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이야기는 있고
그래서 삶은 다양하다

지경

퍼포먼스 반지하 활동가

누구에게나 이야기는 있고 그래서 삶은 다양하다

지경
퍼포먼스 반지하 활동가


모든 시작은 개인적인 것에서 출발한다

우리 대부분은 전체주의가 강요되는 사회에서 성장했습니다. 정서적으로 크게 다르진 않겠지만, 지금은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 ‘인권’ 같은 말을 쉽게 꺼낼 수 있는 반면 80년대에는 다수와 다른 의견을 말하는 것이 어렵고, 자신의 개성을 찾아가는 것은 문제아의 이야기였습니다. 세상은 화려하게 발전하지만 개인의 현실은 행복하지 않았고, 진실에 대한 갈증이나 삶의 의미에 대한 갈구는 더 절실했던 것 같습니다. 내가 곁에서 보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미디어에 나오지 않고, 어느 날 투신한 학생이 발견되었는데도 다음 날이면 아무 일 없었던 듯 일상으로 돌아가는 주변 풍경에 충격을 받기도 했고요. 사회에서 일어나는 부당한 일들에 대해 누구도 진실을 말해주지 않는 학교를 다닌다는 것은 참으로 모순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다행히도 스무 살 전후에 접한 PC통신과 이후 도래한 인터넷 시대는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통로였고, 우연히 책에서 본 ‘플럭서스’(Fluxus, 1960년대 독일에서 일어난 미술 운동으로, ‘반(反)예술’을 내건 실험 예술을 선보였다)에 통쾌함을 느껴 퍼포먼스패를 결성했습니다. 전체주의에 가려진 것을 드러내고, 모순적인 질서에 물음표를 던지는 게릴라 공연과 문화를 연구하고 함께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그러던 중 ‘장애인예술표현워크숍’에서 ‘드라마고’를 만났습니다. 당시 그는 초등학교 미술 교사이자, 방과후에 발달장애아동들과 자율수업을 하며 사이버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우린 뜻이 맞았고,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집회에서 함께 퍼포먼스를 준비하면서 ‘퍼포먼스 반지하’가 생겨났지요. (‘드라마고’라는 활동명은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가난한 자들의 삶의 현장을 낯설게 바라보는 태도와 창작’에서 따왔습니다.)


사회가 규정하는 정상성에 깊은 반발심을 갖고 있던 저와, 사회에서 소외된 진실한 삶의 이야기가 예술의 소재가 되어야 한다고 여긴 드라마고가 합의한 시작점은 ‘개인적인 것이 곧 사회적인 것이다’였습니다. 그렇다면 개인적인 삶의 이야기들이 진솔하게 표현되어야 하고, 개인의 이야기가 어떻게 사회와 연결되어 있는지 사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보여지는 것’ 이면의 가려지고 억압된 것들을 표현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사회는 다양성을 담게 되고 민주주의를 찾아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삶의 스토리텔러이다

‘공존을 위한 공공문화 표현집단’ 퍼포먼스 반지하는 ‘디지털 인천하우스’, ‘퍼포먼스 극 하늘’,‘그래픽 에세이 공책’, ‘대안문화기획워크샵 흐름’ 등의 프로젝트를 자발적으로 기획하고 자체 제작한 홈페이지에 게시하여 참여자를 모집해 온오프라인 활동을 병행했습니다. 참여자들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연령, 신체 조건, 학력, 직업과 상관없이 다양했고, 삶의 고민들을 함께 나누며 주기적으로 만남을 이어갔습니다. 나의 현재를 기록하는 스토리텔링은 모든 활동의 기반이었고, 홈페이지 게시판은 개인의 진솔한 글들로 채워졌습니다. 반지하의 활동이 살면서 맞닥뜨리는 사회 문제들과 두루 연결되다 보니, 반지하 자체 프로젝트 외에도 장애여성, 사회적 퍼포먼스, 문화복지매개자 교육, 장애청소년 자립생활 교육, 지역 청소년 활동지원, 영화제·문화제·,미술제·만화축제 등 다방면의 축제 기획 및 운영에 이르는 폭넓은 문화 활동이 이루어졌습니다. 무척 다양하고 각기 달라 보이지만, 모든 것은 하나의 목표를 향해 있었습니다. 바로 ‘누구나 자신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나의 이야기를 찾아가는 교육환경을 구성하기(2003~2008)

지역 활동이 많아지면서 연계된 활동가들과 진행한 ‘송림동 그림수필’은 지역 주민임에도 집과 마을이 사라지는 재개발 논의 과정에서 배제된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표현하게 하고자 진행되었습니다.

첫해는 공부방과 연계하여 청소년들이 자신의 시선으로 동네 풍경을 사진에 담고, 마을에서 살아온 자신의 이야기를 글로 쓰고 서로 생각을 나누는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마지막엔 그동안 한 것들을 사진 슬라이드쇼, 이미지텔링 현수막과 출판물, 체험 프로그램, 무대 공연 등으로 구성하여 마을축제를 열었습니다. 다음 해는 지역활동가들과 함께 빈집을 어린이들의 그림수필 놀이터로 개조하여 집과 마을을 다루는 상설 프로그램(집메모지로 집과 마을 만들기, 찰흙으로 송림동의 사람 및 동물들 토우 만들기, 동네 사진 이미지텔링)과 청소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이 활동을 마을 곳곳에 배치하여 ‘송림동 그림수필 공터축제’를 운영하였습니다. 

2004년 여름 ‘송림동 그림수필’ 놀이터의 모습. ⓒ퍼포먼스 반지하

디지털 미디어가 보편적이지 않던 시절, 대중매체를 통해 본 달동네들은 가난의 이미지로만 각인되곤 했습니다. 미디어의 주체를 당사자로 바꾸고 교육의 주제와 내용을 참여자의 삶의 환경에서 길어내는 작업은 참여자들이 스스로 나의 일상과 주변의 역사를 돌아보며 자신의 시선으로 소통할 수 있게 하고, 동시에 재개발로 상처받은 마음과 대안을 찾을 수 없다는 무력감을 극복하는 희망을 살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듬해 이곳의 활동공간이 사라져 허탈했지만 남은 활동가들과 함께 인근 공부방들을 설득하여 청소년 대안교육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로 하였습니다. ‘언덕을 오르는 바닷길’이라 이름 붙인 프로그램은 매주 세 번 진행됐습니다. 프로그램 내용은 ‘스토리텔링 글쓰기’(의사소통과 글쓰기), ‘지역사회 속에서의 이미지텔링’(시각), ‘학교를 벗어나 내가 담은 세상 이야기’(미디어), ‘가족과 정서’ 등으로 좀 더 세분화했습니다. 그 중 ‘가족과 정서’는 아이들이 가족으로부터 상처를 받는 경우가 많다 보니 스스로 가족의 의미와 현재의 상황을 여러 각도로 해석할 수 있다면 상처를 덜 받지 않을까 싶어 기획된 수업이었습니다. ‘언덕길 교사단’은 이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자신의 아픈 가족사를 들여다보고 글을 써와 수업에서 낭독했고, 아이들은 “언덕길 선생님들은 학교 선생님 같지 않고,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이 놀랍다”고 하였습니다. 이후 마음을 조금씩 연 아이들은 ‘집에서 주로 듣는 말’을 이야기했고, 그 말을 한 사람은 어떻게 살았을지, 살아오는 동안 주로 어떤 말을 들었을지 적어보게 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공통적으로 반복되는 생애 과정과 동시대가 엮여 있는 ‘생애주기 교육’이 계발되었습니다.

2007년 여름 지역사회 문화교육터에서 진행한 ‘언덕을 오르는 바닷길 - 마을텃밭 둘러보기’ 수업 중 한 장면. ⓒ퍼포먼스 반지하

다음 해 구조가 몹시 특이해서 비어있던 공간을 저렴하게 임대하고 작은 부엌, 미디어실, 도서관, 교실을 만들어 지역사회 문화교육터를 열었습니다. 공간이 바뀌면서 가장 큰 변화는 해가 드는 공간에서 밥을 해 먹을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집에서는 제대로 챙겨 먹지도 못하는 아이들과 밥을 해 먹는 것은 가장 중요한 교육 활동임을 알게 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가까이서 다시 보기’라는 생활수업이 추가되었고, 훗날 ‘생태살림’ 수업의 시초인 ‘버려진 것들의 이야기’로 이어졌지요. 수업이 거의 매일 있었고, 어떤 날은 고등학생 수업도 있어서 늘 공간은 북적댔습니다. 아이들과 눈을 맞추고, 밥을 해 먹고, 소소한 일들을 나누는 사이 교육 공간은 생활 공간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아이들은 배틀하듯 가정사를 쏟아놓고 누가 더 고생했는지를 자랑하기도 하면서 다른 데서는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마음껏 할 수 있는 편안함을 누렸습니다.

2007년 어느 날 ‘언덕을 오르는 바닷길’ 일상 풍경. ⓒ퍼포먼스 반지하

아이들은 생활과 연결된 교육을 할 때 눈이 반짝였습니다.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추상적 사고가 어려운 아이들일수록 구체적인 생활 활동으로 연결했을 때 말도 많아지고 자발성이 더 높았습니다. 자기 주도 학습에서 지역사회의 오래된 자전거집을 찾아가 자전거 수리를 배우고 동네 어른과 대화를 나누는 활동은 책상 앞에 앉아 지식을 습득하는 입시 위주의 교육에서 소외된 아이들이 ‘노동’의 의미를 실제 삶의 공간에서 배우는 과정이었습니다. 또 언덕길 선생님들의 ‘마을가꾸기’ 활동에 동참하거나 ‘농촌에서 함께살기’ 캠프를 하며 다른 삶의 방식을 체험하며 생활에서의 배움을 몸소 경험했습니다.


아이들이 어떤 활동을 해나갔는지 떠올려보니, 문득 ‘똥’에 관심이 있던 한 청소년이 기억나네요. 그 친구는 사람들의 똥 색깔과 형태를 조사하고, 건강 상태를 체크해 그 사람에게 맞는 음식을 만들어주는 방향으로 학습의 과정을 설계하고 실행하였습니다. 그리고 이후 자연스럽게 ‘요리사’라는 직업을 꿈꾸며 언덕길에서 다양한 요리를 시도하며 지냈습니다.



나의 관심 주제와 실천 과정을 담는 교육활동을 계획하고 실행하기(2009~2019)

당시 우리는 ‘가난하지만 노동으로 다져진’ 일부 어르신들의 ‘정주하며 나누며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마을벽화와 마을미디어로 제작하고 ‘집수리미술’과 버려진 공간을 텃밭 정원이 가능한 ‘한평공원’으로 만들며 마을 전체를 교육환경으로 만들어가고 있었는데, 이러한 활동을 관심 있게 보던 ‘엄마’들이 하나둘 씩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생명을 먹이고 입히고 키워내면서 의식주에 대한 생태적 관점을 갖고 생활에서 실천해가는 여성이 적지 않은데,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하고 나면 스스로 정립한 생태적 관점과 축적된 기술들을 더 이상 이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엄마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가정 밖에서도 실천하는 기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생태에 관심이 많고 능동적인 삶을 살고 싶은 사람들이 나로부터 주변을 둘러보는 ‘생활인문학’에 참여해, 학습하고 실천하고픈 주제를 찾아 글을 쓰고, 프로젝트 활동도 계획하였습니다. 마을에서 자원을 찾고, 인근의 생활기술자(예. 전파상 아저씨)를 찾아가 배우고, 동료와 함께 프로젝트를 실행해보는 일련의 과정은 소소한 실천을 통해 자아효능감을 높이고 개인의 ‘생활실천’ 과정에서 작은 변화를 만들어냈습니다. 이후 ‘엄마모임’은 생활에서의 유기순환(음식물쓰레기 퇴비화, 쌀뜨물 재활용, 오줌액비 만들기 등)을 실천하며 먹거리를 생산하는 도시농업, 버려진 것들을 되살리는 생태소품 만들기, 마을공사를 하고 남은 목재로 필요한 것을 만들어보는 생활목공 모임으로 확장되며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저의 출산으로 활동이 잠시 쉬게 되고, 반지하의 공간도 자리를 옮기는 등 이런저런 변화를 겪었지만, 남은 엄마활동가들과 함께 ‘엄마가 그리는 마을동화’ 작업과 마을환경작업(벽화그리기와 도색), 생활학교를 함께 만들어가는 활동을 해나갔지요.

2012년 여름 ‘지구와 마을을 살리는 엄마모임’ 참여자들이 ‘한평공원 하루쉼터’에서 감자를 캐는 모습. ⓒ퍼포먼스 반지하

2017년 생활학교 여름캠프 ‘생활학교에서 생활하기’ 목공수업 현장. ⓒ퍼포먼스 반지하

2019년 생활학교 ‘언덕을 오르는 바닷길’ 바느질 모임에서 각자 작업에 몰두한 모습. ⓒ퍼포먼스 반지하

생활학교 ‘언덕을 오르는 바닷길’은 매년 ‘생활 중심의 교육과정 구성하기’라는 생활교육 교사 양성과정을 진행하였습니다. 프로그램 참여자들은 ‘생활’이란 무엇인지, 구체적인 내용을 돌아보고 노동의 의미, 사랑의 실천, 자연과 생명, 살림과 공동체에 이르는 내용을 배운 후 각자 설정한 주제를 탐구해 자신만의 교육과정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5년에 걸쳐 총 36개의 교육과정이 나왔는데요, 일부는 생활학교의 교육과 모임에서 실행되었고, 수료자의 활동공간이나 가정에서 실행되기도 하였습니다. 현재 재개발로 생활학교 공간은 임시거처로 옮겨졌지만 모임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생활학교의 환경을 구성할 때에는 허름하더라도 마당에서 자연을 만날수 있고, 부엌, 도서관, 교육실이 있어 생활의 순환이 이루어지는 공간이 되도록 하였습니다. 교육은 생활에서 나오고, 생활은 자연에서 나오며, 우리는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2018년 생활교육 교사 양성과정 ‘생활 중심의 교육과정 구성하기’ 크리틱 수업 현장. ⓒ퍼포먼스 반지하

같은 종의 씨앗들은 닮았지만 꼭 똑같이 자라지는 않습니다. 여러 가지 다른 환경적 요소들과 영향을 주고받으며 내면의 힘으로 자신의 고유성을 찾아갑니다. 서로 다른 수많은 종이 함께 살아갈 때 비로소 자연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문화의 다양성은 나이, 인종, 성별, 학력, 신체 조건, 종교, 경제적 차이, 가족 형태 등의 구분 이전에 개인이 다양한 모습과 방식으로 스스로 살아내고 있음에 이미 존재합니다. 존재를 단편적 기준으로 규정짓지 않고 생애주기 안에 놓인 능동적 생명으로 이해하며, 통합적인 존재로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잠재적 욕구를 찾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갑니다. 자연 속에서 나는 그일 수 있고 그는 나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각기 다르면서도 서로의 다양한 환경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환경을 관찰하고 사유하며 생각한 것을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스스로의 탐구’와 ‘때마다의 노동’을 실천해야 합니다. 이는 나이나 국적, 장애와 소외를 넘어 다 함께 교육하고 교육받아야 할 내용이며,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는 문화에 대한 저항이기도 합니다. 공동체란, 자유로운 개인들이 모여 갈등을 해결해나가며 평화롭게 살아가는 다양성의 꿈입니다.

2019년 가을 어린이 생활교육 연구모임에서 진행한 ‘손바닥 작은마당’ 수업 장면. ⓒ퍼포먼스 반지하

2022.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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