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이 힘으로 변할 때

엄정순 작가

우리들의 눈 설립자

결핍이 힘으로 변할 때

엄정순 작가

우리들의 눈 설립자


안 보이는데 미술대학을 갔다고요? 

그의 시야는 마치 안개가 잔뜩 끼어 있는 것과 비슷하다. 모든 형태는 흐릿하고 비슷한 색은 한 덩어리로 뭉쳐 있다. 그의 병명은 선천성 신경아교종, 이로 인해 그는 앞이 잘 안 보이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를 시각장애인이라고 하고, 그의 복지카드에는 ‘시각장애 1급 000’라고 적혀 있다. 

맹학교에도 여느 학교처럼 미술시간이 있다. 나는 000이 중학교 2학년일 때 만났다. 나는 코끼리만지기 프로젝트(touching an elephant project)를 기획하여 전국 맹학교를 순회하고 있었고, 2013년 6번째 프로그램을 그의 학교에서 진행했다. 그전까지 그의 미술시간은 점토로 컵 같은 소품을 만들거나 종이접기를 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런 그가 5년 후  미술대학에 들어갔다. 잘 보이지 않는 눈을 가진 그에게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것들이 더 많았고, 그 중에서도 가장 불가능한 일은 미술이었다. 더구나 화가가 된다는 것은 꿈에서라도 상상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그가 미술대학에 진학했고 현재 4학년이다. 한 소년의 성장기에 무슨 일이 있었던가?

 

코끼리만지기 프로젝트

나는 지상에서 가장 큰 동물, 살아있는 코끼리를 만난 경험을 미술로 표현하는 프로젝트를 기획하였다. 코끼리를 만나러 가기 전, 한 학기 정도 코끼리를 상상하고 표현하는 미술 워크숍을 한다. 시각장애 1급 000도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였다. 실제 코끼리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그에게 코끼리는 상상 속 동물이었다. 그는 코끼리를 만나러 태국까지 가는 먼 길 ─ 무려 3480㎞에 달하는 여정 ─ 을 상상한 지도를 그렸는데, 자기 키보다도 컸다. 또 코끼리의 크기를 상상하며 3층 높이의 큰 체육관을 그리기도 했다. 000을 포함한 아이들은 드디어, 프로젝트 진행을 돕는 예술가들과 함께 태국 치앙마이에 있는 코끼리자연공원(elephant nature park)에 갔다. 코끼리와 대면한 아이들은 자신의 ‘눈’으로 만난 코끼리를 만들며, 낯선 이국으로의 여행인 동시에 상상 속 코끼리를 직접 만나는 기회를 마음껏 즐겼다.

ⓒ우리들의 눈

왜 코끼리일까? 불경 ‘열반경’에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는 우화가 있다. 전체를 보지 못하면서 자기가 본 것만이 진리라고 주장하는 우리 인간들의 우매함을 꾸짖는 교훈적 내용이다. 옛날 이야기이지만 21세기인 지금까지 눈뜬 사람이 사는 세상 어디에나 있는 메타포다. 이 우화가 진리에 대한 성찰이라면, 코끼리만지기 프로젝트는 ‘안 보이니까 미술이 필요 없다’는 생각에 대한 전복이다. ‘시각장애인에게 미술이 왜 필요하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손으로 재료를 더듬기만 할 것 같은 시각장애인들이 만든 작품은 ‘시각장애가 결핍이라기보다 다른 가능성이 아닐까요’라고 되묻는 유쾌한 예술적 도발이었다.


‘지상에서 가장 큰 동물’은 앞이 보이지 않는 이들에게 미지의 세계이고 두려운 존재였다. 비시각장애인 어른인 나도 처음에 무서웠다. 태국까지 갔는데도 끝내 코끼리에게 가까이 가지 못하고 울기만 하다가 돌아오는 아이들도 있었는데, 무서워서 가까이도 못 갔지만 아이는 잠자는 코끼리를 만들어 그 두려움을 잠재웠다. 한편 사고로 실명한 코끼리를 만난 아이는 의안을 낀 코끼리를 만들었고, 원전 사고로 황폐해진 사회를 다리가 짧고 눈이 없고 귀가 3개인 기형코끼리로 표현하기도 했다. 

이가을(충주성모학교), <코끼리 피부>, 종이 위에 크레용, 2018.  ⓒ우리들의 눈

전북맹아학교 X 아티스트 (컬래버래이션), <전북코끼리>, 복합 재료, 2017. ⓒ우리들의 눈

이 프로젝트에서 코끼리를 만난다는 것은 단순히 코끼리라는 동물을 만나는 것 이상이다. 큰 생명체와의 대면에서 나 자신을 만나고 그렇게 만난 나를 꺼내보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예술가들과의 협업은 아이들을 더욱 빠르게 성장시켰다. 000는 어느 인터뷰에서 “처음엔 두려웠고 ‘어떻게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다. ‘우리들의 눈’을 만나면서 내가 느끼고 생각한 것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이 미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미술은 눈이 아닌 오감의 예술이다. 나만의 방법으로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프로젝트를 만들 때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시각장애인들과 사회의 연결지점이다. 앞이 잘 안 보이면 특히 판단하기 어려운 것이 스케일인데, 코끼리만지기 프로젝트는 보이진 않지만 만져봄으로써 그 규모를 가늠하는 창의적인 시도인 한편 시각장애인들이 ‘미술’과 ‘교육’은 물론 ‘창의력’, ‘다양성’, ‘생태 환경’ 등 우리 사회의 여러 분야와 만날 수 있는 자리다. 따라서 진행 과정에서 상당한 예산이 드는 터라 기업의 도움도 필요하다. 이처럼 다종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며 다방면으로 협력하는 코끼리만지기 프로젝트는 예술부터 생명에 이르기까지 현재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여러 이슈들과 자연스레 이어져 있다. 

 


우리들의 눈 

코끼리만지기 프로젝트는 시각장애인의 미술 교육 및 작가 활동을 지원하는 비영리단체 ‘우리들의 눈’과 함께하고 있다. ‘우리들의 눈’의 시작은 ‘본다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라는 나의 작가적 질문이었다. 눈에 보이는 것 너머, 보다 근원적인 존재에 대한 예술가의 탐색이 자연스레 ‘보이지 않는 세계’로 이어진 것이다.


보는 눈, 보지 못하는 눈, 이 모두가 우리들의 눈이란 뜻이다, 영어로는 ‘another way of seeing(달리 보는 법)’. 두 이름의 의미는 연결되어 있다. 보는 눈과 보지 못하는 눈(사실 우리 모두 둘 다 갖고 있지만)이 만났을 때 무엇이 일어나는지 궁금해하며 그 과정을 미술로 드러내는 프로젝트다. 여기에 참여하는 누구도 단순 수혜자나 봉사자는 아니며, 서로 영감을 주고받는 곳이길 기대했다. 먼저, 장애등급을 나누는 조건들이 무능이나 부족함이 아닌 다른 가능성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25년 전 ‘우리들의 눈’을 시작했다. 선례도 선생도 선배도 없었다. 온전히 나의 직관을 믿고 공부하며, 몇몇의 외국 사례들에 기대어, 미술에서 가장 멀리 있던 시각장애인들에게 한발씩 다가갔다. 

‘찾아가는 맹학교’ 미술수업 현장. ⓒ우리들의 눈

예술가인 나는 왜 이런 무모한 행동을 하게 되었을까, 여러 동기가 있지만, ‘본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 아래 이런 것들이 있었던 것 같다. 나의 성장기인 1960-70년대는 냉전, 고도성장과 프로파간다의 시대였다. 개인의 감수성을 무시하는 시대적 분위기에 압도된 한편 ‘집단’과 ‘다수’가 휘두르는 힘에 맞서 상대적으로 약한 개인의 존재를 어떻게 드러내야 하는지 고민했다. 이런 배경은 역으로 ‘약함’을 중심으로 한 세계관을 키워주었다. ‘우리들의 눈’의 탄생 또한 이러한 갈망과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들의 눈’은 안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미술에서 가장 멀리 있던 시각장애의 세계에 다가가는 예술활동이다. 그렇게 시각장애인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고 싶었다. 시각장애인을 수혜자로만 보는 기존의 복지적 관계가 아니라 문화적 관계 말이다. 문화에서는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이 없다. 의학적으로, 사회적으로 ‘장애’라고 하는 것을 문화적 관점으로 새로이 보는 노력에 힘을 기울였다. 


한국 사회의 장애 인식 수준에서 장애의 외피를 입은 이들이 자존감을 갖는 과정은 너무 힘겹다. 장애를 결핍으로만 보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는 사회에서 자존감을 가진 장애인이 되기란 불가능하리만치 어렵다. 사회적·의학적 관점에서 장애는 ‘결핍’이지만, 예술가의 눈에는 결핍이라기보다 ‘예민함’으로 보였다. 예술을 통해 그들의 잠재된 예민함이 드러나고 자존감이 생기길 기대했다. 다행히도 그 과정에서, 콤플렉스였던 미술이 재미있고 필요한 수업이란 것을 스스로 깨닫는 학생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나아가 미술대학에 진학하여 예술가의 꿈을 키우고 있는 시각장애 청년들도 생겨났다. 

 


가지 않는 길 프로젝트

‘시각장애 1급’이라는 타이틀에서 ‘고유한 시각을 가진 예술가’라는 타이틀로 바꿀 수 있도록 ‘우리들의 눈’은 오랫동안 시각장애를 가진 예술가 지원 프로젝트 ‘가지 않는 길’을 진행해왔다. 그 중 하나가 ‘시각장애인 미술대학 보내기’이다. 000는 그 프로젝트의 두 번째 주인공이다. 미대 진학 희망 학생은 예비교육, 학원비, 심리상담 등 물심양면의 지원을 받는다. 재학 중은 물론 졸업 후에도 여러 기업과의 협업(컬래버레이션), 전시, 강연 등을 주선하여 이들이 지속적으로 활동하도록 응원한다. 000는 현재 대구대 조형예술대학에서 현대미술을 전공하고 있다. 그는 최근 반스 코리아(Vans Korea)와 ‘우리들의 눈’이 협업하는 운동화 디자인 워크숍에도 참여했다.

‘미대진학 프로젝트’ 수업 현장. ⓒ우리들의 눈

또 다른 프로젝트는 ‘작가 인큐베이팅’이다. 본업은 안마사이고, 취미로 사진을 찍는 한 시각장애인이 있었다. 그는 본격적으로 사진을 배워 사진작가가 되고 싶어했다. 그의 희망을 실현해주고자 4년에 걸쳐 3명의 프로 사진가들과의 멘토링을 지원하였다.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자기만의 촬영방식과 스타일을 찾았고, 첫번째 개인전도 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는 작업을 멈췄다. 그 이후에도 작가 트레이닝을 원했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얼마 못 가서 스스로 포기하였다. 취미를 넘어 작가가 되기 위한 훈련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도전이라는 걸 실감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작가의 꿈을 실현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리라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이미지의 시대에 함께 살고 있다 

예술의 새 장을 연 조형예술학교 바우하우스(Bauhaus)에서 가르친 시각예술가 라슬로 모호이너지(László Moholy-Nagy)는 ‘미래의 문맹은 글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지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주요한 의미는 여전히 문자로 이뤄지고 있지만,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시각 중심으로 소통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일상에서도 문자보다 이모티콘이, 안내글보다 픽토그램이 더 소비된다. 시각장애인들 역시 동시대를 함께 살고 있으므로 이미지를 모르면 세상으로부터 더욱 고립될 수밖에 없다. 


이미지 정보를 사용해 개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미술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미술은 이미지로 자신을 표현하는 도구로서, 단순한 교과목을 넘어 세상과의 소통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시대 흐름의 선상에서 보면, 시각 중심의 세계에서 시각장애를 가진 사람은 무능하고, 이들의 미술 활동은 무용하다는 편견이 만연해 있다. 이런 편견을 깨는, 시각장애인들에게 미술이 필요하다는 사실과 이들의 가려진 창의성을 알리는 활동이 필요했었다. 그 필요가 '우리들의 눈'이 됐고, 조금씩 세상을 바꿔나가고 있다고 믿는다.


최근 나는 특수교육전문가와 연구 작업을 하고 있는데 그가 이런 고백을 했다. “특수교육자로서 시각장애인의 ‘결핍과 불편’에만 방점을 찍고 그것을 채우고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만 했었다. 그런데 '우리들의 눈'은 결핍과 불편을 ‘인식하는 다른 방법’을 보여줘서 많은 영감을 받게 된다.” 

나는 미술활동을 통해 시각장애를 가진 이들이 자신의 고유성을 스스로 발견하고 자신의 불편에 스스로 관여할 수 있는 인식과 능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발상이 현실화 되는 데는 예술뿐 아니라 인류의 역사, 상상력, 신체, 감각 등 예술과 연관된 온갖 영역과 다양한 학문 분야를 연결하는 전방위적인 식견이 필요했다. 비시각장애인인 나에게 시각장애는 다른 신체이기에 그 다름을 배워야 했다. 다름에 다가가는 예술가의 노력은 맹학교 미술수업의 커리큘럼 개발, 사회 문제를 이해하는 코끼리만지기 프로젝트 기획, 촉각책 출판. 시각장애인 미술대학 보내기, ‘Do touch’ 전시 기획, 시각장애인을 가르치는 미술강사 양성, 비시각장애인 시민 대상 강연 등 이제껏 없었던 문화콘텐츠로 실현되고 있다. 


“안 보이는 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친다고? 쓸데없이.. 그 시간에 안마나 영어를 해야지.”


‘우리들의 눈’을 시작할 무렵 맹학교 내에서 조차 이런 말을 많이 들었다. 여기저기서 무모한 프로젝트라고 힐난하던 ‘우리들의 눈’이 시각장애인들에게 미술이 왜 필요한지를 증명해 나가는 데 무려 20여 년이 걸렸다. 험난했지만 꾸준히 하다보니 교과서에도 실리고 시각장애 예술가도 탄생시켰다. 한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도 드문 시도다.


장애를 결핍이라기보다 창의적 가능성으로 보고, 이를 증명해 나가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방해물을 하나씩 대면하는 일. 이것이 ‘우리들의 눈’이 걸어온 길이다. 이 길은 지금 '우리들의 눈'이 걸어가는 길이며, 앞으로 걸어갈 길이다. ‘우리들의 눈’의 역사는 계속된다. 

ⓒ우리들의 눈 

2022. 07.

2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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