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인 내면에 잠든
‘신명’을 끄집어냅니다” 
— 원주 아트코어굿마을의 ‘발달 사물놀이’ 수업 현장

한승희
「잇다」 편집부

“발달장애인 내면에 잠든
‘신명’을 끄집어냅니다”


원주 아트코어굿마을의
‘발달 사물놀이’ 수업 현장

한승희

「잇다」 편집부


오전 10시 30분을 조금 넘긴 시각. 원주시 학성동에서 출발한 승합차가 원주시 문막읍 건등리의 한 건물 앞에 멈췄다. 20대를 갓 넘긴 듯한 청년부터 머리가 희끗희끗한 50대까지 열 명 남짓 되는 사람들이 내려 지하의 ‘문막전통예술원’으로 들어섰다. 기다리고 있던 김원호·이진희·정영자 강사와 주먹 맞대기, ‘하이파이브’ 등으로 가볍게 인사를 나눈 후, 바닥에 놓인 플라스틱 통에서 익숙한 손짓으로 원하는 악기 채를 골라 꺼낸 다음 늘 연주하는 악기 쪽으로 향한다. 자리를 잡자마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장구, 난타 북, 꽹과리, 징을 치기 시작한다. 드럼 세트의 심벌(cymbals)마냥 꽹과리를 장구의 조임줄 사이에 눕혀놓고서 장구와 번갈아가며 두드리는 이도 있다. 각자 자기만의 리듬과 방식으로 악기를 연주하는데, 이 소리가 한데 합쳐지니 몇 분 만에 귀청이 얼얼해진다. 


이윽고 김원호 강사가 힘있게 북을 두어 번 두드리자, 일제히 장단을 멈추고 그를 바라본다. “자, 이제부터는 한 사람, 한 사람 돌아가면서 악기를 칠 테니까, 다른 사람이 내는 소리를 잘 들어보세요.” 악기 소리보다 더 크게 “아~” 하고 추임새를 넣는 이도 있고, 얼굴이 벌게질 만큼 장구의 북편과 채편을 동시에 빠른 속도로 두드리는 이도 있고, ‘덩, 덩, 쿵덕, 쿵’ 하고 휘모리장단 비슷한 리듬을 내는 이도 있다. 누가 어떤 소리를 내건, 김원호 강사는 북으로 장단을 맞추거나 엄지를 치켜들며 격려한다. 쭈뼛거리는 이 하나 없이 모두가 취향껏 악기를 연주하고 있다는 것이 그에게는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원주에서 활동하는 ‘아트코어굿마을’은 지역 발달장애인 주간활동 지원센터인 ‘피어라 풀꽃’을 이용하는 발달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사물놀이 프로그램을 3년 째 진행 중이다. 지난 6월 16일 목요일 오전 진행된 수업에서 김원호 강사가 북으로 참가자들의 연주에 추임새를 넣고 있다.

목요일 아침마다 문막전통예술원에서 펼쳐지는 이 리드미컬한 광경은 김원호 강사가 활동하는 풍물굿 기반 전통문화예술 교육·공연단체 ‘아트코어굿마을’이 원주시 학성동의 발달장애인 주간활동 지원센터 ‘피어라 풀꽃’과 협력해 진행하는 ‘발달 사물놀이’ 수업 장면이다. 아트코어굿마을은 2019년 강원문화재단 강원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가 주관하는 창의예술교육랩 지원사업을 계기로 피어라 풀꽃을 알게 됐고, 2020년부터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에 참여해 사물놀이를 접목한 발달장애인 대상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3년째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올해 프로그램은 발달 사물놀이(김원호 강사)를 비롯해 점토 놀이·그림자 연극 놀이와 같은 예술 놀이 활동(이진희 강사)과 유도 동작·공 놀이·배드민턴 등 몸 활성화 활동(정영자 강사) 등 크게 3가지로 구성했다. 몸 활성화 활동은 발달장애인들이 주로 실내에서 정적인 생활을 하기 때문에 체력이 약하다는 점을 우려해 김원호 강사가 특별히 추가한 것이다. 그는 “해를 거듭하면서 참가자들에게 필요한 것, 참가자들이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발굴하면서 프로그램 내용을 발전시켜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예술 놀이 활동과 몸 활성화 활동은 월요일마다 피어라 풀꽃에서 진행되는데, 몸 움직이기 활동은 올해 정영자 강사가 합류하면서 더욱 ‘다이내믹’해졌다. 김원호 강사는 “참가자들은 대체로 강사나 사회복지사만 쳐다보고, 서로 눈을 맞추거나 접촉하는 일이 드물다”며 “유도의 ‘맞잡기’ 동작을 활용한 몸 움직이기 활동을 하면서 참가자들이 서로 마주 보는 게 상당히 자연스러워졌다”고 했다. 맞잡기 놀이를 하다가 서로 싸우거나 누군가 다치지는 않을까 걱정도 됐지만, 여태껏 그런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정영자 강사는 “유도는 ‘사랑’의 운동”이라며 “상대를 배려하면 아무도 다치지 않는다”고 했다.

참가자들이 저마다 타악(打樂)의 세계에 몰입했을 즈음, 김원호 강사가 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인 ‘독도는 우리땅’을 틀어놓는다. 그러자 장구 북편과 채편의 중앙부인 굴레와 가장자리인 변죽을 일정한 박자로 번갈아 치던 한 참가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걸어 나오더니, 김원호 강사가 건네는 꽹과리를 능숙한 손놀림으로 거머쥔다. 그는 노래에 맞춰 규칙적으로 꽹과리를 두드리다 후렴구의 “독도는 우리땅” 구절이 나올 때마다 채를 머리 높이 치켜세운다. 이진희 강사는 “3년 전 처음 만났을 때는 수업에 와서도 계속 눈만 감고 있던 분인데, 이제는 우리가 뭘 권하면 적극적으로 ‘저 할래요’ 하신다”며 “자주 오래 만나다 보니 서로 편하게 느끼게 된 덕분인 것 같다”고 했다. 


김원호 강사는 참가자들에게 무엇을 지도하거나 지적하는 일 없이, 그저 중간중간 북과 태평소로 참가자들의 흥을 돋울 뿐이다. “발달장애인 참가자들은 집이나 복지시설에서 ‘하지 말라’는 말을 하루에도 열 번 넘게 들어요. 비장애인도 매일 ‘하지 마’ 소리를 열 번 들으면 굉장히 스트레스받을 텐데, 발달장애인도 마찬가지예요. 일반적으로 사물놀이라 하면 장구, 북, 꽹과리, 징 등 4가지 타악기를 정해진 박자에 맞춰 정교하게 합주하는 것이지만, 비장애인 중심으로 만들어진 질서를 발달장애인에게 요구하는 건 일종의 학대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곳에선 참가자들이 악기를 자유롭게 두드리며 내면의 자연적인 리듬을, 있는 그대로의 됨됨이를 밖으로 끄집어내길 바랐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고요. 발달장애인들의 연주에 익숙지 않은 비장애인들에겐 귀 아픈 소음의 연속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저는 어느 순간 ‘신명’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하는 걸 느껴요.”


이 ‘신명’의 기운을 더 널리 퍼뜨리기 위해, 김원호 강사는 올가을 즈음 학성동 역전시장 일대에서 발달장애인들과 강사, 사회복지사, 지역주민 등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야외 공연’을 벌일 예정이다. 그는 이 공연이 비장애인 참가자들에게도 정해진 박자에 맞추느라 ‘배우면서 스트레스받는 사물놀이’가 아닌 내면에 깃든 신명을 끄집어내는 놀이 판이 되길 바라고 있다. 그는 “장애인을 비장애인에 맞추려 하는 것이 아니라, 비장애인이 장애인의 됨됨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방식의 장애인-비장애인간 협력과 교류가 필요하다”고 했다.

어느덧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김원호 강사가 수업이 끝났음을 알리자, 참가자들이 각자 악기를 두드리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한다. 참가자들은 한 시간 전 이곳에 들어설 때와 정확히 반대 순서로 바닥에 놓인 플라스틱 통에 사용한 악기 채를 꽂은 다음, 김원호·이진희·정영자 강사와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서 밖으로 나간다. 한 시간 동안 무아지경으로 악기를 두드리다 순식간에 이곳을 빠져나가는 참가자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니 어쩐지 개운한 느낌이다. 얼얼한 귀청에 신명의 기운 같은 것이 맴돈다.

2022. 07.

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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