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주민이 만들어간 정선군 고한읍

‘마을호텔18번가’

이혜진 작가

들꽃사진관

마을주민이 만들어간 
정선군 고한읍
‘마을호텔18번가’

이혜진 작가

들꽃사진관


“정말 마을 주민이 자발적으로 한 게 맞아요?”


고한18리에 ‘들꽃사진관’을 차린 지 벌써 2년을 꽉 채워가는데, 고한18리를 찾는 사람들에게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었다.


고한18리의 변화는 주민들로부터 시작됐다. 주민들이 사비를 들여 마을을 가꾸는 모습을 보고 행정이 ‘지원사격’해줬다. 여기에 힘을 받아 주민들은 더 열심히 마을 만들기에 동참했고, 그다 보니 마을이 하나의 ‘브랜드’가 됐다. 우리 마을의 이야기를 ‘로컬’의 관점으로 들려주고 싶다. 

‘마을호텔18번가’ 1호점인 ‘초원점’ 전경. ⓒ들꽃사진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그동안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탄광’을 찍으러 다녔다. 이곳저곳 시커먼 것들을 찍어서 소셜미디어에 올리곤 했다. 그런 내게 “밥 한번 먹자, 혜진아” 하며 연락을 해준 어른이 지금의 ‘마을호텔18번가’ 김진용 상임이사님이다, 나는 그를 ‘삼촌’이라 부른다. 처음 삼촌이 운영하는 ‘하늘기획’ 사무실에 들어갔을 때, 고한18리의 모든 건물을 담은 사진들이 현수막으로 만들어져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던 게 아직도 기억난다. 시커멓고 색이 바랜 건물들의 나열에 흠칫 놀랐었으니까.

 

서울에서 다니던 회사에서도 마을 재생 비슷한 일을 했기에, 직감적으로 알아챌 수 있었다. 


“아, 여기는 진짜다.”


삼촌과 함께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며 그에게서 이 마을을 정말 바꿔볼 ‘진짜’ 의지를 강하게 느꼈고, 그게 거짓과 허풍이 아니라는 것도 절절히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다소 무모하고 막연하게, 삼촌의 ‘사진관 창업’ 제안을 덥석 받아들였다. 그렇게 공공의 폐광지역 공간재생 창업 지원사업에 응모해 고한18리 가장 초입에 들꽃사진관을 열게 됐다.

 

사진관 공사와 동시에 마을 곳곳에 변화가 일어났다. 그 첫 번째가 하늘기획 사무실 옆집 이 씨 할머니 댁을 새로 칠하는 것이었다. 주민들이 돈을 조금씩 모아서 시작된 프로젝트였다. 이 씨 할머니는 건물 앞 작은 연탄창고를 부수는 것도, 사연 있는 오래된 창문을 바꾸는 것도 싫어하셨지만, 주민들은 열심히 할머니를 설득했고 그렇게 이 씨 할머니는 예쁘고 따뜻한 집에서 사시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 모든 일이 당연히 행정의 자금으로 진행될 거라 생각하고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 씨 할머니 댁 수리가 다 끝나고 나서야, 이 모든 게 주민들이 주머니를 털어 시작하고 끝낸 일이란 걸 알았다. 무사히 첫 번째 집수리를 주민의 힘으로 마쳤지만, 다른 집들까지 손 보기엔 아무래도 예산 부담이 컸다. 그때 행정에서 지원에 나섰고, 18리 골목은 집주인이 좋아하는 색들로 아름답게 물들어갔다. 


골목 풍경이 하나씩 천천히 변해감과 동시에, 건물들 위로 지저분하게 꼬여있던 폐전선 정리 작업과 도시가스가 들어오면서 쓸모를 잃고 골목 여기저기를 나뒹굴던 연탄과 각종 쓰레기를 치우는 작업이 진행됐다. 그러자 골목을 오가는 사람들도 하나둘 늘어나기 시작했다. 

합심해서 골목을 청소하는 주민들. ⓒ들꽃사진관

주민들 손에 새롭게 태어난 고한18리 풍경. 왼쪽 ‘하늘기획’ 뒤로 보이는 민트색 집이 이 씨 할머니 댁이다. ⓒ들꽃사진관

‘마을호텔’ 아이디어는 정선군도시재생센터 외부전문위원으로 활동하는 강경환 감독님에게서 나왔다. 감독님은 몇 날 며칠 동안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이곳에서 어떤 것을 해보면 좋을까’ 고민하던 중 불현듯 마을 호텔을 떠올렸다. 마을의 민박집들이 제법 많은데, 민박집 하나를 객실 하나로 보고, 마을에 있는 백반집, 중국집, 일식집, 세탁소, 이발소, 사진관을 하나로 묶어 마을 전체를 하나의 ‘호텔’로 만들어보자는 아이디어였다. 그렇게 마을의 인프라를 연결해 마을 자체를 건물처럼 높이 솟아 있는 호텔이 아니라, 수평으로 낮게 누워있는 호텔로 바라볼 수 있겠다는 상상에서 시작된 게 ‘마을호텔18번가’다. 

 

한때 엄청난 호황을 누린 광산업이 사그라들자, 정부의 석탄합리화정책 아래 정선군의 탄광들은 문을 닫았고 사람들도 떠나버렸다. 이후 ‘폐광지역 개발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고 이에 따라 대규모 리조트와 카지노가 있는 ‘강원랜드’가 들어서면서 관광객들이 물밀 듯이 이곳으로 찾아왔지만, 도박 중독을 막겠다는 취지로 ‘강원랜드 출입일 수 제한정책’이 시행되면서 관광객 수는 급격히 줄었다. 현재 폐광지역은 2025년 폐특법 적용 시한이 만료된 다음에 불어닥칠 지역 경제의 위기를 우려하고 있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절박하다. 우리 동네가 ‘곧 없어질 동네’가 되지 않게 하려는 절박한 마음으로 주민들이 대동단결하는 때가 지금이 아닌가 싶다. 주민들이 이렇게 노력하는 것은 이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변화를 거부하기보다, 주도하고 반기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덕분에 우리 마을은 ‘잘’ 변해가고 있다. 그래서 나는 우리 마을이 참 좋다. 골목을 찾는 사람들이 늘었고, 마을 곳곳에서 사진을 찍는 여행자들도 자주 보인다. 지난겨울엔 어떤 연인이 헤어지기 아쉬워 한참을 골목을 걸었더랬다. 어느 주민의 제보(?)에 따르면 이들은 마을회관 앞 LED 보리수나무 앞에서 이별의 키스를 나눴다고 한다. 이 에피소드를 듣고, 우리 골목이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공간이 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우리 마을을 ‘잇다’의 지면에서 ‘랜선 투어’로 함께 걸어보자.

고한18리 마을 입구로 이어지는 길. ⓒ들꽃사진관

마을 초입에 도착했다. 곧 예쁜 이정표가 생길 예정이다(아직은 없다). 이정표를 대신하는 게 ‘대복주유소’다. 대복주유소를 바라보고 그 사잇길로 들어와야 한다. 그러면 경찰서가 나오는데, 마을호텔의 경비실이라고 볼 수 있다. 공손히 인사하며 들어오면 된다.

 

경찰서 맞은편엔 ‘국일반점’이 있다. 짜장이 정말 맛있다. 짬뽕은 전날 주방을 책임지는 사장님이 술을 얼마나 드셨는가(?)에 따라서 맛이 달라진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난 짬뽕도 항상 맛있다. 그래서 둘 다 먹고 싶은 마음에 항상 볶음밥을 시킨다. 그럼 짜장도 나오고 짬뽕 국물도 나오는데, 컨디션 안 좋은 날 빼고 남겨본 적이 없다. 게다가 매달 넷째 주 화요일은 ‘짜장 반값 데이’다(참고하라). 사실 짜장 반값 데이는 국일반점의 한 달 4번 있는 휴일 중 하루다. 귀한 휴일을 마을을 위해 내어주시는 거다. 반값 짜장면과 함께.

 

국일반점 옆에 들꽃사진관이 있다. 말도 아니고 이렇게 글로 ‘셀프 자랑’하려니 참으로 부끄럽지만... 나는 들꽃사진관의 대표를 맡고 있다. 들꽃사진관은 보통 사진관에서 제공하는 기본 서비스는 전부 제공한다. 증명사진도 찍고, 가족사진도 찍고, 사진 인화도 한다. 이밖에 골목 곳곳에 지정된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어 인화해주는 ‘18리 골목 스냅’, 정선군의 예쁜 명소(로컬만 아는!)에서 사진 촬영과 간략한 가이드도 함께하는 ‘투어 스냅’ 서비스도 있다. 내년엔 투어 스냅 서비스를 좀 더 개발하려고 한다.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따뜻하게 담아내는 사진관이 되고 싶다. 

들꽃사진관 전경. ⓒ들꽃사진관

들꽃사진관을 지나면 마을회관이 나온다. 이곳에서 LED 전선으로 야생화를 만드는 공예 체험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예약이 필수다. 체험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전에 마을 행사 때 시험 삼아 LED 동백꽃을 만들어봤는데, 쪼그만 꽃 한 송이 만드는 데 1시간이나 걸렸다. 그래도 막상 만들고 나면 생각보다 퀄리티도 높고, 꽃에 불이 들어오면 은근히 흐뭇하다. 체험 시간이 오래 걸리는 만큼 재료를 준비하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 재료를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니 꼭 예약하고 참여해주시길.

골목에 ‘피어있는’ LED 꽃을 구경하는 주민들.

조금 더 가면 삼촌이 운영하는 하늘기획 사무실이 있다. 이곳은 각종 인쇄와 책 제작, 실사 출력 등을 한다. 현재 마을호텔 프런트 기능도 담당하고 있다. 호텔 예약 관리를 이곳에서 하기  때문에 마을호텔에서 숙박을 하려면 이곳을 거쳐야 한다. 또 삼촌이 친절하게 마을에 관련된 궁금한 것들도 잘 알려주신다. 덕분에 삼촌의 전화는 시도 때도 없이 울린다. 호텔 지배인(마을 이장님)이 안 계실 땐 삼촌이 투숙객의 ‘컴플레인’에 즉각 대응하러 나선다. 하늘기획에서 호텔 1호점인 ‘마을호텔 초원점’까지 거리가 좀 멀어서 삼촌은 전동 킥보드를 타고 다닌다. 삼촌의 전동킥보드가 우리 호텔의 엘리베이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하늘기획과 마주 보고 있는 ‘이음플랫폼’은 공유오피스의 역할을 하고 있다. 노트북 하나 들고 원하는 곳에서 일하는 ‘디지털 노마드’들에게 특히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마을호텔 투숙객은  회의나 일할 공간이 필요할 때 이곳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여기서 좀 더 위로 올라가면 ‘해오름민박’이 있는데, 곧 마을호텔18번가의 두 번째 숙소가 될 예정이다. 이번 겨울부터 차근차근 추진할 생각이다. 올 한 해 마을호텔 초원점에서 거둔 이익으로 내년에 이 공간의 리모델링 작업을 추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주인 이모님이 너무 귀여우시고, 마을호텔 조합원 회의 때 통 크게 한턱 쏠 때도 많다. 지난 회의 땐 이모 덕에 피자를 잔뜩 얻어먹었다. 

 

이제 드디어 마을호텔 초원점에 도착했다. 

초원점이란 이름은 원래 이 공간의 이름인 ‘초원식당’에서 따왔다. 객실은 ‘별’, ‘빛’, ‘꽃’ 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꽃방이 가장 큰데, 주로 마을에 가족 단위 손님들이 많이 찾아와서 꽃방이 가장 인기가 많다. ‘호텔’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시설과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우리 모두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그래도 종종 항의가 들어오고, 무리가 선이 아니면 그에 맞춰 최선을 다해 호텔의 시설과 서비스를 개선해 나가고 있다. 숙박업은 우리도 처음이라…

마을호텔18번가 초원점이 있는 골목 풍경. ⓒ들꽃사진관

마을호텔18번가의 지배인인 이장님 댁은 초원점 맞은편에 있다. 그래서 투숙객을 맞이하고 배웅하는 일을 도맡아 하고 계신다. 또 사람들에게 마을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도 들려주고, 가끔 먹을 것도 내어주시면서, ‘호텔’이지만 ‘마을’이라는 정서를 살리는 역할도 해주신다. 마을호텔 온라인 리뷰에도 이장님 이야기가 제일 많이 나온다.

 

초원점과 내부로 이어지는 공간이 있다. 바로 ‘카페 수작’이다. 원래는 카페로 와서 손님들이 호텔 조식을 먹도록 했는데, 코로나19 사태 이후로는 사회적 거리두기 수칙을 지키기 위해 전날 저녁 방으로 조식을 갖다 드린다. 이렇게 하니 아침에 늦게까지 잘 수 있어서 좋다는 투숙객들도 있다. 하긴, 이 숨은 마을까지 오려면 장거리 운전을 하고 오셨을 테니, 잠이 조식보다 더 좋지 않을까.

 

카페 수작의 커피와 음료 메뉴도 다양하다. 심지어 다 맛있다. 이곳 사장 언니는 공예에 조예가 깊어서 원래 공예 공방을 하려고 했는데 스케일(?)이 커져서 카페가 됐다. 그래서 사장 언니가 요즘 좀 힘들어하고 있다.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카페는 오후 6시까지만 운영하고 그 이후엔 공예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카페 수작 뒤쪽으로 숨은 공간이 있다. 야외정원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많은 사람이 이 야외정원에 마음을 뺏긴다. 엄청나게 큰 벽화가 있는데, 이건 직접 봐야 한다.

 

여기서 좀 더 걸어 올라가면 ‘영주이발관’이 있다. 옛날 이발관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고 또 사장님이 옛날 방식 그대로 이발을 하고 계신다. 간판도 옛날 그대로다. 이런 옛날 그대로의 모습을 사람들이 무척 좋아한다.

옛 모습, 옛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영주이발관. ⓒ들꽃사진관

마을호텔18번가 이사장님 식당인 ‘구공탄구이’는 비수기, 성수기 가리지 않고 늘 사람이 많다.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손님이 줄었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지인들과 이곳에서 밥을 먹으려면 항상 줄을 서야 했다. 이사장님이 정육업 일을 하셨던 분이라 고기를 잘 아시고, 그래서 이 집 고기 질은 상당히 좋다. 이 집 고기에 익숙해지면 다른 데서 고기를 먹기 힘들다.

  

자, 이렇게 우리 마을을 한 바퀴 쭉 둘러봤다. 곧 겨울이라 요즘은 주민들이 대부분 집에 계시지만, 내년 봄 꽃필 때쯤 마을을 돌다 보면 아이들이 물총 들고 뛰어다니는 모습, 킥보드 시합하는 모습, 두발자전거 연습하는 모습, 어르신들이 밖에 나와 함께 부침개 부쳐 먹는 모습, 햇볕 쬐는 모습, 집 앞 화분들을 하나둘 살피는 모습, 그리고 지나가는 관광객에게 한껏 예쁘게 웃어주시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마을호텔이라는 이름이 너무 거창해서 엄청난 걸 기대하고 오는 여행자들도 있다. 하지만 이곳은 이름처럼 ‘마을’ 호텔이라는 점, 숙박을 할 수 있는 ‘마을’이라는 걸 알고 마을 안에서 소소한 것들을 느끼려는 마음으로 방문해주시면 좋겠다. 엄청난 것들로 가득한 관광지는 주변에 워낙 많으니까.

 

우리는 누가 시켜서 마을호텔을 만든 것도 아니고, 그냥 각자의 삶을 살아가다가 이따금 만나고, 연결되고, 함께 놀고, 그러다 사업도 하고, 그렇게 지내고 있다. 행정의 속도가 아닌, 주민의 속도, 마을의 속도에 따르고 있어서 다소 느려 보이고 부족해 보이는 게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속도를 이해하고, 기다려주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마을호텔18번가의 속도는 이렇구나!” 하고 말이다. 그럼 우리는 우리의 속도대로 다시 천천히 어르신들과 아이들과 보폭을 맞춰 걸어갈 거다.

고한18리 마을 사람들과 함께, 마을호텔18번가 초원점 앞에서 단체사진 한 컷. ⓒ들꽃사진관

2020. 12. 

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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