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독서모임 ‘잇다-읽다’
9·10월 모임 후기


김혜진, 『불과 나의 자서전』 (9/1)
오선영, 「호텔 해운대」 · 「우리들의 낙원」 (10/6)

정리

한승은「잇다」편집부

온라인 독서모임 ‘잇다-읽다’ 9·10월 모임 후기
– 김혜진, 『불과 나의 자서전』 (9/1)
– 오선영, 「호텔 해운대」 · 「우리들의 낙원」 (10/6)

정리

한승은  ✳︎「잇다」 편집부


독자 여러분과 더 가까이 연결되고자 「잇다」는 올해 온라인 독서모임 ‘잇다-읽다’를 진행했습니다. 6월부터 11월까지 총 4회에 걸쳐 도내 곳곳에서 모인 여러분과 ‘지역과 지역에서 살아가는 지역민의 유대’를 다룬 문학(소설) 작품을 따로 또 같이 읽으며 한 걸음 더 책 속으로 들어가는 시간을 만들었습니다. 20호 ‘문화가 핀다’ 코너에 실은 1·2회차 독서모임 후기에 이어, 지난 9월과 10월에 열린 두 차례 모임에서 나눈 이야기 역시  21호 ‘문화가 핀다’ 코너에서 소개합니다.

– 편집자주

9월 1일 세 번째 모임

지난 9월 1일 목요일 저녁에 열린 온라인 독서모임 ‘잇다-읽다’의 세 번째 시간은 김혜진 작가의 장편소설 『불과 나의 자서전』(현대문학, 2020)을 다시 읽고 함께 이야기하는 자리였다. 앞서 두 번의 모임에서 다룬 세 작품(1회차 ─ 송지현,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 / 2회차 ─ 정성숙, 「호미」와 「연변 봉숭아꽃」) 모두 단편소설이고 대개 지역과 거기 사는 사람들의 끈끈한 유대를 온기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면,1) 『불과 나의 자서전』은 장편소설로 지역과 그 지역민의 끈질긴 유대를 서늘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춘천시민 진묵님과 영월군민 선희님(앞의 두 차례 독서모임에 모두 참여하신 바로 그 ‘선희님!’), 그리고 서면(그것도 손글씨로 몇 장이나 써 내려간!)으로 독후감을 보내주신 고성군민 선미님, 이렇게 세 분 참여자와 편집부가 함께한 조촐한 자리는 비록 모인 사람의 수는 적었지만 작품을 매개로 모인 다채로운 이야기로 풍성했다.

『불과 나의 자서전』은 어린 시절을 남일동에서 보낸 ‘나(홍이)’가 재개발 사업으로 허물어져 가는 남일동의 현재 앞에서 남일동의 과거를 떠올리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남일동은 더는 갈 데 없는 사람들이 들어오는 동네다. 형편이 조금이라도 나아지면 남일동을 벗어나려는 사람들. 홍이의 부모도 그런 사람들이다. 홍이가 중학생일 때 홍이가 살던 남일동의 일부가 중앙동에 편입되면서 중앙동 사람이 된 홍이는 남일동에 있는 제일약국의 단골로 자주 남일동을 찾는다. 남일동으로 이사 온 ‘주해’와 ‘수아’ 모녀를 만난 날도, 직장 스트레스로 나타난 뒤 줄곧 달고 사는 알레르기를 다스리려 약국을 찾은 참이었다. 그날 이후 홍이는 주해의 친구이자 수아의 이모가 됐고, 주해가 남일동을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나가는 걸 보며 남일동도 달라질 수 있다는 한 줄기 희망을 본다. 그러나 싱글맘에 대한 편견, 주해의 과거에 대한 편견이 주해를 남일동에서 떠나게 했고, 이러한 편견은 남일동을 별 수 없는 동네로, ‘남일도’라는 비아냥에 걸맞은 곳으로 다시금 낙인찍는다. 홍이의 막연한 바람대로, 남일동이 없어진다면 남일동에서 비롯하는 두려움과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수십 년 간 말만 무성하던 재개발이 마침내 추진되면서 제일약국이 있던 건물을 시작으로 남일동이 부서지기 시작한다. 홍이는 ‘포클레인의 집게발에 비스킷처럼 부서지는’ 남일동의 풍경을 바라보며 그동안 보지 못한 남일동의 풍경을 본다. 


지난 두 번의 모임에서 들여다본 작품들은 저마다 청년의 귀향(송지현,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 또는 농촌 여성의 삶(정성숙, 「호미」와 「연변 봉숭아꽃」)을 다뤘다면, 이번 작품은 ‘남일동’이란 동네와 그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여름에 우리가 먹는 것」의 미주가 고향으로 돌아와 다시 시작하는 삶을 ‘나쁘지만은 않다’고 말하는 어조가 유쾌하고 「호미」의 영산댁이 ‘내 땅’을 떠나 살 수 없는 삶의 길고 깊은 뿌리를 상기시킨다면, 『불과 나의 자서전』의 홍이를 비롯해 한때 남일동에 살았던 사람들과 남일동의 관계는 나쁘지만은 않다고 유쾌하게 말하거나 길고 깊은 뿌리를 내리며 살겠다는 의지와 거리가 멀다. 한때 거기서 살았다는 사실도 없던 일로 하고 싶을 만큼 외면당하고 버려지고 고립된 곳. 남일동은 그런 동네다. 


남일동을 생각하다 보니 우리 각자는 내가 사는 동네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자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 동네’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을까. 편집부의 머릿속을 맴도는 이 물음을 참여자들과 함께 생각해보고 싶었다. 남일동은 섬이 아니지만 남일동과 이웃 동네 사이엔 바다가 있다. 남일동을 남일도로 만드는 바다는 차이가 아니라 차별이다. 남일동을 남일도로 만드는 바다, 차이가 아닌 차별은 과연 어디서 비롯하는 것일까?

그것은 나에 대한 걱정이나 사랑처럼 느껴졌고, 동네 친구들에 대한(혹은 그 부모들에 대한) 불만처럼 느껴졌고, 내가 이 동네 아이들과 비슷하게 자라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처럼 느껴지기도 했는데, 그런 것보다 더 크게 느껴진 건 어머니를 둘러싸고 있는 슬픔의 기운이었습니다. 


— 『불과 나의 자서전』, 23~24쪽.


세 시간 동안 청원서에 서명을 해준 건 미용실을 지키던 두 여자를 포함해 단 네 명이 전부였습니다. 사람들 진짜 너무하네요. 다들 정말 왜 이러는 거예요? 이 집 저 집 다니며 장사꾼 취급이나 당했다는 생각에 그렇게 투덜거렸는데 뒤따라오던 주해가 말했습니다. 다들 여유가 없어서 그래요. 여유가 없으면 뭐든 겁부터 나잖아요.


— 『불과 나의 자서전』, 60쪽.

“어머니를 둘러싸고 있는 슬픔의 기운”은 남일동에서 되도록 멀어지려는 마음과 맞물린다. 게다가 남일동 사람들은 우리 동네가 좀 더 살기 좋은 곳이 되도록 노력할 뜻이 없어 보인다. 남일동 사람들을 슬프게 하고 그들에게서 여유를 앗아가는 것은 정말 ‘남일동’일까. 자필 독후감을 보내주신 선미님은 위의 장면과 비슷한 경험을 이야기했다. 시골에 살던 선미님은 읍내에 사는 친한 친구 집에 종종 놀러 갔는데, 친구 어머니가 선미님은 먹어본 적 없는 간식을 내주시며 친절하게 맞아주셨다. 하루는 그 친구가 선미님 집에 놀러 오려고 하자 친구 어머니는 선미님에게 "시골에는 껄렁거리고 장난으로 건드리는 애들이 있으니 잘 데려다줘라"라고 말했다. 선미님은 “이 어머니는 나도 시골의 껄렁거리는 아이라고 생각하곘구나”, “내 주변에는 시골 애라서 껄렁거리고 괜히 건드리는 그런 애들 없는데” 그런 생각을 혼자 삭혔던 기억을 떠올리며, “지금 그분을 만나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선희님도 지난 일을 떠올리며, 예전에 아르바이트 일로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 단지를 자주 드나들었는데 그때 자신이 부자인 줄 알고 쫓아와 만나자며 접근한 사람이 있었다는 경험담을 들려줬다. 선희님은 “그때는 어이없고 기분 나빴는데, 돈이 계급을 만들고 그런 계급 사회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실감하는 지금은 그럴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자본주의가 기본값인 사회에 대한 씁쓸한 소회를 내비쳤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층들의 아픔”을 읽어낸 진묵님은 모든 걸 박탈당한 사람이라면 다른 누군가의 부탁을 거절할 수 있다는 데서 존재감을 느낄 수도 있다고 해석했다. “난 거절할 수 있다”, “난 어떤 면에서 널 아프게 할 수 있다”는, 치사하고 야비하지만 그렇게라도 자위(自慰)할 수 있다는 진묵님의 해석은 암울하지만 수긍이 갔다. 진묵님처럼 냉혹한 현실을 관조적으로 꼬집진 않았지만, 선미님과 선희님 모두 서명운동에 참여하기를 꺼리는, 참여할 의지가 없는 ‘여유 없음’을 이해할 수 있다며 ‘나라도 그랬을 것 같다’는 뜻의 공감을 표하기도 했다.

달산 마을 도서관. 

사람들이 떠올릴 만한 큰 도서관은 아니고 시에서 나오는 보조금으로 운영되는 도서관 겸 카페였습니다. 도서관 겸 카페라고는 했지만 나이 많은 동네 사람들이 사랑방처럼 이용한다는 건 곧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주해가 끈질기게 시청과 구청에 민원을 넣은 결과라는 건 나중에 알게 된 것입니다. 

주해가 오고 나서 바뀐 남일동의 모습은 누구도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이제는 듭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이지 기적에 가까운 일처럼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추가로 설치된 가로등 덕분에 환해진 골목. 이리저리 방치되어 있던 폐기물과 쓰레기봉투가 말끔하게 정리된 담벼락. 반듯하게 세워진 정류장 팻말과 20분마다 오가는 마을버스. 주말마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마녀시장을 보려고 멀리서 찾아오는 사람들까지. 아니, 주해가 몰고 온 변화는 다만 눈에 보이는 그런 것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이곳이 달라질 거라는 믿음, 바꿀 수 있다는 자신. 

주해가 보여준 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내내 설마설마했고, 망설이다가 오래전에 포기해버린 그런 마음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주해가 일으켜 세운 건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잔뜩 웅크리고 있던 사람들의 마음이었는지도 모릅니다.


— 『불과 나의 자서전』, 160~161쪽.

남일동으로 이사한 주해와 수아 모녀는 오래 살지 못하고 남일동을 떠난다. 주해의 전 직장에서 사고가 있었고 그 일이 알려지면서 더는 남일동에서 살 수 없게 됐다. 모녀가 떠난 후 홍이는 남일동에 왔다가 주해의 부단한 노력 끝에 달산마을도서관이 생긴 걸 알게 된다. 주해가 머문 길지 않은 시간, 그가 바꾼 남일동의 모습들을 돌이켜보는 장면에서 참여자들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주해가 일군 변화에 대한 감상을 나누는 한편 지금 내가 살아가는 지역에서 나는 어떤 주민인지 돌아보는 의견을 나눴다.


선희님은, “주해라는 사람이 참 멋지다고 생각한다”며 “(독자인) 우리가 (소설이 묘사하는 주해의 경험에서) 느끼는 것보다 더 절실하게 힘들고, 우리가 아는 것보다 더 많은 어려움을 알 텐데 그럼에도 덜 무기력하고 덜 각박하다는 ─ 여유가 없지 않은 ─ 게 멋지다”며 주해의 ‘매력’을 이야기했다. 이어 “연고가 없는 영월에 살며 행사를 기획할 때 사람 모으기가 참 어려워 고생하지만 주해와 같이 정면 돌파하는 자세를 가지려고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선뜻 나서기 힘든 상황에서도 뭔가를 시도하는 주해의 매력을 알아봐 주는 세상이 되길 바라고 앞으로도 주해가 꿋꿋하고 당당하게 살아가길 바란다”며 주해를 응원했다. 바닷가에 사는 선미님은 ”해변에 쓰레기가 너무 많아 늘 걱정이었는데, 두 아이와 남편과 함께 바다 쓰레기를 줍기 시작했다”고 했다. 또 “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반사거울이 있으면 좋겠는데 동사무소나 군청에 전화를 걸거나 방문해서 민원을 넣는 것은 용기가 나지 않아 게시판에 글을 남긴 일이 있었다”며 “주해를 보며 용기를 내야겠다, 전화해야겠다고 생각했다”는 훈훈한 이야기를 전했다. 선희님과 선미님이 주해에게서 용기를 얻고 주해를 응원하는 마음을 나눴다면, 진묵님은 주해에 공감하기보다 변화를 만들어가는 일에 담담한 뜻을 내비쳤다. 30년 넘게 춘천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외지인이라는 진묵님은 변화를 만들 수 있고 만들고 싶은 사람들을 대단하다고 평가하면서도 그 대단함을 ‘십자가’에 비유했다. 

한 마을에도 일평생이라는 게 있다면 남일동의 시간은 어디쯤일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어떤 삶은 조금씩 나아지고, 또 다른 삶은 내리막길을 걷고, 느닷없이 중단되는 삶이 있고, 어느 날은 흐리고 어두워서 앞이 보이지 않다가 또 어느 순간엔 무서울 정도로 환한 날이 계속되고. 그런 종잡을 수 없는 많은 순간들을 응축해놓은 것이 삶이라면 남일동은 어디쯤을 지나고 있는 것일까 가늠해보는 것입니다. 

원인도 이유도 없는 일들, 갑자기 벌어지는 사건들. 모든 것이 쇠락과 죽음을 향해 간다는 사실에 순응해가는 시간들. 그러므로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남일동이 사라져야 마땅하다고 말하려는 건 아닙니다. 

왜인지 남일동을 생각하면 애잔하고 안쓰러운 마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곳은 한 번도 제대로 빛난 적이 없다는 생각 탓입니다. 남일동을 생각하면 처음부터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곳에 처박히듯 방치되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 『불과 나의 자서전』, 50~51쪽.

“한 마을에도 일평생이라는 게 있다면” 지금 내가 살아가는 이곳의 시간은 어디쯤일까. 내가 살아가는 지역의 일평생에서 지금은 어디쯤일까. 진묵님은 “춘천에서도 비포장 도로를 타고 두 시간은 달려야 하는 오지에서 사는데, 봄이면 새벽부터 새소리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차로 20분 정도 걸리는 데 도로가 생기고 터널이 뚫리니까 새들이 싹 없어졌다. 일부러 전기 안 들어오는 곳에 오두막을 지었더니 거기까지 가로등이 들어왔다. 이럴 바엔 그냥 가까이에 도서관 있고 병원 있고 마트 있는 시내로 나오자 싶다”며 전기도 없고 도로와 터널도 없어서 온전했던 동네가 자본주의의 폭력으로 파괴당하는 국면을 안타까워했다. 선희님은  서울서 살 때 자전거를 타고 한강 변을 따라 출퇴근하다 이따금 강물이 반짝이는 걸 바라봤던 기억을 끄집어냈다. “헐레벌떡 달리는 와중에도 강물이 반짝이는 걸 보며 ‘아, 내가 죽기 전에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면 이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영월은 전국에서 평균 연령이 가장 높은 곳이고, 내가 느끼기에도 인구가 점점 줄고 있다. 그렇다면 영월은 나이 지긋한, 할머니뻘 지역인 셈이다. 근데 출퇴근 길에 자전거에서 강물이 반짝이는 걸 보고 마음이 일렁였던 것처럼, 이곳이 마음이 일렁일렁하면서 살 수 있는 곳이라고 느낀다. 나는 되게 늙은 영월을 만났을지 모르나 여기 사는 동안 영월이 나에게 반짝이는 곳, 내 마음을 일렁이게 하는 곳이었으면 한다. 그렇다면 영월의 일평생에서 지금은 어디쯤일지… 잘 모르겠다(웃음).”

강릉에 사는 편집부는 새삼 강릉의 일평생에서 지금은 어디쯤일까 생각해봤다. 이주한 지 2년이 채 못 되는 터라 강릉의 나이를 가늠하기에는 참으로 모르는 게 많다는 생각이 앞선 한편 유년기든 노년기든, 청년이든 중년이든 상관없이 항상 한창나이이길 바라는 마음이 더욱 앞섰다. ‘한창나이’에 대한 편집부의 정의를 덧붙인다면, 아마도 한창나이의 강릉은 선희님의 표현을 빌려 “마음이 일렁일렁하면서 살 수 있는 곳”을 뜻하지 않을까. 강릉의 일평생에서 지금이 어디쯤일지 잘 모르겠는 이유는 선희님이 영월의 일평생에서 지금이 어디쯤일지 잘 모르겠는 이유와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누구나 내가 사는 지역에 대해 “나는 되게 늙은 ○○을 만났을지 모르나 여기 사는 동안 ○○이 나에게 반짝이는 곳, 내 마음을 일렁이게 하는 곳이었으면 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을 보탠다.   


10월 6일 네 번째 모임

10월 첫째 주 목요일 저녁 7시 30분에 열린 ‘잇다-읽다’ 네 번째 자리는 올해 마지막 열리는 모임이었다. 이날 참여자들을 한자리에 모은 책은 오선영 작가의 소설집 『호텔 해운대』(창비, 2021). 책에 담긴 일곱 편의 단편소설 중 우리가 함께 읽고 이야기하는 작품은 「호텔 해운대」(표제작)와 「우리들의 낙원」 두 편으로, 편집부가 보기에, ‘잇다-읽다’의 주제인 ‘지역과 (거기 사는) 지역민의 유대’를 읽어내기에 가장 적합한 작품들로 골랐다. 그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한 것은 물론 매번 무릎을 ‘탁’ 치게 하는 감상을 들려준 선희님, 서면으로 감상을 공유할 만큼 열성과 성의로 모임에 에너지를 북돋워 준 선미님, 두 번째 시간에 이어 이번에도 특유의 유쾌함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조성한 루시아님까지, 반가운 얼굴들과 함께한 마지막 시간은 ‘아는’ 사이여서 한결 편한 한편 더욱 아쉬운 자리이기도 했다.  

‘잇다-읽다’의 모든 모임을 관통하고 아우르는 주제, ‘지역과 지역민의 유대’를 염두에 두고 고른 네 번째 작품인 『호텔 해운대』는 앞의 모임에서 읽은 작품들과 사뭇 다른 데가 있다. 이 소설집에 담긴 일곱 단편 모두 ‘부산’이라는 실제 장소를 배경으로 펼쳐진다는 점이다. 이러한 한편 세 번째 모임에서 다룬 『불과 나의 자서전』과 비슷하게,  『호텔 해운대』에서도 지역과 지역민의 유대는 끈끈하다기보다는 끈질긴 인연으로 묘사된다. ‘끈질긴 인연’이라는 말과 함께 ‘애증’을 떠올렸다. 내가 나고 자란 동네, 내가 사는 지역에 애증을 느낀다면, 그 느낌은 『불과 나의 자서전』의 ‘나’와 「호텔 해운대」의 ‘수정’ 그리고 「우리들의 낙원」의 ‘미연’이 각각 ‘남일동’과 ‘부산’에 대해 느끼는 것과 비슷할까. 정들었지만 떠나고 싶은 곳, 도망쳤지만 잊히지 않는 곳. 이런 생각을 품은 채 마지막 독서모임의 문을 열었다.  


「호텔 해운대」의 ‘수정’은 부산에서 나고 자란 이십대 후반의 사회 초년생이다. 작은 출판사 편집자인 그는 지역문화예술계의 발전에 이바지하겠다는 의지가 충만한 한편 서울이 아닌 ‘지방’에서 살아가는 것의 곤란함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출근 준비로 바쁜 어느 아침, 즐겨 듣는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 경품 이벤트에 당첨돼 특급호텔 숙박권을 얻고 호캉스의 꿈에 부풀지만, 그 호텔이 부산에 있는 ‘호텔 해운대’라는 것을 알고 실망한다. 그래도 무료로 특급호텔에 머물 수 있는 게 어디냐며,  취업준비생인 남자친구 ‘민우’에게 낭만적인 선물이 되길 기대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호텔 카운터에서 부가세를 내는 민우의 손이 떨리는 것을 봤어도, 호텔 중식당 대신 바깥 식당에서 돼지국밥을 먹었어도 마냥 행복하길 바란다면 억지일까. 다음날 잠에서 깬 수정은 테라스 앞에 서서 먼 바다를 바라보는 민우의 눈을 보며, 자신의 욕망과 다르지 않은 것을 민우도 품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서로 욕망을 채워줄 수 없다는 것도.

서울로 대학을 간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을 때 이런 대화를 했었다. 

“니 가로수길, 이태원 가봤나? 평창동은?”

“그게 어딘데.”

“니는 그것도 모르나. 왜 미니시리즈 보면 남녀 주인공이 가로수길에서 브런치 먹으면서 데이트하잖아. 주말연속극에서는 평창동입니다, 하고 전화 받고. 서울 사람들은 다 그기 가는 줄 알았는데.”

“몰라. 내는 학교랑 기숙사만 와따 가따 한다. 술도 학교 앞에서만 마시고. 강남 한번 가봤는데 정신이 없더라.”

“그게 뭐꼬? 서울 가면 좀 다를 줄 알았더니. 벨로네.”

“뭐라카노, 니는 부산 산다고 맨날 회 처먹고, 밀면이랑 돼지국밥 먹다가 시원소주 마시면서 롯데 응원하고, 해운대 가서 바다수영 하나.”

“그게 뭐꼬.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야.” 

수정이 손사래를 치며 깔깔거리고 웃었다.

“내가 부산이 고향이라니까, 꽈 선배들한테 이 질문을 을매나 받는지 아나. 창문만 열면 바다 보이는 줄 안다니까. 그니까 니도 그딴 거 묻지 말라꼬.” 

마지막 문장을 말하며 친구는 꽤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 「호텔 해운대」, 20~21쪽.

부산이란 단어와 어울리는 낱말들을 찾던 수정은 ‘부산’을 부를수록 “어느 먼 타국의 지명처럼 이질적으로” 느낀다. “해운대, 회, 밀면, 돼지국밥, 롯데”는 진정 부산과 어울리는 낱말들일까, 새삼 의문이 들었다. 참여자들도 수정과 수정의 친구가 나눈 대화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는지, ‘강원도에서는 감자랑 옥수수만 먹는다’ 같은 고정관념(클리셰) 때문에 곤란한 적은 없었는지 궁금했다.


선희님은, “아버지가 강원에서 나고 자라 서울로 이주했다. 아버지 시대에는 먹을 것 구하기가 어려워서, 정말 감자, 옥수수만 먹었다더라. 점심 도시락이 감자랑 김치였다고. 다 그렇진 않겠지만, 형편이 넉넉지 않은 집은 감자랑 옥수수가 주식이었던 것 같다. 고정관념이라기보다 옛날 사람들의 경험이 축적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계속 감자랑 옥수수가 흔했어서 그걸 먹고 산 경험, 그런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인데 고정관념으로 비치기도 하는 것 같다”는 색다른 감상을 들려줬다. 한편 고성에 산 지 1년 반 정도 된 선미님은 처음 고성에 올 때 (어업 종사자가 많아서) 배가 한척씩은 집에 있지 않나 하고 막연하게 생각했다며, 특정 지역에 대한 그릇된 편견이 생기는 걸 우려했다. “‘고성’ 하면, DMZ나 통일전망대도 떠올리는데, 고성 오면 바로 DMZ 나오고 통일전망대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다. 고성이 곧 DMZ가 아니고 통일전망대가 아닌데, 고성에 들어서고도 한참 가야 하는데 말이다. 최근 한 TV 프로그램에 고성에서 사는 연예인이 나왔다. 그가 배 타고 선상에서 브런치를 즐기는데, 브런치가 웬 말인가! 조업하는 사람은 새벽 3시 반에 바다로 일 나가서 한낮에 뭍으로 돌아오는 게 일상이다. 이런 분들께 여유로운 브런치가 가능할까. 연예인의 특수한 일상이 일반인의 평범한 일상에 대해 오해를 일으킬까 봐 걱정됐다.” 서울 아닌 지역에 살면 ‘루저’라는 고정관념이 있는 것 같다는 루시아님은 이 소설에서 현실과 이상이 대비되는 장면들을 인상 깊게 봤다며, “편집자, 에디터라는 직함이 이상이라면 현실은 직원이 다섯 명뿐인 직장 사원이고, 내가 가고 싶은 곳은 제주도에 있는 호텔인데 실제로는 호텔 해운대에 있다. 해운대 백사장을 그저 까칠한 모래사장으로 인식하고 있었는데 호텔 15층에서 내려다보니 달리 보이고… 이런 대비가 요즘 내 마음을 대변해주는 것 같아 더욱 와닿았다”고 했다. 


무료 숙박권으로나마 호텔 해운대에서 하룻밤 묵길 잘한 걸까. 소설의 결말은 수정과 민우가 헤어질 것 같은 어두운 예감을 불러일으킨다. 참여자 모두 둘이 헤어질 것 같다는 데 입을 모았다. 한편 둘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가장 먼저 궁금증을 제기한 선희님은 “현실에 타협해서 ‘이 정도면 뭐 됐다’ 하고 결혼할 수도 있을 것 같다”며 “민우는 공무원 시험에 얽매이지 않고 다른 좋은 직장을 얻고, 수정도 더 좋은 곳으로 이직해서 잘 됐으면 좋겠다”며 덕담을 보탰다.


수정과 민우의 앞날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은 그곳이 부산이든 서울이든, 호텔이든 여관이든, 소규모 출판사든 대기업이든 상관없이, 이들이 속한 곳이 낙원이길 바라는 마음과 다르지 않다. 해변 모래사장이 아닌 호텔 15층에서 내려다보는 바다가 낙원일 수 없듯, 호텔 15층보다 더 높은 데서 내려다보는 바다를 상상하는 한 낙원에 도달하는 날은 오지 않는다. 「호텔 해운대」에 이어 함께 되짚어보는 작품 「우리들의 낙원」의 ‘낙원’은 어떤 곳일까. 낙원은 영영 도달할 수 없는 곳일까. 또는 이미 와 있지만 지금 여기가 곧 낙원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일까. 「우리들의 낙원」은 그곳이 어디인지를 물음에 부친다. ‘미연’은 남편이 인근 재개발 지구에 새로 들어서는 아파트 청약 이야기를 꺼내자,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온천장 일대와 T아파트 단지를 아우르는 재개발 지구는 미연의 과거와 무관하지 않다. 미연이 열두살 때 서울에서 부산으로 이직한 아버지를 따라 가족이 둥지를 튼 곳이 바로 T아파트이고, 곧 미연과 가장 친한 친구가 된 수빈은 온천장에서 제일 큰 낙원탕의 외동딸이었다. 서울을 자주 드나들던 수빈은 롯데월드를 비롯한 서울의 명소를 꿰고 있었고, 미연은 수빈 앞에서 서울 출신임을 증명하기에 바빴다. 어느 날, 서울대공원이 경기도에 있다는 걸 모르고 서울에 있다고 수빈에게 말한 사실에 심한 부끄러움을 느낀 뒤, 미연은 수빈을 멀리하기 시작한다. 차츰 소원해진 둘은 서로 다른 중학교에 입학하며 아주 멀어진다. 아파트 모델하우스를 둘러보며 좋아하는 남편과 아들 윤후는 지난날 부산에서 잘사는 사람들이 사는 T아파트에 내 집을 마련하고 좋아하던 미연의 엄마와 엄마의 자부심을 공유한 미연의 모습과 겹친다. 하지만 청약 당첨 후 지불해야 하는 돈은 어디서 마련하나. 모델하우스에서 마주친 한 여성에게서 수빈을 떠올린 미연은 지난날 수빈이 준 스위스 초콜릿의 쓴맛을 상기하며 멀리 보이는 공사 현장에 곧 들어설 미끈한 새 아파트의 모습을 상상한다. 


이번에는 편집부가 특정 장면을 고르고 그 장면과 연관된 생각거리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낙원’이라는 소설 제목에 착안해 소설에서 그리는 ‘낙원’이란 어떤 곳일까 함께 생각해보고, 나아가 참여자들이 생각하는 낙원이란 어떤 곳일까 함께 이야기하기로 했다. 소설 속 수빈이 살던 ‘낙원탕’의 ‘낙원’, 낙원탕의 새 이름인 ‘파라다이스 스파’의 ‘파라다이스’가 뜻하는 낙원과 소설 속 ‘우리들’의 진정한 낙원에 대한 감상을 두루 나누기에 특정 장면을 중심으로 한 책잇기 토론이 그리 바람직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보다 열린 생각거리로 말미암아 참여자들이 작품의 전반적인 내용을 찬찬히 곱씹어보고 더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기대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선희님은, “‘낙원’이란 말을 생각해보니, 내가 언제 행복하고 좋았나 돌아보게 됐다”며 “여행 다니는 걸 좋아해서 국내외로 여기저기 많이 다녔다. 친구, 가족과도 많이 다녔지만 제일 행복했던 시간은 혼자 갔을 때다. 낯선 곳에 혼자 있을 때 왜 그렇게 편하고 즐거웠을까 생각해보니 집에서 넷플릭스 보면서 맥주 마실 때도 행복하고 낙원 같다고 느낀다는 게 생각났다. 둘의 공통점이 뭘까. 결국 내가 (가장) 나다워질 수 있는 곳이 낙원 아닐까 싶다”고 했다.2) 선희님과 마찬가지로 혼자 있는 시간을 떠올린 선미님은 “타인의 시선에 신경을 좀 쓰는 편이라, 그런 시선에서 자유롭고 내 의지대로 마음껏 행동할 수 있는 곳이 낙원이 아닐까”라며 “내가 그리는 낙원에는 남편과 두 딸은 없고 나만 있는데, 그래도 ‘그래! 우리 집이 낙원이지’ 이렇게 결론지으려고 노력했으나 어려웠다”며 웃었다. 영화 <아일랜드>3)를 떠올렸다는 루시아님은, ”당첨되면 아일랜드에 보내준다고 사람들이 기대하는데 결국 죽으러 가는 것이지 않나. 결국 돈 벌기 위해, 집 한 채 사려고 아등바등하며 살아가는 것이 낙원일까”라고 되물었다. 


「호텔 해운대」의 수정과 민우가 바라본 바다 너머와 「우리들의 낙원」의 낙원은 모두 갖고 싶지만 가질 수 없는 삶이 펼쳐진 곳을 가리킨다. 가질 수 없는 것을 갖고 싶어하는 삶은 낙원이 아닐뿐더러 갖고 싶지만 가질 수 없는 삶도 낙원이 아닐 테다. “낙원이 정말 낙원이 되려면 내 옆에 있는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목적 지향적으로 도달해야만 하는 높은 데는 낙원이 아니라 족쇄다. 낙원이 정말 낙원이 되려면 내가 있는 지금 여기서 행복하고 자유로워야 하지 않을까.”(선희) “호텔에서 황궁짬뽕은 못 먹어도 바다가 보이는 스타벅스에서 아이스아메리카노는 누릴 수 있는 행복. 그런 소확행을 좋아한다. 그만큼의 낙원을 누리는 것으로 만족해야지.”(루시아님) 

10월 6일 목요일 저녁 열린 온라인 독서모임 ‘잇다-읽다’ 네 번째 시간은 지난 모임을 기억하는 한편 다음 모임을 기약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한승은·한승희「잇다」편집부, 정선미·루시아·이선희 참여자.

소확행.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누리는 삶이 곧 낙원이라면, 독서모임에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누린 편집부에게 ‘잇다-읽다’는 낙원과 다름없다. 모임을 준비하며 새로운 작품을 읽을 수 있어 즐거웠고, 참여자 여러분마다 다른 감상을 들으며 많은 걸 배울 수 있어 벅찼다. 참여자 여러분에게도 이 시간이 소소한 행복으로 오래 남아 있길 바라며, 내년을 기약해본다. 그동안 독서모임에 함께해주신 모든 참여자분들께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1) 두 번째 모임에서는 정성숙 작가의 소설집 『호미』에 실린 두 단편 「호미」와 「연변 봉숭아꽃」을 다뤘다. 「호미」의 영산댁이 ‘산 너머 밭’과 맺고 있는 끈끈한 관계는 ‘끈끈함’이라는 말에 새삼 알맞아 보인다면, 「연변 봉숭아꽃」의 순정이 고향을 떠나 지금 제가 사는 땅과 맺고 있는 관계는 애처로운 그의 삶만큼 애처롭다.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살아 있는 질긴 생명의 애처로움은 고향인 연변을 떠나 중국을 거쳐 한국까지 오게 된 순정이 한국의 한 시골에서 그래도 계속되는 삶을 살아가는 애처로움으로 나타난다. 


2) 기사 본문에 못 담은 선희님의 감상을 각주로 싣는다. “어쩌면 수빈이에게는 자기 속마음도 얘기하고 다른 친구 험담도 하고 가족 욕도 할 수 있는 편안한 사이가, 숨 쉴 구멍이 필요했던 게 아닐까. 그래서 미연이의 부끄러운 면을 알았을 때 모른 척하고, 서먹서먹해진 사이를 만회하려 미연이를 찾아왔던 것 같다. 미연이가 좀 더 용기 있었다면, 부끄러움을 웃어넘기고 수빈이와 속내를 터놓고 이야기했더라면 낙원에 가까운 관계를 맺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해서 아쉬웠다. 서로 형편이 어려워졌을 때 위로해 줄 수도 있었을 테고. 숨기고 피하고 거리끼는 순간 이미 낙원에서 멀어진 게 아닐까.”


3) 영화 <아일랜드(The Island)>(2005년 국내 개봉)는 머지않은 미래 소수의 인간만이 살아남은 황량한 지구를 배경 삼아  통제 사회라는 디스토피아를 그려 보인다. 종말을 앞둔 지구의 생존자들은 부족한 것 없는 유토피아에서 엄격한 통제 아래 살아간다. 이들은 모두 지구에서 유일하게 오염되지 않은 희망의 땅 ‘아일랜드’로 가는 행운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라지만, 사실 아일랜드행에 당첨되는 것은 복제인간을 만들기 위해 신체 부위를 빼앗기고 끝내 죽임을 당하게 되는 말로일 따름이다. 

2022. 11.

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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