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대로 잇는 미래

이란주 작가

아시아인권문화연대 대표

환대로 잇는 미래

이란주 작가

아시아인권문화연대 대표


우리 마을에는 다양한 나라에서 온 이주민들이 함께 살고 있어요. 대도시에서 ‘마을’이라니 꽤나 어색한 표현이지만, 경기도 부천시 도당동 강남시장 인근을 저는 주저 없이 마을이라 부릅니다. 마을은 이주민이 가져온 선물입니다.

 


공동체성 확장

출신 민족과 나라, 피부색, 언어와 문화, 역사 등 여러모로 다른 점이 많은 이들이 평화로이 공존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사람이든 문화든 낯선 것을 수용하며 존중하는 힘이 필요하고, 때론 싫은 것을 견디는 지혜도 필요하죠. 하지만 그런 힘과 지혜는 저절로 생기지 않습니다. 전에는 우리 마을에서도 외모가 다른 이를 경계했고, 방을 달라는 이주노동자를 거절했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음식 냄새에 질색했고, 이주민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대화하면 온통 시끄럽고 내 흉보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어요. 이주민에 대한 무시와 차별은 그저 일상이어서 그게 무시인지 차별인지 혐오인지 알지도 못했어요. 그런 시간을 오래 겪었어요. 점차 이주민이 많아지고, 정착 단계에 접어든 이들이 늘어나면서 자신들의 식재료와 음식을 판매하는 상점이 자리 잡았죠. 상점들이 중심이 되어 네트워크가 생겨나고 확대되며 지역이 점차 ‘마을’의 성격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씨앗이 이주민들이 품고 있는 공동체성에 있었다고 생각해요. 우리네 도시에서 거의 사라져버린 공동체성을 이주민들이 지금껏 품고 있는데, 그것이 잘 뭉쳐지도록 촉진하니 지역 전체에 선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고 말입니다.

 


이주민 역량 강화와 문화 향유

차별의 최전선에 놓인 이주민들은 권리를 침해당해도 언어라는 넘기 어려운 벽 때문에 스스로 권리를 주장하기 힘듭니다. 외부 조력이 꼭 필요하죠. 한국 생활에 필요한 말과 문화를 익히는 것도 중요하고요. 우리 단체는 이주민과 함께 노동·생활 상담과 지원, 언어를 비롯한 각종 교육, 문화 활동을 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쌓은 신뢰와 우정을 토대로 이주민을 포함한 사회통합 활동을 시도했어요. 여러 이주민 모임을 소통의 한 축으로 세우고, 강남시장 상인회와 협력하여 또 다른 축을 다듬었죠. 다양한 기획으로 이 두 그룹이 교차하며 만나고 교류할 기회를 만들었습니다. 모든 기획마다 인권과 다문화주의, 문화다양성, 세계시민성 같은 보편적 가치를 밑돌 삼았어요.

우선 ‘꼬마도서관’ 이야기를 해볼게요. 2005년, 도서관 운영을 시작할 때 두 가지를 고려했어요. 하나는 이주노동자가 자기 언어와 문자를 통해 문화적 자긍심을 누릴 기회를 만들자는 것이었어요. 당시는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이었고, 컴퓨터를 가진 이주노동자도 거의 없었어요. 책은 거의 사치품이었으니 자기 문자에서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었어요. 또 한 측면은, 우리 사회에 ‘이주노동자가 일만 하는 기계가 아니라 당신과 같이 존엄하며 책을 읽는 문화적 존재’라는 점을 알리자는 것이었어요. 해외여행을 가면 현지에서 책을 사와 기증하자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어요. 이 활동은 후에 다문화도서관과 여러 언어 원서를 공급하는 전문서점의 필요성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어요.

 


평등한 관계를 잇다

이주민과 선주민 사이에 평등한 관계 맺기도 촉진해야 했어요. 이주민이 늘어도 이주민과 선주민 사이는 좀체 좁아지지 않았거든요. 이주노동자는 단지 일하는 존재로 인식될 뿐 친교와 통합 대상으로는 여겨지지 못했어요. 결혼이주자는 각 가정에서 살아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느라 사회화 과정이 더디고 힘겨웠고요. 이주민이 고립되지 않고 사회와 연결될 방법을 찾아보았어요.

낯선 이들이 만나 관계의 물꼬를 트는데 음식만한 것이 없죠. ‘음식공감’은 우리 단체의 대표 아이템입니다. 지난 20여 년간 우리는 끊임없이 같이 음식을 만들고, 먹고, 손님을 초대하고, 마을잔치를 열었어요. 자기 음식을 선보이는 과정은 이주민에게는 자존감을 회복하는 시간이기도 했어요. 주로 선주민을, 또 다른 나라 출신 이주민을 초대해서 친교를 나눴어요. 수요일 저녁마다 공원에서 열었던 ‘수요일가든파티’는 아동·청소년을 축으로 다양한 마을 사람들이 모이는 기회였어요. 학교와 공부방에서 함께 자라는 아이들에게 국적이나 피부색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아이들은 신나게 모여 재잘거리다 엄마나 아빠가 지나가면 불러들이고, 이웃들에게 까르륵 인사하며 활기를 더했어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다 같이 둘러앉아 노래 부르며 설거지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2015년 부천 도당동 강남어린이공원에서 열린 ‘수요일가든파티’에 참여한 마을 어린이들이 즐겁게 수다를 떨고 있다. ⓒ아시아인권문화연대

그즈음 문화부가 문화다양성 사업을 확장하며 무지개다리 사업을 시작했어요. 자원이 들어오니 어렵사리 이어가던 활동에 힘이 생겼죠. 예산을 활용해 주민동아리를 조직하고 생활문화예술 활동을 했어요. 노래, 기타, 하모니카, 난타, 댄스, 그림과 공예 등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예술 활동을 하며 주민들이 만나고 교류할 기회를 만들었죠. 이 활동을 할 때 힘들었던 점은 이주민과 선주민의 생활이 달라 함께 모일 시간을 만들기 쉽지 않다는 것이었어요. 선주민은, 주 5일제가 정착하자 주중에 동아리 활동을 하고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하기를 원했어요. 그러나 이주민 대다수는 주 6일 근무는 기본이고 일요일에도 특근이 많으니 시간을 맞추기 힘들었어요. 형편에 따라 이주민과 선주민이 따로 준비하고 발표회만 같이 하기도 했어요.

2013년 부천강남시장에서 열린 ‘강남시장마을축제’ 현장. 축제 참여자들이 서로 환대하며 고향은 달라도 모두 부천시민임을 확인하고 있다. ⓒ아시아인권문화연대

‘강남시장마을축제’는 여러 활동을 모두 합하는 자리였어요. 2012년부터 2019년까지 여덟 차례 축제가 열렸고 그 뒤로는 코로나 대유행 탓에 중단되었죠. 강남시장은 낡은 원도심에 자리 잡고 있어 환경개선이 어렵고 재개발 논란이 반복되어 장사가 잘 안 되는 시장이었어요. 상인들의 노력과 무관하게 대형마트에 빼앗긴 손님은 좀체 돌아오지 않았죠. 인근에 살고 일하며 대형마트까지 갈 시간이 없는 이주민들이 시장을 주로 찾았지만, 이주민 손님은 존중받지 못했어요. 상인들 스스로 이주민 손님의 소중함을 알고 상생을 도모하도록 도울 방법이 없을까 생각해 보았어요. 시장 상인회에 제안해서 수평적인 대화 테이블 ‘부천라운드’를 열었죠. 이주민을 포함한 주민, 상인, 지역 정치인 등이 만나 대화를 시도했어요. 각자 입장을 털어놓고 같이 어울려 살 방안을 찾았죠. 그 결과, 이주민 선주민이 만나 교류하는 주민동아리를 조직해 활동하고 그 결실을 모아 축제를 열기로 했어요. 시장 한복판에서 여는 축제! 다들 상상만으로도 즐거웠어요. 시장 사거리에 멍석 깔아 무대를 만들고 동아리 활동으로 익힌 재주를 뽐내고 서로 환호했어요. 마을 학예회 같았죠. 말이 잘 안 통해도 웃음과 박수는 쉽게 전염되고 공감을 일으켰어요. 첫 회 ‘대동놀이’였던 기차놀이 장면이 떠오릅니다. 끈으로 엮은 기차에 행사 참여자들이 탑승했어요. 칙칙폭폭 달리는 기차가 시장을 한 바퀴 돌 때 이웃들은 웃는 얼굴로 스치며 하이파이브를 했어요. 환대의 기쁨을 맛보는 순간이었죠. 주민들이 공유한 즐거운 경험은 이후 계속 이야깃거리가 되고, ‘다음에는 무엇을 할까?’ 즐거운 고민으로 이어졌어요. 축제는 캠페인 ‘고향은 달라도 여기 살면 부천시민’과 함께 진행되었어요. 국적이 어디인가, 어느 지역 출신인가와 관계없이 동료 시민으로서 동질감을 가지고 도우며 살자는 의미를 담았어요.

또, 사람과 사람, 문화와 문화를 평등하게 잇는 데 더 집중하는 활동으로 ‘상호문화교육’이 있어요. ‘다양성을 즐기고, 평등과 인권 의식을 장려하며, 차별에 맞서는 시민으로 키우자’는 목표를 가진 교육 활동이죠. 우리 단체와 함께 하는 ‘상호문화교육 강사단’이 어린이집, 공부방, 초·중·고교, 도서관과 문화기관에서 학생, 교사, 공무원, 문화종사자 등과 함께 문화다양성과 인권, 반(反)차별, 소통과 상호 수용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어요.

2010년 상호문화교육에 참여한 중학생들이 ‘이주민 차별’과 ‘공존’에 대해 학습하고 나뭇잎에 소감을 써서 붙인 ‘반차별 나무’를 만들었다. ⓒ아시아인권문화연대

이 밖에도 우리 단체는, 이주민 자녀들이 선주민 친구들을 초대하는 형식의 어린이 축제 ‘우리 집에 놀러와’, 청소년을 초대하여 우리 마을을 둘러보고 공존과 다양성을 주제로 대화하는 ‘우리 동네 시장탐방’, 청소년동아리가 애면글면 준비한 ‘청소년뮤지컬’, 이주민의 삶을 음악과 함께 소개하여 공감대를 넓히는 ‘뮤직토크쑈 베프’, 낯선 언어에 당황하지 말고 서로 존중하자는 의미를 담은 다양성 캠페인 ‘이렇게 다양한 안녕하세요’, 모든 사람이 꽃같이 아름다운 존재임을 느껴보는 인종 차별 철폐 캠페인 ‘모두 다 꽃이다’ 등 다양한 시도를 했어요.

2017년 부천 가치소극장에서 ‘아시아인권문화연대 청소년동아리 노리터’가 뮤지컬 <꿈꾸는 노리터>를 공연하고 있다. ⓒ아시아인권문화연대

2019년 부천역 광장에서 ‘3월21일 세계인종차별철폐의날’ 기념 행사가 열렸다.
이날 진행한 ’모두 다 꽃이다’ 캠페인에 참여한 시민이 화관을 쓰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아시아인권문화연대

좀 숨 가쁜가요? 줄줄이 나열하니 정신없어 보이지만 지난 20여 년간 차분차분 축적해 온 것이라 그 과정은 여유롭고 재미있었어요. 이런 활동이 필요한 지역이 있다면 관심 가는 대로 골라 시도해 보셔도 좋겠어요. 다만 한 가지 꼭 말씀드리고 싶은 점은, 우리 단체가 앞장서기는 했지만, 이 모든 활동은 이주민을 포함한 마을 이웃들, 강남시장상인회와 지역 단체들, 그리고 부천문화재단이 힘껏 협력했기에 가능했다는 점이에요. 모든 활동에는 반드시 예산이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서로 존중하고자 하는 노력, 그리고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따뜻한 연대예요. 

 


더 나은 미래

10년 전쯤 독일은 다문화사회를 건설하는 데 실패했다는 충격적인 고백을 했어요. 차별을 줄이기 위해 노력했지만 오히려 분열과 갈등이 더 깊어졌는데, 그 이유는 사람 사이를 잇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고 해요. 무엇보다 사람들이 만나고 섞일 기회를 만들어야 했는데, 그걸 놓치고 이주민이 분리되는 상황을 방치한 결과 ‘평행선 사회(parallel society)’가 되어버렸다고 성찰했어요.

지금 우리 사회 인구의 약 4%가 이주민입니다. 제조업, 건설업에 이어 농업, 축산업, 어업 등 거의 모든 생산 현장이 이주노동자의 노동력 없이는 굴러가지 못해요. 저출생·고령화 상황이 점차 심각해지고 있다니 앞으로 이주민을 더 많이 받아들이게 될 것으로 보여요. 정부가 3년마다 실시하는 ‘국민 다문화수용성 조사’ 결과, 청소년의 수용성이 비청소년의 수용성에 비해 월등히 높다고 해요. 그것은 청소년이 다문화교육(상호문화교육, 문화다양성교육 등) 참여 기회가 비교적 많고 학교에서 이주청소년을 접할 기회가 많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비청소년 또한 교육 참여자가 미참여자보다 수용성이 높았고요. ‘다문화수용성’은 문화개방성, 거부·회피 정서, 교류 행동의지, 세계시민 행동의지 등 8개 요소를 종합하여 평가하는데, 그 값이 높아지면 다양한 존재와 다원적 견해를 긍정하고 소수자의 권리를 보장하는 힘이 커져 분열과 갈등을 줄일 수 있어요. 각 요소를 분석하여 구체적인 증진 방안을 찾아 실천한다면 공존의 힘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우리 단체는 ‘이주’를 주제로 활동하므로 이주민과 선주민을 잇는 일에 초점을 두었지만, 세대 간, 지역 간, 소득계층 간, 농어촌과 도시 사이, 아동청소년·노인·장애인·성소수자·여성을 비롯한 소수자와 다수자 사이 등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차별과 갈등을 해소하고 평화로운 통합을 이루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지요. 서로 환대하고 즐거운 경험을 공유한다면 우리는 분명 더 나은 미래를 열 수 있을 겁니다!

*아시아인권문화연대는 곧 단체 운영을 중단합니다. 깨알같이 재미나고 즐거운 활동이 전국 곳곳에서 일어나기를 기대합니다.

2022. 07.

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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