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의 마음’이 무언의 몸짓이 될 때, 축제는 시작된다
— 강영규 춘천마임축제 총감독

인터뷰어

한승희  ✳︎「잇다」 편집부

‘춘천의 마음’이
무언의 몸짓이 될 때, 
축제는 시작된다 


강영규 춘천마임축제 총감독

인터뷰어
한승희 「잇다」 편집부


춘천에 국내 대표 마임 예술축제가 자리 잡게 된 계기는 어찌 보면 우연에 가깝다. 춘천 사람 유진규 마임이스트가 고향땅에서 1989년 ‘제1회 한국마임페스티벌’을 연 것이 춘천마임축제의 시작이었으니, 만일 유진규 마임이스트가 해남 사람이거나, 제주 사람이었다면 마임축제의 본거지는 춘천이 아니었을 확률이 높다. 

한편 우연은 시간과 함께 운명이 됐다. 한국마임페스티벌이 매년 규모와 수준을 천천히 높여가며 춘천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고, 1995년엔 그 이름마저 ‘춘천국제마임축제’로 바꿨다. 그렇게 32년 동안 춘천, 마임, 축제란 다소 이질적인 세 요소의 결합은 코로나19바이러스도 어찌하지 못하는 단단한 조합이 됐다.

 

한창 2021춘천마임축제의 가을시즌을 준비 중인 강영규 춘천마임축제 총감독을 축제극장몸짓 인근 카페에서 만났다. 강 총감독은 대전에서 공연 기획과 배우 활동을 해오다 2008년 춘천마임축제 사무국에 합류했다. 2013년부터 2년간 춘천을 잠시 떠나 서울에서 세종문화회관 야외 공연 PD, 하이서울페스티벌 거리축제 기획실장으로 일했으나, “결국 내가 진짜로 만들고 싶은 건 춘천마임축제”라는 생각에 당시 난항을 겪고 있던 춘천마임축제 사무국장으로 복귀했다. 2019년 7월에는 춘천마임축제 총감독으로 부임했는데, 절묘한(?) 타이밍 덕분에 코로나 시대를 맞이한 춘천마임축제의 새로운 장(章)을 여는 막중한 임무를 지게 됐다.

강영규 총감독.

Q. 이미 상당히 회자됐지만, 지난해 여름 진행된 ‘춘천마임백씬(100Scene) 프로젝트’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다. 2020년 5월 한 차례 2020춘천마임축제 취소 사태를 겪은 후, 축제의 ‘분산’과 ‘일상화’란 열쇳말로 팬데믹 위기를 새로운 형식의 마임축제를 만드는 데 영리하게 역이용하며 다시 한 번 축제를 성공으로 이끌었다. 한편으로는 춘천에서 30년 넘게 꾸준히 축제를 만들어오며 쌓은 내공이 있었기에 가능한 시도였다는 생각도 들었다. 

 

강영규 춘천마임축제 사무국이 소규모 민간단체이다 보니, 축제 역사가 30년이 넘었음에도 전용 공간이 없다. 축제를 하려면 넓은 잔디밭이나, 주차장 등 편의시설을 갖춘 야외 공원 같은 장소가 필요한데 민간에서 이런 공간을 소유하고 있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해마다 축제를 열 만한 공간을 찾아다니는 게 사무국 스태프들의 일이다. 덕분에 춘천 곳곳에 있는 자투리 공간들, 건물 옥상이나 건물 사이 공터 같은 것들을 꿰고 있다. 그렇게 춘천 곳곳의 유휴공간들에서 축제를 많이 했다.

작년 5월 축제 이후, 이런 숨은 공간을 100곳 찾아서 100일 동안 게릴라 공연을 해보자고 후배들에게 아이디어를 던졌다. 순간 정적이 흘렀지만(웃음), 줄곧 우리가 해왔던 방식이라서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봤다. 대략적인 기획안을 만들어 춘천마임축제 이사회 총회에서 발표했는데, 이사 중 한 분이 “100일 동안 100곳에서 공연하는 건 너무 힘들 것 같으니, 100‘씬(scene, 장면)’은 어떠냐”고 제안했다. 괜찮은 아이디어란 생각과 동시에, 당시 사회적으로 백신에 대한 기대가 컸던지라 백신을 너무 가볍게 다루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살짝 우려도 됐다. 그래서 꼭 국문과 영문을 병기해 ‘백씬(100Scene)’이라 쓰기로 하고, 7월부터 ‘춘천마임백씬(100Scene)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팬데믹 위기에 대응해 축제의 ‘일상화’, ‘분산’을 열쇳말로 기획한 춘천마임백씬(100Scene) 프로젝트 현장.
클라운진이 ‘벌룬매직저글링쇼’를 선보이고 있다. ⓒ사단법인 춘천마임축제

Q. 어떤 면에서는 팬데믹 위기가 변화하는 시대에 부합하는 축제의 새로운 방식, 새로운 의미를 고민하고 시도하는 전환점이 된 것 같다. 

 

강영규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게 “이런 상황에서 왜 축제를 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었다. 주변에서 “지금 이 시국에 축제를 여는 건 광화문에서 집회 여는 것과 뭐가 다르냐”는 얘기도 들었다. 축제는 먹고 사는 문제도 아니고,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즐기는 건데 이걸 꼭 지금 해야겠느냐는 거다. 항변하긴 했지만, 어떤 사람들은 축제를 이렇게 생각한다는 걸 깨달았다. 저는 예전부터 축제란 사람들에게 위안과 행복, 용기를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모든 게 굉장히 관념적 수사처럼 느껴졌다. 축제의 위안과 행복, 용기를 사실 아무도 받으려 하지 않고, 필요하다고 느끼지도 않는데 우리가 굳이, 도와주고 싶어서 안달하는 것 같은 발상은 아닐까, 그렇다면 축제를 굳이 왜 해야 하나…. 게다가 축제 못하게 해야 한다는 민원까지 쏟아지던 상황이었다. 

그러다 4월 16일 세월호 침몰 사고 6주기 추모일에 강경화 당시 외교부 장관이 "우리가 세월호를 경험했기에 코로나 위기도 잘 이겨내고 있는 것 같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그 말을 듣고서 세월호 사고가 우리에게 준 교훈, 메시지는 무엇인지 생각해봤다. 아마도 ‘잊지 않겠다, 기억하겠다’가 아닐까. 그렇다면 지금 이 시기를 예술로 기록하고, 축제로 공유하는 것 또한 중요한 가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지금 시기를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축제’를 만들어보자고 마음먹게 됐다.

여태껏 거리에서 물을 뿌리며 난장을 벌이는 ‘아수라장’으로 축제를 개막해왔는데, 2020춘천마임축제 때는 대신 자원봉사자, 스태프, 아티스트 200명가량이 방역복을 입고 춘천 시내를 방역하면서 시작하기로 했다. 이런 우리를 보고 축제 하지 말라던 시민들이 ‘수고한다’고 한마디 건네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축제는 성공한 거라고 생각했다. 이밖에 코로나 시국에 대응하는 여러 아이디어를 더해, ‘2020 춘천마임축제 플랜 B : 1미터와 2미터 사이 어딘가‘라는 이름으로 2020춘천마임축제 개막을 예고했다. 그런데 5월에 서울 이태원 클럽에서 코로나 집단 감염 사태가 터졌고, 결국 춘천마임축제 32년 역사상 처음으로 축제가 취소됐다. 2010년 천안함 피격 사건, 2012년 메르스(MERS) 유행, 2014년 세월호 침몰 사건 등 국가적 재난 상황 속에서도 축제가 취소된 적은 한 번도 없었고, 불을 사용하는 ’도깨비난장‘ 때 비가 온 적도 단 한 번 없었는데 축제가 취소된 거다. 재수 없는 사람이 축제 총감독을 맡아서 이렇게 됐나 싶어서(웃음), 잠이 안 왔다. 

축제를 하지 말라는 시민들의 민원을 보면서, 코로나가 문제가 아니라 축제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앞서 수많은 역경들이 있었는데도 축제는 계속됐으니까. 문득 ‘사람들에게 축제는 공원에 가까울까, 클럽에 가까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사람들이 ‘집콕’하는 상황이라, 도시에서 유일하게 자연환경을 누리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인 공원의 가치가 더욱 중요하게 대두되던 때였다. 그래서 후배들과 자원봉사자들에게 ‘축제는 공원에 가깝니, 클럽에 가깝니’ 물었는데, 애들이 되게 미안해하면서 ‘클럽에 가까운 것 같다’고 답하더라(웃음). 시대는 도시민에게 ‘쉼’을 제공하는 공원을 요구하는데, 축제는 클럽 같은 이미지였던 거다. 앞으로는 공원 같은 축제를 만들어야겠다고 깨닫게 된 계기였다. 

춘천마임축제 취소 발표 직후 강원도민일보에 사설이 한 편 실렸다. “틀에 갇히지 않고 진화를 거듭해 온 것이 춘천마임축제의 오늘을 있게 한 힘이다. 전통의 기준과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다른 것을 추구한 것이 생명력의 원천일 것이다. 무대와 형식 모두의 파격을 통해 언제나 새로운 감동을 선사해 왔던 것이다. 거리로 공원으로 어디든 달려가 무대의 경계를 허물었다. (중략) 삶의 현장이 무대가 되면서 배우와 관객이 한데 어울리고 춘천마임축제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었다. 경계를 허무는 것이야말로 모든 예술의 지향하는 바일 것이다. 5월이면 춘천마임축제를 떠올리고 정화(靜化)를 갈망한다. 올해는 이 무언의 함성을 들을 수 없지만 그 부재가 또 다른 거대한 마임이 됐으면 한다. 축제 취소가 32년 역사의 의미 있는 쉼표가 되기를 바란다.”우리더러 춘천의 산, 강, 호수, 거리, 어디든 달려가라는 주문처럼 들렸다. 기다리고 있지 말고, 너희가 찾아가라, 어디든 달려가라 - 라고.

춘천마임축제는 ‘특별한 축제’와 ‘평범한 일상’의 경계를 허물며 명실공히 춘천 대표 문화예술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사진은 2021 춘천마임축제 봄시즌 중 다미르씨어터의 <선물> 공연 장면. ⓒ사단법인 춘천마임축제

Q. 춘천마임축제가 춘천 곳곳으로 사람들을 만나러 찾아가고 있다고 했는데, 그런가 하면 해마다 춘천마임축제를 만나기 위해 여러 지역에서 문화예술인을 꿈꾸는 청년들이 춘천으로 찾아오기도 한다. 축제 현장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자원활동가 ‘깨비’ 이야기다. 깨비들의 활동 내용을 보면, 단순히 현장 운영을 보조하는 게 아니라 사무국 스태프들과 함께 축제를 기획하고 적극적으로 운영하며 봉사자 이상의 역할을 하더라. 덕분에 문화기획자, 축제기획자를 꿈꾸는 청년들에게는 현장 실무를 제대로 경험할 수 있는 훌륭한 기회가 되고 있다.

 

강영규 자원활동가에게 ‘깨비’, ‘깨비짱’이란 이름이 붙은 건 1998년부터 ‘도깨비난장’을 시작하면서다. 도깨비난장은 춘천시 서면에 있는 ‘고슴도치섬’(정식 명칭은 ‘위도’)에서 무박 3일로 열리는 프로그램인데, 도깨비난장이란 이름에서 ‘깨비’란 이름을 따오게 됐다. 

그러다가 2000년대 중반에 정말 열심히 하는 깨비 친구들을 자원활동가를 넘어 일종의 인턴, 미래 문화기획자로 키워보자는 취지에서 깨비의 리더 격인 ‘깨비짱’이란 포지션을 만들었다. 스태프들도 자기 팀에 유능한 깨비짱을 포섭하려면 PR을 해야 할 정도로 축제에서 깨비짱의 존재감이 크다. 아예 깨비짱이 기획부터 운영, 예산 집행까지 다 하는 별도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우리 전략은 깨비가 깨비짱을 보면서 “나도 내년엔 깨비짱해야지” 하고 부러워하게 만드는 거다.

축제 끝나고 나면 사무국은 여러 상설사업을 하는데, 이 현장에 깨비와 깨비짱이 유급 인턴으로 채용되기도 한다. 마임축제에서 워낙 다양한 경험을 쌓았기 때문에 사무국 상설사업에서도 여러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그러다가 슬쩍 사무국 직원 안 뽑느냐고 물어오는 친구들도 있다(웃음). 실제로 현재 사무국 전체 17명 중 10명이 깨비짱 출신이다.

춘천마임축제의 자원활동가인 ‘깨비’와 ‘깨비짱’이 2021 춘천마임축제 봄시즌을 준비하는 ‘몸짓 워크숍’에서 공연 연습을 하고 있다. ⓒ사단법인 춘천마임축제

Q. 어느 조직에서든 역량 있는 인재를 찾는 일은 무척 어려운 과제인데, 깨비와 깨비짱 덕분에 춘천마임축제는 대도시에 비해 인구도 적고 문화예술 활동 기회도 많지 않은 춘천에서 끼와 열정이 넘치는 축제기획 유망주를 꾸준히 발굴하고 있다. 이 또한 춘천마임축제의 중요한 성과가 아닐까 싶다.

 

강영규 춘천마임축제는 꾸준히 진행되기 어려운 3가지 요소를 다 갖췄다. 첫째, 순수예술을 다룬다. 둘째, 그것도 돈이 안 되는 마임이다. 셋째, 심지어 서울도 아닌 춘천에서 한다. 여기에 하나 더하자면 지자체가 아니라 민간단체에서 꾸려가기 때문에 더더욱 인력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그러다 보니 사무국에는 상근 스태프 2명 정도만 남고 나머지는 흩어져 있다가 축제 기간에만 모여 일하는 상황이 계속됐고, 올해의 경험이 다음해로 전승되지 못했다. 

축제를 지원하는 공공예산이 불안정한 것도 문제였다. 축제 지원 예산은 한때 9억원에서 3억원까지 쪼그라들었다가 현재 6억원이다. 이렇게 불안정한 공공예산에만 의존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사무국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상설사업을 기획하게 됐다. 마임축제의 이런저런 프로그램들을 하나씩 찢어서 운영하는 방식이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렇게 프로그램들을 분리해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교육진흥원, 춘천시, 춘천문화재단 등 다양한 공공기관 지원 사업과 연계해서 예산을 확보하고 있다. 상설사업이 생기면서 스태프들이 축제가 끝나고도 사무국에 계속 남아있을 수 있게 됐고, 상설사업을 진행하면서 얻은 아이디어나 기획한 작품이 자연스럽게 다음연도 축제의 자원이 되는 순환 구조가 만들어졌다. 

 

 

Q. 올해도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 춘천마임축제는 용케 춘천의 봄-여름-가을을 함께해오고 있다. 게다가 이례적으로 ‘지구의 봄’이란 주제도 내걸었다. 2021춘천마임축제에서 담고자 한 것, 춘천시민들과 나누고자 한 것은 무엇인가.

 

강영규 솔직히 작년에 우리가 꽤 잘했다고 생각한다(웃음). 그래서 더 2020년보다 2021년 축제 준비가 더 어려웠다. 춘천마임백씬(100Scene) 프로젝트가 워낙 주목을 받았던지라, 사람들을 실망시키면 안 된다는 압박이 있었다. 그래서 후배들에게 “우리가 대단한 일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열심히 한 것뿐이지 않느냐, 사람들에게 주목 받자는 생각으로 축제를 기획하지 말자‘고 했다. 

이번 축제를 기획하면서 여러 고민이 있었다. 근 20년 동안 현장에서 사람들과 실제로 만나는 오프라인 축제를 만들어왔는데, 이제 시대는 온라인이 대세인 것처럼, 메타버스가 답인 것처럼 이야기하고 오프라인은 시대착오적인 것처럼 취급하는 거다. 그건 아닌 것 같은데, 가장 중요한, ‘몸’에 관한 느낌은 온라인에서 찾기 어려운데.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춘천마임축제 이사장님이 “지금 ‘온택트(ontact)냐, 콘택트(contact)냐’ 논하는데 핵심은 그게 아니고 우리 모두가 ‘로스트 제너레이션(lost generation)’, 잃어버린 세대라는 것”이라고 짚었다. 학생들은 수업을 잃었고, 소상공인은 가게를 잃었고, 예술가는 무대를 잃었다. 따라서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우리는 온택트, 콘택트가 아니라 ‘딥택트(deeptact)’, 사람들이 좀 더 깊이 있게 축제를 만나고 느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예전보다 주요 관객층을 더 좁게 잡았다. 20대, 가족 단위 시민이 아니라 이를테면 ‘아이를 유치원에 보낸 엄마’, ‘주말에 일하고 월요일·화요일에 쉬는 사람들’로 구체화하는 식이다. 주요 관객층을 좁히면 그 단위가 40명, 50명, 100명으로 줄어들기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에 맞추기도 수월해진다. 게다가 아이 유치원에 보내고 모처럼 여유를 누리고, 남들 다 일할 때 평소 못 보던 공연을 보는 상상 자체가 기분 좋지 않나. 

그동안은 마임축제는 주제를 선정하지 않았는데, 주제가 되려 참여 아티스트의 상상력을 제한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작년부터는 시대에 맞는 메시지를 던지는 게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2021춘천마임축제의 주제인 ‘지구의 봄’은 환경운동가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이 쓴 『침묵의 봄』에서 착안했다. 춘천은 그 이름에 봄(春)을 담고 있는 봄의 도시다. 봄의 도시 춘천에서 춘천마임축제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고민했고, 도시에 봄의 희망을 전하는, 봄의 전령사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2021년에도 봄은 올 테지만 우리는 여전히 마스크를 쓸 것이고, 마스크 안에서 사람들의 감성과 마음은 굳어갈지도 모른다. 어쩌면 마스크와 함께 우리가 맞이하는 이 봄이 ‘침묵의 봄’이 아닐까 싶었다. 그렇다면 이 봄의 침묵을 마임으로 깨뜨리고, 사람들의 무뎌진 감성을 깨우는 게 춘천마임축제의 미션이 돼야 했다. 그렇게 해서 조금이라도 지구의 봄을 되찾을 수 있길 바랐다. 

 

 

Q. 생각해보면 강원도의 소도시 춘천에서,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예술 장르인 마임 축제가 해마다 열린다는 게 놀랍고, 신기(?)하기도 하다. 팬데믹을 계기로 춘천마임축제는 앞으로 춘천시민의 일상 곳곳으로 스며들 텐데, 춘천 시민들에게 춘천마임축제란 어떤 인상, 의미일지 궁금하다. 여기에 대해 사무국에서는 어떻게 보고 있나. 사무국 스스로도 ‘춘천 대표 문화예술 축제’로서의 자부심을 느끼나(웃음).

 

강영규 그렇게 만들고 싶다. 문득 떠오르는 장면들이 있다. 일상 사업 프로그램으로 춘천에서 활동하는 뮤지션들과 함께 거리 공연을 열었는데, 뮤지션들이 마임을 하는 게 아니라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도 보고 있던 시민이 전화 통화를 하면서 “어, 여기서 지금 마임 한다”고 말하는 걸 들은 적 있다. 마임이 없는데도 시내 일상 공간에서 뭔가 새로운 공연이 열리면 춘천 사람들은 ‘춘천마임축제’를 떠올리는 게 아닐까 싶었다.

한번은 대학로에서 ‘문화의거리’ 행사를 진행하며 큰 폭죽을 터뜨렸는데, 그게 전깃줄에 걸린 거다. 결국 사다리차가 동원됐다. 위험할 수도 있어서 스태프들이 사다리차 주변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보행로를 안내하는데, 이 상황을 연출된 퍼포먼스로 인식했는지 사람들이 “지금 마임축제 하나봐”하며 서서 구경하는 거다(웃음). 뭐랄까, 약간 ‘웃픈’ 기분이긴 했다. 

시민 누구나 산책하다가 마임 공연을 볼 수 있도록 기획한 ‘걷다보는마임’이란 프로그램이 있다. 두 할머니의 대화가 인상 깊게 남아있는데, 한 분이 “마임축제를 왜 이렇게 짝게 혀?” 하고 물으시니까 다른 분이 “아이고, 코로나 때문에 작년부터 이렇게 흩어져서 짝게짝게 한다잖어”라고 답하셨다. 작년 마임백씬(100Scene) 프로젝트의 핵심어가 축제의 ‘분산’과 ‘일상화’였는데, 할머니께서 우리의 의도를 정말 잘 이해하고 계시는구나, 싶었다. ‘흩어져서’, ‘짝게짝게’. 이 말이 굉장히 마음에 와닿았다. 

 

 

Q. 마지막 질문이다. ‘춘천’이란 도시에서 ‘마임’이란 장르로 ‘축제’를 한다는 것의 의미란 무엇일까.

 

강영규 마임(mime)’이란 단어는 ‘흉내내다’란 의미의 그리스어 ‘미모스(mimos)’에서 유래했다. 예컨대 벽을 짚는 흉내를 내서 없던 벽을 만들어내고, 그 벽이 내게 점점 다가와 나를 억압하고 짓누르는 상황을 만들어내 인간의 답답한 마음을 표현하는 게 마임이다. 어느 현대예술가는 마임을 ‘말이나 텍스트를 배제하고 인간의 몸짓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흉내내서 전달하는 장르’라 정의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춘천마임축제는 춘천이란 도시의 마음을 텍스트나 언어가 아닌 몸짓으로 흉내내어 사람들과 공유하는 매개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보통 마임을 ‘논버벌(non-verbal, 비언어)’ 퍼포먼스라고 하는데, 저는 ‘비욘드버벌(beyond-verbal)’, 즉 말이 필요 없는 장르라 표현하고 싶다. 따뜻하고, 멋지고, 재밌고, 상쾌하고 – 이런 느낌은 말이 필요 없지 않나. 춘천마임축제가 이처럼 말이 필요 없는 느낌을 사람들에게 선사하는 축제가 되었으면 한다.

코로나도 묵묵히 이겨낸 춘천마임축제는 앞으로도 춘천시민의 일상에 스며들어 ‘춘천의 마음’을 몸짓으로 전달할 것이다.
사진은 춘천마임백씬(100Scene) 프로젝트 중 마임시티즌의 <슈트맨> 공연 장면. ⓒ사단법인 춘천마임축제


2021. 11.

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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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 033-240-1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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