 이 책을 통해 쉼을, 나아가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와 사랑 또한 다시 만나게 되길 바란다.

2021. 11.

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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