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설
가톨릭대학교
공연예술문화학과 교수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전 지구적인 감염 상황을 ‘팬데믹(pandemic : 감염병 최고 경고 등급)’으로 공식 명명한 이후 유네스코(UNESCO)는 ‘리즐리아트(ResiliArt)’라는 이름의 예술 캠페인을 벌여 왔다. 리즐리아트는 회복탄력성을 의미하는 ‘Resilience’와 예술을 뜻하는 ‘Art’를 합친 조어로 예술인 및 창작자를 지원하기 위해 2020년 4월 15일 유네스코가 제안한 운동이다. 이는 전 세계 예술인과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코로나19가 문화예술계에 미친 영향과 코로나로 말미암아 문화예술계가 직면한 새로운 도전, 그리고 예술의 회복을 위한 대응 방안을 연속해서 토론하는 캠페인이다(Frlan, 2020)
한국의 문화정책 분야와 예술계 내부에서도 코로나가 삶의 일부가 된 일상이 예술을 만나 고통은 덜고 활기를 더하도록 계속 시도하고 움직이고 있다. 특히 예술이 가진 ‘치유의 힘’에 주목한 활동은 코로나에 기인한 신체적·정신적 어려움이 널리 펴져 있는 한국 사회에 시급한 처방전이 아닐까. 이 글에서는 국내 예술치유 프로그램의 기획 및 진행에 참여한 필자가 예술치유 분야의 역사를 살펴보는 한편 현장에서 겪은 예술치유의 의미를 곱씹으며 예술치유의 필요성을 조명한다.1)
코로나와 함께 일상을 살아가는 요즘, 문화예술교육은 이 시대를 어떻게 반영하고 이끌어나갈 수 있을까. 필자는 예술이 가진 주요한 힘 중 하나인 예술의 치유 속성을 주목하며, 예술의 치유하는 힘의 가치를 톺아보는 것은 물론 국내 예술치유 분야의 전망을 짚어보고자 한다.
예술의 치유력에 대한 담론과 쟁점
‘예술치유’는 예술을 매개로 트라우마를 비롯한 심리적 문제를 극복하고, 건강을 회복하여 전인적(全人的) 성장에 이르도록 돕는 행위를 의미한다. ‘예술치료’와는 정의가 사뭇 다른데, 예술치료는 예술치유의 정의에 내담자의 병리적 현상에 대한 예술치료사의 정확한 진단(diagnosis)과 처방(prescription)이 추가된다는 차이가 있다(Brown, 2006). 물론 예술치료와 예술치유 모두 예술 고유의 창의성과 치료하고 치유하는 힘에 근거하여 개인의 정서적 건강을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미술·음악·연극·무용 등 문화예술 활동을 통해 개인의 자기인식 및 자기표현 능력을 향상하고 자기존중감·자기효능감·자기조절능력·자기성찰능력 등을 갖추게 하는 일련의 예술 기반 활동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다만 예술치유는 예술가 또는 예술강사의 지도 아래 진행되는 좀 더 열린 예술 참여 활동으로, 참여자의 정서적 상태나 예술적 표현에 대한 해석을 오롯이 참여자의 몫으로 남길 뿐만 아니라, 참여 후 치유 유무 또는 치유 효과에 대한 판단 또한 참여자에게 맡기는 경향이 있다(Kim, 2011 ; Meyrick, 2001). 한 예로 영국예술위원회(Arts Council England, ACE)는 예술치료사의 진단과 처방에 초점을 맞춘 예술치료에 의존하기보다, 예술가에 의한 ‘Arts in Health(건강한 삶 속 예술)’와 ‘Arts and Health(예술과 건강한 삶)’ 활동을 개인과 지역공동체의 건강을 증진하고 의료서비스 및 의료시설 환경을 개선하는 데 기여하는 예술 기반 활동으로 명명하며 장려하고 있다(ACE, 2007).
코로나 종식이 막연한 가운데 일상 ‘회복’이라기보다 코로나 ‘적응’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한 지금, 전 지구적으로나 각 나라에서나 예술의 치유력에 대한 관심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예술의 치유력은 개인의 정서적인 건강과 긍정적인 자아상을 회복시키고, 나아가 이들이 사회에 다시 복귀하고 적응하는 것을 궁극적으로 돕기 때문이다. 실제 캐나다 정부와 영국 정부는 보다 다양한 방법으로 질병을 치료하고 환자를 정서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의사가 환자에게 예술 활동을 적법한 치료제로 처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특히 영국에서는 국립보건원과 예술위원회가 협력해 예술치유의 효과를 가늠하는 시험(pilot)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며, 2023년까지 영국 전역으로 확대할 예정이다(Fancourt et al., 2020). 아일랜드예술위원회(Arts Council Ireland, ACI)도 다양한 예술 활동이 건강 증진에 기여하는 효과를 주목한다(ACI, 2010). 아일랜드예술위원회가 주목하는 예술치유는 환자와 사회적 약자 또는 소수자뿐만 아니라 심신의 치유가 필요한 누구에게나 필요한 활동임을 강조한다.
이쯤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예술의 치유력에 착안한 예술 참여 활동이 치유를 단순히 목적으로 간주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에 내재하는 심미적 기능과 가치의 중요성을 바탕으로 치유를 강조한다는 점이다. 예술의 치유 원리는 예술 활동을 통해 얻는 자기성찰력을 바탕으로 자기 자신을 발견하며 자기존중감을 높일 뿐만 아니라, 나아가 타인과 관계 맺으며 공동체에 관심을 갖고 이타심을 발휘하는 일종의 스필오버 효과(spillover effect : 물이 넘쳐 인근 메마른 논을 적시듯이, 어떤 현상이나 혜택이 널리 퍼져 영향을 미치는 것)로도 설명된다.2)
예술의 치유력과 그 파급효과는 국내외 연구보고서나 논문을 굳이 참고하지 않더라도, 예술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한 사람들의 증언에서 쉽게 알 수 있다. 다음은 필자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2021년 찾아가는 예술처방전 효과성 연구’에서 수집한 프로그램 참여자와의 인터뷰 내용 중 일부이다. 아래 진술들은 예술의 치유 속성과 그 파급효과를 참여자 자기만의 솔직하고 순수한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상담에서는 솔직히 자기가 말할 수 있는 것이 한정돼있잖아요. 근데 예술로써 상담하는 방식은 자기가 몰랐던 감정에 대해서 돌아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자신감이요. 이 프로그램 하면서 이렇게 자신감도 생기고 용기도 생기고 왠지 더 하고 싶어 하는 느낌, 그런 느낌이 좀 많이 들었어요. 내가 주저주저했던 부분들을,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뭔가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겨났다는 뜻이에요.
예술은 상대방이 좀 더 편안하게 마음을 열게 하는 그런 힘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 자유롭게 말로 하지 못하는 것들을 그림으로 표현한다든지 다르게 표현을 해서 마음의 문을 열게 하고. 편안하게 그냥 아무 부담 없이 하는 것들이 너무 좋은 것 같아요.
같은 주제로 사람마다 이렇게 다르게 표현 할 수 있다는 걸 느꼈어요. ‘이 사람이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이렇게 표현을 하는구나’ 하고 생각만 했던 걸 실제로 볼 수 있다는 게 좀 신기했어요. 그리고 제 거를 보면서 ‘아... 내가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고.
조금 더 사람들과 가까워질 수 있는 것 같아요. 음악이 하나의 언어 같고, 마음을 열어주는 것 같아서. 사실 그냥 상담만 하는 프로그램도 유익하지만, 만약에 이게 음악이 가미 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까지 서로 가까운 느낌을 받았을까 싶어요.
‘2020 찾아가는 예술처방전’ 프로그램에 참여한 ‘온전’ 팀의 예술꾸러미 ‘와후(WAWH, With Art With Heart)’.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와후’ 예술꾸러미에는 작은 모래시계가 들어있다. 예술꾸러미 안의 다른 재료로 걱정인형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기 전, 모래시계를 뒤집어 모래가 다 내려오는 3분 간 심호흡을 하며 마음의 안정을 찾기를 권장한다. 작업 중에 실수하거나 망쳤다는 생각이 들 때도 모래시계를 적극 활용하면 도움이 된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유튜브 채널 영상 갈무리.
2020 찾아가는 예술처방전 프로그램에 참여한 ‘비기자’ 팀의 ‘내일을 기다리는 느린 숲’ 예술꾸러미에는 찾아가는 예술처방전 안내문, 홈이 새겨진 나무판, 다양한 모양의 아크릴 조각 등이 담겨있다. 예술꾸러미를 받은 참여자들은 나무판의 홈에 각자 원하는 대로 아크릴 조각을 꽂아 ‘나만의 느린 숲’을 만들 수 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유튜브 채널 영상 갈무리.
‘2021 찾아가는 예술처방전’ 프로그램에 참여한 ‘솜솜(Stay On Music, Stay On Me)’ 팀의 악기연주 체험 예술꾸러미에는 쉽게 배우고 연주할 수 있는 악기 칼림바가 들어있다. 솜솜의 예술꾸러미는 접근하기 쉬운 악기를 매일 연주하는 습관, 즉 ‘음악 루틴’으로 삶의 활력을 더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유튜브 채널 영상 갈무리.
문화예술교육 관점에서 예술치유 바라보기
모든 분야에는 역사가 있다. 심리학에도, 의학에도, 예술교육에도, 그리고 예술치료에도 고유한 역사가 있다. 미국의 경우, 1960년대에 미술치료협회가 만들어져 교육과정을 통일하면서 미술치료를 체계적으로 발전시켰다면, 국내에서는 대학원에 예술치료 과정이 처음 만들어진 1999년 이후, 즉 2000년대를 국내 예술치료 분야의 도입부로 간주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한국에서 ‘예술치료’와 ‘예술치유’의 차이가 두드러지듯, 미국의 미술치료 역사에서도 경합을 벌이는 두 개념이 있다. 하나는 ‘art as therapy(치료로서의 예술)’이고 다른 하나는 ‘art for psychotherapy(심리치료를 위한 예술)’이다. 전자는 예술 자체의 치유력을 더 강조한다면, 후자는 예술을 심리치료의 도구로 쓴다. 전자와 후자 모두 ‘therapy(치료)’를 포함하므로 같은 얘기가 아닐까 생각할 수 있지만, 둘의 관점은 조금 다르다. 현재 ‘예술교육’, ‘예술치유’, 그리고 ‘예술치료’가 혼재해 쓰이는 것 또한 예술 본연의 힘을 바라보는 이원화된 관점에서, 이원화된 관점을 못 벗어난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미국 예술치료의 초기 역사를 보면 처음 예술치료계를 움직이고 발전시킨 선구자들은 교육에 관심을 둔 예술가나 예술교육자였다. 이들 대부분은 예술에 내재하는 치유 속성에 주목하고 이를 발전시키는 데 주력했다. 그러나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심리치료를 위한 예술(art for psychotherapy), 즉 예술치료는 치료3)의 영역으로, 치료로서의 예술(art as therapy), 즉 예술치유는 예술교육과 커뮤니티아트(공동체예술)의 영역으로 분화해, 자연스럽게 각자의 영역을 구축하며 발전해 나갔다.
코로나가 등장하기 전 한국 예술교육계에서도 예술의 치유력과 치유 속성은 관심을 모았다. 예술의 치유력과 치유 속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예술교육의 효용성과 가치를 전달하기에 매우 매력적이고 효과적인 주제이다. 한국인이라면 대개 알고 있듯이 우리나라 국민의 삶의 만족도는 매우 낮다(2020년 기준 OECD에 가입한 33개국 중 32위이고, 회원국 자살률 1위이다). 낮아도 너무 낮은 삶의 만족도는 ‘치유’가 개인의 문제이기를 넘어 사회 문제임을 내비친다. 그러나 미국의 예술치료와 예술치유는 모두 예술교육의 한 갈래였다가 점진적으로 발전해 각각 독립한 개별 학과가 된 것과 달리, 한국에서는 예술교육과 예술치유, 그리고 예술치료가 급조된 정책에 따라 각각 도입되었다. 그러다 보니 예술강사가 예술치유를 목적으로 프로그램을 진행하지만, 실제 프로그램 참여자는 예술치유보다 예술치료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인 다소 황당한 일도 적잖다. 게다가 예술의 치유력을 직접 경험하고 관련 지식을 축적한 티칭아티스트(teaching artists : 교육하는 예술가)와 예술강사들이 자발적으로 예술치유 활동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거의 모든 예술치유 프로그램이 정부와 공공기관이 주도하는 일자리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것도 예술교육, 예술치유, 예술치료의 개념과 실제 모두 한국 사회에 제대로 안착하지 못한 현실을 보여준다.
코로나로 예술의 치유력이 새삼 각광받는 지금이야말로 예술의 치유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고민할 때다. 다시 말해, 예술의 치유력을 무조건 믿는 것이 아니라, 이를 어떻게 구현해 나갈지 깊이 고민하고 토의하는 일이 앞서야 한다. 미국에서 진행한 한 연구에 따르면, ‘왜 사람들은 보통 예술에 무관심할까’라는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놀랍게도 어린 시절 학교에서 보낸 예술 수업 시간이 너무 지루했거나 (잘못된 평가방식으로) 재능이 없다고 느꼈거나 과도한 비판을 받았던 기억 때문으로 밝혀졌다. 예술은 인간의 본능적인 창조 활동이므로, 예술교육을 제공하기만 하면 자동으로 피학습자의 창의성이 키워진다는 사고를 경계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술은 치유력이 있으니 예술교육을 받으면 당연히 치유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여기는 단순하고 무지한 편견을 경계해야 한다.
예술교육이 예술의 치유 활동의 장으로서 되살아나고, 예술가와 예술강사가 그 중심을 잡는 지금의 상황은 무척 고무적이다. 예술의 자연발생적인 치유성을 교육적으로 촉진하는 데는 예술치료사보다 예술강사나 예술가가 더 풍부한 자원을 갖고 있다고 볼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먼저, 예술치료사 중에는 예술 전공자가 아닌 사람이 많다. 또 예술치료를 공부할 때 심리학적 기반에서 사람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상담하는 기술을 배우는 것만으로도 벅찬 터라 예술 매체의 고유하고 다양한 활동을 익히는 것부터 스스로 프로그램을 기획하기까지 필요한 역량을 기르기가 쉽지 않다.
다만, 티칭아티스트를 포함한 예술강사들이 ‘소통’과 ‘치유’라는 화두를 대하는 방식이 예술치료사들의 그것과 닮아가는 것 같아 조금 우려스럽다. 티칭아티스트와 예술강사는 ‘예술치유’라는 화두를 예술치료사와는 다르게 풀어내야 하지 않을까. 오늘날 사회 참여적 예술의 요구가 높아진 경향에 발맞춰, 자신의 작업과 교육 커리큘럼이 좀 더 직접적으로 사회와 연결되도록 노력하고, 예술 활동에서 사회적 가치와 의미를 찾는 예술가와 예술강사 또한 점차 늘어나고 있다. 단, 예술의 사회적 효용과 가치를 묻는 시대적 요구에 매몰되기 이전에 티칭아티스트로서 또는 예술강사로서 내가 하고자 하는 문화예술교육의 목적과 소명이 무엇인지를 재정의하고, 이를 토대로 예술의 치유하는 힘을 구현해 나갈 때, 비로소 문화예술교육의 화법으로 예술치유를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뿐만 아니라, 예술의 치유 속성이 ‘치료’ 그 자체로 치환되지 않고, 문화예술교육에서 발현하는 다양한 속성 중 하나로 문화예술교육 생태계에 받아들여지는 인식의 전환 또한 필요해 보인다. 문화예술교육계 안에서 ‘치유’를 말할 때, 예술의 고유성을 추상적으로 논의하는 데서 벗어나, 교수법을 고안하고 다양한 재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활동을 고민하는 연구와 논의가 활성화하길 바란다.
필자가 박사학위 과정에서 진행한 워크숍 ‘Window of Hope’ 참여자들이 만든 ‘나비’들. ⓒ김인설
참고 문헌
– Arts Council England (2007). A prospectus for arts and health.
– Arts Council Ireland(2010). Arts &health: Policy and strategy 2010-2014. Dublin: Arts Council Ireland.
–Brown, L.(2006). Is Art Therapy? Art for mental health at the millennium. PhD thesis. Manchester Metropolitan University.
– Fancourt, D., Warran, K., & Aughterson, H.(2020). Evidence summary for policy: The role of arts in improving health & wellbeing. The Department for Digital, Culture, Media & Sport, U.K.
– Frlan, J. D. (2020). Culture as a drive of development after COVID-19 pandemic. Security Crises in the 21 st Century and How to Manage Them Social and Security Aspects, Volume, 194.
– Kim, I. (2011). Art as a catalyst for social capital: A community action research study for survivors of domestic violence and its implications for cultural policy. The Ohio State University.
– McCarthy, K. Ondaatje, E., Zakaras, L., & Brokkes, A.(2004), Gifts of the Muse; Reframing the Debate about the Benefits of the Arts, Santa Monica, RAND Institute.
– Meyrick, J. (2001), A Review of Evaluation in Community-based Art for Health Activity in the UK, Health Development Agency, London.
1) 필자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서울문화재단에서 각기 진행하는 ‘찾아가는 예술처방전’ 사업과 ‘예술로 힐링’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두 사업은 각각 주체와 대상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지만, 둘 다 예술의 본질적 속성 중 하나인 ‘치유’를 목표로, 문화예술교육의 형식을 빌려 소규모 모임 형태로 운영하는 예술 참여 활동이다.
2) 예술의 개인적·사회적 가치에 대한 논의는 미국 윌리스 재단(Wallace Foundation) 소속 RAND 예술연구센터에서 발간한 보고서 「뮤즈의 선물: 예술이 주는 혜택에 대한 논의의 재구성(Gifts of the Muse: Reframing the debate about the benefits of the Arts)」에 상세히 나와 있다(McCarthy et al, 2004).
3) 여기서 ‘치료’는 개인의 자연치유력이 이미 손실된 채 병리적 현상을 앓고 있는 이들에게 제공되는 것으로, 치료받는 당사자가 겪는 변화보다 전문가가 도움을 주는 임상적 측면이 강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