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민
전(前) 강원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주임
사업 담당자인 나에게 누군가의 안녕을 묻는 것은 아주 중요하고 당연한 일과였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전 지구가 몸살을 앓은 지난 3년간은 '일상의 정상화'라든가 그 유사한 표현을 돌려써서 안부 인사로 늘 덧붙였다. 원래대로라면 봄엔 황사, 여름엔 불볕더위, 가을엔 일교차, 겨울엔 감기를 조심하시라는 인사로 끝을 맺었겠지만, 언제부터인가 조심해야 할 대상은 모두 '코로나'가 되어있었다. 여전히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된 곳이 많기는 하지만, 조심해야 할 대상에서 코로나를 언급하는 빈도수가 슬그머니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 여러모로 감개무량하다. 지난 3년 동안 몸담은 강원문화재단을 나온 시점에서 한때 내가 담당한 웹진에 원고를 쓰고 있다는 것 역시 감개무량하고.
「잇다」 에 글을 쓰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재단 입사 초기에 강원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소속 신규 담당자로서 웹진 지난호 리뷰를 작성했다. 강원도에 막 자리를 잡았고 재단 업무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아 두려움과 걱정이 적잖은 한편 리뷰를 쓰며 꽤나 설렜던 감상이 지금도 어렴풋이 남아있다. 그때 작성한 웹진 리뷰는 사업에 대한 기대감이 그득했다. 알아가야 하는 것, 알아야 하는 것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가득했다.
그러나 이듬해 코로나가 전 세계로 확산했고 센터에서 계획한 사업은 큰 타격을 받았다. 기대로 부풀었던 마음은 어느새 막막함으로 채워졌다. 현장 의견을 수렴해 지원사업 운영지침을 전반적으로 수정해야 했고, 워크숍과 같은 주요 행사는 줄줄이 연기되거나 취소되었다. 현장 분위기가 좋지 않다 보니 현장 방문 모니터링에도 큰 차질이 빚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을 뿐인데 그게 최선일 수밖에 없었다. 일례로, 2020년부터 담당한 ‘강원 문화예술아카데미’는 공교롭게도 시작하려는 시점에 코로나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터라 연기를 거듭했다. 올해 못 하면 어쩌나 마음이 무거웠는데 다행히 그 해 10월께 확진자 증가 추세가 잠시 주춤한 틈을 타서 부랴부랴 문을 열었다. 팬데믹 추세를 예의주시하며 ‘빈틈’을 찾고, 그 기회를 놓칠세라 긴장을 놓지 못했다. 숨 돌릴 여유도 없이, 늦게 시작한 만큼 일사불란하게 진행하려 애썼다. 운영하기만 해도 다행이고, 완성도까지 높길 바라면 욕심이라는 나름의 자기 위안과 핑계를 벗으로 삼은 한해였다.
‘2020 강원 문화예술아카데미’는 문화예술계의 온태트·언택트 활성화 흐름에 발맞춰 ‘온라인 콘텐츠 기획과 제작’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강원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그로부터 2년이 흘렀고 지난달 퇴사를 했다. 코로나는 아직 종식되지 않았다. 재단에서 보낸 코로나 시국 3년은 앞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불안감이 사람에게 얼마나 해로운 것인지 뼈저리게 실감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과장을 좀 보태서) 절체절명의 순간이 지속하다 보면, 처음엔 전전긍긍하기만 하던 사람이 얼마만큼 초연해질 수 있는지 체험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돌아보면, 속으로 많이 앓는 와중에도 배워내고야 말았다는 점이 놀랍다. 코로나 시국 덕분에(!) 사업을 연기하고 다른 방식을 모색하며 틀에 박힌 행사 또는 프로그램 운영방식을 돌이켜볼 수 있었다. 전에는 참여 인원을 되도록 많이 모집하는 것을 목표로 했고, 이들이 모두 한 장소에 있어야 한다고 고집하며 ‘직접 교감’만이 최선이라는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방법은 당연히 하나뿐이라고 여겼던 나에게 팬데믹은 방법은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고, 여러 갈래의 길이 있다고 알려준 뜻밖의 재난이었다. 문화예술교육 활동은 꼭 다수가 모여야만 높은 성취감과 뿌듯한 성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꼭 한자리에 모이지 않아도 각자 있는 곳에서 (따로 또 같이) 충분히 몰입할 수 있는 것이고, 참여한 소감과 교훈은 꼭 얼굴을 마주하고 몸을 맞대지 않아도 거뜬히 소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깨달음을 얻고 새로운 현장을 꾸릴 수 있었던 데에는 함께 일한 사람들의 몫이 필수 불가결하다. 그토록 힘든 여건에서도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야 말겠다는 현장 활동가 선생님 여러분의 의지와 수고 덕분에 프로그램을 무사히 해낼 수 있었다.
현장을 방문하다 보면 사업 담당자인 나뿐만 아니라 현장의 분위기도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코로나가 한창 번질 때도 온라인 콘텐츠나 문화예술교육 키트를 활용하는 등 운영방식의 변화는 생각보다 두드러지지 않았다. 아마 이 같은 비대면 방식을 한번 해보고 딱히 좋다는 느낌을 못 받았기 때문이리라 짐작해본다. 비대면 방식은 아무래도 대면 방식에 비해 참여자의 반응을 살피기가 어렵다. 참여자의 반응을 살피기 어렵다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가장 큰 동력을 잃은 것과 다름없으니 비대면 방식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않은 듯하다. 한편 다른 변화가 눈에 띄었다.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던 프로그램 운영 적정인원이 대폭 줄어든 것이다. 기존 적정인원이 15~20명이라면 바뀐 적정인원은 5~10명가량으로, 규모가 반으로 줄어든 현장이 이전보다 훨씬 많아졌다. 20명을 모집하면 결원이 생기기 일쑨데, 결원을 감수하고 많은 인원을 모집하는 것이 아니라 기획과 모집 단계부터 정원을 적게 정한 것이다. 프로그램 참여 인원이 많고 적음으로 프로그램의 질과 성과를 판단하는 속이 좁은(!) 담당자는 아니기에 오히려 인원 모집에 대한 부담을 던 현장의 모습이 반가웠다. 프로그램 참여 인원이 확 줄어들면서 그만큼 참여자 간 관계가 돈독해지고 프로그램의 밀도도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프로그램의 밀도는 고스란히 참여자와 기획자, 강사의 만족도로 돌아왔다. 지난 3년의 소회를 묻는다면, 분명 ‘좋았다’고 선뜻 말할 수 없는, 힘겹고 지난한 여정이었다. 하지만 요리조리 뜯어보면 나름대로 긍정적이고 고무적인 면도 찾을 수 있다는 걸, 이 글을 쓰며 지난날을 돌아보는 지금 새삼 깨닫는다.
2022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에 참여한 ‘당신의들판’ 팀 수업 현장. 코로나 시국 속 대면 수업을 진행하고자 5~10명 안팎 소규모로 꾸렸다. ⓒ문정민
2022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에 참여한 ‘리일러스트’ 팀 수업 현장. 리일러스트의 수업 역시 5~10명 안팎의 적은 인원을 모집해 진행했다. ⓒ문정민
대면 현장은 사람과 사람이 물리적으로 접촉하며 ‘더욱 가깝게’ 만나는 자리이다 보니, 비대면 공간에서 맺는 관계보다 끈끈하달까. 얼마간 소식이 뜸하고 조금 소원해져도 안 될 것 없건만, 프로그램에서 만난 인연을 확인하고 돈독한 관계를 이어가자며 내년의 만남을 기약한다. 현장의 절박함은 어쩌면 코로나에 걸리고 말고를 떠나 ─ 참여자 중 누군가가 코로나에 걸려 격리되고, 접촉한 다른 참여자 모두 PCR 검사를 받고, 끝내 프로그램을 중단하는 위기를 맞고 말고를 떠나 ─ 다른 누군가와의 관계를 지속하고 싶다는 바람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현장 활동가(기획자, 강사 등)나 참여자에게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은 자신과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장소이면서 자신에게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채워나갈 수 있는 장소일 것이다. 실제로 문화예술 단체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게 된 의도나 동기는 대개 이들이 우리 지역에 대해 품고 있는 문제의식을 문화예술로 지역민과 함께 풀어나가자는 데 있다. 참여자는 자신의 마음을 헤아려주는 문화예술 현장 활동가의 존재에 감사하고 또 이들이 공유하고자 하는 프로그램 의도에 응한다. 그리고 프로그램 현장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또 다른 참여자와의 관계에 깊은 애정을 느낀다. 나는 사업 담당자로서 이렇게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매개로 관계 유지에 애쓰는 현장 활동가와 참여자의 절박함에 깊이 공감했다. 하지만 공감하는 만큼 부응했을까, 불쑥 아쉬운 마음이 든다.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 때문에 프로그램 운영이 힘든 터라 올해 진행하지 못해도 내년도 지원에 불이익은 없다거나 대면 방식이 힘들다면 비대면 방식으로 전환해도 된다고 안내하면서도, 이런 대응이 과연 현장 활동가나 참여자에게 위안이 되었을까. 뒤늦은 후회가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만, 고민만 하고 적절한 해결책은 마련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현장 상황은 프로그램 장르 및 구성, 참여대상 등에 따라 제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데 각 현장에 맞는 유연한 기준을 가지고 대처했었는지도 확신이 서지 않는다. 혹여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환경을 정답이라 여기고 현장들을 감히 비교하지는 않았나, 현장 모니터링 한번 다녀온 감상으로 그곳의 모든 것을 판단하고 있지는 않았나 후회가 없지 않다. 무엇보다 지원사업의 주제, 사업 방향 등이 매년 달라지는 것도 현장 활동가에겐 감당하기 힘든 미션으로 느껴졌으리라고 생각하면 더없이 죄송하다.
여전히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많고 담당자들은 고민에 고민을 이어가고 있을 텐데, 퇴사하며 현장을 떠난 나는 그곳으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나왔다. 한동안은 ‘강원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사업 담당자’라는 역할과 업무의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때의 내가 생소하게 느껴질 만큼 나의 생활은 빠르게 전환되었다. 나만의 페이스를 찾고 나만의 루틴으로 구성된 생활. 그래서인지 요즘 말로만 듣던 ‘일상 회복’을 하고 ‘정상궤도’에 오른 것 같은, 착각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안도를 느낀다. 요즘 내가 나만의 페이스와 나만의 루틴에서 일상을 느끼듯, 지난날 ‘우리’였던 문화예술교육 현장도 하루빨리 일상을 회복했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무수한 변화가 일어날 문화예술교육계에서 현장마다 자신만의 궤도를 만들고 큰 탈 없이 그 궤도를 돌며 잘 적응해나가길 바란다. 나에겐 과거형이고 활동가들에겐 현재 진행형인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언젠가 다시 만난다면 좋겠다고, 우리의 또 다른 접점일 미래형으로 말하고 싶다. 그때까지 봄엔 황사, 여름엔 불볕더위, 가을엔 일교차, 겨울엔 감기를 조심하세요!