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수
청소년마을학교날다 총괄교사
운양초등학교 교사
김기수
청소년마을학교날다 총괄교사
운양초등학교 교사
나는 학교 안과 학교 밖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평일에는 운양초등학교에서 1학년 아이들을 만난다. 주말에는 강릉청소년마을학교 날다 선생님이 된다.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부터 고등학생까지, 강릉에 사는 청소년들을 만난다. 무엇이든 처음이 낯설고 힘들다. 코로나19를 처음 마주한 작년을 생각하면 한숨부터 나온다. 학교 안과 밖에서 아이들을 만나 하고 싶은 게 많았지만 쉽지 않았다.
코로나19로 운양초등학교와 날다학교 모두 커다란 변화를 겪었다. 새로운 도전을 했고 많은 시행착오도 있었다. 보람과 행복만큼 어려움과 좌절도 있었다. 마을교육공동체인 날다학교는 그 모든 순간에 있었다. 다행히 날다학교는 코로나19로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코로나19로 드러난 여러 문제를 직시했다. 교육의 본질, 마을교육공동체의 역할을 되짚는 것은 물론, 아이들이 겪는 교육격차와 문화소외에 더욱 집중했다. 그 덕분에 올해 더 큰 날갯짓을 하고 있다.
1. 참삶을 가꾸는 행복한 마을학교
강릉청소년마을학교 날다는 올해 6년 차 마을교육공동체다. 강릉에 거주하고 있는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인문학과 살아있는 경험으로 배우는 청소년 마을교육공동체로, 삶의 가치와 공동체를 생각하는 주체적 민주시민을 목표로 한다.
날다학교 학생들 ⓒ김기수
날다학교는 학교 안에서 마주한 문제를 학교 밖에서 해결하기 위한 선생님과 학부모들의 도전으로 시작됐다. 학교 안 아이들의 삶은 부모의 소득과 직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그 결과 학교 안에서도 계층과 갈등이 존재한다. 경제적 자본의 양극화는 문화사회적 자본을 양극화하고 인문학적 경험의 빈곤을 낳는다. 가정환경으로 문화소외를 겪고 있는 아이들이 다양한 사회문화자본을 경험할 수 있도록, 입시 중심 생존이데올로기에 빠져 영혼의 빈곤을 겪는 아이들에게 마음의 풍요로움을 더하고자 날다학교를 시작했다. 날다학교는 학교를 넘어 ‘마을’에서 교육을 한다. 입시를 넘어 ‘삶’에 대한 교육을 한다.
아이들은 날다학교에서 크게 네 가지 활동을 한다. ‘우리가 하고 싶은 일, 우리가 계획해서!’ 프로젝트학교, ‘시대와 소통하는 민주주의학습, 시민성을 키우다!’ 민주시민포럼, ‘사람을 읽다. 관심 있는 분야 전문가와의 만남!’ 사람책 도서관, 마지막으로 ‘정의로운 청소년들의 세상을 향한 당찬 수다!’ 정세청세 인문토론이다. 민주시민포럼과 정세청세 인문토론은 사회적 문제나 인문학적인 주제를 공부하고 토론한다. 프로젝트학교와 사람책 도서관에서는 아이들이 강릉의 사회문화자본을 직접 경험한다.
프로젝트학교는 아이들이 강릉을 더 자세히 알고 더 많이 향유할 수 있는 기회다. 아이들이 스스로 하고 싶은 바를 선택하고 기획하면 여기에 선생님, 마을활동가가 결합한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10개가 넘는 프로젝트가 운영되고 있다. 팬데믹으로 대면 활동이 조심스럽지만, 프로젝트마다 적은 수의 아이들이 모여 대면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여행, 강릉 역사탐방, 영상, 댄스, 예술, 생태, 요리, 융합독서, 해양스포츠, 과학 그리고 인권까지, 아이들은 관심 있는 주제의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친구들을 모아 프로젝트를 개설할 수도 있다. 인권 프로젝트는 아이들이 직접 개설한 프로젝트다. 청소년 인권을 시작으로 인권의 범위를 확장하며 공부하고 있다.
프로젝트학교는 아이들의 관심과 흥미를 뿌리로 다양한 도전을 한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강릉이 갖고 있는 사회문화자본과 연결되며 강릉을 다시 만난다. 이 과정은 딱딱하기보다 말랑말랑하고 재미있다. 아이들은 다양한 경험 속에서 마주 보며 웃고 떠든다. 날다학교 아이들이 프로젝트학교로 만난 강릉 이야기를 하나 소개한다.
2. 강릉에도 예술가가 있어요? 예술 프로젝트
예술은 쉽게 접근하기 힘든 벽이 있다. 필자는 ‘예술’ 하면 음악과 미술을 떠올리는데, 왠지 나와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예술을 철저히 전문가의 영역으로 생각한다. 작가나 음악가 등 예술가를 만나본 경험이 별로 없다. 무엇보다 예술을 서울에서만 경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전시회를 가거나 뮤지컬을 보더라도 서울에 가야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예술 프로젝트는 강릉 아이들이 강릉에서 예술을 마주하고 경험할 수 있는 기회다. 아이들이 주체적으로 배움을 일구는 날다학교의 지향에 강릉문화재단이 갖고 있는 다양한 인프라를 더했다. 예술 프로젝트 강사 선생님은 아이들이 예술을 조금 더 친숙하고 재미있게 마주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끊임없이 소통하며 아이들과 예술을 연결했다. 명주예술마당에서 가진 첫 번째 만남은 예술에 대한 고민과 질문으로 채웠다. 아이들은 예술이 무엇인지 묻고, 강사 선생님은 아이들의 말 하나하나를 예술과 직접 연결하며 답했다. 명주예술마당을 나와 강릉시립미술관으로 이동했다. 미술 전시회가 낯선 아이들은 강릉을 주제로 강릉 작가들이 만든 작품을 봤다. 강사 선생님의 고민과 노력 덕분에 아이들은 예술을 조금 더 가까이 대할 수 있었다.
예술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아이들이 강릉에서 활동하는 작가에 관한 자료를 살펴보는 모습 ⓒ김기수
강릉시립미술관을 찾은 아이들이 전시 중인 작품을 감상하고 있다. ⓒ김기수
강릉 시립미술관에 다녀온 뒤 아이들이 변했다. 예술의 벽을 조금 무너뜨렸을 뿐인데, 짧게나마 예술에 대한 생각을 나누고 강릉에서 활동하는 작가와 그 작품을 본 것뿐인데 아이들이 성큼 예술에 가까이 들어섰다. 강사 선생님은 “너희들이 말하는 작가님을 꼭 모셔올게”라며 아이들 반응에 맞장구를 쳐줬다.
2020년 예술 프로젝트 주제는 사진기와 사진으로 정했다. 강릉과 서울을 오가며 고시텔, 작업실과 같은 일상 공간 속 사람을 포착해온 심규동 작가님을 선생님으로 모시기로 했다. 아이들은 잘생긴 심규동 작가님을 만날 생각에 들떴다. 아이들과 소통이 수월하고 언제든지 만날 수 있는 동네 오빠 같은 예술가를 섭외한 강사 선생님의 능력이 빛난 순간이었다.
예술 프로젝트에 참여한 세 명의 아이들과 심규동 작가님이 드디어 만났다. 작가님 말소리를 따라가는 아이들의 집중력은 대단했다. 학교 미술 시간에 사진 기법 수업을 듣던 여느 아이들 모습과는 달랐다. 작가님의 강의에서 사진의 정의와 역사, 사진 촬영 기법처럼 딱딱한 이야기는 거의 없었다. 작가님이 생각하는 사진의 의미를 시작으로 작가님이 좋아하는 사진작가도 소개해주셨다. 사진작가 개개인의 특징을 알아보고 여러 작품을 살펴봤다. 아이들은 당장 사진을 찍으러 나가고 싶다고, 사진을 잘 찍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 이야기를 듣는 동안 작가님과의 어색함이 사라졌다. 아이들은 필름 카메라를 한 대씩 받고 사용법 설명을 들었다. 작가님이 카메라를 슥 들어 사진 찍는 자세를 취했는데, 나와 아이들 모두 감탄했다. 동네 오빠 같은 사람에게서 예술가 포스가 번쩍거렸다. 추석 명절을 앞두고 가벼운 숙제를 받았다. 명절 연휴 동안 카메라에 담고 싶은 장면을 마음대로 찍어오기다. 이런 숙제는 언제든 환영이라며 아이들은 카메라를 들고 집으로 갔다.
심규동 작가와의 만남 ⓒ김기수
추석 명절을 마치고 모인 아이들은 카메라를 들고 날다학교 밖으로 나갔다. 날다학교가 위치한 명주동 골목을 누비며 사진을 찍었다. 마음껏 명주동 골목을 카메라에 담은 뒤, 차를 타고 사근진해변으로 이동했다. 바다와 숲을 오가며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작가님은 아이들이 자유롭게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최대한 간섭하지 않았다. 주로 아이들이 질문할 때만 입을 열었다. 그래서일까, 아이들이 찍은 사진은 모두 제각각 다양하고 예뻤다.
카메라를 들고 사근진해변을 찾은 아이들 ⓒ김기수
순포습지를 찾은 아이들이 카메라에 저마다의 풍경을 담고 있다. ⓒ김기수
“사진만 봤을 뿐인데 2시간이 훌쩍 지나버려서 신기하고 조금은 아쉬웠어요”, “바다, 골목 사진은 물론 추석 사진도 각각 달라서 구경하기 좋았어요. 카메라 필름이 많으면 더 찍었을 텐데 아쉬워요”, “휴대폰 카메라처럼 사진을 찍고 바로 볼 수 없어서 잘 찍혔는지 너무 궁금했는데, 결과를 보고 나니까 생각보다 너무 잘 찍힌 것 같아서 다음에 개인적으로 필름을 구매해서 사용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들은 자신이 찍은 사진을 직접 출력물로 확인했다. 전문적으로 사진을 배우지 않았지만, 구도와 색감 모두 예쁜 사진이 참 많았다. 무엇보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6학년 아이가 남긴 학교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다. 강릉과 자신의 삶을 담은 사진은 엽서로 제작해 친구들과 부모님, 날다학교와 나누기로 했다. 아이들에게 예술은 더 이상 높은 벽 너머 무언가가 아니었다. 일상이었고 삶에서 향유할 수 있는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3. 마을에서 찾은 새로운 학교
코로나19로 예술 활동은 물론 친구들과 함께 활동하는 일이 사라졌다. 날다학교에서 벌인 예술 프로젝트는 코로나19로 지친 아이들에게 작은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예술 프로젝트는 아이들, 날다학교 선생님, 강사 선생님, 강릉문화재단, 사진작가가 함께 만든, 다시 말해 강릉의 교육·문화 자원을 십분 활용한 마을학교 수업이었다. 이처럼 예술 프로젝트를 포함한 10여 개의 프로젝트학교는 코로나19로 심화된 아이들의 문화격차를, 강릉의 사회문화자본을 공유하며 채워나가려는 작은 날갯짓이었다.
마을교육공동체는 학교 밖 또 다른 학교다. 학교에서 갖기 힘든 배움과 아이들의 삶과 맞닿은 배움을 일굴 수 있는 더없이 좋은 터전이다. 마을교육공동체는 모두를 위한 교육을 해야 한다. 학교를 다니든 다니지 않든, 다문화가정이든 아니든, 경제적으로 충분하든 부족하든. 이에 구애받지 않고 아이들을 만나야 한다.
날다학교는 현직 초, 중, 고등학교 선생님 30여 명이 교육봉사로 꾸려가는 학교 밖 학교다. 마을활동가와 함께, 코로나19로 멈춘 학교를 나와 학교 밖에서 아이들과 삶과 배움을 가꾸고 있다. 더 많은 선생님이 학교 안에서 나와 학교 밖에서도 아이들을 만나는 모습을 꿈꾼다. 그렇게 날다학교와 같은 마을교육공동체가 더욱 많아지면 지나친 경쟁 교육으로 지친 아이들의 삶에 조금은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그 여유 안에 문화를 향유하는 문화시민으로 자라나는 씨앗이 있다고 생각한다.
날다학교의 도전과 변화는 현재 진행형이다. 날다학교가 고민한 문제와 이를 넘어서기 위한 작은 날갯짓을 글에 담았다. 작지만 아름다운 날갯짓들이 코로나19로 지친 우리 모두에게 따뜻한 바람을 전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