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예술매개자의 역할과 전망

강윤주
경희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생활예술매개자의
역할과 전망

강윤주 
경희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코로나19로 인해 지역의 중요성 및 지역 문화자치의 중요성은 더욱 커졌다. 소위 “쓰레빠 끌고 나가서” 즐길 수 있는 문화공간이 더 많아져야 한다는 목소리,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다양한 문화예술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문화예술교육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지역맞춤형 문화예술교육 공간 및 프로그램,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역 문화자치에서 핵심적 역할을 맡게 될 매개자의 필요성이 부상하고 있다. 

국내 문화정책 영역에 도입된 매개자 중 도입 시기가 상대적으로 앞서기도 하고, 또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이들로 ‘생활예술매개자(Facilitating Artist, 약칭 FA)’를 꼽을 수 있다. 당연하게도, 생활예술매개자는 생활예술의 활성화와 더불어 생겨난 새로운 역할이다. 이 글에서는 지역의 문화자치 현장에서 이 생활예술매개자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이 역할을 위한 교육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할지, 더불어 ‘매개자’의 의미는 어떻게 정립해야 할지를 점검해보고자 한다.

 

생활예술매개자라는, 여전히 생소한 이 명칭은 2017년 서울문화재단 생활문화지원단에서 생활예술매개자(2020년 ‘생활문화활동가’로 명칭 변경)를 모집하면서 제도권 내에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당시 서울문화재단에서 밝힌 생활예술매개자의 목적은 아래 그림과 같다. 

생활예술매개자의 목적. ⓒ서울문화재단 생활문화지원단 웹사이트

곧 생활예술매개자의 양성을 통해 시민들의 예술활동 활성화를 지원하되, 매개자 ‘활동’과 매개자 ‘교육’을 병행하는 이른바 'Learning by Doing'(실천에 의한 학습)을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당시 서울문화재단이 설계한 생활예술매개자의 구성도는 아래 그림과 같다.

생활예술매개자 구성도. ⓒ서울문화재단 생활문화지원단 웹사이트

생활문화지원단 웹사이트1)의 설명에 따르자면 “‘전문매개자’는 지역 내 다양한 인적 자원, 공간자원, 기획·홍보 역량을 시민의 활동과 결합하여 지원하는 사람으로서, 3단계의 레벨 활동가(마스터, 리더, 챌린저)로 분류되고, ‘시민매개자’는 지역 생활예술모임의 소네크워크(小 Network)를 구성하고, 시민활동 리더로서 네트워크를 이끄는 사람”으로 활동하게 된다. 

서울문화재단 생활문화지원단에서는 당시 3차에 걸친 생활예술매개자 공모 사업을 통해 수백 명의 생활예술매개자를 선발했고 이들을 생활문화지원단의 각종 프로그램에 파견했다. 생활예술매개자가 생활예술 활성화에 기여하리라는 바는 분명하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점검해봐야 할 바는 국내에서 ‘매개자’의 개념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고 있는가다. 생활예술매개자에서 생활문화활동가로 이름은 바뀌었지만, 생활예술매개자든 생활문화활동가든 둘 다 “시민 스스로 생활예술 활동의 주체로서 다양한 정보와 자원을 지원받아 활용할 수 있도록 촉진시켜주는”(서울문화재단 생활문화플랫폼 웹사이트 참고) ‘매개자’다. 예술가와 문화기획자, 예술가는 아니지만 생활예술 활동을 꾸준히 해 온 시민 등 다양한 사람들이 시민의 주체적인 생활예술(생활문화) 활동을 촉진하는 매개자가 되어 실제 생활예술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이처럼 다양한 배경을 지닌 이들이 생활예술을 매개하는 공통된 역할을 효율적으로 해내기 위해, 나아가 건강한 지역예술생태계를 구축하고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발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교육 과정과 운영 방향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민지은과 지영호는 「『문화매개자médiateur culturel』의 개념과 양성에 관한 연구」에서 우리보다 앞서 문화매개자에 대한 논의를 진행한 프랑스에서의 매개 개념을 설명해주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80년대에 이미 ‘문화매개(Médiation culturelle)’라는 개념이 등장했다. 이 개념의 배경에는, 더 많은 사람이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낮추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문화적 역량을 갖추게 하는 예술교육 및 생활예술과 같은 참여형 문화생산을 중시한 프랑스 문화정책이 있다.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문화매개 및 이를 가능하게 하는 문화매개자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프랑스에서는 문화매개를 이야기할 때 ‘메디아시옹(Médiation)’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한국어 ‘매개’에 해당하는 프랑스어로는 메디아시옹뿐 아니라 ‘앙떼르메디에르(intermédiaire)’도 있다. 앙떼르메디에르가 두 가지의 서비스를 연결하는 행위,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행위라고 한다면, 메디아시옹은 두 사람 혹은 두 조직 간의 조정 혹은 화해를 위해 중재한다는 뜻이 있다. 따라서 메디아시옹은 앙떼르메디에르보다 적극적인 의미, 곧 ‘조정 혹은 화해’라는 뜻까지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2)

그런데 프랑스에서도 이 문화매개자라는 개념이 수용되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왜냐하면 문화매개 활동의 전문성을 표현하기에 너무 포괄적인 단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예술의 장르에 따라, 공간에 따라, 대상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예술가의 역할을 어떻게 매개라는 단어 하나로 포괄할 수 있느냐는 말이다. 작은 규모의 조직일 경우에는 기획에서 회계, 홍보, 마케팅까지 모두 진행해야 하는 복합 분야의 문화매개자로 일해야 하는 반면 분야별 분업이 잘 되어 있는 큰 조직에서는 자신의 전문성만 발휘하면 되는 식으로 매개자의 역할은 다양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 매개자 제도의 문제점도 바로 위와 같은 어려움을 안고 있다. 매개자가 해야 할 작업이 정확하게 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 다양한 상황에 맞는 다양한 대처법 없이 매개자들을 낯설고도 어려운 작업 환경에 던져 놓는 것이 바로 현시점에서 발생하고 있는 일인 것이다. 물론 매개자들은 수동적이거나 미숙한 존재가 아니다. 그들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해 예술적 방식으로 난관을 극복해가고자 노력하며, 많은 경우 그 노력이 빛을 발해 이들을 파견한 재단이나 이들과 함께 일한 기업·지역 기관에서 높은 만족도를 보인다. 하물며 교육이나 정책 지원을 통해 보다 준비된 상태로 매개 활동을 하게 된다면 이들의 예술적 노력은 훨씬 더 즐겁고, 그 자체로 예술적 빛을 발하는 성과로 남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여기서 참고할 만한 해외 문화예술매개자 과정을 소개할까 한다. 스코틀랜드의 ‘커뮤니티 아트’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진행되고 있는 생활예술의 움직임과 유사한 것으로, 1960년대 후반에 시작되었다. 스코틀랜드에서 운영 중인 ‘커뮤니티 아트 매개자 교육 과정’은 1989년에 처음 개설되어 1993년, 1999년, 2004년, 이렇게 세 번에 걸쳐 혁신적인 변화를 겪었다. 교육 과정을 수강한 학생, 담당 학교, 그리고 지역 기관이 그간 교육 과정을 진행하며 발견한 실제적인 문제점들을 종합적으로 진단하고, 이에 근간해서 교육 과정을 변화시켰다는 것이다.3) 교육 과정 운영에 있어 이렇듯 삼자가 만나 논의하고 결정한다는 것 자체가 신선하다. 특히 생활예술 활동처럼 교육대상자, 생활예술매개자, 매개자를 교육 프로그램에 파견하는 재단, 매개자들과 함께 일하는 기업 또는 지역 기관 등 다자가 협업하는 경우 모든 당사자가 교육 과정의 변화에 목소리를 내는 논의 거버넌스는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생활예술매개자 교육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이론적이거나 추상적인 논의가 아니라 현장 체험을 통해 직접 느끼고 배우는 것이다. 매개자들은 기업 또는 지역 기관과 관계 맺으며, 모든 사람은 예술적 경험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하고, 따라서 누구나 예술을 배우고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는 것이 기업 및 지역 기관에 몸담은 리더의 의무라는 점을 배울 수 있다. 또한 로빈슨이 이야기하듯이 “모든 사람은 창조적 역량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은 종종 그게 무엇인지 모른다”4)는 점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스코틀랜드인들이 커뮤니티 아트 교육 과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아래의 인용문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미 1988년 스코틀랜드 예술위원회와 지방교육위원회, 그리고 칼루스테 굴벤키안 재단(Calouste Gulbenkian Foundation)5) 주최로 열린 회의에서 발표한 “커뮤니티 아트 교육의 미래”의 핵심적 주장은 다음과 같다.

여기[커뮤니티 아트 교육 과정에서 배워야 할 것 -필자 주]에는 평가 및 평가 기술, 기금 모금 기술 연구 및 보고서 작성, 협상 기술, 집단 내에서 원만한 대인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 교수법 및 협업의 방법, 타인을 축하해주는 방식 및 자원 관리가 포함된다. 이외에 필수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다른 능력으로는 지방 정부의 행정 시스템에 대한 이해와 협의 절차에 대한 이해, 계획, 정책 개발 및 실행, 예술 및 디자인 기술이 포함되었다.6)

위의 인용문을 보면 스코틀랜드에서 커뮤니티 아트 매개자들이 학습해야 할 내용을 얼마나 포괄적이면서도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는 국내 매개자 교육 과정에 시사하는 바가 큰데, 특히 협상 기술이나 협업의 방법, 또는 지방 정부의 행정 시스템에 대한 이해와 같은 행정학적 분야는 생활예술 활성화를 위해 반드시 습득되어야 할 지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밖에도 스코틀랜드 교육 과정에서 흥미로운 점은 수강생들이 커뮤니티 아트 참여자로서의 포지션과 매개자로서의 포지션 두 개의 입장을 모두 경험하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참여자로서의 포지션에서 수강생들은 참여 과정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그 느낀 점을 어떻게 다른 참여자들에게 전달할 수 있고 그 효과는 무엇일지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 이를 통해 수강생들은 매개자의 역할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왜 그런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했는지를 성찰하게 된다. 나아가 그 ‘매개성’이 다른 환경과 다른 대상들 사이에서 어떻게 역할할 수 있을지 추론해볼 수도 있다.7)

 

생활예술은 단순히 문화예술 분야의 동호회 활동이 아니다. ‘생활’과 ‘예술’이 적극적으로 결합하여 서로 파고들기 위해서는 생활과 예술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 

지속 가능한 생활예술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생활예술매개자가 육성되고 또 제대로 된 육성 과정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 글에서는 스코틀랜드의 사례를 들어 시사점을 찾아보고자 했다. 지역 공동체의 예술 활동을 매개하는 인력으로서 갖춰야 할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인문학, 사회과학, 법학, 행정학 등 다양한 학문을 참조한 이론과 이론을 실현하는 현장을 결합한 교육 과정은 분명 국내 생활예술매개자 양성을 위해 도움되는 점이 있다. 

현재 생활예술매개자를 비롯해 대부분의 국내 매개자 양성 과정은 그 기간이 너무 짧고 내용의 깊이도 얕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장기간에 걸친 심도 있는 교육 과정을 촉구함과 동시에 이러한 교육 과정이 지역의 생활예술인뿐만 아니라 전문 예술인의 관점에서도 지속 가능한 교육 과정이어야 함을 강조하고 싶다. 이와 더불어 강조하고 싶은 점은 고등교육 과정에 문화예술매개자 양성이 포함되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국공립 시설 혹은 민간 기관에서 문화예술매개자 교육 과정을 운영하는 한편 대학에 전공 과정으로 설치한 경우도 많다. 예술을 전공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반드시 ‘예술가’가 되는 것만이 아니라 예술을 매개로 하는 다른 직업을 택하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국내 예술 분야 교육 과정은 그렇지 않다. 예술대학을 졸업해서 지속 가능하게 창작 활동을 하며 살아가는 가능성은 매우 낮은데, 정작 예술가 외의 예술 분야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대학 교육 과정은 매우 부실하다. 그러므로 이 시점에서 연구되어야 할 것은 기존 문화매개자 교육 과정의 개선뿐 아니라 전체 예술대학 교육 과정에 불어와야 할 혁신적 변화의 바람이라고 감히 제언하는 바이다. 


1) 2020년께 서울문화재단 생활문화지원단 웹사이트는 서울문화재단 생활문화플랫폼 웹사이트(http://www.artandlife.kr/)로 개편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현재 웹에서 서울문화재단 생할문화지원단 웹사이트에 접속하는 것은 불가능함을 밝혀둔다. 


2) 민지은, 지영호,「『문화매개자médiateur culturel』의 개념과 양성에 관한 연구」. 『예술경영연구』, 37권, 한국예술경영학회, 2016, 189쪽.


3) Julie Austin. “Training Community Artists in Scotland”, Art, Community and Environment: Educational Perspectives, Glen Coutts, Timo Jokela ed., Intellect Books Ltd., 2008.


4) 위의 책, 181쪽. 


5) 포르투갈에 본부를 두고 있는 재단으로 영국 지부는 1956년에 개소했으며 영국의 문화예술, 사회복지, 교육 영역에 투자하기 위해 설립됐다. 


6) Clinton, L, Community Development and the Arts, 2nd Edn., London: Community Development Foundation, 1994. 


7) Austin, 2008, 181쪽. 

2021. 11.

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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