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어
「잇다」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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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공간 예술텃밭(이하 ‘예술텃밭’)의 시계는 10여 년 전으로 돌아간다. 서울에서 활동하던 공연창작집단 뛰다(이하 ‘뛰다’)는 강원도 화천의 한 폐교에 둥지를 틀었다. 뛰다가 화천에 일군 예술텃밭은 뛰다의 본업인 공연과 창작을 계속하는 것은 물론 다른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는 레지던시를 운영하고, 화천 주민과 함께하는 커뮤니티 공연·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지역 문화예술의 기반을 닦는 데 이바지해왔다.
지난해에는 프로듀서그룹 도트(이하 ‘도트’)와 함께 ‘기후변화’를 주제로 ‘예술텃밭 예술가 레지던시-기후변화’(이하 ‘기후변화 레지던시’) ‘화천에서 환경을 말하다 2020’을 진행했고, 올해 그 두 번째 여정 ‘관점의 전환, 세상을 보는 시선들’을 이어가고 있다. 2014년 결성된 도트는 문화예술 행사를 기획하는 전문 프로듀서들로 이루어진 단체로, 연극, 무용을 비롯한 여러 예술 분야를 넘나들며 공연, 축제 등을 만들고, 국내 행사는 물론 해외투어, 국제적 프로젝트와 같은 국외 활동도 활발하게 해왔다.
예술텃밭과 도트는 지난 15년간 구성원끼리 돈독한 신뢰를 쌓아왔다. 두 단체에서 뜻을 모은 연출가와 기획자들이 기후변화라는 전 지구적인 당면 현실을 주제로 뭉친 기후변화 레지던시 프로젝트는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화천에 모여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예술적 상상력을 고무하고 그 실천을 모색하는 장이다. 기후변화 레지던시를 기획한 도트의 박지선, 최봉민 프로듀서와 예술텃밭의 이주야 연출가를 만나 프로젝트의 기획 배경 및 의도, 진행 과정에서 경험한 것, 앞으로의 계획, 그리고 화천이라는 장소의 의미 등을 들어봤다.
이번 인터뷰는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온라인 인터뷰 캡처 화면.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주야 연출가, 최봉민 프로듀서, 박지선 프로듀서
Q. 기후변화 레지던시는 화천군 화천읍 신읍리의 예술텃밭에서 진행된다. 예술텃밭이란 공간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됐나?
이주야 2001년 뛰다 창립 때부터 세운 3가지 원칙이 있다. 첫째는 열린 연극을 지향하며 새로운 연극 언어를 탐색하는 것, 둘째는 자연친화적인 공연을 만들어가는 것, 셋째는 극장이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관객을 찾아 나서는 공연을 하는 것이다. 한편 서울에서는 이러한 원칙을 지키며 공연을 지속하기가 쉽지 않았다. 2007년 즈음부터 창작에 에너지를 더 쏟기 위해서는 다른 방식을 찾을 필요성이 더 커졌고, 그렇게 뜻을 같이하는 단원 12명과 함께 2010년 화천으로 이주하게 됐다. 화천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순회공연 차 방문했던 이 지역의 풍부한 자연 풍광에 깊은 인상을 받은 터였다. 그러던 차에 화천읍 신읍리의 폐교 건물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그게 지금의 예술텃밭 공간이다.
Q. ‘기후변화’를 레지던시 주제로 정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박지선 현재 몸담은 도트는 2014년 출범했지만, 그 전부터 ‘아시아나우’란 조직에서 뛰다와 국제교류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며 인연을 쌓아왔다.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파트너로 꾸준히 소통·협업해오다, 2019년 말에 뛰다의 배요섭 연출가와 ‘기후변화’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레지던시를 기획하게 됐다. 두 팀 모두 ‘기후변화 문제가 심각한데 아직 예술계에서는 이 문제에 관한 담론이나 실천을 충분히 고민하지 않고 있다’는 인식이 있었고, 그렇게 기후변화를 주제로 한 레지던시를 기획하게 됐다. 무엇보다 단발적인 이벤트가 아닌, 중장기적으로 이어지는 프로젝트로 만들어가자는 데 뜻을 모았다.
당시에는 2020년에 기후변화를 논하는 게 너무 늦은 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늦깎이로 시작한 건 아닌 것 같다(웃음). 코로나19 영향도 없지 않을 텐데, 2020년 말부터 비로소 예술계에서 기후변화, 기후위기를 둘러싼 논의가 형성되고, 이를 주제로 한 작업도 부쩍 늘었다. 기후변화 레지던시 기획 초기와는 확실히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주야 화천의 대표적인 지역 문화 행사가 유감스럽게도 ‘산천어축제’인데, 2020년에는 강이 얼지 않아, 지난해는 코로나19로 산천어축제가 취소됐다. 기후변화, 즉 이상기후의 영향을 이곳 화천에서 실제로 체감하게 만드는 사례였다. 박지선 프로듀서가 말한 것처럼 처음엔 ‘2020년에 기후변화를 논한다는 게 너무 늦은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도 있었는데, 이렇게 온몸으로 기후변화를 감각하면서 이 문제를 고민하는 시공간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후변화의 직접적인 체험과 예술가의 감각이 연결됐을 때 새로운 생각,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도트와 함께 레지던시를 기획했다. 우리가 기후변화란 주제를 선택했다기보다, 너무도 중요한 이 주제가 우리에게 찾아왔다고 하는 게 더 적절하겠다.
박지선 레지던시 주제를 기후변화로 정하긴 했지만, 사실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는 다소 막막했다. 다들 기후변화에 관해 이것저것 많이 접했기 때문에 그게 뭔지 아는 것 같지만 사실 내 삶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 이 주제를 예술 작품과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지는 전혀 새로운 질문이었다. 그래서 기본적이고 굵직한 질문들을 설정하고 이에 관해 예술가들과 꾸준히 이야기하면서, 함께 공부하면서 방향을 잡아가는 식으로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만들어갔다.
문화공간 예술텃밭은 스튜디오, 게스트하우스, 카페 등 여러 건물이 모여 있는 공간이다. 올해 레지던시 참여 작가들이 예술텃밭 공간 내 뜰에 앉아 있다. ⓒ박지선
Q. 예술텃밭 기후변화 레지던시는 크게 ▲레지던시 참여 작가 전원이 함께하는 워크숍·강연 형식의 ‘공통 리서치’ ▲참여 작가 개개인이 독립적으로 진행하는 연구·작업 활동인 ‘개별 리서치’ ▲참여 작가들끼리 온라인으로 소통하는 ‘온라인 레지던시’ ▲참여 작가들이 그간의 활동 결과물을 전시·공연 등 다양한 형태로 공유하는 ‘오픈텃밭’으로 구성된다. 이렇게 설계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 같다.
박지선 일반적으로 예술가 레지던시의 기능을 예술가들에게 일정 기간 창작 공간을 제공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예술가 레지던시 사업을 지원하는 공공기관들도 그렇게만 보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에게 예술가 레지던시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예술가들이 혼자 자유롭게 작업할 공간을 제공하는 것만이 아니라, 이들이 하나의 주제를 공유하며 그 주제를 함께 고민하고, 탐색하고, 그 과정에서 서로 영향과 영감을 주고받으며 교류하는 장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예술가 간의 협업 프로젝트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기후변화 레지던시의 가장 큰 특징도 바로 이 지점, ‘기후변화’라는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진행된다는 거다. 따라서 초반에는 참여자들이 서로를 알아가면서 같은 질문을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게 ‘공통 리서치’다. 공통 리서치는 3회에 걸쳐 진행되는데, 첫 회에는 참여 작가들이 각자 작업을 소개하고, 고민을 공유한다. 이 시간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서 긴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이 시간이 있기 때문에 누가 강요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협업 프로젝트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참여자들이 서로의 세계를 공유하고 나서는, 레지던시 주제인 기후변화를 다양한 관점에서 조명할 수 있도록 여러 분야의 전문가 강연을 진행한다. 작년에는 기상학·생태학 등 환경과학적 관점에서 기후변화를 바라보는 강연으로 꾸렸다면, 올해는 여기에 더해 인권·채식 등 삶에 맞닿아 있는 주제로 관점을 확장할 수 있는 강연을 준비했다. 이렇게 공통 리서치에서 기후변화에 관한 생각과 질문을 고도화하고 난 다음엔 참여 작가들이 각자 자신만의 관점과 방법론으로 질문에 파고들 수 있도록 개별 리서치 프로그램을 배치했다.
온라인 레지던시는 오프라인으로 못 모이는 기간 참여 작가들이 온라인으로 모여 서로 진행 중인 활동 내용을 공유하는 자리다. 처음 프로그램을 기획할 때는 없었던 프로그램인데, 레지던시를 진행하면서 작가들이 서로 질문을 던지고 작업 내용을 공유하는 것이 모두에게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돼 추가했다. 어찌 보면 작가들에게 부담이 되는 일일 수도 있는데 다들 흔쾌히 참여하고 있다.
앞으로도 전반적인 프로그램 구성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우리의 목표는 참여 작가들이 각자 소외된 상태로 작업하는 게 아니라, 하나의 주제를 공유하되 그 안에서 자기만의 시선으로 작업을 이어나갈 수 있게 여러 프로그램을 적절히 배치하는 것이다. 이 목표에 가장 잘 부합하는 방식으로 프로그램별 기간이나 프로그램 사이 간격 등을 조정해나갈 생각이다.
올해 ‘공통 리서치’ 프로그램 가운데 ‘참가자 협업 워크숍’ 현장. ⓒ최용석
Q. 예술가들에게 레지던시가 어떤 공간, 시간, 경험이 되었으면 하는가?
이주야 지난해 기후변화 레지던시 기간 중 두 달 동안은 장마였다. 두 달 내내 종일 비가 오고, 강이 범람했다. 올해는 제가 화천에 자리 잡은 지 10년 만에 처음으로 최고 기온 39도를 기록하고 그 결과 예술텃밭 마당 잔디가 다 탔다. 이 같은 이상기후의 징후를 레지던시 참여 작가들이 모두 목도했다. 실제로 이러한 현상을 경험하는 것은 뉴스라는 매체에 한 번 걸러진 것을 감각하는 것과 엄연히 다르다. 이곳에서는 기후변화를 일상과 더 가까운 문제로 고민하게 된다. 또 예술텃밭에는 이 문제를 오랜 시간 고민해온 사람들이 항상 옆에 있다. 이들과의 교류 또한 영향력 있는 경험이 되리라 생각한다.
박지선 기후변화라는 주제의 무게는 화천이든 서울이든, 지역에 따라 달라지는 게 아니다. 기후변화는 우리 모두의 삶과 연결돼 있다. 다만 이곳 레지던시에 참여하는 작가의 다수가 도시를 거점으로 활동하다가 화천에 잠시 머무는 이들이라, 도시에서 경험한 기후변화를 화천이라는 전혀 다른 환경에서 다시 감각하거나 화천에서 기후변화를 새롭게 경험하게 되는 것 같다. 이들이 기후학·생태학·기후정의 등 다양한 관점에서 기후변화란 주제를 탐구하고, 자신만의 질문을 발전시켜 창작으로 연결했으면 한다.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지난해 화천에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돌아 곳곳에 철조망이 쳐졌다. 민가와 야생을 분리하려는 조처였는데, 이렇게 철조망 너머로 자연을 응시하며 인간과 자연이 분리된 현장을 직접 걷는 것과 도시에서 이 소식을 뉴스로 접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경험이다.
최봉민 공감한다. 화천에서 경험하는 이상기후의 징후들은 대도시에서 겪는 것과는 전혀 달랐다. 도시에서는 볼 수 없었던 다른 것들을 볼 수 있었달까. 저 또한 그동안 귀로 듣고 머리로 이해했다고 생각했던 기후변화를 보다 직접적으로 겪고, 이 문제를 고민하는 예술가들과 함께하면서 문제의 심각성을 예전보다 훨씬 더 깊이 느낄 수 있었다. 레지던시를 계기로 환경에 덜 해로운 삶의 방식을 일상에서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게 됐다.
올해 ‘공통 리서치’ 프로그램 가운데 ‘화천 투어’ 현장. ⓒ최용석
Q. 2020년과 올해에 걸쳐 2년째 레지던시를 진행해왔다. 지난해와 올해를 비교했을 때 달라진 것이 있다면?
박지선 지난해 기후변화 레지던시를 시작할 때 참여 예술가 범위를 많이 열어뒀다. 기본적으로 공연예술 레지던시이지만 공연예술 외에 시각예술까지 전부 포함해서 참여 작가를 모집했다. 참가 신청서에도 기후변화란 주제에 집중하기보다는 레지던시 지원 목적이나 주요 작업 등을 묻는, 다소 평범한 질문을 넣었다. 그래서인지 작년 참여 작가 중 절반가량은 기후변화란 주제보다는 레지던시란 기회, 혹은 화천 예술텃밭이라는 공간에 관심이 있어서 지원한 이들이었고 나머지 절반이 기후변화 문제에 관심을 두고 관련 작업을 진행해온 이들이었다.
한편 올해는 기후변화란 주제에 관심도나 이해도가 높은 예술가들이 대부분이다. 참가 신청서에 넣는 질문을 기후변화에 초점을 맞춰 수정한 영향도 있을 거다. 올해는 작년보다 훨씬 더 많은 참가 신청서가 들어왔고, 신청서 내용만 모아서 공개해도 의미가 있겠다 싶을 정도로 굉장히 좋은 발상과 고민이 담겨있었다. 이렇다 보니 아무래도 지난해보다 올해 레지던시에서 주제에 관해 훨씬 더 깊은 이야기가 오갈 수 있었던 것 같다. 또 다들 기후변화에 관심과 고민이 많아서인지 참여 작가 사이의 연대 의식이나 공감대도 작년보다 더 단단한 느낌이다.
이주야 2년을 지속하다 보니 조금씩 쌓이는 것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값지다고 느끼는 것은 지난해 참여 작가들과 올해 참여 작가들 사이의 연결이다. 예술텃밭에서는 기후변화 레지던시 외에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기 때문에 작년 참여 작가 중 이곳을 다시 찾게 되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다른 프로그램으로 화천에 왔음에도 기후변화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해 지난 레지던시에서 자신이 느낀 것, 고민한 것, 창작한 것을 공유하며 자신이 느끼고, 고민하고, 창작한 것이 다른 이들에게 연결될 고리를 만들어준다. 이렇게 기후변화 레지던시의 경험이 더 많은 사람에게 확산하고 있고, 그렇게 연대가 강해지고 있다고 본다.
지난해 참가자인 김보람 작가(맨 왼쪽)가 레지던시에서 작업한 <움직이는 숲>(보드게임)을 올해 참가자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최용석
2020년, 2021년 레지던시 참가자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최용석
박지선 이런 경험의 공유를 위해 작년 참여 작가 중 1~2명은 올해도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기후변화 레지던시 참여 작가들끼리 어떤 관계를 맺는지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본다. 실제로 작년 참여 작가의 경험이 올해 참여 작가에게 전달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기후변화 레지던시가 기후변화란 주제를 둘러싼 예술계 커뮤니티 형성에 작게나마 이바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웃음).
이주야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참여한 작가가 있는데, 감히 이렇게 말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웃음) 기후변화에 대한 고민과 이 고민이 반영된 작업 모두 크게 발전했다고 느꼈다. 이렇게 예술가가 성숙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도 기획자로서 굉장히 뿌듯한 경험이다. 예술가 한 사람의 변화가 더 많은 사람의 변화를 이끌어내리라 기대한다.
최봉민 앞서 두 분이 이야기한 것과 비슷한데, 2년이란 시간에 걸쳐 레지던시 참여 작가들 사이에 연대가 형성되는 것을 볼 수 있는 게 가장 인상적이다. 이렇게 기후변화라는 주제를 함께 고민하는 네트워크가 구축되고, 이 네트워크를 토대로 레지던시뿐만 아니라 다른 형태의 프로젝트를 진행할 가능성이 마련되지 않을까 싶다.
박지선 제 생각에 레지던시의 목적은 예술가가 어떤 완성된 결과물을 내도록 하는 것이 아니다. 특히 기후변화 레지던시는 특정 주제에 대해 예술가가 계속 질문을 던지고 탐구하며 나름의 답을 찾아 또 다른 시작점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바라건대 예술가에게 기후변화 레지던시의 경험이 앞으로 장기적인 작업으로 발전하는 주제, 영감, 재료가 되었으면 한다.
최봉민 문득 떠오른 사례가 있다. 기후변화 레지던시를 시작하던 때부터 코로나19 위기가 닥치면서 예술텃밭 공간 밖에서 단체로 식사를 하는 것조차 삼갈 정도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준수하는 데 신경 썼다. 이렇게 식생활에 제약이 생기다 보니 자연스럽게 참여자들끼리 다양한 식생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작가 중 완전 채식을 하는 비건(vegan)도 있고, 비건 지향인도 있고, 육식을 하는 이도 있었는데, 그렇다 보니 다양한 식생활이 공존하는 밥상을 고민하게 됐다. 그렇게 ‘함께 먹는 밥상’이란 프로그램이 만들어졌고 이 식사 시간이 작가들에게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와닿는 경험이 되었다. 아무래도 ‘식(食)’이라는 일상의 영역과 직결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올해는 아예 ‘함께 먹는 밥상’이란 프로그램을 따로 기획했고, 자연식물식 전문가를 초빙해 강연도 진행했다. 이 강연을 듣고 작가들과 차를 마시면서 “우리끼리 가능한 선에서 자연식물식을 시도해보자”는 제안이 나왔고, 기꺼이 참여한 작가들이 예술텃밭 SNS에 2주 동안 자연식물식을 실천한 인증샷을 올리기도 했다. 지금도 꾸준히 자연식물식을 실천하는 작가들이 있는 것으로 안다. 이렇게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작가들이 우연히 찾은 공통 주제로 자발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움직임이 생겨나는 것 또한 기후변화 레지던시가 만들어낸 작지만 큰 변화가 아닐까.
올해 참가자들이 ‘채식과 기후변화’를 주제로 마련된 ‘공통 리서치’ 프로그램에서 자연식물식을 소개하는 전문가 강연을 듣고 있다. ⓒ최용석
‘함께 먹는 밥상’ 상차림. ⓒ이하경
Q. 장기적 관점에서 기후변화 레지던시를 기획한 만큼, 2022년 프로그램도 구상하고 있을 것 같다. 이와 관련해서 어떤 고민을 하고 있나?
최봉민 작년과 다르게 올해는 레지던시 참가자를 크게 ▲예술가 그룹 ▲연구자 그룹 ▲지역 커뮤니티 그룹으로 구성하려 했다. 이중 예술가 그룹과 연구자 그룹을 대상으로 한 모집은 원활하게 진행됐지만, 지역 커뮤니티 그룹을 대상으로 한 모집은 지역민에게 홍보를 했음에도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특히 화천의 미래를 만들어갈 청소년들이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해 예술가들과 기후변화 문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길 바랐는데, 원하던 만큼 잘 되진 않았다. 내년에는 지역 커뮤니티와 레지던시의 연결지점을 더 많이 만들고, 어떻게 하면 지역민들이 레지던시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지 꾸준히 고민해야 한다. 레지던시 소식이 바깥으로 더 많이 전파될 수 있도록 창구를 넓혀야 할 것 같다.
이주야 지역 커뮤니티의 참여는 코로나19만의 문제는 아니었다고 본다. 무엇보다 차근차근, 꾸준히 지역에 씨를 뿌리는 게 중요하다. 다행히 이 작업을 잘해나가고 있는 작가들이 보인다. 알아서 지역민들과 관계를 맺어가고, 이 관계의 씨앗이 앞으로 지역과 지역민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까지도 그려보는 이들이 있더라. 이렇게 차근차근 쌓은 신뢰를 토대로 씨앗이 계속 자라나지 않을까.
레지던시와 지역 커뮤니티 차원의 노력도 숙제지만, 아무래도 가장 시급한 과제는 재원 마련이다. 작년과 올해는 강원문화재단과 강원도로부터 예산을 지원받았지만, 만일 내년에 공공 기금을 받지 못한다면 레지던시를 계속 운영할 수 있을지 사실 불투명하다. 지금 시점에서는 이 문제가 가장 현실적이고 중대한 고민이다.
인터뷰 질문 중에 ‘화천’의 지역성과 기후변화, 그리고 레지던시를 연결짓는 것들이 있었다. 아마도 화천이 도시와는 상반된 곳, 외진 지역이라는 전제에서 나온 질문들일 텐데(웃음),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화천이란 지역이 갖는 힘이 있다. 생태와의 밀접한 연결, 지구라는 유기적 생태계를 직접 감각할 수 있는 환경, 그로 인해 기후변화 속에서 인간-비인간, 인간-자연의 관계를 다시 돌이켜보게 하는 공간이란 것이 화천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이곳 화천에서 기후변화를 고민하는 여러 창작자가 모이고, 교류하고, 연결되는 접점을 계속 만들어가고 싶다.
박지선 이주야 연출가가 지적한 것처럼 공공 예산 없이 기후변화 레지던시를 계속 운영할 수 있을 것인가는 가장 시급한 고민이다. 장기적으로 이 레지던시를 이끌어가면서 예술가 간 연결고리를 이어가는 것, 그리하여 기후변화를 집중적으로 논의하며 예술활동으로 확장하는 창작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게 우리의 취지인데, 이를 달성하려면 지속 가능성 확보가 무척 중요하다. 게다가 지난 2년 동안 레지던시를 진행하며 그 가능성을 확인했기 때문에, 레지던시를 꾸준히 운영할 수만 있다면 점점 더 큰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이를 기반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더 다양한 활동을 실천할 수 있겠다는 기대를 품고 있다.
국제교류의 가능성도 고민하고 있다. 코로나19로 계속 국내 작가만을 대상으로 레지던시를 열었는데, 사실 그동안에도 꾸준히 프랑스, 독일, 캐나다 쪽에서 협업 요청을 받았다. 해외 작가가 레지던시에 참여하는 것 자체는 다양한 지역의 경험과 관점이 섞일 수 있다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찬성이지만, 기후변화를 주제로 한 레지던시에 비행기를 타고 탄소발자국을 잔뜩 남기며 해외 작가를 참여시키는 게 적절한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기왕 탄소발자국을 남길 거라면 머무는 기간을 늘리고, 더 많은 활동을 조직해서 보다 의미 있는 경험과 이야기를 만들어내도록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은데, 더 고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