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체된 구도심 시장을 도시의 문화 구심점으로 만듭니다”

— 강릉 ‘서부시장’ 재생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공공프리즘’ 좌담

공공프리즘

“침체된 구도심 시장을 도시의 문화 구심점으로 만듭니다” 


강릉 ‘서부시장’ 재생 프로잭트를 진행하는
‘공공프리즘’ 좌담

공공프리즘


좌장 | 양소영 프로젝트 책임매니저


좌담 참여자
황지현 팀장
김가령 프로젝트 매니저


공공프리즘은 ‘로컬(local)’, ‘디자인(design)’, ‘소셜(social)’이란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지역과 도시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환경, 사람을 고려한 공간, 이로운 사회를 만드는 문화예술 기획·정책 등을 제안하는 조직이다. 2003년부터 시민 참여형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커뮤니티 디자인 영역에서 노하우를 쌓아왔고, 현재 공공과 민간의 다양한 파트너들과 함께 도시재생 프로젝트 또한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공공프리즘이 강릉과 인연을 맺게 된 건 현대자동차그룹과 함께 강릉 ‘구도심’에 해당하는 용강동에 있는 ‘서부시장’을 중심으로 새로운 도시재생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다. 현대자동차그룹과는 지난 2014년부터 2019년까지 5년에 걸쳐 광주광역시에서 ‘청춘발산마을’을 만들며 합을 맞췄다. 공공프리즘은 광주의 대표적인 달동네로 어르신들만 남은 발산마을 풍경을 공공미술·디자인 프로젝트로 화사하게 가꾸고, 청년 창업가들이 마을의 새로운 주민으로 입주할 수 있도록 지원해 침체한 마을 분위기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했다. 광주 청춘발산마을에 이어 강릉 서부시장에서도 공공프리즘은 공공미술·디자인 프로젝트와 다양한 청년 실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서부시장이 강릉 구도심 재생의 거점으로서 새로운 지역적·문화적·경제적 역할을 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하고 있다. 

(왼쪽부터) 서부시장 재생 프로젝트를 기획·진행 중인 공공프리즘의 양소영 현장 책임매니저, 김가령 현장 매니저, 황지현 팀장. ⓒ진명근

공공프리즘은 올해 서부시장 1층에 작은 사무실을 꾸리고 서부시장 상인을 비롯해 지역 주민, 강릉시와 긴밀히 소통하며 차근차근 서부시장의 새로운 그림을 그려가고 있다. 갑자기 날씨가 쌀쌀해진 어느 오후, 웹진 ‘잇다’ 17호에 공공프리즘의 서부시장 재생 프로젝트를 소개하기 위해 프로젝트 전반을 기획·설계한 황지현 팀장, 나와 함께 서부시장 사무실에 상주하며 현장 실무를 맡고 있는 김가령 프로젝트 매니저와 마주 앉았다.  


양소영(이하 ‘소영’)   우리 모두 이 프로젝트에 대해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웃음) ‘잇다’ 독자들을 위해 공공프리즘의 서부시장 재생 프로젝트를 간략히 소개해주세요.


황지현(이하 ‘지현’)   2019년 청춘발산마을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프로젝트 대상지를 탐색하며 1년 가까이 전국 곳곳을 돌아봤습니다. 여러 후보지가 있었고, 결국 강릉 그리고 서부시장을 최종 프로젝트 대상지로 선정했어요. 강릉은 제주도 못지않은 ‘트렌디’한 관광지로 주목 받고 있고, 젊은 세대들도 즐겨 찾고 있죠. 또 2018년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강릉에 KTX역이 들어서면서 접근성도 좋아졌고요. 

그런데도 구도심은 상당히 침체한 상황이었어요. 특히 서부시장은 강릉시민도 별로 찾지 않을 정도로 상권이 가라앉았고요. 중앙시장은 관광객들이 이런저런 먹을거리를 맛보러 들르기도 하지만, 서부시장은 관광객들에게도 전혀 매력이 없는 곳이었습니다. 안타까웠죠. KTX역이나 고속버스터미널과도 멀지 않아서 사람들이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위치에 있음에도 볼거리나 즐길 거리가 없어 시장 전체가 잊히고 있었으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공공프리즘이 서부시장에서 보통의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을 하려고 하는 건 아닙니다. 쇠퇴한 시장을 활성화하는 건 저희가 하려는 프로젝트의 목표 중 일부예요. 궁극적으로는 이곳을 더 많은 사람이 모이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오가는 플랫폼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서부시장 건물은 지하 1층, 지상 2층으로 넓은 편인데 창고처럼 쓰이는 버려진 공간이 무척 많아요. 공실률이 70% 가까이 됩니다. 이런 공간들에서 청년들이 창업을 하거나 지역 커뮤니티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실험을 벌일 수 있도록 해보려고 해요. 시장이 전통적으로 물물교환의 장소였다면, 사람과 사람의 교류, 아이디어의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플랫폼으로 서부시장이 거듭날 수 있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황지현 팀장은 “서부시장이 사람과 사람, 아이디어와 아이디어의 교류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플랫폼으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했다. ⓒ진명근

소영   가령 매니저는 공공프리즘이 강릉 서부시장 재생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올해 새로 합류한 ‘강릉 토박이’인데요, 강릉 토박이 관점에서 솔직하게 서부시장에 어떤 인상을 느끼고 있는지 이야기해주세요.


김가령(이하 ‘가령’)   서부시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중학교에 다녔는데도, 이 근처는 거의 와 본 적이 없어요. 어릴 적부터 이곳은 음침하고 노후한 곳, 놀 거리도, 볼거리도, 먹을거리도 없는 곳, 존재감이 별로 없는 곳이었어요. 친구들하고는 주로 중앙시장 근처에서 시간을 보냈고요. 부모님도 서부시장에서 물건을 사보신 적이 없대요. 그래서 제가 서부시장 재생 프로젝트에 합류했다고 하니까 “거기서 그런 사업이 가능하겠느냐”며 놀라시더라고요(웃음). 저도 사실 처음 공공프리즘의 서부시장 재생 프로젝트 계획을 듣고 ‘그게 될까?’ 생각했었죠. 프로젝트 매니저이자 강릉 시민으로서, 서부시장이 어떻게 변화해갈지 기대돼요.


지현   이렇게 가령 매니저처럼 강릉에서 나고 자란 진짜 ‘로컬’만의 경험과 관점이 저희가 이 프로젝트를 설계하는 데 무척 중요해서 저희 내부에서도 가령 매니저의 의견에 귀 기울이고 있어요.


소영   서부시장 재생 프로젝트는 올해부터 2022년까지 3년에 걸쳐 진행되는데요, 1차연도 계획은 무엇인지 소개해주세요.


지현   우선 이번 겨울까지 ‘푸드홀’ 공간을 리모델링하는 게 첫 번째 과제입니다. ‘푸드 홀’은 서부시장 입구에서 주차장 쪽으로 들어오면 보이는 식당 밀집 구역인데, 식당 앞마다 평상들이 늘어서 있는 게 이색적이에요. 저녁이면 동네 단골들이 이곳에 모여 갓 부친 감자적에 막걸리를 드시곤 하죠. 옛 한옥의 툇마루를 떠오르게 하는 이 평상 문화가 서부시장 푸드 홀만의 매력이라고 생각했어요. 이곳에 전혀 새로운 콘텐츠를 심기보다, 이곳만의 고유한 색, 문화를 발굴해 그것을 좀 더 잘 소개하려고 해요. 이 푸드 홀 구역의 전반적인 디자인과 메뉴 구성, 손님 서비스 등을 잘 정비하고 개선하면 젊은 관광객들에게도 충분히 흥미로운 콘텐츠가 될 거라 내다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주로 이 푸드 홀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상인들과 정기적으로 커뮤니티 워크숍을 열며 의견을 수렴하고 있어요. 내년 1~2월까지 공간 정비 작업을 마칠 예정입니다. 푸드 홀 정비 작업을 시작으로 점차 프로젝트 영역을 넓혀가려고 해요.

서부시장의 ‘푸드 홀’ 공간을 둘러보고 있는 공공프리즘 팀원들. ⓒ진명근

소영   앞서 공공프리즘의 서부시장 재생 프로젝트는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과는 결이 다르다고 했는데, 이 부분 조금 더 설명해주세요.


지현   서부시장을 구체적인 프로젝트 대상지로 다루고 있지만, 사실 저희는 강릉이란 도시 전체를 생각하며 프로젝트를 설계하고 있어요. 크게 세 가지 키워드, ‘컬처(Culture)’, 커넥트(Connect), ‘시티(City)’, 즉 ‘문화, 연결, 도시’라는 세 개의 ‘C’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요. 서부시장을 거점으로 청년 문화, 지역 문화, 도시 문화가 연결될 수 있게, 가능성의 점(點 )들을 이어 선으로 만드는 작업을 해나갈 생각입니다. 서부시장이 강릉이란 도시의 새로운 문화 구심점으로 기능하게 되길 바라요.

가령= 관광객에게도 매력적인 공간이지만 강릉에 사는 청년 세대들에게도 이곳이 ‘힙’한 곳으로 인식되면 좋겠어요. 강릉의 20~30대들은 주로 교동 택지나 유천 지구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밤 문화를 즐기거든요. 서부시장이 강릉의 20~30대 청년들에게 교동 택지와 유천 지구 외에 놀러 갈 수 있는 새로운 선택지가 되려면 이곳에 청년들이 즐길 만한 콘텐츠들이 많아져야 할 것 같아요.

강릉에서 나고 자란 김가령 매니저는 “서부시장이 강릉에 사는 청년세대들에게 새로운 ‘힙’ 플레이스로 인식되는 날이 오길 바란다”고 했다. ⓒ진명근

소영   그 여정을 이어가기 위해 해결해야 하는 과제들도 많은데,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가령   아무래도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다 보니, 서부시장 상인을 비롯해 이곳을 거점으로 생활하는 주민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가장 어려운 과제라고 느껴져요. 시장의 상업 공간은 지하 1층에서 지상 2층이지만, 그 위 3층과 4층은 사람들이 사는 아파트거든요. 그런데 아직 그 아파트에 사는 주민들과는 거의 접촉을 못 했어요. 공공프리즘이 이곳에서 재생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는 사실조차 모르는 분들도 계실 거고요. 이곳 아파트 주민들에게 프로젝트의 필요성과 실효성을 설득해나가야 하기 때문에 앞으로 이분들과 어떻게 접점을 만들어가고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 고민이 많아요.

또 상인 중에도 프로젝트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분들도 계세요. ‘해봤자 되겠냐’고 의구심을 갖고 계신 분들도 있고요. 이런 분들을 설득해서 협력을 끌어내는 것 또한 현장 매니저의 역할이자 과제라고 생각해요.


지현   현재 서부시장 공간들은 굉장히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어요. 가령 매니저의 설명처럼 주상복합 건물이라 3층과 4층은 생활 공간이고, 1층과 지하는 주로 가게들이 있는 상업 공간이고, 2층은 주로 동호회나 친목회 사무실이 있는 모임 공간이에요. 이렇게 공간 기능이 복합적이다 보니 각자 필요한 것이나 원하는 것도 다르죠.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곳이 북적북적해지는 게 불편할 수도 있을 거예요. 서부시장을 구성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생각과 태도를 이해하고 함께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잘 설정해야 해요. 이런 점이 앞으로 3년 동안 공공프리즘이 꾸준히 해결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과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소영   앞으로 공공프리즘이 서부시장에서 해야 할 일이 참 많은데(웃음) 다행히 강릉시와 현대자동차그룹을 비롯한 여러 파트너가 적극적이고 호의적으로 도와주고 있어서, 잘해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강릉 시민들도 조금씩 새로워질 서부시장의 모습에 꾸준한 기대와 관심 가져주셨으면 좋겠어요. 올겨울 훨씬 더 깔끔하고 세련된 모습으로 찾아올 서부시장 푸드 홀 평상에서 노릇한 감자적과 막걸리로 로컬 다이닝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기대해봅니다. 

2020. 12.

1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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