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수자를 보듬는
문화예술교육의 가능성
이주여성 대상 프로그램 운영하는
살롱더스트링, 아트낫뮤즈 좌담
좌담 참여
살롱더스트링
변선희 대표
박희진·엄현정 강사
아트낫뮤즈
김채윤 대표
김해인 강사
진행 및 정리
「잇다」 편집부
좌담 참여
살롱더스트링
변선희 대표
박희진·엄현정 강사
아트낫뮤즈
김채윤 대표
김해인 강사
진행 및 정리
한승희 ✳︎「잇다」 편집부
올해 강원문화재단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사업(이하 지원사업)은 ‘점점 크게, 점점 작게’란 제목 아래 지역 주민, 문화소외지역(고성, 삼척, 양구, 양양, 철원, 화천) 주민, 지역 내 문화적 소수자를 위한 문화예술교육 활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중 ‘문화적 소수자’에 중점을 둔 프로그램은 다수와는 다른 ‘소수의 힘’을 ‘다양성’에서 찾는다. 다양한 소수가 모여 다채로운 문화를 만들고, 문화가 이토록 가지각색이라는 것을 알아가는 과정. 그 과정은 ‘지역 주민’이라는 큰 범주에서 ‘우리 동네 이웃’으로 그 반경을 좁히고, ‘남’만이 아니라 ‘나’의 소수자성을 성찰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문화 다양성’을 제고하는 맥락에서 주목하는 ‘문화적 소수자’는 어떤 사람들일까. 이들은 이른바 주류 문화에 가린 비주류 문화에서 나의 정체성을 찾는 사람들일 수도 있는 한편 ‘일반적’인 문화예술 활동에 참여하려면 갖춰야 할 것도 많고 넘어야 할 벽도 높은 사람들일 수도 있다. 「잇다」가 만난 두 단체, 살롱더스트링(영월)과 아트낫뮤즈(강릉)는 올해 지원사업에 선정돼, 이러한 문화적 소수자가 두려움이나 거리낌 없이 참여할 수 있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둘 다, 한국어가 서툴고 육아에 전념해야 하는 이주여성, 한국어를 잘 구사해도 한국사회는 낯선 이주여성에 주목했다. 이주여성이 문화예술을 즐기기 어려운 현실은 명백하고, 이 명백한 현실은 이주여성이 문화적 소수자임을 방증한다. 살롱더스트링과 아트낫뮤즈는 ‘왜 현실이 이러한가’를 묻기보다 ‘어떻게 이 현실을 바꿀 수 있을까’에 착목했고 곧 실천에 나섰다.
‘여성 예술인 공동체’를 내건 아트낫뮤즈와 역시 모든 팀원이 여성인 살롱더스트링이 여성, 그중에서도 이주여성을 문화예술의 장으로 불러들인 결실은 또 다른 열매를 맺는 씨앗이 될 수 있을까. 온라인으로 만난 살롱더스트링의 박희진 · 변선희(대표) · 엄현정 강사, 아트낫뮤즈의 김채윤(대표) · 김해인 강사는 두 단체가 현재 진행하고 있는 이주여성 문화예술교육 활동의 사정과 어려움, 포부 등을 이야기하며 서로 격려와 응원을 주고받았다.
살롱더스트링(위) 변선희(대표), 엄현정·박희진(왼쪽부터) 강사, 아트낫뮤즈 김채윤 대표(왼쪽), 김해인 강사.
Q. 두 팀 모두 올해 강원문화재단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사업 ‘점점 크게, 점점 작게’를 통해 이주여성과 함께하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살롱더스트링, ‘영월읍 문화로 예술1번지’ / 아트낫뮤즈, ‘나로부터’)을 진행하고 있다. 문화적 소수자 가운데 이주여성에 주목한 까닭이 무엇인지, 이주여성을 위한 ─ 이주여성이 참여 대상이자 주체가 되는 ─ 프로그램을 구상한 계기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김채윤 여성 예술인 공동체이다 보니, 처음부터 여성이 주체가 되는 예술에 초점을 맞췄고 주로 ‘여성’을 주제로 활동해왔다. 활동하면서 강릉에 사는 다양한 여성을 많이 만났다. 그중에서도 이주여성은 여러 정체성을 갖고 있다. 여성이고, 이주민인 동시에 외국인이고, (한국어가 서툴러) 언어 면에서도 소통 약자라 지역에서 가장 문화적으로 소외된 계층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복합적인 소수자성을 지닌 이주여성들을 만나 언어가 아닌 예술로 소통해보고 싶었다.
김해인 이번 프로그램을 구상하면서 ‘다양성’이란 가치를 가장 주목했다. 다양성을 보호하는 것이 공동체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는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나로부터’라는 프로그램 이름 자체가 ‘예술이 나로부터 시작된다’는 관점을 담고 있다. 다양성은 보편적 가치다. 이에 근거해서 나를 이해하는 것은 물론, 나아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폭넓게 이해하는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이주여성들이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성찰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목표다. 또한, 문화 다양성은 개인의 권리를 넘어 창조성의 원천이기도 하다. 이처럼 ‘다양성’과 ‘문화예술’의 만남을 넓고 깊게 다루는 관점에서 프로그램의 큰 그림을 그렸고,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변선희 우리도 아트낫뮤즈와 비슷하다. 팀원 3명 모두 여성인지라 여성이란 주제에 관심이 많은데다가, 우리가 활동하는 반경 안에서만도 이주여성들을 굉장히 많이 만난다. 어딜 가든 이주여성이 있다. 이주여성이 많은데도, 이들을 위한 문화예술교육 활동은 좀체 없더라. 영월군은 (문화체육관광부의) 법정문화도시 지정을 준비 중인데, 노인이나 청년을 대상으로 한 사업들이 대다수다. 작년에 법정문화도시 준비 작업에 참여하면서 청년 집단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됐는데, ‘청년’에 한국 국적의 이삼십 대 미혼만 있는 게 아니라 주부도 있고 이주여성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청년 정책’이라 하면 여전히 한국 국적의 미혼 남녀에 치중돼 있지 않나. 그래서 ‘청년 사각지대’에 놓인 (한국인) 육아 여성과 (외국인) 이주여성에 관심을 갖게 됐고, 그중에서도 문화적으로 더 소외된, 이주여성을 위한 프로그램을 해보자고 뜻을 모았다.
Q. 이 사업 전에도 이주여성의 문화예술 활동을 돕는 프로그램을 해본 적이 있나? 있다면, 이번 프로그램이 지난번과 어떻게 다른지, 이전 경험을 거울삼아 바꾸고 개선한 점은 무엇인가? 없다면, 이번 프로그램을 준비하며 특별히 염두에 둔 것이 무엇인지 듣고 싶다.
김채윤 이번이 처음이다. 프로그램을 준비하며 시혜적 태도를 경계하는 것을 가장 중시했다. ‘강사와 학생’은 위계에서 자유롭기 힘든 관계라, 우리가 그들을 ‘돕는다’, ‘가르친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프로그램 내용도 ‘학습’보다는 ‘소통’하고 서로 ‘연결’되는 것에 중점을 두고 꾸렸다. 미술 교육 프로그램이지만 그림을 그리는 스킬을 가르치기보다는 그림을 즐기는 마음이 생기도록 유도한다. 미술이라는 창조적 실험을 통해 새로운 발상을 떠올리고 자유롭게 표현하는 경험, 또 타인의 작업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남을 이해하는 경험을 제공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참여자들 가운데 전문적인 미술 교육을 받아본 사람은 없는 것 같은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한다는 이들은 많다. 다만, 자기가 그린 그림을 보고 풉 웃거나, ‘너무 초등학생 그림 같다’고 자기 검열하는 경우가 많아서 안타깝다.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이 공간에서 보내는 3시간(수업 진행 시간)만큼은 자기 검열 없이 자유롭게 표현해보자”고 독려한다.
ⓒ아트낫뮤즈
변선희 몇 년 전 영월문화재단에서 ‘문화 다양성’을 주제로 마련한 토크콘서트 진행을 맡았는데, 거기서 결혼이주여성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의 이야기를 무척 감명 깊게 들었다. 그때 이들과 악기를 매개로, 음악을 매개로 뭔가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작년에 이주여성 대상 프로그램으로 재단 지원사업에 신청했는데 떨어졌다. 지원금은 못 받게 됐지만, 그래도 꼭 해보고 싶어서 자체적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로 했고, 영월군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도움으로 이주여성 5~6명을 모아 1년간 가야금 수업을 무료로 진행했다. 참여자가 이주여성인 프로그램으로 진행한 첫 경험이었다.
지난해 이주여성 대상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깨달은 것을 토대로 사업 계획을 고치고 보강해 올해 다시 재단 지원사업에 도전했다. 지난해 기획과 올해 기획 사이의 두드러지는 차이라면, ‘교육’ 위주의 프로그램에서 ‘공동체 형성’을 지향하는 프로그램으로 바뀐 것이다. 참여자들의 국적이 다 다르고, 따라서 정서가 다르다. 또 국적이 같다고 해서 친하게 지내는 것도 아니다. 한국인이라고 해서 다 친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참여자들끼리 서로 알아가고 가까워지는 과정이 필요한데, 그런 것 없이 악기를 배우는 것에만 집중한 탓에 공동체가 형성되지 못했다. 음악과 ‘나’ 사이의 연결은 이루어졌지만, ‘나’와 ‘너’ 사이의 끈끈한 관계는 맺어지지 않았다. 이 점이 아쉬웠다.
해서, 올해는 참여자들끼리, 그리고 한국 여성이자 기획자인 우리 팀원들과 외국인 여성 참여자들이 함께 섞이도록 시도하고 있다. 서로 차이를 이해하고 관계를 만들어 나가려면 가르치고 배우는 수업보다 서로 편한 상태에서 경계를 허무는 과정이 선행해야 한다는 걸 지난해 경험에서 배웠다. 채윤님이 말한 것처럼, 우리도 악기를 연주하는 스킬에 관심을 두지 않기로 했다. 대화하면서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가까워지는 시간을 길게 갖는 게 중요하다고 보고 공동체 형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Q. 변선희 대표의 답변을 듣다 보니,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데 문화예술이 이바지하는 가능성을 생각해보게 된다. 이주여성 대상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 지역 내 이주여성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가능성에 대해 좀 더 이야기를 나눠보면 좋겠다.
김해인 비수도권 지역의 특색도 있다고 본다. 수도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문화예술 체험 기회가 적다 보니, 문화예술을 매개로 지역 안에서 공동체를 만들 기회도 적다. 지역 생활권에서 일상 속 문화예술을 접하는 기회를 확대하면 문화예술을 매개로 한 공동체를 만드는 것도 좀 더 쉬워지지 않을까. 예술은 언어가 필요 없는 활동이기 때문에 예술을 매개로 하면 언어 이상의 것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공동체라는 것이 무조건 함께 시간을 보낸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나. 사람과 사람 사이 교집합의 비중이 커져야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것 아닐까.
김채윤 지원사업 심사 면접에서도 선희님이 공동체 형성에 관해 이야기했는데, 인상 깊게 들었다. 다만, 공동체라는 것이 다른 누군가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이 사람과는 계속 인연을 쌓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야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지 않나. 우리 프로그램에서 참여자들끼리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면 참 좋겠지만,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같은 이주여성끼리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도 쉽지 않겠지만, 외국인과 한국인이 공동체를 이루기란 더 어려운 것 같다. ‘한국인인 내가 외국인에게 혹시 실례할까 봐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데, 무의식적으로 ‘내가 차별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이런 두려움은 서로 잘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들도 나와 같은 사람이고, 국적이 아니라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저마다 다르다는 걸 알게 되면 조심스러운 태도도 많이 없어지지 않을까.
변선희 두 분의 의견에 동의한다. 해인님이 말한 것처럼, 그저 함께 보내는 시간이 길다고 해서 공동체가 형성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우리 팀원들도 참여자들끼리 자연스럽게 가까워지도록,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개입을 최소화하고 있다.
우리도 궁극적으로는 한국여성과 외국인 이주여성이 모두 참여해서 또래 집단을 이룰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해보고 싶은데,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 이야기를 들으니 이런 취지의 모임을 열어도 사람들이 잘 안 온다더라. 한국인 엄마들 모임에 외국인 엄마들은 거의 참여하지 않고, 반대로 외국인 엄마들 모임에는 한국인 엄마들이 거의 참여하지 않는 실정이다. 한국인 여성과 외국인 이주여성이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편하게 섞일 수 있는 프로그램에 대한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
Q. 두 단체 모두 프로그램 참여자를 모집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다. 무엇이 가장 큰 난관이었나?
변선희 참여자 모집이 잘 안돼서 조사해보니, 이주여성 가운데 엄마들이 많았고, 그 대부분이 아이를 직접 돌보거나 어린이집에 맡기고 돈을 벌러 가더라. 이주여성만 참여하는 조건으로는 주말 프로그램만 가능했다. 그래서 주말 팀과 평일 팀을 나눠 진행하기로 하고, 아이와 함께 올 수 있게 참여자 조건을 바꿔 모집했다. 그렇게 홍보를 하니까 참여자가 모이더라. 첫 수업에 만 3세 아이들을 데리고 온 여성들이 있었는데, 아이들이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아서 아이들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더라. 어제 두 번째 수업을 진행했는데, 이번에는 두 돌도 안 지난 아기가 와서 한 팀원이 그 아기를 전담했다(웃음).
박희진 참여자 모집에 앞서 이주여성 관련 조사를 충분히 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탓에 모집이 어려웠던 것 같다. 다행히 재단 담당자가 잘 이끌어줬고, 영월군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도 실질적인 조언을 많이 해줬다. 다만, 우리가 이주여성이 실제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좀 더 깊이 헤아리지 못했다는 후회가 남아 있다.
김채윤 우리도 참여자를 모집할 때 제일 먼저 강릉시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 연락했는데, 강원문화재단에서 발급한 공문과 홍보 포스터를 웹사이트에 게재하는 정도의 협조만 있었지, 그 이상의 도움은 없었다. 이주여성을 어디서 어떻게 만나야 할지 모르겠어서 무작정 이주여성이 일하는 음식점에 찾아가기도 했고, 강릉원주대학교 국제교류원에 연락하기도 하는 등 여러 방면으로 노력했다.
Q. 진행하며 겪는 어려움도 적지 않을 텐데 현장에서 (특히) 곤란했거나 힘든 점은 무엇인지?
변선희 우리는 소통의 어려움이 큰 고민인데, 아트낫뮤즈는 참가자들과 한국어로 대화하는 것이 수월한지 궁금하다.
김채윤 수월한 편이다. 소통하는 데 무리 없을 만큼 대개 한국어를 잘한다. 현재 1기 참여자 중에는 직장인, 유학생이 많은데, 직장에 다니고 학교에 다닌다고 해서 반드시 한국어를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개 잘해서 한국어로 소통하는 데 딱히 어려움은 없다. 한국어를 아예 못하는 참여자도 있지만, 다행히 한국어를 잘하는 다른 참여자가 통역해줘서 어려움 없이 진행하고 있다. 또 미술 교육 특성상 말로 듣고 이해하는 것보다 보고 이해하는 쪽이 쉽고 빠르다. “붓을 세워서 끝으로 칠하세요”라고 백번 말하는 것보다 한 번 시범을 보여드리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아트낫뮤즈
변선희 우리 참여자 중에는 소통이 힘든 이들이 더 많다. 대개 한국어를 듣고 이해하긴 하는데 말을 잘하지 못해서, 질문하고 답하는 게 원활하지 않을 때가 많다. 건강가정다문화가족지원센터 봉사자가 통역을 도와주기도 하고, 한국어를 잘하는 참여자가 통역을 도와주기도 한다. 아무래도 영월이 강릉보다 농촌의 비중이 커서 그런지, 이주여성 대부분이 결혼을 계기로 한국에 왔다. 그래서 우리 프로그램 참여자는 모두 육아를 맡은 엄마들이다. 집에서 육아에 전념하다 보니 한국어를 익힐 시간도 없고 기회를 잡기도 어렵다. 이들이 한국에서 겪는 고충 1순위가 한국어더라.
어제 처음 온 참여자에게 “집에서 여기까지 오는 데 멀지 않아요? 얼마나 걸려요?”라고 물었는데 이해를 못했다. 그때 옆에 있던 참여자가 “집 멀어요? 시간 얼마예요?”라고 다시 물었더니 바로 대답했다. 한국어가 서툰 이주여성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표현을 쉽게 바꿔서 말하는 법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주여성들을 직접 만나보고 이주여성의 삶을 알아가면서, 이들에게 필요한 건 문화예술이 아니고 당장 먹고사는 것, 돈 버는 것, 아이 키우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기본적인 생활 욕구가 해소돼야 비로소 나 자신에게 빠져들어 마음을 채우는 욕구도 생길 텐데, 그렇다면 문화예술에 관심을 가질 엄두조차 안 나겠구나...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우린 고상하게(!) 악기를 연주하자, 예술을 만나자고 하는데 정작 이들에겐 그럴 시간이 있으면 돈을 벌러 가는 게 나은 거다. 그럼 이들을 위하는 최선의 방법은 아이를 대신 봐주고, 돈을 벌 수 있게 해주는 것 아닐까 생각했고, 예술가로서 예술로 그 방법을 찾고 싶었다. 해서, 음악 수업은 일단 제쳐 두고, 이주여성들이 잠시나마 육아에서 벗어나 사는 이야기를 나누며 쉬는 시간을 마련했다. 일단 이렇게 해 나가고 있지만, 이주여성의 삶에서 문화예술의 역할은 무엇인지에 관한 고민은 점점 더 깊어진다.
Q.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이주여성, 그리고 함께 오는 아이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변선희 애들이 좋아하니까 엄마들도 좋아한다. 첫 수업에는 엄마 셋, 아이 셋, 이렇게 여섯 명이었는데, 어느 엄마가 한국어 교실에서 프로그램 좋다고 자랑을 하셨는지 늦게 참여 신청이 들어왔다. 그래서 두 번째 수업 참가자가 추가됐다.
박희진 악기는 꺼낼 생각도 못 하고 있다(웃음). 악기를 꺼내면 다들 안 한다고, ‘이런 어려운 걸 배우는 자리면 난 안 왔다’고 할 것 같다. 이들이 여기 오는 즐거움을 찾는 게 먼저다. 대개 버스를 타고 오거나 다른 누군가가 데리러 가야 올 수 있는 여건이라, 일단 여기 오는 게 즐거워야 한다. 우리와 친해져서 음악을 가르쳐줄 수 있길 기다린다. 음악이라는 문화예술 활동을 매개로 이주여성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목표지만, 이 목표에 도달하기까지 필요한 것도 해야 할 일도 많다는 걸 실감한다.
김채윤 참여자 사이에 ‘이주여성’이라는 공감대가 있다. 같은 이주여성이라고 꼭 친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프로그램 참여자들은 같은 이주민, 외국인이라는 점에서 금세 가까워지는 것 같다. 그리고 수업에서 풍경화, 추상화 이런 ‘형식’에 얽매인 그림을 그리기 급급한 게 아니라 우선 내 이야기를 공유하고, 그걸 바탕으로 그림을 그리는데, 그리기에 앞서 내 이야기를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아무래도 내 얘기를 하면 마음을 열게 되고 가까워지니까 금방 친해지는 것 같다. 그리고 이렇게 그림에 접근하는 방식 자체를 신선하게 받아들이고 흥미로워하는 것 같다.
한편 매 수업 준비하면서 특히 고민하는 것은 참가자들이 원하는 게 다 다르고 수준도 다르다는 점이다. 무엇보다도, 참가자마다 활동 속도가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을 미처 못했다. 같은 것을 같은 시간 동안 그리도록 하는데, 10분 걸리는 참여자도 있고 30분 걸리는 참여자도 있다. 다른 사람들이 다 그렸다고 해서, 아직 다 못 그린 참여자를 그만하게 할 수는 없지 않나. 그래서 처음에 짠 커리큘럼보다 더 많은 자료를 준비해, 일찍 끝내는 사람에게 새로운 주제를 제안하는 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박희진 이주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 그리 다르지 않다는 걸 느낀다. 아이 엄마들이 대개 그렇듯 참여자들에게 뭘 물어봐도 아이 얘기부터 한다. 그럼 “아니, 아이 말고 당신 얘기를 해달라”고 한다. 그렇게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다 보면 점점 더 친해질 수 있을 것 같다. 진행자로서 앞으로 어떻게 해나갈지, 매번 어떻게 흘러갈지 기대된다. 다음 시간에는 무얼 계기로 삼아 또 재미난 이야기를 해볼까 생각한다. 참여자들도 그렇게 느꼈으면 한다.
엄현정 아이들을 좋아하는 편이라서 그리 힘들진 않은데, 말이 잘 안 통하는 게 문제다. 아이들이 어려서 그런지 이름을 불러도 반응이 없어서 아이들을 대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아직은 프로그램 초반이라, 앞으로 아이들과 더 친해져서 잘 지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겨우 두 번 만났는데 신기하게도 아이들 벌써 마음을 연 것 같다. 먼저 다가오기도 하고, 끝나면 집에 가기 싫어한다(웃음). 우리가 아이들에게 ‘한국 이모’가 되어줄 수 있다면 좋겠다.
ⓒ살롱더스트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