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독서모임 ‘잇다-읽다’ 6·7월 모임 후기
— 송지현,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 (6/2)
— 정성숙, 「호미」 · 「연변 봉숭아꽃」 (7/7)

정리

한승은 「잇다」 편집부

온라인 독서모임 ‘잇다-읽다’
6·7월 모임 후기


송지현,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 (6/
정성숙, 「호미」 · 「연변 봉숭아꽃」 (7/7)

정리

한승은 「잇다」 편집부


독자 여러분과 더 가까이 연결될 수 있도록, 「잇다」는 올해 온라인 독서모임 ‘잇다-읽다’를 시작했습니다. 6월부터 11월까지 총 4회에 걸쳐  ‘지역과 지역에서 살아가는 지역민의 유대’를 다룬 문학(소설) 작품을 따로 또 같이 읽으며 한 걸음 더 책 속으로 들어가는 시간을 만들고자 합니다. 지난 6월과 7월에 진행된 두 차례 모임에서 오간 이야기를 정리해 ‘문화가 핀다’ 코너에서 소개합니다.

- 편집자주

6월 2일 첫 번째 모임


지난 6월 2일 목요일 저녁 7시 30분 온라인 독서모임 ‘잇다-읽다’의 첫 번째 자리가 마련됐다. 영월, 원주, 화천 등 서로 먼 데 사는 도내 여러 지역 주민이 단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같은 책을 읽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려 모인 시간은 ‘책’을 매개로 술술 흘러갔다. 여름의 문이 열리는 6월, 편집부가 고른 책은 마침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문학동네, 2021). 표제작인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을 중심으로 진행한 모임은 작품의 특유한 유쾌함에 힘입어 ‘여름 먹거리’부터 ‘청년 귀촌’까지, 추억을 불러내는 음식에서 우리 지역에서의 삶을 아우르는 이야기꽃을 피웠다.

우리가 함께 읽은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은 젊은 여성 작가 송지현의 두 번째 소설집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에 실린 동명(同名)의 단편 소설이다. 첫 모임인데다 참여자 모집 기간이 길지 않아 소설집의 모든 작품을 다루는 무리수를 두기보다, 한 편을 골라 깊이 읽고 참여자 각자의 자유로운 감상으로 모임을 채우기로 했다.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은 주인공 ‘미주’의 여름을 따라간다. 어느 여름, 미주는 서울에서의 고시원 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미주가 귀향한 무렵 친한 고향 친구’ ‘b는 서울에서 취업하고, 미주는 왠지 모르게 화가 난다. 그렇게(!) 미주는 b와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멀어진 한편, 미주처럼 고향으로 돌아와 청년몰에 입점한 핫도그가게 사장과 가까워진다. 미주는 뜨개방을 운영하는 이모에게 사슬뜨기를 배우고 핫도그가게에서 파는 핫도그를 사 먹으며, 바늘과 실을 쥔 손에서 힘을 빼는 법을 익히고 상호도 따로 없는 핫도그가게의 평범한 핫도그를 매일 먹으며 고향살이에 익숙해진다. 이모가 새로 떠준 초록색 스웨터를 입고 작아져서 못 입는 스웨터로 다시 만든 같은 색 니트 가방을 들고, 이 사이에 고춧가루가 끼었다는 걸 알려주는 솔직한 사람(핫도그가게 사장)을 만나고, 야시장 노래 대회에 나가 과거 밴드를 하며 만든 노래를 불러볼까 생각할 만큼, 미주는 돌아온 고향에서 ‘나쁘지만은 않은’ 여름을 난다.


‘책잇기’ 토론은 편집부가 참여자들과 이야기하고 싶은 생각거리를 제안하고 함께 나누는 시간이다. 편집부가 제시한 첫 번째 생각거리는 작품 속 장면을 제시하고 이 장면이 시사하는 메시지를 함께 곱씹어보는 것. 단, 장면을 고르는 기준은 모두 네 차례로 기획한 ‘잇다-읽다’를 관통하고 아우르는 주제, ‘지역과 (지역에서 살아가는) 지역민의 유대’와 관련돼야 한다.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은 미주가 서울에서 고향으로 귀향하면서 겪는 일상의 소소한 변화를 포착하고, 그 포착된 장면들은 독자가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이다. 편집부는 귀향한 미주의 사정이 내비치는, ‘중앙’ 대도시가 아닌 ‘주변’ 소도시에서 살아가는 삶을 생각해보게 하는 두 장면을 골라 참여자들과 함께 강원도민으로서 경험하고 생각하는 지역살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하루는 그의 가게에 놓인 간이의자에 앉아 핫도그를 먹으며 물었다.

─ 무섭지 않았어요? 돌아올 때.

나도 왠지 힘을 주어 말하게 되었다.

─ 돌아올 때 무서웠다기보다는……

그는 말을 골랐다.

─ 돌아오지 못할까봐 그게 내내 무서웠던 것 같아요.

나는 핫도그를 우물거리며 그 말을 곱씹었다. 한낮의 청년몰은 한산했다.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 27쪽.



서로의 근황에 대해 이야기하다보니 내 차례가 다가왔다. 요즘 고향에 내려가 있다고만 말했을 뿐인데, 다들 걱정하는 눈치였다. 나는 오늘도 얻어먹는 건가, 하고 생각했다.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 33~34쪽.

원주 토박이인 승훈님은 “죽 고향에서 산 터라 ‘귀향’하는 감정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없다. 서울엔 한 달에 한 번꼴로 가는데, 갈 때마다 숨 막히는 느낌이라 왜 다들 그 갑갑한 곳에서 살려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한 한편, 고향 서울에서 영월로 이주한 지 5개월 남짓한 선희님은 “주변 지인들에게 ‘왜? 굳이?’ 그리로 가느냐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막상 살아보니 도시든 시골이든 사는 건 비슷비슷한 것 같다”며 “귀향은 익숙함을 회복하는 것이라면, 타지로 이주하는 것은 익숙한 것들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라는 차이 말고, 도시와 시골에서의 삶 사이에 딱히 다른 점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시골에서 어린시절을 보내고 도시로 이주한 이들에게 귀향은 어떤 의미일까. 고향 농촌에서 도시로, 다시 화천으로 이주한 수민님은 “시골에서 ‘도시로 나가는 것’은 곧 성공이라 여겨지는 경향이 있다”며, “도시에서 누릴 수 있는 문화예술 인프라가 시골에는 없지만, 대신 시골의 한적한 분위기는 창작 활동에 큰 도움이 된다”고 시골에서의 삶이 지닌 장점을 이야기했다. 수도권의 농촌에서 났지만, 현재 춘천 시내에 사는 정민님은  “수민님께 공감한다. 시골에서는 귀향하면 경쟁에서 졌다고 생각하는  분위기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 나온 고향이 도시에서의 삶에 지친 주인공이 쉬러 가는 곳인 것처럼 시골 출신의 귀향은 실패했다거나 쉬러 간다는 느낌이 짙다”며, “농촌에서도 도시에서도 살아보니 선희님 말씀처럼 별다른 점이 없는 것 같다. 다만, 그동안 살아보지 않은 곳에서 산다는 것 자체가 도전이 아닐까 싶다”고 했다. 


마른 한치와 맥주, 고등어김치찜, 칠게볶음, 콩나물볶음, 핫도그, 소머리국밥 등 소설 속 여름 동안 미주가 먹은 것들은 미주가 서울서 고향으로 돌아와 고향살이에 익숙해지는 시간을 버티게 한 양분이다. ”실패하리라는 걸 알면서도 다른 선택지를 고를 수 있는 상황에서 같은 선택을 한번 더 하는”(22쪽) 자신이 걱정스럽지 않다면 거짓말일 미주가 역시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일 이 여름을 나며 먹는 것들은 곧 걱정스럽고 힘든 시간을 버티게 하는 보양식이나 다름없다.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이라는 소설의 제목을 둘러싼 이야기는 자연스레 ‘여름’과 ‘소울푸드’를 엮어 ‘추억의 여름 먹거리’를 불러냈다. 토속적인 음식을 잘 만들어주시던 옆집 아주머니의 애호박 만두가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도 생각난다(정민)거나, 돌아가신 할머니가 몸이 좋지 않을 때마다 개고기를 드시고 기운을 차리신 기억이 난다(선희)거나, 중학생 때 교실을 빠져나와 자판기 커피를 뽑아 먹었는데 지금도 비가 오면 자판기 커피를 찾곤 한다(수민)는 등, 저마다 여름과 먹거리와 추억이 얽힌 이야기를 풀어냈다. 한편 일년을 인생으로 치면 여름은 청년기일 테다. 승훈님은 “젊은 시절, 그때 먹는 평범한 음식이 곧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이 아닐까”라고 제목의 의미를 곱씹기도 했다. 소설 속 미주가 먹는 것들은 모두 비싸지 않고, 귀하거나 드물지도 않은 음식이다. 인생의 한고비를 넘는 일은 평범하다면 평범하다. 그해 여름이 ‘나쁘지만은 않은’ 까닭은 내 처지와 닮은 한치와 핫도그를 자주 먹는 일상, 어려서부터 먹고 자란 칠게볶음과 소머리국밥의 익숙함이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고 나도 모르는 새 위로하기 때문일 것이다.


편집부가 준비한 생각거리 나눔 후 자유롭게 독후감을 공유하는 시간, 참여자들은 소설 속 개그 코드가 인상적이었다(승훈)거나, (향초나 지갑은 선물하는데) 핫도그는 왜 선물 못하는지 의아했다(수민)거나, 미주가 피터팬을 연상시키는 초록색 복장을 한 것으로 끝맺는 장면이 좋았다(선희)는 등 저마다 기억에 남는 것들을 이야기했다. 핫도그에 설탕을 안 묻히는 미주의 입맛에 뜨악했다(정민)는 반응과 당연히 안 묻힌다(수민)는 반응 사이에서 터진 웃음처럼, 소설 곳곳에 포진해 있는 깨알 같은 유머는 이 작품을 매개로 모인 참여자들 사이에서도 이따금 웃음을 유발했다. 더 많이 웃고 더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자리를 마련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까닭 역시 이 작품 특유의 유쾌함이 사랑스럽고 소중하기 때문이다. 모임 후기를 쓰며, 그날 모임에서 미처 나누지 못한 소설의 매력을 되새김질하고 있으려니 못다 한 말과 못 들은 말이 새삼 아쉽다. 이 작품으로 모이는 자리를 다시 마련해보고픈 편집부의 바람을 귀띔하며, 더 많은 독자 여러분이 여름이 가기 전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을 맛있게 읽어보시길 권한다.

7월 7일 두 번째 모임


지난 7월 7일 목요일 저녁 7시 30분 ‘잇다-읽다’의 두 번째 모임이 열렸다. 고성, 영월, 춘천, 화천에서 모인 참여자들은 육아휴직 중인데 뭔가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어서(선미), 요즘 너무 책을 안 읽어서 책을 읽기 위해(선희), 집단지성이랄까 함께 깨닫는 풍성함을 누리고 싶어(신애) 신청했다는 등 각기 다르면서도 서로 닮은 동기를 나누며, 모임 시작부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편집부가 엄선한(!) 두 번째 작품은 전남 진도에서 농사를 지으며 글을 쓰는 정성숙 작가의 『호미』(삶창, 2021). 여러 단편을 모은 소설집이라 그중 두 편을 다시 엄선했다. 표제작이어서 가장 먼저 읽은 「호미」는 마침 ‘잇다-읽다’가 의도하는 ‘지역과 지역민의 유대’를 읽어내기 좋은 작품이라 선뜻 골랐고, 「연변 봉숭아꽃」은 이번 호 「잇다」의 주제인 ‘문화예술교육으로 보듬는 다양성(문화적 소수자의 문화 접근성 높이기)’을 독서모임 참여자들과도 공유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에서 역시 선뜻 골랐다.

「호미」의 ‘영산댁’은 매일 녹초가 되도록 밭에서 호미질을 한다. 이제는 고인(故人)이 된 남편, 어려서 나병으로 세상을 떠난 맏이와 함께 일군 ‘산 너머 밭’은 가족의 삶이 뿌리내리고 줄기를 뻗어 올린 땅이다. 고향을 떠난 자식은 값이 올랐을 때 땅을 팔자 하지만 영산댁은 제 삶이자 가족의 삶을 길러낸 땅을 팔 수 없는 것은 물론 떠날 수도 없다. 홀로 밭일을 하다가 다친 영산댁이 기어서 산을 내려와 마침내 마을로 들어서는 기적 아닌 기적을 일으킨 것도 결국 ‘호미’다.


편집부가 제안하는 첫 번째 생각거리는 영산댁이 서울 사는 둘째 아들과 전화 통화하는 장면에서 나왔다. 땅을 팔자는 아들에게 영산댁은 절대 그럴 수 없다는 뜻을 분명하게 밝힌다. 그 땅이 어떤 땅인데, 영산댁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있을 수 없는 일임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강렬한 말은 영산댁에게 이 땅이 어떤 땅인지, 영산댁과 산 너머 밭의 질기고도 끈끈한 유대를 그 마디마다 절절하게 드러낸다. 

“너 시방 뭔 말을 하고 자빠졌냐! 이잉! 니 새끼덜이 끄니를 굶고 있는 것도 아니고, 오메! 샛바닥은 짧은데 침은 멀리 뱉고 잡은 모양이구마이. 쌍놈이 갓을 쓰믄 머리가 빗겨진다고 했어야. 이 썩을 놈아. 그 땅이 으떤 땅이라고 터진 주둥아리라고 아무 말이나 내뱉어도 된닥하든. 엉! 행여 넘덜이 그 밭을 꿩 이마빡 같은 산전밭이라고 씨부렁거리드라도 너는 그라믄 안 되제. 아아믄! 집은 험해도 살제마는 땅이 없으믄 끄니를 굶는 것이라서, 느그 삼 형제 주둥아리에 풀칠이라도 시캐줄라고 느그 성… 느그 성 생목심하고 맞바꾼 것을 모른다고는 할 수 없겠제. 아믄, 아믄! 인두겁을 쓰고 그랄 수는 없제! 그랄 수는, 그랄 수는….”


「호미」, 27쪽

그렇다면, 우리 각자는 내가 살아가는 곳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 참여자들은 지금까지 살았던 곳, 지금 사는 곳과 나의 관계에 대해 저마다 다르면서도 서로 닮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미숙님은 “한곳에 오래 산 적이 없고 자주 이사 다니다 보니, 사는 곳과 깊이 관계 맺기가 어려웠다. 지금 사는 곳은 시골인데, 지난 몇 년 간은 이웃과 격의 없이 지냈지만 요즘엔 나가고 들어오는 일이 잦기도 하고 서로 친해지기가 쉽지 않다”며 “단독 주택들이 모여 있는 마을인데 점점 아파트 단지처럼 변해간다는 느낌도 든다”고 했다. 미숙님처럼 국내외로 자주 옮겨 다녔다는 신애님은 “지금 발 딛고 있는 곳에서 항상 눈을 돌려 다른 곳, 다음 곳을 바라봤던 것 같다. 줄곧 내가 지금 있는 곳은 다음 어딘가로 가기 위해 잠시 머무는 곳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영산댁처럼 내 목숨과도 바꿀 수 없는, 나와 한 몸과 같은 공간은 없었던 것 같다”며, 이어 직접 겪은 일을 들려줬다. “예전에 중국 깡촌의 한 작은 대학에서 강사로 오래 일했는데, 그곳에서의 기억이 애틋해 한국으로 돌아오고 한참 지나서 그 동네를 찾아갔다. 그 학교 교정과 기숙사가 몹시 그리워서 좋다는 관광지 다 제치고 친구랑 굳이 거길 갔는데, 내가 기억하는 애틋함은 온데간데없었다. 난 그저 지나가는 사람이었을 뿐이구나 싶었다.”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하는 탓일까, 자고 일어나면 있던 집이 사라지고 새 건물이 들어서는 변화의 과속이 나와 우리 동네가 친밀한 유대를 형성하지 못하게 막는다는, 익숙한 푸념이 입속을 맴돌았다. 한편 10여년 전 화천에 온 루시아님은 아직 화천이라는 지역이 낯설고, 언제까지 화천에서 살게 될지 알 순 없지만 화천에 서서히 녹아드는 삶에 대한 전망을 내비쳤다. “이곳에서 꽤 오래 살았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이방인의 시각으로 지역을 본다. 앞으로도 꽤 오래, 지역 사회와 지역 사람들 안으로 들어가는 과정에 있을 것 같다. 그래도, 아직은 이방인의 시각에 머물지만, 언젠가는 나도 영산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연변 봉숭아꽃」은 연변에서 나고 자란 ‘순정’이 남편을 찾아, 돈 벌러, “다른 사람한테 의지하고 살고 싶어”(234쪽) 다른 도시로, 다른 나라로 떠나야 했던 순정의 인생을 따라간다. 순정에게 결혼은 어머니와 두 동생에게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었다. 그러나 북경으로 돈 벌러 간 남편은 순정과 두 아이를 잊고 새 삶을 찾았고, 순정은 연변에 있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어떤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순정이 학수를 따라 한국에서 살게 된 것도 살아 있는 한 살기 위해 가지 않을 수 없는 길이었다. 연변에서 북경으로, 다시 한국으로 떠나온 순정의 이주는 여행도 방랑도 아니다. 순정의 유일한 친구, 백구 장백이와 다를 바 없이 순정의 삶도 목줄에 매여 있다.


편집부가 제안하는 두 번째 생각거리는 순정이 추석을 앞두고 읍내 다문화가정지원센터에서 진행하는 송편 만들기 체험 행사에 참여한 장면에서 나왔다. 외국인 여성 50여 명이 출신 나라가 적힌 이름표를 목에 걸고, 옆에 앉은 사람과 말 한마디 섞지 않고, 그저 진행자의 말을 듣고 따라가는 데 바쁜 모습은 어색하기 짝이 없다.

코스모스 몇 송이가 그려진 분홍색 원피스를 입은 순정이 학수 씨를 따라 읍사무소 2층 다문화가정지원센터로 들어가니 넓은 강당에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얼추 50여 명은 되어 보였다. 길게 펼쳐놓은 탁자 위에는 물주전자를 올려놓은 휴대용 가스버너와 쌀가루를 담은 스테인리스 함박이 사람 수에 맞춰 놓여 있었다. 사람이 많은 것에 비해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행사가 시작되지 않아서였겠지만 서로 아는 얼굴이 아닌 데다 말 또한 서툴러서인지 누구 하나 먼저 말소리를 내는 사람이 없었다. 


외국에서 한국으로 시집와 사는 여자들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에 순정은 놀랐다. 태국, 필리핀, 베트남에서 온 여자들이 대부분이었고 우즈베키스탄과 네팔 또는 캄보디아에서 왔다고 각자 목에 걸고 있는 이름표에 적혀 있었다. 순정처럼 중국에서 온 사람도 몇 명 보였지만 친근함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외양만 봤을 때는 다른 나라에서 살았을 것 같지 않게 원래 한국 태생들처럼 보였다. 그러나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단계들인지 서로 쭈뼛거리고 있었다. 옆에 앉은 사람과 말 한마디 섞는 것은 엄두도 못 내고 행사 진행자의 말을 듣고 따라가는 데 땀을 빼고 있었다.


명절 음식을 온 가족이 같이 만들면서 가족애와 전통문화를 회복한다는 행사라고 들었는데 남자는 없고 외국에서 시집온 여자들만 송편 만들기 연습을 할 모양이었다. 


「연변 봉숭아꽃」, 227~228쪽

이 장면에서 이상하다고 여겨지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 문제가 있다면 무엇인지 물었다. 참여자들은 대개 마지막 문장을 꼽았다. 선희님은 “가족이라는 게, 일방적으로 자기네 문화를 다른 사람에게 강요해서 같아지는 게 아니지 않나.  한국인과 결혼한 외국인 며느리들이 한국에 관한 것을 배우고 익숙해져야 하는 것도 맞지만, 반대로 한국인 남편들이 부인의 문화를 익히는 시간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며 결혼이주여성에게 한국 문화를 주입하는 공허한 관행을 꼬집었다. 그런가 하면, 신애님은  “토마토 농장에서 필리핀, 태국, 캄보디아 등지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와 함께 일했는데, 친하게 지내고 싶어 말도 많이 걸어봤지만 잘 안됐다. 한국에 온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한국어를 잘 못하더라. 알고 보니 남편들이 한국어를 배우지 못하게 했다. 한국어 교실이나 한국문화 행사에서 만난 이주여성들이 한데 뭉쳐 샛길(?)로 빠질까 봐 그러는 것 같았다. ‘내’ 부인이 ‘내’가 원하는 자리를 지키지 않고 다른 걸 할까봐 말이나 문화를 배우지 못하게 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는 다소 충격적인 경험담을 들려줬다. ‘한국문화 체험 및 교육’이라는 명분만 남은 구색 맞추기 행사의 배경에 이주여성의 자유를 억압하는 한국인 남편과 그 가족이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순간 아찔했다. 한편 이 작품을 읽고 이주여성이 한국사회에서 살아내야 하는 현실이 녹록지 않다는 걸 새삼 일깨운 참여자들은 모두 ‘내 안의 편견’과 마주했다고 입을 모았다.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다문화가정 어머니와 알게 됐다는 선미님은 “오는 토요일에 아이들을 함께 놀게 하자고 제안했는데, 그때 내 안에 편견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됐다. 그 어머니의 이름을 물어봤더니 한국식 이름을 알려줬다. 순간 놀랐다. 당연히 고향에서 불리는 이름을 말해줄 거라 생각했다. ‘아,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구나. 이 사람도 우리나라 구성원인데.’ 내가 큰 실수를 한 것 같았다. 내 안의 편견이 너무 부끄러웠다. 그래서 어디서 왔느냐고 물어보려 했다가 입을 닫았다”며, 바로 며칠 전 이런 일이 있어서였는지 ‘행사장에 모인 여성들이 국적이 적힌 이름표를 목에 걸고 있었다’는 대목에서 멈칫했다고 했다. 평소 나는 “벽이 없고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한다고 생각”한 루시아님도 선미님의 말에 공감하며 다음과 같은 경험을 이야기했다. “제 안에 뿌리 깊은 편견이 튀어나온 순간이 있었다. 아이들이 200명 정도 모이는 행사를 열며 사전 신청을 받았다. 행사 당일 다문화가정 아이가 왔는데 신청자 명단에 없어서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야 했다. 한 동료가 "아이 엄마가 누구냐"고 물었고, 내가 "다문화예요"라고 답했다. ‘다문화여서’ 이 엄마와는 당연히 소통이 안 될 거라 생각하고 일을 처리했다.” 미숙님은 “뉴스로는 다문화여성이 처한 현실, 다문화가정의 어려움, 정착의 어려움 등에 관해 많이 접하지만, 이런 문제를 생각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렇게 내 안의 편견과 무관심을 마주하는 한편 “이주여성이란 말이 ‘이주’와 ‘여성’을 합친 것이니 나도 이주여성”(선희)이라며 이주여성의 이미지를 새로 그리고, 나아가 “다문화여성, 이주여성이란 말 말고 그냥 여성”(선미)이라 불리는 날이 오길 바라는 매우 급진적인(!) 의견도 나오는 등 편견의 벽이 조금씩 허물어지는 긍정적인 변화의 기미도 엿보였다.


참여자의 자유로운 독후감을 나누는 시간, 공을 주고받듯 오간 말들은 유쾌함과 진지함을 오갔다. 대개 작가가 구사하는 생생한 남도 방언이 낯설어 거듭 읽어야 했다는 어려움을 토로한 반면, 남도에서 나고 자란 선미님은 옆집 아주머니가 말하는 듯해서 즐겁게 읽었다고 해 좌중을 감탄케 했다. 편집부 또한 남도 방언이 참 낯선데, 말하는 대로 발음 나는 대로 적힌 남도 방언을 천천히 따라가다 보니 무슨 뜻인지 잘은 모르나 그 ‘걸찍함’에 반했다. 그 ‘찰진’ 말만큼 깊고 짙은, 소설 속 인물들의 삶이 일깨우는 교훈은 웅숭깊다. 루시아님은  “영산댁은 우직하면서도 어리석은 면도 있고, 그렇게 인생을 죽 고되게 살아왔다. 나도 영산댁처럼 같은 일을 죽 오래 해왔다. 지겹기도 하지만 이걸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결국 지금 하고 있는 이 일로 내 인생이 설명되겠구나”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자주 옮겨 다닌 터라 지금 살고 있는 영월도 언제 떠날지 모르는 곳이라고 여겼던 선희님은 “다음 내 삶은 어떻게 될지 고민하기보다 지금 여기 있는 곳에 집중하고 좀 더 노력해야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지금 나는 내가 발붙인 곳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 어쩔 수 없이 붙박였든 어쩔 수 없이 떠나가든, 내가 ‘지금 여기’ 있다는 사실은 엄연하고 자명하다. 우리가 함께 읽은 두 작품이 지금 내가 발 딛고 있는 자리를 확인하는 것은 물론 온 길을 되짚고 갈 길을 가늠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총평을 감히 보태며, 『호미』가 참여자 여러분의 마음에서 캐낸 이야기의 여운이 오래가길 기대해본다. 


온라인 독서모임 '잇다-읽다'는 더위가 한풀 꺾인 9월 초 세 번째 모임을 재개합니다. 9월 모임에서 함께 읽을 책은 『불과 나의 자서전』(김혜진 지음, 현대문학, 2020)입니다. 더 자세한 사항은 8월 중 강원문화재단과 강원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SNS에 올라오는 공고를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2022. 07.

20호

강원문화재단 강원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주소 | 강원도 춘천시 금강로 11 KT빌딩
전화 | 033-240-13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