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희
「잇다」 편집부
한승희
「잇다」 편집부
“지역 주민 누구에게나 ‘일상의 행복’처럼 가깝고 친근한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지역 사람들 얼굴을 보면 그 안에 여러 삶의 형태가 담겨 있어요. 지역문화도 주민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이 담긴 지역의 ‘얼굴’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지난 10월 22일, 속초시 근로자종합복지관 대강당, ‘2021 지역문화 전문인력 양성기관 지정·지원사업 파일럿 프로젝트 결과 공유회’에 참석한 교육생들이 “내가 생각하는 지역문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신중하게 답변했다. 지역문화 전문인력 양성기관 지정·지원사업은 강원문화재단이 문화예술교육 분야에서 활동하거나 관련 분야에 관심 많은 지역민이 지역문화 전문인력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2017~2018년에는 원주문화재단·춘천문화재단, 2019~2020년에는 강릉문화재단·영월문화재단과 협력해 수료생 116명을 배출했다.
올해는 속초문화재단·평창군문화예술재단과 함께 “강원, 내 ‘일’의 도시”란 주제로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문화예술이 지역의 ‘내일’을 꽃피우겠다는 바람과 지역에서 문화예술이 ‘일(業)’로 자리 잡는 기회를 확장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이 사업을 담당하는 추성희 강원문화재단 문화접근성팀 주임은 “문화예술교육 활동에 관심 있는 지역민들이 이 사업에 참여해 이론 수업부터 현장 실습, 파일럿 프로젝트 운영까지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자신만의 관심 분야를 찾고, 나아가 이를 지역문화와 결합해 새로운 지역문화 콘텐츠를 기획·운영해볼 수 있도록 커리큘럼을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100시간 이상의 연간 교육 과정은 문화예술 정책, 문화 기획, 지역 브랜딩 등 지역 문화예술 기획에 필요한 이론 수업, 지역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 기획·관광 전문가 특강, 현장 견학, 전문가 멘토링을 비롯해 도시재생·관광기획·지역축제·문화교육·문화콘텐츠 등 주제별 파일럿 프로젝트 운영으로 촘촘하게 채워져 있다.
속초에서 성공적인 지역 산업 유산 재생 사례로 꼽히는 ‘칠성조선소’를 견학 중인 교육생들. ⓒ속초문화재단
22일 열린 파일럿 프로젝트 공유회는 속초와 평창의 교육생들이 3~6명씩 팀을 이루어 기획한 파일럿 프로젝트를 소개하며 지난 6월부터 10월까지의 교육 일정을 일단락하는 자리였다. 속초 교육생들은 ▲속초 관광 콘텐츠 소개 소셜미디어 채널(관광기획) ▲설악동 C지구 체험 관광 프로그램(도시재생) ▲설악 C지구 공영주차장을 활용한 1박 2일 캠핑 프로그램(지역축제) 등을 시범 운영했다. 관광기획 팀이 만든 인스타그램 ‘속초일상’은 속초시민이 큐레이션한 관광지, 식당 등을 소개하는 계정으로, 현지인 관점에서 속초를 브랜딩하는 것이 목표다. 계정 개설 후 미니 캔버스, 물감, 붓, 조개껍질 등으로 구성된 ‘속초 가을 여행 비대면 키트’를 제작해 무료 배포하는 이벤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관광기획 팀은 “속초 관광 콘텐츠를 소개하는 다른 소셜미디어 계정과의 차별화 방안과 현지인 관점에서의 속초 브랜딩 작업을 더 발전시켜가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라고 했다.
도시재생 팀과 지역축제 팀이 주목한 설악동 C지구는 1970~90년대만 해도 설악산을 찾는 관광객들이 묵어가는 속초 대표 숙박 단지였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인근에 대형 리조트들이 들어서면서 설악동 C지구의 숙박시설과 식당들은 빠르게 쇠락했고, 그 뒤로 좀처럼 침체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도시재생 팀은 ‘쉼’이란 열쇳말로 설악동 C지구가 관광객은 물론 지역 주민에게도 ‘편하게 쉬었다 가는 곳’이 될 수 있도록 숲속 요가, 설악산 노르딕워킹, 로컬푸드 식사 등으로 꾸려진 체험 관광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지역축제 팀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더욱 ‘핫’한 트렌드가 된 ‘차박’에 착안해 C지구 공영주차장을 차박 전용 공간으로 개방하는 ‘속초 차박 페스티벌’을 제안했다. 프로젝트 이름은 ‘밤새 바른 차박(All-night All-right Chapark)’. 친환경적이면서 인근 주민에게 불편을 끼치지 않는 올바른 차박 문화를 전파하겠다는 페스티벌의 지향점을 담았다. 지역축제 팀은 “설악산 가을 단풍, 눈꽃 축제 등 기존 속초의 대표 관광 콘텐츠와 차박을 접목하면 속초만의 새로운 차박 문화가 만들어질 수 있으리라 전망한다”면서 “앞으로 차가 없는 사람들도 속초에서 차박을 즐길 수 있는 방안도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속초 도시재생 팀의 파일럿 프로젝트 중 설악산 노르딕워킹 프로그램 진행 현장. ⓒ강원문화재단
평창 교육생들은 ▲군내 문화예술교육 관련 공간 정보를 안내하는 온라인 지도 플랫폼(문화콘텐츠) ▲장르 융합 어린이 창작·놀이 프로그램(문화교육) ▲금당계곡 인근 물구비권마을 활성화를 위한 체험 관광 프로그램(관광기획) 등을 시범 운영했다. 문화콘텐츠 팀이 만든 ‘평창지도’는 군내 문화예술 관련 공간에 관한 정보가 주민들에게 제대로 공유되지 않는다는 문제점에서 출발한 아이디어다. 팀원들은 우선 공공데이터를 검색해 평창군내 시민 문화예술 시설 데이터를 수집·정리하고, 이를 검색 포털의 지도 서비스에 연동하는 방식으로 ‘평창지도’를 만들었다. 문화콘텐츠 팀은 “군내 권역별 온라인 커뮤니티 중심으로 ‘평창지도’를 홍보했는데, 지역 소식을 많이 다루는 ‘평창신문’에도 소개됐다”며 “사용자 203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 지역 소식을 더 쉽게 접하고 싶은 평창 군민의 니즈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문화교육 팀은 ‘알파세대 문화상륙작전’이란 프로젝트 이름으로 악기 연주, 그림 감상, 요리, 무용 등 다양한 문화예술 장르를 결합한 어린이 대상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알파세대’란 2010~2024년 사이 태어난 세대를 일컫는 말로, 평창군 알파세대에게 창의적인 문화 놀이 프로그램을 제공해 평창을 더 살기 좋은 지역으로 만드는 게 문화교육 팀의 목표다. 이를 위해 재능 있는 지역 주민 강사와 유휴 시설을 연계해 교육 콘텐츠와 운영 공간을 확보했다. 진부 문화예술창작스튜디오에서 프로그램을 시범 운영했을 때 가장 반응이 좋았던 것은 우주 영상을 배경으로 케이팝에 맞춰 춤을 추는 ‘몸으로 꿈을 표현하는 놀이’였다. 문화교육 팀은 “처음에 수줍어하던 아이들도 조명이 꺼지고 영상과 음악이 나오기 시작하자 눈을 빛내며 적극적으로 몸을 움직였다”며 “덕분에 무척 유쾌한 수업이 됐다”고 설명했다.
관광기획 팀은 숙박시설 외에 이렇다 할 즐길 거리가 없는 금당계곡 인근 물구비권역의 체험마을, 목장, 마을기업, 숙박시설 등을 연계해 새로운 체험 관광 콘텐츠를 기획했다. 이들이 주목한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은 인근 숙박시설이나 식당 등이 서로 연결되지 않아 콘텐츠 측면에서나 비즈니스 측면에서 한계가 많다는 것. 따라서 개별 업체들 간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각 업체의 콘텐츠를 공통 테마로 묶어 숙박과 체험이 연계되는 관광 콘텐츠를 개발했다. 관광기획 팀은 “이번 파일럿 프로젝트에서는 당장 실행 가능한 것들로만 콘텐츠를 기획했지만 앞으로 더 많은 체험 관광 자원을 연계해 프로그램을 더 확장하고자 한다”면서 “그러려면 개별 콘텐츠 운영자들이 작은 사업이라도 함께 기획·실행해보며 팀워크를 다지는 게 중요할 것 같다”고 했다.
평창 관광기획 팀의 파일럿 프로젝트 중 봉황마을 핸드드립 커피 체험 프로그램 현장. ⓒ강원문화재단
이날 결과 공유회는 그동안 지역별로 나뉘어 활동하던 속초와 평창 교육생들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프로젝트를 공유하는 네트워크 장(場)이기도 했다. 교육생들은 “다른 지역 사례는 오늘 처음 접했는데, 공감되는 것도 배울 것도 많았다”며 서로 격려했다. 한 평창 교육생은 “평소 지역의 낡고 오래된 공간을 되살린다는 것이 과연 얼마나 의미가 있을지 의문이었는데, 설악동 C지구를 대상으로 진행한 프로젝트들을 보며 그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고도 했다.
지난 10월 22일 열린 ‘2021 지역문화 전문인력 양성기관 지정·지원사업 파일럿 프로젝트 결과 공유회’에서 교육생이 의견을 말하고 있다.
교육생들이 ‘지역문화 활동’, ‘지역문화 전문인력’ 등에 관한 의견을 온라인 설문조사 플랫폼에 입력하고 있다.
파일럿 프로젝트 발표 후 이어진 네트워킹 시간에는 ‘앞으로 해보고 싶은 지역문화 활동’, ‘잘 할 수 있는 지역문화 활동’ 등을 주제로 의견을 나눴다. 여기에 “평창 관광지를 무대로 한 365일 상설 공연”, “로컬푸드 요리 수업”, “고향 마을 기록”, “구들문화 확산”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지역에서 어떤 문화인력이 되고 싶은지 묻자 “평창이 탐내는 인재”라는 담대한 답변부터 “작지만 소중한 (사람)”이라는 소박한 답변까지, 지난 4개월 동안 보고 배우고 느낀 것이 담긴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다. 추성희 주임은 “‘지역’, ‘문화’, 나아가 ‘지역문화’란 개념 모두 추상적이고 포괄적이어서 정의하기 쉽지 않은 개념들이지만, 앞으로 지역에서 지역만의 문화를 발굴하고 확산할 주체로서 지역문화란 무엇인지, 지역에서 문화인력의 역할은 무엇인지 꾸준히 생각해보셨으면 한다”고 했다. 속초·평창권역 지역문화 전문인력 양성기관 지정·지원사업은 내년에도 계속된다.
결과 공유회에 참석한 교육생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강원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